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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35)화 (35/167)

35.

“짜하, 바버.”

“아, 아리 님……?”

뭐? 불만 있어? 맞는 말이잖아?

자하가 울상을 지으며 본인의 입을 탓했다. 그의 귀가 축, 아래로 처져 있었다.

그래, 누구를 탓하겠니…….

자하의 모습에 백령이 그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뒀다. 한순간에 기가 죽은 자하가 호랑이 두 마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뭐, 아무튼. 포포를 낫게 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야.”

은월이 자하의 주책에 의해 아까 못다 한 말을 이어나갔다.

“서쪽 땅에 있는 약방에 가서 약을 받아와야 해.”

“네?”

은월의 말에 자하가 언제 울상이었냐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서쪽 땅? 약방? 약방이 서쪽 땅에만 있는 건가?

“으널, 왜 서쪽 땅이야?”

“서쪽 땅에 가장 유명한 약방이 있어. 대부분의 약은 그곳에서 제조돼서 네 땅에 공급해주지. 공급받는 땅마다 약 종류가 달라.”

“으응? 그롬 여기서 치료해도…….”

“공급받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얘가 서쪽 땅 출신의 신수니까, 서쪽 땅에 공급된 약이 더 잘 맞을 거야. 우린 아예 약방으로 갈 거지만.”

어? 서쪽 땅의 출신이라고? 뽀뽀가?

처음 듣는 소리에 은월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걸 은월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뽀뽀랑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때 알게 된 걸까?

하지만 그 가설은 맞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은월은 포포를 제대로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기에. 포포를 어디서 만났는지까지 기억하고 있을 리 만무했다.

“어떠케, 알아?”

“느껴져, 그냥.”

난 안 느껴지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 물론 내가 정상적인 신수가 아닌 건 맞지만…….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네가 신력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면 아마 너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귀신같이 알아챈 은월이 걱정 말라는 듯 내 의문을 가볍게 풀어주었다.

또한, 은월과 백령이 어째서 포포의 상태를 본 후 우연이 겹쳐도 이렇게 겹치는가, 라고 말했던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서쪽 땅에 가야 한다는 거잖아.

“비천처럼 까탈스러운 녀석은 참 껄끄러운데 말이야.”

은월의 말에 자하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지금, 은월 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요……?”

“왜?”

“은월 님도 충분히…….”

“충분히?”

은월이 입꼬리를 올리며 묻자 자하의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동물의 생존본능이란…….

“비천 님에 대한 평이 충분히 지당하신 결론이신 거 같습니다…….”

“알고 있어.”

은월이 눈을 휘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회색빛 눈이 오묘하게 일렁였다.

자하가 눈에 띄게 한숨을 크게 돌렸다.

야야, 자하야……. 넌 진짜 지나가는 스라소니도 못 속이겠다.

“아리야, 포포랑 함께 갈 거지?”

백령과 은월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꽂혔다. 두 호랑이의 확신에 차 있는 표정에 확인 차 내게 질문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으응! 갈 꼬야…….”

뽀뽀가 저렇게 아픈데,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

“안 돼요, 아리 님! 서쪽 땅에 얼마나 이상한 신수들이 많은데! 아리 님한테 집적거리는 놈들이 있을 거라고요!”

너만큼 이상한 신수가 또 있을까, 자하야……?

자하의 외침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비천의 뜻대로 따를 수밖에 없겠는데, 백령?”

“어쩔 수 없군.”

“어차피 서쪽 땅에 갈 거라면, 뜻대로 움직여주는 게 덜 피곤하지.”

그렇게 모두가 저마다의 생각에 빠져 심각할 때 즈음, 어느새 기운이 빠져 있던 게 회복된 자하가 뜬금없는 말을 지껄였다.

“……또 저만 혼자 궁에 남겨 놓고 가실 건 아니죠?”

자하의 말에 두 호랑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자하의 귀가 불안함에 쫑긋 세워졌다.

살짝 털들이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죠?”

“은월, 지금 당장 떠날 준비를 하지.”

