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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59)화 (59/167)

59.

해가 완전히 저물어 버리기 전, 이랑이 내게 은밀한 제안을 시도하다가 아루와 자하, 그리고 바랑에게 들켜 버렸다.

“이랑 님, 어디서 밑장빼기입니까?”

“역시, 늑대는 다 똑같습니다. 봤죠, 아리 님? 늑대가 이렇다니깐요.”

……그런 거야?

이랑이 내게 한 은밀한 제안은 다름 아닌, 저녁 불꽃놀이를 함께 보자는 것. 하지만 그거 하나 제안한 이랑은 아루와 자하에 의해 세상에 둘도 없는 파렴치한으로 찍혀 버렸다.

이랑의 말에 따르면, 동쪽 땅의 축제에서는 마지막 행사로 불꽃놀이를 한다고 한다.

동쪽 땅의 상징인 푸른색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라 연인들이 함께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라 하며 내게 함께 볼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러다 아루와 자하에게 딱 걸린 거지…….

이랑의 야심 찬 제안은 수포가 되었다.

아루와 자하의 기세면 지구 끝까지 찾아와 이랑을 감시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절망에 빠진 이랑의 귀와 꼬리는 축, 늘어져 버렸다.

“아리야, 그럼 나랑 볼래?”

사화를 만난 후, 이랑과 바랑의 등장에 한동안 조용하던 포포가 눈을 반짝이며 날 올려다보았다.

어? 뽀뽀랑 단둘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그래? 그럼 그럴…….”

그때였다. 자하와 아루가 포포를 먼 곳으로 날려 버렸다.

……어디 갔지?

“걱정 마세요, 아리 님. 노잣돈을 쥐여줬으니, 어딘가에서 과자라도 사 먹으면서 헤실거리고 있을 겁니다.”

……그건 그렇네.

자하의 일리 있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간사한 여우라면…… 확실히 행복해할 것이다.

이번에는 아루와 자하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얘들 왜 이래? 술이라도 마신 건가.

“무, 무슨 문제 있어?”

그들을 보며 묻자, 아루와 자하가 나의 물음에 같이 대답해주었다.

“크흠, 절대 아리 님과 단둘이 불꽃놀이를 즐기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굳이 보신다면 우리 중 한 명과 보는 건 어떠십니까? 저 늑대들은 빼고요.”

아루가 바랑과 이랑을 가리켰다. 바랑과 이랑은 아루의 말에 노발대발하며 반대했다.

“우린 왜 빼? 우리도 불꽃놀이 볼 수 있거든?”

“맞아, 삼촌은 빼도 나는 빼면 안 되지!”

“뭐, 인마?”

바랑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이랑을 바라보았지만 이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게, 누가 자식 교육, 아니, 조카 교육을 그렇게 하래, 똥개야?

다 자업자득이다, 이 똥개야.

“알았어. 그럼 내가 결정하면 되는 거야?”

나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다들 내가 자기를 선택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이 신수들, 양심이…….

“나는…….”

나의 입 모양새에 모두가 신경을 기울였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려올 정도로 그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여노랑 갈래.”

순간 모든 이들의 귀가 동시에 처지는,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어머, 저는 영광이에요, 아리 님.”

여노가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여노를 제외한 다른 신수들은 웃지 못하고 있었다.

“후……, 어쩔 수 없다. 정정당당하게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

“좋은 생각입니다, 바랑 님.”

“삼촌, 그거 정말 괜찮은 생각인 거 같아.”

“바랑 님이 여태까지 하신 생각 중에서 가장 올바른 거 같아요.”

……나랑 같이 불꽃놀이 보는 걸 왜 너희들 마음대로 정해!

왠지 저 가위, 바위, 보 또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주 긴, 가위, 바위, 보가 끝나고 단 한 신수를 제외하고는 모두의 얼굴에 실망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한 신수가…… 자하라는 것이 문제다.

“헤헤, 아리 님!”

“으, 으응…….”

“제가 이겼어요!”

“으응, 그래, 자하야…….”

뭐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자하랑 단둘이 불꽃놀이를 본다고? 꿈인가?

제발 악몽이라면 꿈에서 깨게 해줘.

아니, 애초에 그걸 왜 너희들 마음대로 정하느냐고!

억울했지만, 자하를 거절한다면 그의 상심 또한 너무나도 클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를 거절하는 걸 포기하고 있을 때 즈음, 의외의 인물이 나타났다.

