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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32)화 (32/167)

32.

“야! 은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어젖힌 바랑의 모습에 모두가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 밑이 평소와 달리 상당히 거뭇한 게, 그는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그가 황금빛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정확히 내 얼굴에 꽂혔다.

“어? 아리야!”

그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미소에 좋지 않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런, 젠장.

“아리야아아아!”

“꺼져.”

그가 빠른 속도로 내 앞으로 당도해, 팔을 뻗었다. 다행히도 그의 얼굴을 잡고 저지하고 있는 은월 덕에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꼼짝도 못 하고 당할 뻔했다.

은월 말이 내 말이지. 제발 꺼져줘, 바랑아.

왜 평화로운 내 일상에 돌을 던지고 난리냐고……!

“쳇.”

몇 초간 은월의 손에 잡혀 바둥대던 바랑이 서 있던 자리에 앉았다.

“내가 걔네 따라잡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서?”

“근데 네 놈은……, 귀여운 ‘우리’ 아리랑 짝짜꿍하고 있었다, 이거지?”

“네 놈……?”

“……네 님이요…….”

바랑이 꼬리를 내리곤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근데 내가 언제부터 똥개의 ‘우리’가 된 거지……?

우리라는 찝찝하고도 끔찍한 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응? 아리야, 왜 날 그렇게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야?”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일까?

바랑에게 이런 오해를 받는 건 상당히 기분이 더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귀찮아도 그에게 분명하게 정정하기로 했다.

“안니야, 똔깨…….”

내 눈을 잘 봐, 이건 혐오의 표정이라고!

아루랑 마루 따라다니다가 머리라도 한 대 박았나?

어떻게 날이 갈수록 더 미칠 수가 있지?

그의 끝없는 한계에 감탄하며 진심으로 머리라도 다친 게 아닌지, 그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외관은 퀭한 눈만 빼면 지나치게 멀쩡하다.

“왜 그렇게 날 봐? 혹시, 내가 걱정되기라도 한 거야, 아리야?”

“또온깨.”

“응?”

“바버.”

그래,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건 언제나 그랬으니, 예외로 두자.

“아리야, 저 똥개라는 작자는 누구야?”

“……뽀뽀야.”

포포가 내게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세상 사람들 다 들으라는 귓속말로 내게 물었다.

……진짜 뽀뽀는 이 소리가 나한테만 들릴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

바랑의 표정이 이미 구겨져 있으니 말이다.

“이, 이 여우가 누구더러 똥개래?”

“히익. 이걸 어떻게 들어? 진짜 똥개인 건가?”

포포는 진심으로 귓속말을 한 거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너의 귓속말은 못 듣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란다, 뽀뽀야.

“이런 하급 신수가 여긴 또 어떻게 들어온 거야?”

어?

아까 여노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인 거 같은데?

나는 재빨리 은월을 바라보았다. 나의 시선을 느낀 은월이 날 내려다보았다.

“으널.”

“왜.”

“청아간은 머 하는 곳이야?”

“청화관?”

“으응.”

“청화관이 뭐 하는 곳이냐니…….”

은월이 잠시간 이해하려는 듯 내 질문을 곱씹었다.

내가 청화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은월의 거처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주변이 보는 청화관에 대한 평판이 남달랐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특별한 곳인 것 같았다.

나의 질문에 은월이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흐음.”

“후움……?”

“청화관은…….”

“청아간은……?”

은월의 말끝마다 그를 따라 하며 대답을 재촉하자, 보다 못한 바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입을 열었다.

“청화관은, 은월의 힘으로 상시 결계가 쳐져 있는 곳이지.”

말하고 난 후 뿌듯해하는 바랑을 보며 은월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계? 어떤 결계를 말하는 거지?

결계가 쳐져 있는 거라면, 분명 어떤 느낌이라도 나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나와 포포는 아무렇지 않게 청화관에 출입이 가능했다.

바랑의 말에 상당히 혼란스러워졌다.

“바랑.”

“뭐?”

바랑이 은월의 부름에 대답하자, 은월이 눈을 휘며 웃었다.

“나가.”

“……조용히 있을게.”

그래, 바랑아. 제대로 설명 못 할 거면 입을 열지를 말렴. 너 때문에 혼란스럽기만 하잖아!