“오랜만에 가네, 서쪽 땅.”

두 호랑이가 자하의 시선을 무시했다. 자하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울상이 되어 갔다.

“제가 없으면 아리 님한테 집적대는 나쁜 신수들이, 나쁜 신수들이…….”

아이고, 자하야…….

두 호랑이가 무참히 자하를 외면하자, 그가 울상을 지으며 내게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리 님…….”

“나, 나눈, 모라!”

난 모르는 일이야,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지 마!

“히잉……. 백령 님은 나만 미워해.”

글쎄다, 자하야. 백령은 아무 생각 없지 않을까?

자하는 한참을 같은 자리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글썽였다.

자하, 저런 울보 녀석 같으니라고.

쯧쯧.

아직 애라서 그런가, 눈물이 많군.

그런 자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계속 울게 내버려 둘 순 없으니까…….

“짜하, 갠차나!”

나름 위로의 말을 건네고 그의 뭉툭한 꼬리를 쓸어내렸다.

포포는 이러면 좋아하던데…… 둘이 정신연령 비슷하니까 좋아하겠지?

자하의 볼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안 괜찮은 거 같으니까 손이나 치우자.

꼬리에서 손을 떼자, 어느새 울상이 사라진 자하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와 눈을 마주했다.

“아리 님!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어? 어어…….”

“진짜죠? 알겠습니다!”

……뭘까, 이 불안함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깽깽이걸음으로 뛰어가는 자하를 보며 작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감이 상당히 좋지 않다.

***

서쪽 땅에 갈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여노가 없는 관계로 이름 모를 시녀가 따라나섰다.

밤색 머리칼에 고양이의 귀를 가지고 있는, 앙칼진 인상의 시녀였다. 그녀가 포포를 안아 들고 있었다.

은월이 아까 포포를 본 후로는 전보다 포포의 숨소리와 상태가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이리 급하게 서두르는 걸 보면 완전히 맘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뽀뽀야, 아프지 마…….

후회됐다. 내가 먼저 대화 걸어볼 걸……. 조금이라도 서둘러 포포를 찾아볼걸.

“아리 님, 혹시 청마를 부를 수 있으세요?”

포포의 생각에 울상이 된 내게 고양이 시녀가 물었다.

“아, 안니…….”

그러고 보니 아루한테 물어본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루는 손을 입에 갖다 대고 휘파람을 불었던 거 같은데…….

아루가 휘파람을 불던 모습을 떠올리고 최대한 그의 자세를 따라하며 휘파람을 불었지만, 바람 빠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냥 부르면 오지 않을까?

“쩡마야!!!”

나의 우렁찬 호통에 모든 이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그제야 부끄러움이 밀려오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굳이 거울로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붉게 달아올랐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뼈저리게 나의 우렁찬 외침을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히이잉-.

어딘가에서 나타난 청마가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내 앞에 멈춰 섰다. 푸른 빛이 감도는 성스러워 보이는 아름다운 자태의 푸른 말. 저번에 만난 그 청마였다.

“아, 아리 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으, 응!”

“어떻게 청마를 부르는 법을 알고 계셨어요?”

“어, 어? 그, 워, 원래 알고 이썼어.”

물론 거짓말이다. 휘파람도 못 부는 내가 무슨!

고양이 시녀가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칭찬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꼬리도 살랑인다.

……뭐야, 개냥이잖아……?

새침해 보이는 인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꽤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다.

“청마가 아리를 주인으로 인식한 거 같은데?”

“그, 그렇죠, 은월 님? 청마는 아무나 주인으로 인식하지 않는데 말이에요…….”

“부르는 방식이 꽤나 독특하긴 했지만.”

어느새 은월이 내 코앞, 아니, 이마 앞까지 당도해서 청마의 아름다운 갈기를 쓸어 넘겼다.

……은월이 내가 청마를 부르는 모습을 본 거야……?

갑자기 물밀듯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봐, 봐써……?”

“응.”

“…….”

“정확히는 보였어.”

