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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50)화 (50/167)

50.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여노는 정말 기쁜 듯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런데 아리 님은 어쩐 일로 나래 님의 궁에 오신 건가요?”

“은월이랑 같이 와써.”

손으로 나래의 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여노가 이해한 듯, 탄식을 내뱉었다.

“아, 은월 님도 계셔요? 마침 잘됐네요. 안 그래도 이번 일에 대해 여쭤볼 게 있었거든요.”

여노가 손을 마주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여노. 은월이 시킨 일이라눈 게 모야?”

“아, 그건…….”

나의 물음에 여노가 대답을 망설였다.

“그냥 이런저런 잡일이에요. 죄송해요, 자세히는 말해드릴 수가 없어요.”

“그래?”

“아, 벌써 시간이……. 저 잠시 은월 님 좀 뵙고 올게요.”

여노가 나래의 방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은월 님?”

“들어와.”

은월의 허락에 여노가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뭘까? 여노가 내게 알리지도 못할 일이.

여노가 방 안으로 들어간 후, 은월에게로 향했다. 이후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소곤소곤 속삭였다. 이내, 여노는 은월에게 답을 들은 건지, 개운해 보이는 표정으로 내게 돌아왔다.

“휴, 다행이네요. 오늘 은월 님이 궁에 계셔서. 아, 아리 님 저는 이만 다시 일하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벌써?

은월이 여노에게 시킨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저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걸 보면.

“으응, 아라써. 다음에 봐.”

“네, 아리 님.”

여노가 나래의 방에서 나갔다. 그러자, 은월도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어디 나갔다 오나?

“안 가?”

“응?”

은월이 문을 잡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는 거라고?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은월이 간다고 하면 나래가 잡을 줄 알았는데, 나래는 그저 나가려는 은월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체 내가 나간 사이 무슨 말이 오간 거야……?

은월이 계속 문을 잡고 있었기에, 궁금함을 뒤로 미루고 은월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나래는 문이 닫힐 때까지 조용했다.

은월을 따라 걸었다. 여러 가지 궁금증이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은월에게 물어보면 알려줄까?

“은월.”

“왜, 궁금한 거라도 있어?”

은월은 독심술이라도 쓰는 걸까.

여노에게 무슨 일을 시켰는지가 제일 궁금하지만 여노가 답해주지 않은 걸 은월에게 물어보자니, 조금 그랬다.

“아니, 구건 아닌데.”

“그럼?”

“내일운, 뭐해?”

“내일?”

“응.”

그에게 물어볼 사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말을 돌려, 내일 일정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은월이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의 대답을 천천히 기다렸다.

애초에 처음부터 궁금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내일은 아마 본격적인 감사에 들어갈 거야.”

“그래? 그롬 바쁘겠네.”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은월의 집무 처리 속도는 워낙에 빠르니까, 나도 그의 말에 동감했다.

“답답하면 잠깐 바람 쐬는 것 정도는 괜찮아. 멀리 가지는 말고.”

은월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그에게 조금 섭섭한 감정이 일었다.

내일은 은월이 없다라…….

그럼 포포와 란. 나뿐이라는 거다. 오늘 두 바보를 호되게 혼냈으니, 내일부턴 좀 달라질까, 하는 기대를 걸어보았지만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리야.”

“응?”

그러던 중, 은월이 발걸음을 멈추고 내 이름을 불렀다.

“난 지금 네 옆에 있어. 청아의 청을 수락하고 남쪽 땅에 온 이유도, 널 데려오려던 게 주목적이었고.”

“응?”

뜬금없는 은월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서운하거나 섭섭한 감정이 들면 언제든지 솔직히 말해도 돼. 지금은 네가 우선이니까.”

은월의 갑작스러운 말들에 어찌 답해야 할지 몰라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네가 환히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

“요즘 어딘가 침울해 보여서.”

그렇게 말한 은월이 노군의 저택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은월과 함께 노군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방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포포와 란이 이렇게나 조용할 리 없는데.

방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작은 두 생명체가 낯설게 무릎을 꿇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얘네 왜 이래? 더위라도 먹은 건가?

“왜 이래……?”

나의 물음에 포포와 란이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우, 우리 반성했어, 아리야.”

“반, 반성했습니다요, 아리 님.”

응? 아아, 아까 내가 반성하고 있으라 해서 둘이 이러고 있었던 건가?

갑자기 두 바보가 너무나도 대견해 보였다.

그래, 그래. 잘못할 수 있지. 유치한 싸움을 할 수도 있고. 아직 어리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왜 이러고 이써. 일어나, 다리 아프게따. 나는 구냥 너희가 자꾸…….”

