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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49)화 (49/167)

49.

분명, 이건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 그래, 어딘가 단단히 틀어진 게 틀림없다.

그럼, 그럼. 분명 무언가 크게 잘못된 거야.

“이 바보 너구리야!”

“뭐? 이 바보 여우가!”

“뭐? 바보?”

“그래, 바보!”

왜 아침 대낮부터 바보 둘이 싸우는 걸 어제도 본 것 같은데, 내 눈앞에 비슷한 상황이 펼쳐져 있는 거지?

악몽인가?

“아리 님, 저런 애랑 돌아다니면 안 피곤합니까요?”

너도 만만치 않아.

“허, 아리랑 언제부터 알았다고 친한 척이야?”

포포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흘리며 란을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흥, 아리 님은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시거든?”

아니, 그건 내가 아니라 수하인데.

“허어, 이거 왜 이래? 나 아팠을 때 아리가 고쳐줬어!”

아니, 그건 내가 아니라 영아가…….

둘이 대체 뭐 하는 건지 의아해하던 찰나, 포포가 내 한쪽 팔을 잡았다. 그에 란도 질세라 다른 내 한쪽 팔을 잡았다.

“아리야, 우리 산책 가자.”

“아리 님, 저런 꼬마 여우랑 놀지 말고 저랑 남쪽 땅 구경하러 가는 건 어떻습니까요?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요.”

“뭐어? 꼬마? 남쪽 땅 지리는 내가 모를 거 같아?”

“응. 모를 거 같은데? 너, 그럼 나래 님 궁이 어디 있는지 알아? 오른쪽, 왼쪽?”

“그, 그……, 오른쪽!

“푸하하, 바보! 나래 님 궁은 북쪽에 있어 바보야!”

“……! 나, 나도 알고 있거든?”

“웃기지 마, 몰랐잖아!”

……얘들아, 이것 좀 놓고 싸우면 안 될까?

양쪽에서 이리저리 잡아당겨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뿐이랴, 이 작은 놈들이 목청은 또 더럽게 커서 고막 터질 것 같다.

“진짜, 꼬마 여우 주제에……. 나랑 한판 붙어볼래?”

“덤벼! 누가 무서워할 줄 알아? 너구리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거든?”

제발 말로만 그러지 말고 싸울 거면 너희끼리 치고 받고 싸우라고!

여전히 붙들려 있는 내 양팔이 슬슬 저렸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두 신수의 손을 뿌리쳤다.

“이……. 이…….”

“응? 아리야, 왜 그래?”

“아리 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요?”

“너 때문이잖아, 너구리야!”

“허, 이 여우가……. 너 때문이잖아!”

둘이 서로를 탓하며 싸우기 시작하자,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이 바보들아! 너희 둘 다 똑같아! 내가 돌아올 때까지 반성 안 하면, 둘 다 주글 줄 알아, 아주!”

둘이 화들짝 놀라, 귀가 쭈뼛, 솟아올랐다.

“아라써?! 궁물도 업써!”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둘이 많이 당황했는지, 문밖으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쟤들 때문에 명이 준다, 명이 줄어!

씩씩대며 어제와 마찬가지로 은월의 방으로 들어갔다. 은월이 탁자에 앉아서 두루마리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아, 다음에 와야겠…….

“큰 소리가 들리던데.”

은월이 두루마리에 눈을 떼고 나가려던 내게로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포포와 란의 바보 같은 싸움을 보느라 지쳐 여기로 굴러 들어온 거지.

하지만 둘의 싸움은 다른 이에게 꺼내기도 민망할 정도로 유치했던 터라,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없었다.

진짜 세상 창피해서…….

둘의 싸움을 떠올리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은월, 바쁜 고 아녔어?”

“별로.”

옆에 두루마리들이 한가득인데……?

은월이 탁자에 산처럼 쌓인 두루마리들을 보며 의아해하자, 은월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미소 지었다.

어제 노군이 들고 온 양보다 더 많은 거 같은데.

“쓸데없는 것들이야. 보낸 이가 다 같으니까.”

……한 명이 저 어마어마한 양의 두루마리들을 보냈다고?

그건 또 어디에 사는, 어느 개념 없는 신수야?

“누구한테소 온 곤데?”

“나래.”

……나래가 그 개념 없는 신수구나.

내가 나래에 대한 인식이 바닥이 되어버린 건가,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대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길래 저만큼이나 보낸대?

징하다, 징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은월의 물음에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그냥 하소연이 대부분이야. 힘들다고, 가르쳐 달라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개념이 없는 것도 모자라, 민폐구나…….

“결론은 대부분 궁에 와 달라는 거지.”

“구렇구나…….”

