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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8)화 (18/167)

18.

은월과의 수업은 그를 만난 다음 날부터 바로 시작되었다.

정자가 놓인 연못. 내가 자주 여노와 자하와 뛰어놀던 그곳에 나와 자하, 그리고 은월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기를 느끼는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지?”

그가 턱을 괴곤 내게 물었다. 몰라서 묻는 다기보단 아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자하 탓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기를 느낀다는 걸 자하가 알면 곤란하단 말이지…….

앞으로 더욱 감시가 심해질 게 분명하다. 안 그래도 요즘 자하가 맨날 졸졸 쫓아다녀서 얼마나 피곤한데!

나의 부정에 은월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것 치고는 어제 한번도 헤매지 않고 날 찾아오던데. 우연인가?”

흠칫. 그의 말이 비수처럼 내게 꽂혔다. 무어라 변명을 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거리고 있을 때, 그가 눈을 휘며 웃었다.

오묘한 회색빛 눈망울이 티끌 하나 없이 맑았다.

“감이 상당히 좋나 보네.”

그래, 그런 걸로 하자.

은월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는 내 부정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게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닌지. 천천히 수업을 시작했다.

은월은 꽤 능숙하게 나를 가르쳤다. 내 부정을 어영부영 넘어가 준 은월은 신수의 기를 느끼는 것부터 차근히 내게 알려 주었다.

왜 미호가 그를 추천했는지 그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가 차분하게 알려준 내용은 쉽고 빠르게 머릿속에 박혔다.

그의 가르침으로 인해 내가 어떤 원리로 힘을 쓰는지, 신력이 개방되었는지 천천히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 이해가 돼?”

“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은월이 옷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선물.”

그가 건넨 건 작은 사탕이었다. 오색빛깔이 나는 사탕은 꽤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그러고 보니 여노랑 자하도 내게 가끔 사탕을 주곤 했지만 내 입맛에 영 맞지는 않았다.

난 어른 입맛이라구!

게다가 은월이 주는 걸 내가 넙죽넙죽 받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

“머, 머야?”

내가 당황하며 묻자, 그가 눈을 접고 웃었다.

“남쪽 땅의 명물.”

남쪽 땅?

아, 어쩐지 오색빛깔 찬란한 게 나래의 날개 같아 보이기도 한다. 마치 봉황의 알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생각하니 저절로 손이 갈 뻔했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머거.”

팔짱을 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사탕 주면 넘어가는 그런 아이로 보이는 건가?

그렇다면 은월 너, 나를 한참 잘못 봤다, 이 새까만 호랑이 놈아!

“정말? 동쪽 땅의 사탕이랑은 차원이 다른데.”

……그래?

은월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민 손을 도로 가져가려 했다.

탁.

본능적으로 나의 작은 손이 은월의 손을 붙잡았다. 은월이 가져가려던 손을 멈추고 내게 다시 내밀었다.

“한 번 먹어봐.”

그의 말에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은월 손에 있는 사탕을 집어 들었다.

“어, 아, 아리 님!”

자하가 내 손에 든 사탕을 보며 황급히 나를 불렀다. 오색찬란한 빛깔의 아름다운 사탕이 곱게 빛나고 있었다.

“그거 먹으면 안 되는데!”

자하의 외침은 내가 사탕을 이미 입에 넣은 후였다.

뭐? 왜 안 되는데? 그런 건 진작 말해줘야 할 거 아니야!

이내 은월이 준 사탕 특유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되게 상큼한 맛의 사탕. 여태껏 먹던 사탕이랑은 확연하게 달랐다. 생기 넘치는 과일들의 맛이랄까?

내가 여태까지 먹었던 건 사탕이 아닌 건가? 이렇게 달라도 되는 거야?

이렇게 맛있는 사탕이 세상에 존재하는 줄 몰랐다.

“마, 마이떠!”

내가 눈을 빛내며 사탕에 감탄하자 자하의 귀가 축, 처졌다.

“그거 먹으면 이제 동쪽 땅의 사탕은 못 먹는다구요!”

뭐? 난 애초에 자주 먹지도 않았어!

뭐 때문에 말리나 했더니, 참 쓸데없는 이유였다.