은월이 눈을 휘며 웃었다. 평소라면 넋 놓고 바라보았을 미소지만 지금은 내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렇게 맑고 큰 목소리로 청마를 부르는데 못 들을 리가 있겠어?”

뭐……? 내가 방금 잘못 들었나?

못 들을 리가 없다니, 그렇게나 컸다고?

당황하여 일부러 은월의 말을 못 들은 체했다. 은월도 굳이 상기시켜 줄 마음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고, 나도 구태여 되묻지 않았다.

잘못 들은 거겠지, 암암, 그렇고말고.

문득 끔찍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설마 백령도 본 거 아니야?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서 백령이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어느샌가 그가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쥐구멍, 쥐구멍 없을까……?

있을 리가 없다.

“대단하군.”

“그렇죠, 백령 님?”

저 대단하다의 의미는 뭘까…….

내가 청마를 부른 게 대단한 걸까, 아니면 우렁찬 목소리가 대단한 걸까……?

차라리 전자였으면 좋겠다.

고양이 시녀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죽고 싶어졌다.

히이잉-

청마가 아름다운 꼬리를 살랑이며 울부짖었다. 그에 모든 이들이 내게 관심을 거두고 각자의 일로 돌아갔다.

백령과 은월만 빼고.

백령과 은월은 여전히 내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나도 울고 싶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출발을 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와 고양이 시녀는 청마를, 은월과 백령은 나를 가운데에 두고 앞질러 가거나, 뒤따라왔다.

중앙 땅을 지나, 조금 더 가니 큰 관문이 하나 있었다. 그 관문에는 늑대의 귀와 꼬리를 가진 남자 세 명이 앞을 지키고 있었다.

늑대들은 우리를 발견하곤 곧장 무릎을 꿇었다.

“서쪽 땅에 방문하신다는 기별을 받았습니다. 동쪽 땅의 주인, 백령 님, 동쪽 땅의 작은 주인 아리 님께 인사 올립니다.”

세 늑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말이 끝나자,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사법관 은월 님의 행차에 몸 둘 바를…….”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뭘 또.”

“그래도 절차상…….”

“절차는 너희 땅 주인이나 좀 밟으라 해. 허구한 날 아무런 기별 없이 쥐새끼처럼 몰래 동쪽 땅 밟지 말고.”

“…….”

“청화관이 매우 곤란해서 말이야.”

은월의 뼈 있는 말에 늑대는 입을 다물었다.

세 마리의 늑대가 꼬리를 내리고 깨갱거리는 모습을 보니 측은함이 일었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으널, 고마해.”

얘들 불쌍하잖아. 똥개가 잘못한 건데.

늑대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은근슬쩍 고개를 들어 청마 위에 올라타 있는 내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런 내 앞을 백령이 막아섰다.

“감히 누굴 쳐다보는 것이냐.”

백령의 말에 늑대들이 고개를 아예 푹, 숙였다.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백령 님.”

백령은 그들의 사과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백령의 위엄에 늑대들은 잔뜩 긴장이라도 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가운데 은월이 아무것도 담지 않은 싸늘한 눈으로 그들을 흘겨보았다.

“이제 좀 들어갔으면 하는데…… 언제까지 우리를 여기에 세워둘 거지?”

은월의 말에 늑대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화들짝 놀랐다.

“저어, 그것이…….”

대장으로 보이는 늑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 늑대에게 꽂혔다.

은월이 계속 말하라는 듯, 그를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서찰로 일러주신 내용과 조금 다릅니다.”

“다르다고?”

“예. 서찰에는 분명 백령 님과 은월 님, 아리 님, 시녀, 하급 신수 말고도 한 분이 더…….”

“그게 무슨…….”

은월과 백령이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 늑대의 뜻을 곧 알 수 있었다.

“아리 니이이임!”

저 멀리서 세상 떠나가라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리고 그 실루엣이 점점 다가오더니, 형태가 뚜렷해졌다.

굳이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아도 모두는 그 실루엣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달려오는 스라소니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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