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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27)화 (27/167)

27.

아름다운 물빛과 똑 닮은 푸른빛의 윤기 도는 부드러운 털. 피처럼 붉고 신비로운 눈동자. 앙증맞은 팔과 다리. 위로 뻗은 귀여운 뾰족한 귀. 마지막으로, 복슬복슬한 꼬리까지.

“뭐, 뭐야, 날 왜 그렇게 봐……?”

당황하며 눈알을 굴리는 저 표정까지.

그래, 네 얘기 맞다, 뽀뽀야.

포포의 물음에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구냥!”

미소 지으며 활기차게 대답했지만 포포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귀여운 여우 녀석, 나 너 안 잡아먹어!

꼬리는 만질 수 있지만.

가만히 날 보고 있는 포포의 눈망울을 보니 손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다.

에잇!

두 손으로 포포의 복슬복슬한 꼬리를 잡았다.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촉감에 내 마음도 같이 평온해지는 것 같다.

“뭐, 뭐야! 야, 이거 놔!”

포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노려보았지만 그런 게 소용이 있을 리가 없다.

포기해, 뽀뽀야. 포기하면 편해.

이미 넌 내 손 안에 들어와 있다고.

손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복슬복슬하고 부드러운 감각에 전율이 흘렀다.

흐음……. 오늘은 뭐 하지?

오늘은 안타깝게도 은월이 없다. 물론 백령의 궁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아까 대낮부터 자하를 질질 끌고 열심히 일하러 갔기 때문에, 자연스레 수업도 없는 날이다.

고맙게도 은월은 일하러 가면서 자하도 같이 끌고 갔다. 그래서 오늘은 완전히 자유로운 날이었다.

자하가 끌려갈 때 가관이었지, 아주.

“아, 아리 님…….”

“짜하, 빠빠.”

“잘 가, 스라소니야.”

포포와 나는 멀뚱멀뚱 정자에 앉아서 자하가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광경을 지켜보다 자하에게 작별을 고했다.

일은 열심히 해야지, 자하야.

아루 억울해서 눈물 흘릴라.

아무튼, 그런고로 오늘은 자유다. 이게 얼마만의 자유인가.

자하가 없으니, 축배라도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던가.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중, 가장 끔찍한 기억은 끝나지 않는 숨바꼭질이었다.

……떠올리지 말자. 짜증만 난다.

오늘은 백령이라도 보러 가볼까?

요즘 백령을 본지도 참 오래되었다. 은월이랑 수업을 하기도 하고, 포포랑도 놀다 보니……. 물론, 백령이 바쁜 것도 한몫한다.

그러고 보니 백령은 포포를 아직 본 적이 없구나.

이참에 소개나 한번 해줘야겠다.

“이거 놔아!”

포포가 안간힘을 쓰며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갈 데가 있어, 여우야.

“가치 가자!”

“뭐, 뭐? ……어딜?”

포포가 불안한지 눈동자를 심하게 떨었다. 그뿐이랴, 잡고 있는 꼬리도 요동친다.

포포가 땀을 삐질삐질 흘려대며 인상을 찌푸렸다. 벗어나려고 이리저리 발을 굴러댔지만 우직하게 잡힌 꼬리 탓에 이내 포기하고 축 늘어졌다.

그렇게 무서워할 거 없어, 뽀뽀야.

늘어진 포포를 질질 끌고 나의 목적지로 향했다.

“어, 어디 가는 건데…….”

“모라두 대.”

넌 이 누나만 따라오면 된단다.

긴 복도를 지나, 백령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포포는 포기하고 질질 끌려오다 집무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오, 여긴 뭐 하는 곳이야?”

뭐 하는 곳이긴. 우리 백령이 틀어박혀서 일하는 곳이지.

뽀뽀가 백령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꽤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들어가야…….

……어?

집무실 문이 이렇게…… 높은 곳에 문고리가 있었나?

백령의 집무실로 들어가기 위해선 동그란 문고리를 잡고 밀어야 했다. 그리고 그 문고리는 내겐 너무나도 높은 곳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백령의 집무실을 내가 열고 들어간 적이 없구나.

옆에 있는 나보다 세 배는 작은 포포를 바라보았다.

……안 되겠지?

무리, 무리.

“뭐해, 안 들어가고?”

포포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드, 드러가꺼야!”