그럼 어제 받은 서신들도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었겠네.

은월은 오늘 나래의 궁에 가는 건가? 그러면 나는 하는 수 없이 저 바보들의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건가?

상상만 했는데도 벌써부터 몸에 기운이 쫙 빠졌다.

그게 겉으로 드러난 건지, 은월이 내 모습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안 가.”

“응? 왜?”

“갈 이유가 없으니까.”

“응?”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게 의무는 없어. 내게 내려진 의무는 네 땅을 조사하고 감사하는 것, 그리고 너를 가르치는 것뿐이니까.”

“그래도…….”

은월이 안 간다는 소식은 내심 기뻤지만, 그래도 남쪽 땅의 주인이 저렇게나 애타게 부르는데 안 가도 되는 건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무리 나래가 무능한 주인이라지만 그래도 엄연히 아직까진 주인이지 않은가.

“가눈 게 좋지 않을까?”

“그럼 같이 갈래?”

“응?”

그런 자리에 내가 가도 되는 건가?

무엇보다 나래가 반길 것 같지는 않은데…….

내게 지나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다. 내가 간다면 분명 반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눈으로 어떤 쌍욕을 퍼부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왜인지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래에 대한 반항인 걸까.

이번엔 은월의 선택에 맡겨보자.

“은월은, 내가 갔으면 조켔어?”

그의 회색빛 눈을 올려다보며 말을 하자, 은월은 한 치의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이 바로 입을 열었다.

“응.”

“그럼 갈래.”

은월이 나의 말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까?”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따라 나래의 궁으로 향했다.

이제 몇 번이나 노군의 저택에서 나와서 그런지, 어느 정도 이쪽 지리는 파악했다.

흠흠, 이제 혼자 다닐 수도 있겠어. 안 그러는 편이 좋긴 하겠지만.

은월을 따라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래의 궁 앞에 도착했다. 나래의 궁 안에 들어가자, 자타가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타가 우리에게 가벼운 인사를 한 후, 궁 안으로 안내했다.

“오늘도 아리 님과 함께 행차하셨군요, 은월 님.”

은월은 그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무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보니 자타 또한 새 신수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날개인데…….

……매.

지난번엔 자타의 모습을 자세히 보지 못해서 몰랐었지만, 지금 보니 그는 매 신수였다. 갈색의 날개가 멋스러웠다.

“나래 님의 수많은 서신에도 답이 없으셔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자타의 말에도 은월은 시종일관 답을 주지 않았다.

“물론, 저 말고 나래 님 얘기입니다만.”

은월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건만, 자타가 계속해서 쓸데없는 얘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은월 님, 어제 향안 시장에 향했다고 하시던데, 혹 거기서 누굴 만나신…….”

“오늘따라 말이 많네, 자타.”

은월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했지만, 왜인지 그의 말은 차갑기 그지없었고, 무엇보다 냉정하게 느껴졌다.

은월의 말에 자타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하, 그렇군요. 제가 너무 말이 많았습니다. 은월 님이 저희 향안 시장까지 신경을 써주시니 기쁜 마음에 그만……. 아, 아리 님도 함께하셨다고 들었는데…….”

자타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내게 무언가를 물어보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타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입.”

은월이 자타의 말을 끊었다.

“좀 다물고 가지 그래?”

은월의 냉기 어린 말에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짧은 침묵을 깬 건 자타였다.

“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 자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입도 벙긋하지 않은 채, 나래가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왔어? 은…….”

은월의 방문에 기뻐하던 나래가 옆에 서 있던 나를 보고 바로 표정을 굳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본인의 감정에 지나치도록 솔직한 아이다.

“난 너를 부른 적이 없는데.”

나래가 나를 톡, 쏘아보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내가 데려온 건데. 예의 차려.”

“왜? 내가 부른 건 너뿐이야, 은월. 서신을 읽지 않은 거야? 나는 분명 이번엔 혼자 오라고……”

“네 말을 들어줄 이유는 없어.”

나래의 볼멘소리에도 은월은 칼같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래서, 날 부른 용건이 대체 뭔데?”

“쟤가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해?”

나래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중요한 얘기라도 하려는 건가?

잠깐 다른 데 가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래의 방 밖으로 나가려 몸을 움직였지만, 은월이 그런 나를 막았다.

“상관없어, 말해.”

은월의 단호한 말에 입술을 꽉 깨물던 나래가 체념한 듯 짧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은월, 요즘 뭔가 느낌이 이상해. 아니, 꽤 예전부터 그랬어.”

“네가 통치하고 난 이후부터지. 뭘 그래? 하루 이틀이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점점 더 느낌이 이상해진다고.”