은월이 잠시간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그의 회색빛 눈이 나와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이 곱게 접혔다.

“신수들의 땅, 신국의 사법에 관련된 모든 업무에 관한 자료가 있는 곳이지.”

응? 사법 업무?

그러니까, 청화관에서 모든 사법 업무를 다룬다는 거야? 이 적막한 궁에서?

처음 청화관에 왔을 때를 떠올렸다. 아무도 없고 조용한, 나만의 작고 소중한, 아니, 크고 소중한 비밀기지.

은월을 제외한 신수의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매우 고요했고, 누군가가 궁에 손을 댄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중요한 사법 업무를 처리한다는 거야?

나의 의문을 눈치챈 건지, 은월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신국의 중심, 미호의 궁에선 입법 업무를, 중심의 오른쪽, 청화관에선 사법 업무를, 그리고……, 중심의 왼쪽, 홍화관에선 행정 업무를.”

홍화관? 처음 듣는 낯선 이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법 업무를 처리하는 건 나 혼자로도 충분해. 미호도 마찬가지이고.”

생각보다 휑했던 미호의 궁을 떠올렸다.

미호의 궁에 방문했을 당시, 그녀의 궁에는 백령의 궁보다 훨씬 적은 수의 하인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업무 내용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게 좋지만은 않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은월은 분명 일전에 내게 ‘동쪽 땅에 올 때마다 머무르는 곳.’이라 소개했지 않은가?

“으널, 별장 아니어써?”

그렇다, 나는 여태껏 그의 별장 정도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오,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은월, 이놈은 하도 일 처리가 빨라서 들른 김에 모든 일을 처리하고 또 일하러 떠나는 미친놈이니까.”

바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그렇다면 청화관이 이렇게나 적막한 것과 은월이 동쪽 땅에 머무를 때만 잠시 머문다는 것이 납득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아무나 못 들어온다는 건…….

고개를 들어 은월과 눈을 마주쳤다. 은월이 입꼬리를 올리며 눈웃음을 흘렸다.

“그래, 청화관은 특별한 힘을 가진 신수들만 출입이 가능해.”

은월이 바랑에게로 시선을 옮겨갔다.

“예를 들면, 네 땅의 주인 중에서도 힘이 강한 자들이라던가…….”

은월이 다시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구슬의 주인 된 자라던가.”

은월이 다음으로 포포에게로 시선을 옮겨갔다.

“근데 저건 나도 모르겠네.”

나와 바랑이 은월을 따라 포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아마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며 푸른 여우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우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질리도록 들은 말을 내뱉었다.

“헤헤……?”

***

어찌 되었건, 포포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우리는 암묵적으로 포포에 대한 의문을 조용히 묻어두기로 했다.

“뭐야, 너 말도 하냐?”

“만지지 마!”

바랑이 포포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와, 어떻게 하급 신수가 말도 하지?”

“뭐, 뭐? 하아그읍?”

“어? 그러고 보니 너 인간형으로 변할 수도 있구나!”

……그걸 이제 안 거야?

자하나 바랑이나, 얘네 둘은 바보임이 틀림없다, 틀림없어.

“야, 야. 여우로 변해봐. 여우 모습 한번 보자.”

“이, 이 똥개가!”

“뭐? 똥개?”

“이 바보 똥개야!”

그렇지, 우리 뽀뽀 잘한다.

“이 조그만 게!”

“뭐? 너 조그만 오이가 맵단 말 못 들어봤냐?”

“허, 그런 말이 어딨냐? 바보네, 바보.”

“그럼 뭔데!”

“그, 그…….”

바랑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포포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 이건 자존심 강한 두 바보의 싸움일 뿐이었다.

“아, 아무튼 그거 아니야!”

그렇게 바랑과 자하 중 누가 더 바보일까, 하며 도토리 키재기를 시전하고 있던 나는 그 안에 포포를 같이 넣어서 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씩씩대던 바랑이 갑자기 포포를 놓아 주더니, 은월에게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야, 그러고 보니 아까 말하던 거 말이야.”

“뭘 말하는 건지.”

“내가 걔네 따라잡느라고 힘들었다고.”

“아아.”

