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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61)화 (61/167)

61.

“아리야, 일어나!”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 시끄러운 목소리가 포포라는 것을 나는 곧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여우가, 간만에 푹 자고 있는데 감히 나를 깨워?

평소라면 당장 일어나서 꼬리를 잡았겠지만, 난 지금 몹시 피곤하다. 그러므로 이불 속으로 더 깊게 파고들었다.

“싫어……. 더 잘래.”

“해가 중천에 떴어!”

“중천에 뜨든, 하천에 뜨든, 나 잘 거야…….”

나는 잘 거다. 지금도 자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잘 거라고!

이불 안이 너무나도 따뜻했다. 그래서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오늘은 자는 날이야…….

“우씨, 너 무슨 잠만 자냐!”

“으응, 난 자다 죽을 거야…….”

포포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포포가 나의 머리 위에 있는 무언가를 잡아당겼다.

아, 아!

그런데 그곳이 굉장히 민감한 것이,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야!”

덕분에 잠이 달아난 나는 소리치며 포포의 푹신한 꼬리를 잡았다. 그러자, 포포가 볼멘소리를 냈다.

“아, 아야!”

“너 뭐 했어?”

“뭐 안 했어! 그냥, 네 귀 잡아당긴 거야.”

뭐? 귀?

귀가 왜 머리 위에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할래?

아침부터 헛소리를 하는 포포에게 한심한 눈길을 보냈다.

“어디서 거짓말이야! 너 뭐 했냐니까!”

그의 꼬리를 더 세게 잡아당기자, 포포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아악! 진짜라니까, 아리야! 봐봐!”

포포가 억울하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자, 기분이 묘해졌다.

……진짜인가?

황급히 방에 비치되어 있는 거울을 찾았다. 거울 앞에 다가서자,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뭐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귀와 다름이 없었던 나의 귀가, 동물의 귀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란 것이 하나 있었다.

……왜, 내 귀가 뽀뽀의 여우 귀랑 비슷한 모양인 거야?

그랬다. 나는 대외적으로 백령의 아이라 알려져 있는데, 내 귀는 여우의 귀였다.

이, 이게 무슨 혼종이야…….

“아악……!”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왜, 왜 그래, 아리야!”

나의 포효에 놀란 포포가 눈을 당황하며 내게 물었다.

“뽀뽀, 내 귀 언제부터 이랬어?”

황급히 포포를 돌아보았다. 나의 머리 위에 생긴 귀를 손으로 가리키며 묻자, 그가 어깨를 들썩였다.

“몰라, 어제까진 안 그랬어. 오늘 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던데?”

왜 이 여우는 이렇게 태평한 거야?

눈을 껌뻑이며 그를 바라보자, 그가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럼, 문제가 아니야?”

“당연한 거 아니야?”

포포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 조그만 여우가 뭘 안다고!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아냐고!

하루아침에, 어? 내 머리에 이상한 게 생겼는데 네가 뭘 알아!

포포의 귀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포포가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귀를 감싸기 바빴다.

“아악, 아리야, 그만해!”

“네가 하루아침에 이런 게 생긴 기분을 알아? 어?”

포포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알아!”

“그래, 알……, 뭐?”

포포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자동으로 그의 귀를 쥐었던 손이 풀렸다. 그러자, 포포가 자신의 귀를 매만지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너무 흥분했었나 보다. 뽀뽀야, 미안해…….

포포가 훌쩍이며 조그마한 입을 열었다.

“성장하면서 인간 형태랑, 본래 모습이랑 섞이는 건 당연한 거잖아.”

응……? 그런 거야?

인간 형태랑, 본래 모습이랑 섞이는 과정이라고?

포포의 말에 멍한 표정으로 그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몰랐구나? 신수마다 다르긴 한데,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섞이는 경우도 많아. 웬 호들갑인가 했네.”

“……응?”

“나도 그랬는걸? 덕분에 어릴 때 동족들한테 엄청 놀림 당하긴 했지만.”

……넌 지금도 어려, 뽀뽀야.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하긴, 나는 인간인데 구슬의 힘을 받게 되었으니, 갑자기 이렇게 내 모습이 변한다고 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긴 하다. 다만, 조금 당황스러울 뿐.