“다들 여기 있었네.”

……오랜만에 보는 미호였다.

그녀는 나보다 살짝 더 짙은, 보랏빛 은발을 휘날리며 걸어왔다. 그 자태가 매우 고급스러웠으며, 위엄이 느껴졌다.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미, 미호 님……. 오셨습니까.”

“응, 오랜만이야, 모두.”

미호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가 어느새 훌쩍 큰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녀의 눈동자가 퍽 다정했다.

“아리야, 잘 지냈어?”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힘없는 미소로 화답했다.

그녀 또한 요즈음 일에 치여 바쁜 삶을 살고 있다고 들었다. 계속해서 힘을 소모하고 있는 탓인지, 상당히 지쳐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의 그녀였다.

“불꽃놀이, 나랑 같이 보지 않을래, 아리야?”

그녀가 내게 다정히 물었다. 그런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신수는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알았어, 미호.”

“고마워.”

미호와 나의 대화를 들은 자하의 귀가 쫑긋, 솟았다.

“미호 님, 아무리 미호 님이라도 이건 경우가 아니죠, 저는 정정당당하게 겨뤄서 이긴……, 읍읍.”

“제발 좀 닥치고 있어.”

아루가 자유분방한 자하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하가 발버둥 치며, 난리를 치자 미호의 시선이 자하에게로 향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읍, 으브븝!”

자하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토로하려 했지만, 강한 아루의 악력에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호 님. 얘가 낮술을 처마셔서…….”

“읍! 읍읍읍! 이 아익아, 안 아?”

“어, 안 놔. 너 미쳤냐, 진짜.”

아루가 계속해서 발버둥 치는 자하를 어딘가로 끌고 가버렸다.

아루야, 힘내……. 오늘도 네가 고생이 많다.

이랑이 그런 자하를 보며 혀를 찼다.

“자하,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렸네.”

“그러게 말이다. 개 됐네, 개 됐어.”

똥개 두 마리가 자하를 보며 자꾸 개라 칭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미호, 바쁠 텐데 왜 여기까지…….”

“불만 있어?”

“아니, 그럴 리가.”

바랑이 깨갱, 하며 꼬리를 내렸다.

누구에게나 까불어대는 바랑도 미호 앞에서는 조용한 한 마리의 똥개일 뿐이었다.

미호가 더는 여기에 볼일이 없다는 듯, 뒤를 돌았다. 그녀의 우아한 자태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아리야, 넌 나를 따라와.”

“알았어.”

미호가 내게 손을 건넸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그녀의 손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미호와 한참을 걸었던 것 같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미호와 함께 걷고 있는 곳은 숲속이었다. 미호가 자신의 주술로 불을 밝히고 있었기에, 해가 완전히 저물었음에도 그리 무섭지 않았다.

숲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었다. 처음 백령에게 물려온 날, 그날처럼 하늘은 수많은 별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때도 밤하늘은 정말로 예뻤지.

그 당시 나의 유일한 위안이기도 했고.

그녀가 숲속 한가운데서 우뚝 멈춰 섰다. 이내, 나무 밑으로 가, 앉았다. 나도 그녀의 옆에 가서 앉았다.

“옷, 잘 어울리네.”

“여노가 만들어줬어.”

“그랬구나.”

미호가 내 옷을 보며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자, 아리야.”

그녀가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영문도 모른 채로, 그녀가 내미는 것을 받아 들었다.

그것은 향과였다.

향과를 어째서, 미호가 주는 거지?

의외의 인물에게서 받은 향과에 어찌할 바를 몰라 의문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은월에게 들었어. 네가 향과를 좋아한다고.”

“응?”

“그래서 준비해온 거야. 너 주려고.”

미호가 향과를 준 이유는 납득이 갔지만, 왜 내게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미호가 향과를 내게 줬다는 건, 동쪽 땅에 들리기 전에, 굳이 남쪽 땅까지 갔다 왔다는 것. 이유는 향과를 구하기 위해.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냥, 지금은 그냥, 내 마음을 받아줘, 아리야.”

그녀가 우물쭈물하는 날 보고 부탁했다.

나는 군말 없이 미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녀가 준 향과를 입에 넣었다. 달콤한 향과의 향이 입안에서 퍼졌다. 미묘하게는 다르지만 언제나 먹던, 그 맛이었다.

