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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26)화 (26/167)

26.

“……이 여우는 또 뭔가요?”

자하가 자연스레 내 옆에서 과자를 먹고 있던 작고 하찮은 포포를 보고는 그의 꼬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공중에 붕 떠진 포포가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바동거렸다. 포포의 붉은 눈이 불안감으로 점점 물들어져 갔다.

저 모습도 너무 귀여워, 어떡해.

“뭐, 뭐야! 이거 안 놔?”

포포가 고개를 돌려 자하를 노려보았다. 포포의 눈초리에도 자하는 포포를 의심스러운 눈길만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포포의 귀가 바짝 세워졌다. 입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가 바닥에 흘렀다.

자하가 놓아주지 않자, 발버둥 치던 포포가 힘에 부쳤는지, 눈만 매섭게 뜨고 있었다.

뭐, 그래봤자 아무도 매섭다고 느끼는 이는 없겠지만.

포포가 나와 은월을 울먹이며 바라보았다,

에휴, 하여간 귀여운 여우 녀석.

이 누나가 특별히 구해준다.

“짜하, 깨 내 꼬야. 구러지마!”

“……예?”

자하의 손이 놓이고, 포포가 곧장 공중에 떠 있던 몸을 착지하더니 나와 은월의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마저 먹던 과자를 냠남 입에 집어넣었다.

자하는 둥그런 짙은 노란 눈망울로 눈만 뻐끔뻐끔 껌뻑이고 있었다.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아님, 더위라도 먹은 건가…….

“아리 님……?”

“우웅?”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자하가 손가락으로 포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르는 이런 근본도 없는 하급 신수를 어째서 데려오신 거예요!”

글쎄다, 은월한테서 굴러온 거 아닐까? 듣기로는 은월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는 거 같던데.

자하의 말을 들은 포포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의 포동포동한 볼 또한 크게 부풀었다. 먹던 과자를 근엄하게 옆에 내려놓더니, 작은 몸으로 자하의 앞으로 뛰더니 그와 마주 봤다.

“말 다 했어? 이 고양이가!”

포포가 자기보다 10배는 넘게 큰 자하를 올려다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포포가 그러고 소리치자 자하가 충격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새삼스레 왜 저런대, 아루한테 맨날 고양이 소리 들으면서.

어느새 나와 은월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던 수업을 멈추고 흥미로운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하가 충격받은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얼마 안 가, 알 수 있었다.

“뭐야, 너 어떻게 말도 하냐?”

……그걸 이제 알았어?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어!

새삼스레 자하의 지능에 감탄하며 둘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자하가 허리와 고개를 숙여 포포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포포는 그런 그의 시선이 불편한 듯 전보다 인상이 더 험악해졌다. 그래 봐야 여우이기는 하지만.

“근데 뭐, 고양이이?”

그것도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다, 자하야.

얼마간 신기하다는 듯 포포를 보고 있던 자하가 다시 일어서며 포포를 노려보았다.

“난 스라소니다, 이 새끼 여우야!”

아, 맞다. 자하 스라소니였지. 나도 까먹고 있었네.

자하의 외침에 포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뿐이랴, 몸도 부들부들 떠는 것이, 너무나도 작고 하찮았다.

톡, 치면 터질 것 같아.

포포의 얼굴을 톡, 건드리고 싶은 욕망을 애써 눌러 담았다.

안 돼, 안 돼. 그건 나중에 하기로 하자.

“이, 이, 나 새끼 아니거든?”

“뭐래, 조그만 게.”

“뭐래, 이 멍청한 고양이가!”

“새끼 여우야, 너 말 다 했냐?”

둘이 계속 비슷한 얘기로 유치하게 투덕거리자 은월과 나는 시선을 돌려 계속 수업을 진행했다.

저건 그냥, 평범한 바보들의 싸움이잖아.

“그러니까, 이건……,”

은월의 설명이 잘 들리지 않았다. 아직도 투덕거리는 두 신수 덕분에.