아니, 근데 왜 여우 귀……?

나는 백령에게서 기를 받았다. 그렇다면 호랑이 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좀 문제가 심각하다. 어째서 여우 귀인지 이해도 안 될뿐더러, 다른 신수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뽀뽀야, 뭐. 바보니까, 그렇다 치고.

“나, 근데 왜 여우 귀야?”

“그건 나도 모르지.”

흐음…….

일단은, 귀는 가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지난번에 은월이 내게 준 면사 같은 것을 위에 덮어, 귀를 완전히 가렸다.

혹시 모르니까, 확실하게 알게 되기 전까지는 가리는 게 좋겠어…….

“형님한테 물어보는 게 어때?”

형님? 뽀뽀가 말하는 형님이라면…… 백령임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궁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평소라면 여노가 나를 깨웠을 텐데, 여노도 안 보이고…….

일단은 백령에게 가는 게 먼저려나…….

확실히 지금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는 백령뿐인 것 같았다. 여노와 자하, 아루는 구슬의 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내가 인간인 것 또한 모르니까.

백령이라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려줄 것이다.

“뽀뽀, 가자.”

“형님한테 가는 거야?”

포포가 자신의 붉은 눈을 빛냈다. 그의 피처럼 붉은 눈에 기대가 가득 차 있었다. 아마 백령을 만난 지 꽤 된 터라, 오랜만에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이놈아. 형님한테 간다.

고개를 끄덕이자, 포포가 얼씨구, 좋다며 따라나섰다, 아니, 오히려 나보다 앞질러서 걸어갔다.

하여간, 요망한 여우 녀석.

백령의 궁에 웬일로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왔나 했더니, 궁에 힘찬 스라소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나와 포포는 백령의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광경을 소리 없이 그저 바라만 보았다.

“이건 말도 안 돼요, 백령 님!”

“자, 자하 님……. 일단은 진정을 좀…….”

“놔, 여노! 북쪽 땅에 제가 아닌 아루가 간다니요! 이건, 이건……!”

자하의 한쪽 팔은 여노, 한쪽 팔은 아루가 그를 붙들어 세웠다. 힘이 얼마나 센지, 그 둘이 버거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백령의 집무실 문 앞에서 화를 주체 못 하며 난리 치는 자하를 말리던 아루가 입을 열었다.

“고집부리지 마, 자하.”

“아루, 너 이 자식, 네놈이 감히 백령 님께 고자질을 해? 이 치사한 자식아!”

나와 포포는 시끄러운 자하의 목소리에 양손으로 귀를 막고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자질이라니? 난 그저 널 생각해서 보고를…….”

“닥쳐. 진정으로 날 생각했으면 그러면 안 됐어.”

자하는 아루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자하는 으르렁대며 그를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둘이 멱살 잡고 한판 붙을 것만 같았다. 둘의 서늘한 냉기에, 공간이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여, 여노, 저 둘, 왜 저래……?”

둘의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여노에게로 가서 조용히 물어보았다. 여노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어머, 아리 님, 언제 오셨어요?”

“방금. 근데 무슨 일 있어?”

“아, 그게…….”

여노가 우물쭈물하며 내게만 작게 속삭였다.

상황은 이랬다. 중앙 회의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아루가 백령에게 지난 축제에서 있었던 사화와의 일을 말한 것이다.

상황을 들은 백령은, 이번 중앙 회의에 자하를 데려가지 않기로 결정했고,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은 자하가 그럴 수는 없다며 지금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나야, 뭐……. 일단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줄었으니 다행이긴 하다만…….

저렇게까지 억울해하는 자하를 막상 보니 마음이 안 좋긴 하다.

아루도 마찬가지인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자하를 안타깝게 바라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하, 너 사화 님이랑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대잖아. 아무리 중앙 회의 때문에 가는 것이라 해도, 북쪽 땅은 전적으로 사화 님의 관할이야. 네가 평소처럼 굴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그게 너랑 뭔 상관인데?”

가시 돋친 자하의 말에 아루가 적잖게 당황한 듯하였다.

아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자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네가 사화 님께 평소에 하던 모습을 보고 어떻게 맘 편히 보내겠냐고.”