“고마워. 흑기한테 습격을 당했던 거로 아는데, 괜찮아?”

“응, 지금은 괜찮아.”

“그 흑기 녀석들, 잡히면 이번엔 씨를 말려 버려야겠어. 신력을 뺏는 벌만으로는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니.”

미호의 음성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위해주고 있었다.

“미호.”

“응?”

“나래의 처벌은……, 어떻게 됐어?”

“아직 고민 중이야. 은월은 이번 사건의 처벌은 전적으로 내게 맡기기로 해서.”

“그렇구나.”

미호라면 은월보다 관대하려나.

“사형시킬까, 생각 중이야.”

……응?

사, 사형?

놀란 토끼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알아듣게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선을 넘은 건 용서할 수 없어.”

“그, 그래도 사형은…….”

아직 어린 신수인데…….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죄가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도 나름의 사정이……. 아니, 그래도 나쁘긴 한데…… 심성도 글러 먹었고.

“어린 신수라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해. 게다가 봉황이고.”

“응…….”

“하지만 그게 너무 그녀에게 방패막이가 되어 준 것 같아.”

미호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아무래도 속에서 갈등이 심한 것 같았다.

“일단 중앙 회의 때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때까지 생각해 봐야지.”

“자타는?”

“걘 사형이야.”

미호는 단호했다. 그도 그럴 게, 자타는 나를 넘긴 장본인이기도 하고, 반란을 일으킨 자이니, 미호의 단호한 결정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래도 막상 사형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찜찜했다. 게다가 마지막에 그는, 참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있잖아, 미호.”

“응?”

“부탁 한 가지만, 해도 돼?”

“뭔데? 뭐든 말해봐, 다 들어줄게.”

미호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생기가 불어 넣어진 것 같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자색 눈동자가 빛났다.

“자타, 그자를 나한테 주면 안 돼?”

“뭐?”

나의 말에 미호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응이었다.

그래, 나도 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거.

하지만 터무니없는 내 말에도 미호는 잠시간 생각하는 듯하더니, 내게 입을 열었다.

“왜, 그자가 갖고 싶어?”

미호가 다정하게 물었다. 놀라서 언성을 높일 만도 한데, 그녀는 조금도 내게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그 이유라면, 간단했다.

“마지막에……, ‘무사해서 다행이다’라고 했거든.”

“……그랬어?”

미호가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이내, 생각을 마친듯한 미호가 고개를 저었다.

하긴, 나라도 거절할 거 같긴 하다.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어.

“……음. 이건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사안인 거 같네. 중앙 회의 때까지 충분히 고민해볼게, 아리야.”

하지만 미호는 그런 내 부탁을 최대한 들어주고 싶어 했고, 곧바로 거절하지도 않았다. 신기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고마웠다.

“……고마워, 미호.”

“나야말로 고마워.”

“응?”

“무사해 줘서. ……무사해 줘서 정말로 고마워, 아리야.”

미호의 자색 눈동자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어둠 한 점 드리워지지 않은 그녀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난 이만 가봐야겠다.”

응? 아직 불꽃놀이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도 그녀를 따라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불꽃놀이, 안 봐?”

“뭐, 난 하도 많이 보기도 했고. 할 일도 많으니까.”

“그렇구나…….”

그럼 지금이라도 자하한테 돌아가 봐야 하나……. 자하 엄청 억울해 보이던데.

“아리야.”

“응?”

미호가 날 보며 환히 웃었다. 그녀가 주술로 만든 빛을 내게 주었다. 그녀를 닮은 보랏빛의 아름다운 빛이었다.

“이 빛을 따라가 봐.”

“응?”

빛을 따라가라고?

어리둥절한 내 모습을 보던 미호는, 아름다운 미소를 한 번 짓더니, 빛만 남겨두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설명은 해주고 가야 할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대로 빛을 계속해서 따라갔다. 빛은 계속해서 숲속 깊숙한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이런 곳에 뭐가 있기는 한 건가…….

슬슬 미호가 의심될 때 즈음, 빛이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섰다.

빛을 따라. 온 곳은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곳이었다.

아까 이랑이 보라던 강이 이 강인 것인가.

푸르고 맑은 강물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절로 기분이 상쾌해지는 좋은 느낌이 들었다.

“……아리?”

그런데, 그곳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자, 미호가 준 빛이 그를 비추었다. 빛이 비추어진 그의 모습은,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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