‘별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왠지 은월의 표정이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굉장히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바랑은 신경을 안 쓰는 건지, 안 쓰는 척하는 건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나 상 같은 거 없냐?”

바랑의 말에 은월이 눈을 휘며 웃었다.

“이만 꺼져주면 서쪽 땅으로 일거리를 잔뜩 보내놓도록 할게.”

“쳇, 누가 너더러 달라고 했냐?”

바랑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 똥개 놈 왜 또 이래?

순간 익숙한 불안함이 급습했다.

예감이 상당히 좋지 않다. 꼭 이런 감이 들 때면 똥개가 헛소리를…….

“아리야아아아.”

아니나 다를까, 바랑이 콧구멍에 뭘 처넣은 건지, 난생처음 듣는 기괴한 콧소리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이들 중 내 이름을 불렀다.

“또옹깨. 이상해.”

눈을 반쯤 뜨고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았지만, 그에게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그래, 새삼스레 이게 통할 위인이 아니지.

“아리야아아아.”

제발 그 콧소리부터 갖다 버리면 안 되겠니?

바랑의 뾰족한 늑대 귀가 쫑긋 세워졌다.

바랑이 재빠르게 날 들어 올렸다.

이런, 방심했다.

이 똥개가 죽고 싶어 환장이라도 한 걸까?

나를 들어 올린 바랑이 짜증 날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의 뾰족한 송곳니가 유난히 돋보였다.

마음 같아선 저거 뽑아버리고 싶다.

그의 송곳니에서 시선을 옮겨 그와 눈을 마주치고 노려보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여기 백령 없다고 이러는 거지, 지금?

“똔깨, 놔!”

“그래, 그래. 우리 귀여운 아리.”

누구보고 우리래?

점점 선 넘네, 이 똥개가.

“아리야.”

“…….”

“아리야……?”

볼을 잔뜩 부풀리고 일부러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노려보는 게 통하지 않으니 그와 시선을 마주할 이유도 없었다.

“아리야, 아리야?”

바랑이 나의 볼을 쭈욱, 늘렸다. 바랑이 늘리는 대로 쭉쭉 늘어나는 내 볼을 보며 온갖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이게 진짜……!

“우리 귀여운 아리가 나한테만 유독 왜 그럴까……, 이 ‘바랑’은 너무나도 슬프다…….”

넌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진짜.

바랑이 일부러 자신의 이름에 힘을 주고 말했다.

속이 훤히 보인다, 이 똥개야.

내가 그런다고 넘어갈 줄 알아?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바랑은 이미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괜스레 인생에 회의감이 느껴질 때였다.

“바랑.”

은월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

바랑의 목소리가 묘하게 떨렸다.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이 있나 보네.”

“어어, 아니, 난 그냥…….”

“서쪽 땅에는 일이 없나 봐. 그럼 홍화관에 좀 전달해줬으면 하는 물건이 있는데.”

은월이 붉은색 두루마리를 손에 들었다. 그 모습을 본 바랑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야, 야! 내가 진짜 물건 전달해주는 똥개도 아니고, 왜 그래!”

“할 일 없잖아. 그러니까 네가 여기서 시시덕거리고 있지.”

너무나도 논리적인 은월의 말에 바랑이 잠시간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어, 없긴 누가 없다 그래? 서쪽 땅에 일이 얼마나 많은데.”

“서쪽 땅의 일은 자하 보내 놓을게. 걱정 마.”

자하가 듣는다면 자기한테 왜 그러냐며 곡을 칠 일이었다. 머릿속에 이미 자하가 울먹이는 얼굴까지 둥둥 떠다녔다.

하지만 난 그거 상당히 괜찮은 생각인 거 같아, 은월아.

“으널, 나눈, 찬송이야!”

여전히 바랑에게 붙들린 채로 한쪽 손을 번쩍 들었다.

이런 사안이라면 언제라도 두 팔 벌려 환영이다. 그럼, 그럼.

“바랑.”

“…….”

“안 놔?”

은월이 불쾌하다는 듯 턱으로 나를 들어 올린 바랑의 손을 가리켰다.

“하하. 은월. 나는 당장 아리를 내려놓으려고 했어.”

뻥치시네.

아주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하여간.

침 한 번 더 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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