이 자식, 이거 아까까지만 해도 불안해하더니 지금은 꼬리를 흔들며 신나있다. 이런 단순한 녀석.

후……, 수치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문 앞으로 다가가서 까치발을 들고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으읏…….

조금만, 조금만 더…….

손잡이가 닿을락 말락 한다.

나랑 지금 해보자는 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손잡이를 한껏 노려보았다.

침착하자, 침착해. 저건 손잡이일 뿐이야.

“뭐야, 너 키 진짜 작구나…….”

……응?

내가 방금 잘못 들은 건가?

이 여우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나보다 세 배는 작은 포포를 내려다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는 한쪽만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풉.”

내 비웃음에 포포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뭐야, 너 나 비웃냐, 지금?”

“마자.”

용케 알았네, 이런 여우 녀석.

포포와 나, 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나는 포포를, 포포는 나를 조용히 노려보며 눈싸움을 했다.

“짝아…… 뽀뽀.”

“……뭐?”

포포를 내려다보며 말하자, 포포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그러거니 인상을 쓰고 날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네가 먼저 시비 걸었잖아, 이 여우 녀석아!

“허, 저것도 못 열면서!”

“뽀뽀, 해바!”

네가 해보던가.

지도 못 하면서 남 말하고 있어! 이런 쪼끄만 여우 녀석 주제에!

포포가 근엄하게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문 앞으로 가서 똑바로 섰다.

허이구, 웬 똥폼? 넌 똥폼에서부터 탈락이야.

쯧, 쯧, 쯧.

무려 혀를 세 번이나 차고 고개를 저었다.

포포가 그런 나를 째려보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헛!”

……되겠냐, 뽀뽀야?

잠시 손을 뻗은 자세 그대로 멈춰있던 포포가 똥폼을 내려놓고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콩, 콩.

포포가 뛸 때마다 무언가가 튕기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건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일 거야, 그럼, 그럼.

포포가 몇 번 뛰더니, 이내 안되는 걸 깨달았는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서 모른 척이야!

“오디 가!”

그런 포포의 꼬리를 잡아끌었다.

“놔, 놔아!”

“시러!”

포포가 잠시 바동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얌전해졌다.

“…….”

“…….”

우리 둘은 꽤 지쳤기에 나란히 앉아서 가만히 애꿎은 문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렇게 노려보다가 문이 우리 눈빛에 못 이겨 뚫리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

“야, 그냥 부르자.”

“시러.”

“뭐, 다 싫대!”

“바버!”

깜짝 등장 모르냐, 깜짝 등장?

하여간, 애가 눈치가 없다니까.

이 누나 만난 걸 감사히 생각해라. 이런 걸 어디 가서 배우겠니?

흐음……. 어쨌거나, 문을 열어야 하는데…….

저 여우 녀석은 참 쓸데없어 보이니…….

어쩔 수 없지, 내 이것만은 쓰지 않으려 했다만…….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가서 딱 붙어섰다.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는 심호흡을 한 번 내뱉었다.

꽤 오랜만인 초 세기를 시작하려 입을 풀었다.

하나.

둘.

셋!

“호잇!”

최대한 문고리를 향해 높게 뛰었다.

탁, 하고 문고리에 매달리는 데에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오오, 빨리 열어 봐, 빨리!”

여우가 재촉했지만 한 가지 작은, 아니, 조금은 큰 문제점이 있었다.

……이 상태로 어떻게 밀어……?

그렇다, 난 지금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거지, 여기서 힘을 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나 어떻게 해?

“뭐, 뭐야, 야, 너 괜찮냐?”

가만히 대롱대롱 매달려서 이도 저도 못하는 나를 보던 포포가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아니, 안 괜찮은 거 같아. 나 어떡하냐?

그렇게 그냥 조용히 내려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내가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렇게 포기할 순 없었다.

그때였다. 집무실 문이 내 의지와는, 아니, 내 힘과는 아무 상관 없이 천천히 열렸다.

자, 잠깐 나 이러면 떨어…….

갑자기 움직인 문 때문에 손이 미끄러져 버렸다.

……오늘로 내 엉덩이는 안녕이구나.

“뭐 하는 거냐.”

집무실에서 문을 연 건 다름 아닌 백령이었다. 바닥에서 엉덩이가 깨지지 않고 어느새 백령의 품에 안겨 있는 내가 있었다.

“배, 백련!”

이런 순발력 좋은 호랑이들 같으니라고.