은월도 두 신수 덕에 집중이 되지 않는지, 아니면 내게 전달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지, 아직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 두 신수를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싸우고 있는 둘에게 은월의 눈초리가 닿을 리 만무했다.

얘들아,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은월의 표정을 좀 보지 않으련……?

두 바보 신수에게 열심히 위험 신호를 보냈지만 애석하게도 둘은 자하와 포포였다.

“나, 새끼 아니야!”

“나도 고양이 아니야, 이 새끼 여우야!”

“나도 아니라고, 이 고양아!”

은월이 말하던 걸 멈추고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옥신각신해대는 두 신수를 질질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제야 정신 차린 자하와 포포는 입을 다물게 되었고, 어딘가에 던져 버리고 왔는지, 은월이 돌아올 때 그 둘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순간 본능적으로 정자에서 몸을 빼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빠빠, 얘들아…….

아, 아닐 거야.

“으널.”

“어.”

은월이 정자에 앉았다. 그에 따라 그의 검은 머리칼이 흔들렸다. 그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듯 보이자,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했다.

“두리, 어디 가써?”

나의 물음에 은월이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머라 해써?”

“별로.”

별로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둘이 저렇게 조용하다라…….

설마……!

답은 하나뿐이다.

역시 그랬던 거야…….

“……주거써?”

눈동자를 떨며 걱정스럽게 은월에게 묻자, 그가 실소를 터트렸다.

“그럴 리가. 쟤네도 자기들 목숨 귀한 건 알겠지.”

넌 모르잖아. 그게 제일 문제야.

뭐, 은월이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둘은 다행히도 무사한 것 같다.

어쨌거나 은월이 돌아오고 정자가 조용해지자, 그가 수업을 이어갔다.

아직 기를 다루지 못하고 진도를 못 나가는 내게 은월은 딱히 무어라 하지 않았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마. 원래 아직 좀 더 자라야 배우는 것들이니까.”

은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렴 어떠랴. 어쨌거나 내가 그 이랑보다는 잘하고 있다는데.

원래 세상은 상대적인 것.

은월은 기를 다루는 법 외에도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신수들에 대한 잡다한 지식이라던가, 네 땅에 대한 것들이라던가.

그래도 역시 가장 유용하고 큰 가르침은 따로 있었다.

수업이 마쳐갈 때쯤, 쭈뼛쭈뼛 자하와 포포가 정자로 돌아왔다. 둘의 꼬리가 축 내려가 있는 것이 판박이라 모양새가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둘이 은월의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다가오자, 은월이 특유의 미소로 그들을 반겨주었다.

“반성 좀 했어?”

자상하지만 누가 봐도 속은 그렇지 않은 은월이 말에 자하와 포포가 동시에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그래, 이런 삶의 지혜. 이것이 은월이 내게 가르치는 가장 유용하고 큰 것이다.

옆에서 은월을 지켜보며 몰래몰래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반성합니다, 은월 님.”

“잘못했어, 싸부…….”

무슨 말을 했길래 쟤들이 저래?

좀 있다 은월가면 물어봐야겠다. 은월은 내게 가르쳐 줄 의향이 없어 보이니까.

은월이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럼 난 이제 일하러 간다.”

은월이 일어서자 자하의 처져 있던 귀가 똑바로 세워졌다.

“어디 가세요?”

자하야, 너 좋아하는 거 너무 티 난다.

자하가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눈을 빛내며 물었지만 은월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남쪽 땅에. 내일까진 ‘무조건’ 오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 말라는 말에 오히려 자하의 표정이 급속도로 시무룩해져 갔으며, 바짝 세워졌던 귀는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진짜, 자하 넌 절대로 누굴 속이려 들지 마라.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은월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아름다운 검은 머리칼과 옷자락이 바람에 날렸다. 그가 정자를 나가자, 멍하니 있던 포포가 작은 걸음으로 총총대며 은월을 따라가려 했다.

“싸부, 싸부가 가는 곳이라면 저도 같이……!”

“오디 가.”

그런 포포의 꼬리를 나의 작은 두 손으로 잡자, 포포가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나, 나! 싸부한테 갈 거야!”

넌 못 가.