나의 말에 두 신수가 고개를 격렬히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 알고 있어. 아직 어려서 우리의 싸움에 대해 이해를 못 하는 아리, 너를 생각했어야 했어.”

“맞습니다요. 저희가 아리 님의 그런 부분을 생각 못 한 것 같습니다요.”

……뭐지? 내가 방금 잘못 들은 건가?

잘못 들은 거지? 제발 그렇다고 해줘.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잘못 들은 게 결코 아니라는 걸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심오한 싸움에 대해 이해하기에, 아리 너는 아직 많이 어리단 걸, 생각 못 한 걸 반성해!”

“맞습니다요. 앞으로 신경 쓰겠습니다요, 절대 싸우지 않겠습니다요!”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분명, 나의 목표였던 두 바보의 싸움을 중재했지만,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하, 참자. 참자, 아리야. 저런 바보들 소리 듣다 보면 나도 바보 된다.

무시가 답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바보를 상대하면 나도 바보라는 걸 명심하며 두 신수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그래, 어쨌거나 이제 그 유치한 싸움을 안 한다니까 된 거야…….

***

은월도 없고, 오늘은 무슨 일인지 빠짐없이 아침부터 출석을 하던 란 또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그 너구리는 왜 안 오는 걸까?”

“그러게.”

포포가 빈둥거리면서 과자를 오물오물 집어 먹었다. 남쪽 땅에 온 이후로, 포포는 온종일 과자를 입 안에 달고 살았다.

“헤헤.”

그래, 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말이다.

하여간, 여우 팔자가 상팔자라니까.

“분명 그 너구리가 오늘 새로운 과자를 소개해 준다고 했는데…….”

허이구, 언제 그렇게나 친해졌대?

쟤들은 진짜 알다가도 모를 바보들이다.

그것보다 여노가 은월에게 받은 명령은 무엇이고, 나 없는 새에 나래와 은월은 어떤 얘기를 한 걸까…….

나래와 은월의 대화는 그래도 대충 짐작이 갔다. 나래가 요즘 흉흉해진 남쪽 땅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남쪽 땅의 혼란, 혹은 반란군에 대한 얘기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래는 반란군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걸까?

흐음…….

“너구리 녀석, 남자답지 못하게 약속을 어기다니. 에잉, 쯧쯧.”

혀를 차는 포포를 뒤로 한 채, 계속해서 의문들에 대해 생각했다.

여노가 은월에게 명령을 받을만한 건 동쪽 땅에 대한 것과 나에 대한 것.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굳이 여노가 움직일 명분이 없으니까.

그런데 남쪽 땅에서 여노에게 시킬 일이 있다고?

청아 또한 남쪽 땅을 자주 들렀던 걸로 기억하는데, 청아에게는 맡길 수 없는 일이라는 건가?

그게 대체 뭘까…….

“이번엔 우리가 너구리한테 가보는 거 어때?”

“다녀와, 뽀뽀.”

포포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녀오라며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포포가 그런 내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이놈이 나를 질질 끌고 갔다.

아니, 얜 무슨 힘이 이렇게 쎄?

“뽀뽀, 이거 놔 봐.”

“빨리 너구리한테 가 보자.”

“아, 안니, 나는 안…….”

“헤헤, 새로운 과자! 맛있겠다, 그치?”

포포가 언제나처럼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나를 질질 끌고 갔다.

내가 진짜 얘 때문에 못 살아, 정말.

노군의 저택, 우리가 묵는 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뽀뽀, 란 방이 어디인지는 아라?”

“응응, 전에 한 번 가 본 적 있어.”

응? 너희 그 정도면 원수가 아니라 단짝 아니냐?

이쯤 되니 둘의 사이에 대해 수많은 의문과 의심이 들었다.

야, 솔직히 말해. 너네, 서로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싸운 거 맞지?

“그 바보 너구리가, 정정당당하게 붙자며 나를 끌고 갔었어.”

“그래꾸나…….”

그래, 난 너희 사랑 응원해…….

그러니 내 손은 놓아주지 않겠니, 뽀뽀야?

“흠, 여긴데……. 왜 인기척이 없지?”

“구러네. 진짜 여기 마자?”

“확실해!”

포포와 내가 도착한 방 안은 조금의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뿐이랴, 란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란의 방이라면 란의 기운이 느껴져야 하는데, 전혀 느껴지지 않아…….

“요기, 란의 기운이 안 느껴져, 뽀뽀.”

“정말? 어디 간 거지?”

“그러니까 이만 포기하고 가…….”

“들어가 보자!”

아니,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니까, 이 망할 여우야!