이건 전적으로 아루의 말에 동의한다. 며칠 전, 나조차도 자하를 걱정했을 정도니까.

그 모습을 수없이 봐온 아루의 입장에선, 엄청 위험한 것이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흘겨 여노를 바라보았다. 여노 또한 아루의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이번엔 남아서 궁을 지키는 게…….”

“그래서, 나보고 지금 ‘또’ 궁에 남아서 아리 님이 어떤 상황인지 알지도 못하고 바보처럼 기다리기만 하라고?”

“그게 아니잖아, 들어봐.”

“필요 없어.”

자하가 ‘또’라는 말에 강조한 것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전부터 그는 남쪽 땅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자하가 얼핏 남쪽 땅의 얘기를 들으며 분을 주체 못 했었다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하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표정을 굳혔다. 그의 목소리 또한 평소와는 달리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짙은 황색 눈에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자, 자하……?

자하는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나를 따라 북쪽 땅으로 함께 못 간다는 것이 그에게 꽤 큰 충격이었던 것 같았다.

낯선 자하의 모습에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루와 여노 또한, 그의 모습이 낯선 것인지, 멍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모두가 아무런 미동도 할 수 없었으니까.

“짜하.”

그를 불렀다. 나 말고는 지금 그를 말릴 수 있는 자가 없는 것 같았다.

나의 부름에 굳어 있던 자하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아루가 간절한 눈빛을 내게 보냈다. 그를 잘 다독여서 이해시켜달라는 뜻인 것 같았다.

나 또한 그럴 심산으로 그를 부른 것이 맞았지만, 막상 자하의 표정을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같이 가자.”

“……네?”

자하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듯, 되물었다.

“북쪽 땅.”

“…….”

“같이 가자고. 나랑.”

“아리 님…….”

나의 말에 자하가 눈을 크게 떴다. 자하의 표정이 완전히 풀렸다. 아까의 굳어진 자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자하만 남아 있었다.

“아, 아리 님!”

아루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아루의 뜻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자하가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루.”

그렇기에 아루를 다정히 불렀다. 그리고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아리 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저 또한 따르겠습니다.”

아루가 결국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리 님…….”

“응?”

자하가 어느새 촉촉해진 눈가를 닦으며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거 왜 이래!

“아리 니이이이이임!”

그때였다. 어찌 저항할 틈도 없이 자하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런 자하를 피하려다가 내 머리를 감싸던 면사가 내 머리에서 떨어졌다.

어, 안 되는데…….

떨어진 면사 탓에 양손으로 내 귀를 가렸지만, 내 작은 손으로 완전히 가려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내 귀를 보게 된 자하와 아루, 여노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못했다. 달려오던 자하는 내 앞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어, 어떻게 하지…….

“아, 아리 님…….”

여노가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꿀꺽.

잔뜩 긴장한 채로 여노와 눈을 마주했다.

“……응.”

나는 죄인처럼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여노가 내게 다가왔다.

나를 빤히 보던 여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게 눈물이 맺힐 정도로 충격적인 거야?

……그럴 수 있긴 하다.

호랑인 줄 알고 모셨는데, 알고 보니 여우면 억울해서 눈물 맺힐 수도 있지.

“더욱 성장하시게 된 걸 축하드려요. 정말 곧 성체가 되어 가시는군요.”

“으응……?”

내가 방금 잘못 들었나, 싶어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아리 님! 장하십니다!”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여노가 내게로 다가와 나를 폭, 끌어안았다. 자하와 아루 또한 나의 모습을 보고 뿌듯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리 님이, 아리 님이……. 크흡.”

흥분을 주체 못 하던 자하는 아까와는 반대로 기쁨을 주체 못 하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아, 아니 이게 저렇게 훌쩍일 정도인 거야?

어째 자하, 아까보다 감정이 더 격해져 있는 것 같은데……?

“아리 님, 이런 감동을 주시다니…….”

그나마 정상이었던 아루마저 나의 성장을 축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아, 아니, 얘들아…….”

축하를 해주는 건 고마운데……, 내 귀가 여우 귀라는 건 신경 쓰지 않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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