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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41)화 (41/167)

41.

나는 지금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

“아리야아. 우리 아리, 어디 갔었어?”

공중에 붕붕 돌려지며 생각했다. 이 똥개 녀석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까?

그렇다. 지금 나는 똥개에 의해 공중에서 돌려지고 있는 신세다.

얘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얘 피하려다가 이상한 변태 신수도 만나고 왔는데!

억울하다, 억울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속에서 부글부글 열이 끓어올랐다.

설상가상으로 은월과 백령이 어디로 간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 호랑이 두 마리가 나만 버리고 어디로 가 버린 거야!

오기만 해 봐, 진짜.

물론, 그 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아리야, 너 제법 많이 컸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지만, 그걸 바랑한테 들으니 그리 반갑지도 않았다.

“묵직해지기도 한 거 같고 말이야.”

뭐어? 묵지익? 이 똥개 자식이 죽고 싶은 건가.

“우리 아리이.”

꿈이지? 제발 이게 악몽이라고 해줘.

지이-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변함없는 반응은 애석하게도 내 눈앞의 바랑이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 아리. ‘바랑’이 엄청 그리웠지?”

게다가 헛소리가 배로 늘었다.

아무리 자신의 이름을 강조한다고 내 대답은 변하지 않는다.

“또옹깨, 놔!”

“아리야, 똥개가 아니고 ‘바랑’은 네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단다.”

“또옹깨, 안 놔?”

어쭈.

요지부동인 나의 모습에 바랑은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하며

“흑, 아리는 날 삼촌이라고 부르고 싶은 걸까? 그래서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걸까?”

……라는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삼촌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아직 모르는 단어라 생소했던 거구나.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똥개라고 부르는 거였어.”

아무도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았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 그런 거였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 똥개라서 그런가? 참신한 개소리를 하네.

“삼촌이라고 해 봐, 아리야. 사암촌!”

“또옹깨, 바버.”

“아리야? 사암촌!”

“퉷.”

나의 침에도 굳센 의지를 꺾지 않는 바랑이 애석할 뿐이었다.

“아리야. 삼촌이라니까, 삼촌?”

“우끼시네.”

나의 험악한 말투에 그는 사랑스럽다는 눈빛을 보내더니 내 볼을 만지작거렸다.

누가 나 좀 구해줘 봐, 제발.

“앙탈 부리는 것도 왜 이렇게 귀엽냐, 녀석.”

“바버! 또옹깨! 놔!”

한동안 바랑은 날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남아 있는 신수, 영아와 율, 수하에게 도움 요청했지만 그들은 최대한 바랑과 엮이기 싫은 건지, 멀찍이 서서 바랑의 미친 짓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너희 다 괘씸죄야.

그리고 자하는,

“바랑 님! 치사합니다! 이제 그만 아리 님을 제게 돌려주세요!”

바랑을 따라 헛소리를 열심히 시전하고 있었다.

이제 지치다 못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슬퍼서도, 억울해서도 아니다. 짜증 나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 때, 드디어 나는 바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바랑, 죽고 싶은 게 아니면 당장 그 손 놓지.”

백령이 등장했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그의 등장에 굳어버린 바랑의 손아귀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당장 백령에게로 총총 달려가서 그의 뒤에 딱 달라붙었다.

“똥깨가 나 괴롭혀써, 백련.”

백령이 인상을 찌푸리고 바랑을 노려보았다.

바랑이 화들짝 놀라며 내게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아리야. 우리 행복했잖아. 괴롭히다니.”

누가 행복해? 어디서 개뼈다귀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똥깨, 시러.”

나의 말에 바랑이 상처받은 눈망울로 울상을 지어 보았지만 어림도 없는 짓이었다.

이미 백령의 심기는 불편해진 후였기에.

“바랑, 서쪽 땅을 떠나기 전 잠깐 보지.”

“아, 아니, 안 봐도 될 거 같은데…….”

바랑이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보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뭐, 이 똥개야.

베에.

메롱을 한번 날려주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 그건 그렇고 백령, 어디 갔다 온 거야?”

바랑이 말 돌리기를 시전했다.

“아무리 봐도 넌 이랑에게 어서 자리를 넘겨주고 싶은가 보군.”

백령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어디서 말을 돌려, 똥개가!

“무슨 그런 섭한 말을……. 나 아직 창창해.”

“죽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거 같던데.”

“하하, 그럴 리가. 난 아직 살고 싶다고. 그런데…… 은월은?”

그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하여간, 똥개 녀석. 오늘 한 번만 봐준다, 흥.

“청아를 만나러 간다더군.”

“아, 청아라면 오늘 우리 궁에 있는데. 그럼 그쪽으로 갔겠네.”

궁의 주인이라는 놈이 다른 신수의 방문에 너무나도 태평하다.