말릴 새도 없이 포포가 방문을 열고 란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거 무단 침입이야, 이 바보 여우야!

이미 들어가 버린 포포 탓에, 나도 포포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란의 방은 작고 검소했다. 애초에 노군의 저택 자체가 웅장하고 크지만, 검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란의 방은 그중에서도 더 검소한 느낌이 들었다.

“이거 봐, 아리야!”

포포가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집어서 내게 내밀었다.

종이 맨 밑엔 어디선가 본 듯한 어떤 문장이 찍혀 있었다.

“이건…….”

이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나래에게서 편지가 왔을 때, 그리고 나래의 궁 안 곳곳에 박힌 문장. 그것이었다.

“남쪽 땅의 문장인 고 가타.”

“그럼 궁에서 부른 걸까?”

나래가 란을? 대체 왜?

왜 얘는 불안하게 안 하던 짓을 자꾸만 하는 거야?

“그 재수 없는 닭 보는 건 싫은데.”

그럼 안 보면 되지. 뭐가 문제야? 어차피 뽀뽀는 더 이상 볼 일도 없고만.

“근데 너구리가 거기로 불려갔다니……. 우리도 가보자!”

“뭐?”

“나라인지 나루인지, 암튼 그 닭이 너구리한테 뭔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너구리 녀석. 삶아 먹힐지도 몰라.”

아니, 나라, 나루 둘 다 틀렸어, 뽀뽀야…….

“아무튼, 가자.”

“응? 그치만…….”

은월이 멀리 가지 말랬는데…….

뭐, 나래 궁이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것도 아니긴 하다만.

괜찮으려나…….

나래가 며칠 전 포포에게 하던 태도를 보면 란이 심히 걱정되기는 했다. 조금 멍청해서 그렇지, 그래도 착한 녀석인데.

“아라써, 가자.”

포포와 함께 노군의 저택을 나와 나래의 궁으로 향했다. 몇 번 은월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이제 길은 얼추 잘 찾아갈 수 있었다.

나래의 궁에 도착하자, 나를 알아본 하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이후 자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의외군요. 아리 님 혼자서 나래 님의 궁을 찾아오는 일이 있을 줄이야.”

“나, 나 있는데?”

포포가 자신을 가리키며 살짝 기분이 상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게 아니야, 여우야……. 은월 없이 혼자서 왔다는 말이야.

곧이어 다시 곱씹어보더니, 이해한 것 같은 포포가 탄식을 내뱉었다.

“아, 오늘은 싸부가 없어서 그런 거구나.”

……우리 뽀뽀를 어쩌면 좋니.

“아리 님, 이번엔 무슨 일로 여기까지 발걸음 하셨습니까?”

“나래를 보러 왔어.”

“이쪽으로 오시지요.”

자타의 안내를 따라 나래의 방 앞으로 갔다. 이내, 안내를 마친 자타가 곧바로 물러나고 나와 포포는 나래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뇽, 나래야.”

“닭, 안…….”

재빨리 포포의 입을 막았다.

얘가, 얘가 정신을 놓았구나.

“무슨 일이야?”

다행히 포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나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마 자타에게서 내가 도착한 것에 대해서는 바로 전해 들은 것 같았다.

“란이라고 하는 요만한 신수, 요기 왔었지?”

란의 작은 키를 설명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네가 알아서 뭐 하게?”

……휴우. 참자, 아리야. 그래, 쟨 닭일 뿐이야, 참자.

“란을 부른 이유는 모야?”

“그런 너구리, 부른 적 없어.”

“란이 너구리라는 곤 어떠케 알았어?”

“그, 그건…….”

나래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당황하며 시선을 피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네가 알 것 없어. 그 너구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간 지 오래야.”

간 지 오래라고? 분명 올 때 마주치지 못했는데…….

노군의 저택에서 나래의 궁으로 오는 또 다른 길이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길로 샌 걸까.

“그런 더러운 신수들이랑 노는 게 네 취향인가 봐? 수준 떨어지게.”

“야.”

“야?”

“걔네한테 고막 찌낄 뻔한 적, 이써?”

“뭐?”

“팔 붙들려서 저려본 적 이써?”

“뭐라는 거야?”

“바보들한테 어린 애 치급 당해서 서러운 적 이써?”

나의 물음에 나래가 어이를 상실한 듯한 표정으로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런 적 업쓰면, 함부러 입 놀리지 마.”

나의 말에 나래가 헛웃음을 흘렸다.

“걔들이 바보인 곤 맞지만, 욕할 수 있는 곤 나뿐이야.”

욕해도 내가 욕해.

포포가 감동한 듯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너 바보라는 말이라고, 뽀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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