어째, 나래의 말에서 무언의 위화감이 느껴졌다.

더 이상 나래와 은월의 대화를 듣고 있기는 찝찝했다. 애초에, 남쪽 땅의 정사에 대해 내가 들을 신분은 아닌 것 같았다.

여긴 엄연히 그녀의 궁이니까.

“은월. 나 잠깐만 나갔다 오께.”

“왜?”

“구냥.”

“알았어. 멀리 가지는 말고.”

끄덕끄덕.

은월이 유독 남쪽 땅은 조심하라 하였으니, 물론 멀리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나래의 궁은 처음이기도 하고.

나래의 방을 나오자, 궁의 하인들이 급히 지나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방문 앞에는 자타가 지키고 서 있었다.

“아리 님은 왜 벌써 나오셨습니까?”

“구냥. 내가 들을 얘긴 아닌 고 같아서.”

자타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렇군요.”

한동안 자타와 나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자타가 먼저 내게 말을 건넸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 궁에 아리 님의 시녀가 있더군요.”

“시녀?”

“여노, 라는 자 말입니다.”

“아아, 여노 얘기구나. ……여노라고?”

여노가 어딜 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던 건가?

“오디에?”

“아까 별관에서 본 것 같습니다.”

“불러와 주면 안대?”

“네? 그건 좀…….”

“부탁해.”

자타가 나의 부탁에 금방 어디론가 가버렸다. 얼마 안 가, 그는 내가 말한 대로 여노를 데려왔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아, 아리 님!”

“여노!”

이틀 만에 보는 여노가 무지막지하게 반가웠다. 그도 그럴 게, 여노가 옆에 있었더라면 최강 바보들의 싸움에 내가 휘말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여노, 네가 너무 그리웠단다…….

문득 아직도 옆에 있는 자타가 불편했다.

둘만의 대화를 하고 싶은데……. 은월이 멀리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멀리 가기도 그렇고.

그러니, 네가 가라, 자타.

“자타.”

“네?”

“너 절루 가.”

“……예?”

자타가 당황한 듯 눈을 굴렸다.

“여노랑 단 두리 얘기 하꼬야. 자리 비켜줘.”

“아, 저는 나래 님 곁을 지켜…….”

“나랑 여노가 이써.”

“그래도…….”

“무엇보다, 은월이 있눈데?”

은월이라는 말에 자타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왜 저러지? 놀게 해주면 좋은 거 아닌가?

게다가 은월이랑 나, 여노도 있는데. 무슨 일이 생긴다고 잠깐 자리 비키는 걸 싫어해?

그런데 자타는 이상하게도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나 일이 좋을까? 아님 나래가 걱정되는 건가?

“걱정 마.”

“알겠습니다……. 아리 님.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자타가 떨떠름하게 자리를 떠났다.

쟤도 참 알 수 없는 신수네.

자타가 떠나자, 여노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연둣빛 머리칼이 아래로 떨어졌다.

“갑자기 제가 사라져서 많이 놀라셨죠? 죄송해요. 아리 님. 제가 아리 님 곁에서 보필했어야 했는데.”

“으응, 아니야. 나 혼자서두 잘할 수 이써.”

아니야, 여노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 속마음은 그게 아니야. 제발 돌아와.

돌아와서 제발 바보 두 마리 좀 처치해줘.

말과는 상반되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정말요? 아리 님, 정말로 장하십니다. 이제 저는 안심하고 은월 님의 명을 수행할 수 있겠어요!”

아니, 여노야, 그거 아니야!

“헤헤, 아리 님이 성장하실수록 제가 보람을 느낀답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발음도 많이 느셨어요. 역시 우리 아리 님!”

“아, 안니…….”

당황해서 여노가 방금 칭찬한 발음이 흘렸다.

“안 그래도 요즘 아리 님이 눈에 자꾸 밟혔답니다. 이리 말씀해주시니, 저도 더 열심히 일할게요, 아리 님!”

여노야? 여노야……? 제발 내 눈을 바라봐봐. 그거 아니라니까?

나의 애처로운 눈을 여노에게 들이댔다.

이래도 몰라주는 거니? 아니지?

“아리 님의 푸른 눈은 정말 아름다워요. 백령 님과는 다른 신비로운 느낌이 든답니다.”

왜 애처롭게 지은 눈이 신비로워 보이는 건데, 대체 왜!

틀림없다. 여노가 요즈음 자하랑 놀아서 눈치가 자하 닮아가는 것 같다.

여노 너, 이제 자하랑 놀지 마!

왜 너마저 내 마음을 못 알아봐 주는 거니…….

어쨌든 이번에 돌아가기만 해봐. 자하랑 둘이 갈라놓을 거야, 두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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