사탕을 딱히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특히나 자하가 골라주는 사탕은 정말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맛없는 사탕만 귀신처럼 골라서 줄 수가 있지? 저것도 어찌 보면 능력이다, 능력.

자하의 어깨가 눈에 띄게 쳐졌다. 왜 저래?

“흑, 아리 님이 제가 준 사탕을 먹고 기뻐하실 때마다 얼마나 뿌듯했는데…….”

난 그런 기억 없다.

어디서 약을 팔아? 자하가 준 사탕은 정말로 맛이 없었다.

자하가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그의 중얼거림은 그에 그치지 않았다.

“아리 님이 제게 사탕을 달라고 애교를 부릴 때마다 심장이 멎을 뻔하기도 했는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그런 기억 없다.

이 정도면 자하는 혼자 다른 세상에서 놀다가 오는 거 아닐까? 혹시 모른다, 자하만의 또 다른 세상이 있을지도.

그런데 아무리 그 세상이라고 해도 자하한테 애교를 부리는 건 용납할 수가 없다.

“우끼지마!”

내가 자하를 보며 소리치자, 자하가 감격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흑, 아리 님, 앙탈을 부리시는 모습도 너무 귀여워요. 저 어떡하죠?”

아,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자하는 자하라는 것.

그래, 자하야……. 내가 널 요즘 너무 만만하게 본 거 같아.

자하에게 무슨 말을 해도 해석은 자하 몫에 달려 있단 걸 앞으로는 잊지 말자, 아리야.

“맛있지?”

은월이 턱을 괴고 반달 모양으로 접힌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가 준 사탕은 여태껏 먹었던 어느 것보다 맛있었다.

“마……이떠.”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은월이 괴던 턱을 풀었다.

“향과라고 해, 그 사탕.”

향과? 일단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사탕을 발견했어! 앞으로 여노랑 자하한테 갖다 달라고 시켜야겠다.

“어, 그런데 은월 님……. 저 사탕은 하루 이상 내버려 두면 사라지는 사탕이잖아요.”

앞으로 내 입을 즐겁게 해 줄 사탕을 찾아 매우 기뻐하고 있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뭐? 세상에 무슨 그런 사탕이 다 있어?

사실을 확인하려 놀란 토끼 눈으로 은월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은월 님은 청화관에 머무르고 계신 것이 아니셨나요?”

청화관? 그게 전에 은월이 묵는다던 곳의 명칭인가?

그렇다면 어제 나랑 만나고 나서 남쪽 땅을 갔다 왔다는 거야?

자하의 물음에 또다시 은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남쪽 땅까지 다녀오신 거예요?”

자하가 기겁하며 그에게 물었다. 은월은 평온한 얼굴로 자하를 바라보았다.

“어.”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급해서 어쩔 수 없었어.”

“……급하다고 동쪽 땅과 남쪽 땅을 짧은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는 신수는 존재하지 않는데요.”

“네 앞에 있네.”

“혹시 남쪽 땅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가요?”

자하의 물음에 은월이 팔짱을 끼고 편히 앉았다.

“거긴 언제나 생기는 곳이지. 서쪽 땅이나, 남쪽 땅이나.”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그렇게 급하게 가실 정도의 일이라면…….”

“모르는 게 좋아, 자하.”

은월이 자하에게서 시선을 옮겼다.

“많이…… 심각한 일인 건가요?”

“…….”

자하의 말에 은월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은월의 침묵에 자하가 무언의 위화감을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더 이상 그에게 묻는 걸 그만두었다.

은월이 연못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바라보았다.

“남쪽 땅은 어째 바람 잘 날이 없네.”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은월의 새까만 흑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나래 님의 역량 부족이죠, 뭐. 애초에 제대로 된 교육만 받았더라도…….”

“봉황이라고 백령처럼 천재인 건 아닌데 말이야.”

은월의 말투에 약간의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난 백령과 사화에게 나름대로 감사하고 있어. 둘은 적어도 일거리를 늘려주지는 않으니까.”

은월은 말을 마치고 연못에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나래라……. 흠, 그러고 보니 한번 놀러 온다고 했으면서 아직도 안 오네. 난 걔가 준 노란 장미 방에 아직 그대로 있는데.

자하의 말을 한 번 더 곱씹어 보았다. 제대로 교육을 못 받았다라…….