한마디로, 똥개답다.

“아, 그럼 다 같이 우리 궁에 가지 않을래?”

어? 좀 솔깃한데?

서쪽 땅의 궁은 또 어떤 모습일지 내심 궁금해졌다. 반사적으로 반짝이는 눈으로 바랑을 바라보았다.

“아, 아리가 나를 이런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다니. 꿈인가?”

그리고 그것은, 곧 내 실수였다는 걸 깨달았다.

“큽, 이번만큼은 부럽습니다, 바랑 님.”

…쓸데없는 거에 부러워하지 마, 자하야!

“에헴.”

쓸데없는 거에 뿌듯해하지 마, 똥개야.

……벌써부터 기운이 빠진다.

“어때, 백령? 아리가 이렇게나 가고 싶어 하는 데도 그냥 서쪽 땅으로 돌아갈 거야? 응? 응?”

“하아.”

백령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아, 안니…….”

아냐, 백령아. 나 생각 바뀌었어. 안 가도 돼, 진짜야…….

백령이 이미 나간 후였기에 속으로만 외친 말이었다.

***

서쪽 땅의 궁. 즉, 바랑의 궁은 백령의 궁만큼이나 넓고 거대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바랑의 궁은 백령의 궁보다 좀 더 수수했고, 전체적으로 연한 주황빛을 띠고 있었다. 당연히 궁에 새겨져 있는 문장들도 달랐다.

바랑이 문 앞에 서더니, 하품을 했다.

“얘들아, 문 열어라. 나 왔다.”

바랑의 목소리에도 궁의 문은 묵묵부답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후 한참을 기다렸건만, 아무리 기다려도 거대한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야, 똥개야. 이 정도면 잘못 찾아온 거 아니야?

콩, 콩.

바랑이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얘, 얘들아, 백령도 있어! 아리도 있고! 백령의 하인인 자하도 있는데, 얘들아?”

“안 속습니다, 바랑 님. 그런 식으로 거짓말하신 게 한두 번입니까?”

“아, 아니, 진짠데…….”

“제가 말도 없이 사라지지 말아 달라고 그리 말했습니다만…….”

궁 안에서는 차가운 어조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얘들아, 얘들아……?”

“하아, 네 녀석은 대체…….”

백령이 옆에서 바랑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한숨을 흘렸다.

백령,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여기 제정신이 아니야……. 아니, 애초에 바랑이 제정신이 아닌데 바랑의 궁이 제정신일 리가 없잖아.

“동쪽 땅의 주인, 백령이다.”

백령의 단호한 말에 꿈쩍도 하지 않던 문이 빛의 속도로 열렸다.

그에 바랑의 귀가 쭈뼛, 곤두섰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빠른 속도로 깜빡였다. 그러더니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기 내 궁 맞냐? 너희 너무한 거 아냐?”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좀 착하게 살자, 바랑아.

문을 연 신수는 바랑과 같은 늑대의 귀와 꼬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잊고 지내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리야, 오랜만이네.”

전보다 조금 더 자란 것 같은, 바랑의 조카, 이랑이었다.

“으응, 끄래.”

“삼촌의 궁에 온 걸 환영해.”

“고마어.”

“그거 봐, 내 말이 맞지? 어여쁜 아리의 기운이 느껴졌었다니까.”

“하아…….”

“내가 아리의 기운을 잊을 리가 없지.”

이랑이 나와 대화하던 도중, 옆에 있던 신수에게 말을 걸었다. 옆에 있던 늑대 신수는 머리가 지끈거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마를 짚었다.

“설마 했는데, 이게 사실일 줄이야…….”

“이번엔 진짜였다니까. 봐봐, 내 친우 백령과, 우리 귀여운 아리.”

‘우리’라는 단어가 심히 거슬려, 바랑을 노려보았다.

내 눈빛을 못 느낀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지, 바랑이 뿌듯하다는 듯 웃으며 나와 백령을 가리켰다.

하지만 늑대 신수의 표정을 점점 썩어들어갔다.

“그게 지금 자랑이십니까? 아니, 아무런 언질도 없이 귀한 손님을 초대하시면 어떡하십니까, 대체. 제정신입니까?”

“아, 아니…….”

“아아, 바랑 님을 보좌한 이래 제 기억상 제 주군이 제정신이었던 적이 없었긴 합니다만.”

“아니, 그 정도라고?”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

늑대 신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인지 그에게 측은함이 일었다.

얼마나 힘들까……. 저런 똥개를 보좌하며 산다는 건.

늑대 신수가 나와 백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동쪽 땅의 주인, 백령 님. 그리고 작은 주인이신 아리 님. 의도치 않게 기다리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이내, 한숨을 쉬며 그가 고개를 숙였다.