포포가 꼬리를 잡힌 채로 손과 다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귀여운 발길질을 했다.

“으널은, 끄거 시로 해.”

“……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포포를 내려다보았다.

“마악, 따라디느고, 시로 해.”

“헉!”

“그거또, 엄쫑!”

“……!”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포포의 피처럼 붉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내 눈망울이 격하게 흔들렸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포포가 눈을 위로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지, 진짜야……?”

“구러엄!”

넌 내 말만 잘 들으면 돼, 여우야.

포포가 발길질을 멈추고 얌전해지더니, 혼자 무언가를 생각하고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이런 단순한 녀석.

“뽀뽀오, 까까, 머거.”

“뽀뽀요? 안 돼요, 아리 님!”

쟨 또 뭐라냐.

갑자기 자하가 기겁하며 나를 말라기 시작했다.

얘 왜 이래?

“저도 못 받았는데, 이런 근본도 모르는 여우한테!”

……뭔가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한 거 같은데.

인상을 찡그리고 자하를 바라보았지만 자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할 거면 저부터 해주세요!”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평생 그럴 일 없어, 자하야.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는 자하를 보고 이건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짜하.”

“네, 네?”

자하가 눈에 불을 키고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말에 대답했다.

“바버야.”

“아, 아리 님?”

그를 노려보자, 자하가 입을 벌리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얘 이르미, 뽀뽀야.”

내가 포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포포가 인상을 쓰고는 내게 고개를 홱, 돌렸다.

“뽀뽀 아니고, 포포야!”

그거나, 그거나.

포포나 뽀뽀나, 한 끗 차이일 뿐인데, 뭘 그리 예민하게 군담.

옆에서 길길이 날뛰는 여우가 좋아하는 과자를 내밀자 그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곧장 포포가 과자를 집어 들었다.

어휴, 이 단순한 녀석.

과자를 열심히 먹고 있는 포포를 보며 역시 얘는 어린아이라는 걸 확신했다.

백 년 묵은 여우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태어난 지 5년도 안 된 거 같은데.

어디서 거짓말을 해, 이 요망한 여우 녀석.

자하가 허탈한 표정으로 나와 포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짜하, 너 더 머거.”

자하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저런 알기 쉬운 녀석.

그렇게 우리 셋은 정자에 나란히 앉아 오순도순 과자를 먹고 있었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시끄럽던 놈들도 먹을 게 입에 들어가면 조용해진다고.

너무나도 평화롭다, 평화로워.

아까까지만 해도 싸우던 애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화롭게 나란히 과자나 먹고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은월이 그들에게 무어라 했는지 궁금해졌다.

“으널이, 머라 해써?”

아까부터 궁금했던 의문을 풀고자, 열심히 과자를 먹고 있는 두 신수를 보며 물었다.

“쿨럭.”

“켁, 켁.”

두 신수가 인상을 쓰며 헛기침을 해댔다.

뭐야, 얘네 왜 이래?

두 신수의 반응에 내 궁금증은 극에 달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둘을 바라보았다. 둘이 내 시선을 일부러 피하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 대었다.

“머라 해써?”

궁금해 죽겠다. 빨리 말해라, 이 신수들아.

인상을 찡그리며 둘을 바라보자 그들이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어, 음…….”

자하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재촉하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딱, 한 마디하고 저희 내동댕이치고 가셨어요.”

자하의 말에 포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싸울 거면 누구 한 명 죽을 때까지 하던가…….”

“아님 내가 도와주고.”

자하의 말에 포포가 덧붙이며 말했다. 은월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을 것을 생각하니, 둘이 조용해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긴 하다.

그때를 회상하던 자하와 포포는 고개를 저었다.

“친하게 지내자, 여우야.”

“잘 부탁한다, 스라소니야.”

그 당시를 보지 못한 나는 그저 둘이 눈물겨운 종전이라도 한 것 마냥 근엄하게 악수를 하는 두 신수를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 둘도 환상의 짝궁이 되지 않을까?

새끼 여우와 고양이의 눈물겨운 꼴값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쯧, 어린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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