하긴, 지금 나래는 교육을 받으라 해도 안 받을 게 눈에 훤하다.

일전에 자하와 여노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는데, 이미 남쪽 땅 최고의 자리에 앉은 그녀의 자존심이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해 거부를 했다고.

참 손이 많이 가는 소녀구나. 그러니 은월이 이렇게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심각하게 고민하는 내게 은월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아까와 같은 오색빛깔 사탕, 향과가 그의 손에 있었다.

“더 먹을래?”

끄덕, 끄덕.

본능적으로 그의 손에 있는 사탕을 집어 들어 곧장 입에 넣었다.

분명 아까와 같은 사탕인데, 새로운 향이 입에 감돌았다. 이마저도 너무 맛있다.

“다라!”

아까랑 맛이 다르다고!

내가 눈을 빛내며 은월을 바라보자, 그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리 님, 원래 그 사탕은 그래요. 괜히 남쪽 땅의 명물이 아니랍니다.”

뭐야, 되게 신기하잖아?

이 사탕,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애착이 간다.

“이건 신기해?”

은월이 내게 물었다. 이런 질문 언젠가 받아본 적 있는 거 같은데…….

그래, 맞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신기해?”

이상한 도술인지 주술인지 술수인지 아무튼 그런 비스름한 걸로 날 속여놓고 내게 뻔뻔히도 물었었지, 이런 파렴치한 같은 녀석.

은월이 대답을 바라며 날 계속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는 오물오물 사탕을 빨면서 그의 시선을 받아냈다.

신기하긴 하다. 정말 신기하다. 일단 내 입맛에 딱 맞은 것부터 합격이다.

은월의 회색빛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은월의 눈이 완전히 접히며 그의 미소가 드러났다.

사탕이 내 입에서 완전히 녹아 사라져갈 때 즈음, 은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지.”

은월의 말이 떨어지고, 자하가 기지개를 켰다. 그의 뾰족한 귀가 부르르 떨렸다.

“하암. 고생하셨습니다, 은월 님.”

“어디 가.”

자하가 먼저 정자를 나서려 하자, 은월이 그를 불러 세웠다.

“네?”

자하가 무슨 일이냐는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궁 사찰을 할 거니까, 준비해.”

“……네?”

자하의 호박색 눈이 당혹함으로 물들어 갔다. 자하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털 한 올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은월 님. 오, 오늘부터 바로 감사를 시작하신다고요?”

“어. 왜?”

은월이 뭐가 문제냐는 듯 태평한 얼굴로 자하에게 되물었다. 자하의 표정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오늘은 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왜?”

“그야, 어제 남쪽 땅까지 다녀오셨으면 많이 피곤할 법도…….”

“난 멀쩡한데?”

은월은 말을 마치며 웃었지만 은월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하의 표정은 심각하게 안 좋아졌다. 자하의 짧은 꼬리가 빳빳이 세워졌다.

“저, 저는 아리 님을 보좌…….”

“제정신 박힌 신수면 나랑 백령이 같이 있는데 쳐들어올까?”

그의 물음에 여전히 자하는 일시 정지된 채로 은월을 바라보았다.

“자살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

은월의 물음에 자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저, 저는 아리 님을 방까지 안전하게 모셔야…….”

저렇게까지 벗어나려는 자하의 모습을 보니 어째 좀 안쓰럽기도 하다. 내가 좀 도와줄까?

은월이 고개를 돌리며 자하의 말을 받아쳤다.

“걱정 마. 마치고 백령이 온다던데.”

뭐? 백령이 온다고?

“아, 아리 님…….”

자하가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촉촉한 눈빛을 내게 보냈지만 내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짜하, 빠빠.”

내가 친절히 손을 흔들어 주자, 자하가 충격받은 듯한 얼굴을 했다.

어쩔 수 없어, 자하야. 이쯤 되면 운명이야, 받아들여.

“갈까?”

은월이 자하에게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자하가 터덜터덜 그의 뒤를 따랐다.

자하의 쳐진 귀와 짧은 꼬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하야, 견뎌라. 지금 너의 환상의 짝꿍인 아루는 온종일 지금 돌아다니고 있다고. 그럼, 그럼.

나는 그렇게 자하를 떠나보내고 백령과 여노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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