“부족한 주군 탓에 낯 뜨거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게 내 잘못이야?”

“지금은 조용해, 삼촌. 하운이 화 많이 났어.”

하운? 하운이라면, 일전에 똥개가 자기 입으로 자기보다 일을 잘한다며, 모든 일을 맡기고 왔다는 그…….

측은함이 배가 되었다.

“후우, 이제야 제 선에서는 결재하지 못한 일들을 처리하나 했는데.”

하운이 머리를 짚더니 쭉 째진 눈으로 바랑을 바라보았다. 눈매 탓인지, 아니면 그의 진심인지, 매섭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며칠간 이래저래 노시면서 모든 일을 제게 미루시지를 않나, 무슨 아침밥 챙겨 먹듯 심심하면 다른 영토에 가서 노닥거리시기나 하고, 심지어 어제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셨잖습니까.”

지금 놓고 보니 바랑의 업적은 기가 막힐 정도로 대단했다.

와, 저렇게까지 밑바닥일 수가 있구나…….

어떻게 파도 파도 나오지?

“궁이 발칵 뒤집어진 건 알고 계십니까? ……도대체 한 영토의 군주라는 분이…….”

“아, 아니, 하운. 다 놀고먹자고 하는 일…….”

“생각이란 건 하고 사십니까?”

네 죄를 하운이 알렸다, 바랑.

이건 백 보, 만 보 양보해도 바랑의 잘못이다. 그럼, 그럼. 서화원 와서 노닥거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설마 했지만, 하운이 저 정도로 고통받을 줄이야…….

모든 이가 하운을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사자 둘은 남들의 시선에 이미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인지, 모두의 시선에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삼촌, 반성해.”

“이랑 님.”

“응?”

“이랑 님도 별반 다를 거 없으십니다. 툭하면 수업받기 싫다고 도망가시지 않습니까?”

“아, 아니, 하운, 그건…….”

“이 정도면 집안 내력이라고 봐야죠.”

그래, 저 정도면 집안 내력 맞다. 하운아, 어서 빨리 도망쳐.

하운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마 둘을 이미 오래전부터 포기했기에, 더 이상 힘을 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용케 아직 바랑의 궁에 붙어 있구나…….

아마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하운은 평화의 상징이 틀림없어.

“하운 아니었으면 서쪽 땅은 진작 망했을 거야…….”

자하의 중얼거림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수긍했다.

우여곡절 끝에 바랑의 궁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하운의 안내에 따라 들어선 바랑의 궁은 백령의 궁만큼이나 넓었고, 웅장했다. 하운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져 있는 정자였다.

그곳에는 세 신수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의 등장에 그들이 대화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중 익숙한 얼굴의 한 명이 우리를, 아니,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왔네.”

은월이었다.

은월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은월의 옆에 앉아서 얘기를 하던 두 신수가 따라 일어섰다.

두 신수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두 신수는 성큼성큼 우리에게로 다가오더니, 둘 다 내 앞에 쭈그려 앉아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이 신수들은 뭐 하는 애들이지……?

호기심 가득한 두 신수의 눈빛에 절로 뒷걸음질 쳐졌다.

얘네 자세히 보니, 엄청나게 닮았다.

남매인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두 신수의 얼굴이 바로 코앞이었다.

두 신수 모두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 머리칼과 흑색의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머리에는 동그란 귀가 달려 있었다.

마치, 곰과 흡사한…….

아니, 얘네는 곰이 확실하다.

“킁킁.”

두 신수가 코를 킁킁, 거리며 내 냄새를 맡았다.

뭔진 모르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이랑 님과 나래 님을 제외한 어린 신수의 향은 오랜만에 맡아봐.”

“호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달콤한 향이긴 해.”

……얘네 왜 이러는지 알려주실 분?

다행히 은월이 바로 앞에 있던 신수 두 명의 목덜미를 잡고 뒤로 잡아끌었다.

은월이 두 신수를 노려보자, 두 신수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반가워요, 아리 님. 저는 청아고, 옆에 있는 산이의 누이랍니다.”

사근사근한 말투로 청아가 산을 가리켰다.

청아? 산?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인데…….

“저흰 은월 님과 비천 님을 대신해 자잘한 일들을 하는 수행원이랍니다.”

아, 그때 그 얘기구나.

그래서 은월이 둘을 만나러 이곳으로 온 거였어.

청아와 산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두 신수의 시선에 심히 부담감을 느끼던 나는 백령에게로 시선을 회피했다.

얘네 왜 이래……?

내 표정을 읽은 듯, 백령이 청아와 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청아, 산.”

“백령 님,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그래.”

기본적인 인사말이 오가고, 청아와 산이 모두에게 앉으라는 듯 공손하게 정자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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