어쨌든 나름 깜짝 등장에는 성공한 것 같다…….

“야, 너, 괘, 괜찮냐……?”

포포가 콩콩 뛰어왔다. 그 모습을 보던 백령이 의아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여우?”

그제야 백령과 포포가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서로의 존재를 인식했다.

아, 맞다. 나 오늘 얘네 둘이 소개해 줄려고 했었지, 참.

문고리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어.

백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마 요즘 흑기들도 뜸하고 하니, 대뜸 나타난 여우가 조금 의심스러운 모양이다.

안락한 백령의 품에서 내려와서 포포를 안았다.

“얘, 내 꼬야!”

“어디서 주워 온 여우지?”

글쎄……. 은월한테서?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참 답하기 애매하다.

“으널이 줘써.”

“……은월이?”

은월이라는 말에 백령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뒤로 돌아 집무실 안으로 향했다.

은월은 꽤나 신수들에게 많은 신임을 받고 있다니까.

하긴, 법을 지키는 자니까 그럴 수 있지…….

누구보다 믿음직한 위치이긴 하다.

나도 백령을 따라 집무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째 뭔가 부족한 느낌인데…….

서둘러 뒤돌아 포포를 찾았다. 포포가 우물쭈물하며 집무실 앞에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쟤 왜 안 들어와?

곧장 포포에게로 총총, 뛰어갔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꼬리를 잡고 끌고 왔다.

“야, 야! 이거 놔아!”

“시러.”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리고 앙칼지게 대답했다.

넌 영원히 나랑 함께야, 뽀뽀야.

그렇게 질질 끌고 들어오자, 포포가 백령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고만 있었다.

무려 방금 하인이 들고 온 과자들도 손도 안 댔다.

얘가 더위라도 먹었나, 왜 이래?

설마…… 백령을 무서워하는 건가?

뽀뽀 녀석, 귀여운 구석도 있었구나.

물론 생김새로 따지면 세상에서 제일 귀엽긴 하다.

그래, 내가 저 생김새에 넘어갔지. 저, 저 귀여운 꼬리 보소.

그렇게 바들바들 떨며 백령의 눈치를 보는 포포를 감상하고 있을 때, 포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퐁퐁거리며 백령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머리를 땅에 박는 것이 아닌가.

……얘 진짜 왜 이래?

그리고 곧 집무실이 떠나가라, 포포의 외침이 들렸다.

“형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나 요즘 귀가 안 좋나? 자꾸 헛소리가 들리는데.

애석하게도 내 귀는 언제나 그렇듯 아주 멀쩡하다는 것을 얼마 안 가 인지할 수 있었다.

‘형님’이라는 소리를 들은 백령의 인상이 찌푸려졌으니까.

기분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저게 뭔 멍멍이 소리인가, 싶은 것 같다.

아님, 나처럼 청력에 문제 있는 건가 생각할 수도 있고.

포포가 눈을 반짝이며 꼬리를 흔들었다. 귀 또한 쫑긋, 세워져서는 눈을 깜빡, 깜빡거렸다.

저, 저 요망한 여우 보소.

“형님만큼 멋있는 분은 제 생에 두 번째입니다! 부디 형님으로 부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야, 나는? 나는!

첫 번째는 아무래도 은월인 것 같다.

이, 이 여우 새끼……. 참으로 간사하도다. 은월이 없다고 바로 백령에게 홀랑 넘어가다니.

쯧쯧. 은월 좋다고 꼬리 흔들 때는 언제고!

은월에게 고자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은월은 쥐뿔도 관심이 없을 것 같아서 너무 부질없어 보였다.

잠시간 자신의 청력을 의심하던 백령이 포포를 무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마음대로 해라.”

백령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포포가 감격에 젖은 눈으로 백령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보았다.

어휴, 저, 저…….

저런 요망한 여우 녀석!

잠시간 그렇게 백령을 보던 포포가 깽깽이 발로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좋냐, 좋아?

나의 어이없다는 듯한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에 놓인 과자들을 입 안에 잔뜩 넣었다.

“헤헤.”

……좋단다.

할 말은 매우 많았지만,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과자를 먹는 모습에 그저 멍한 눈으로 포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간사하기 짝이 없는 요망한 여우를 봤나.

마음이 아주 갈대네, 갈대여.

내가 데려온 건 여우라고 생각했는데, 여우가 맞는 거 같다.

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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