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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5)화 (15/167)

15.

“흑기가 나타났다면서?”

백령의 집무실 안에는 나를 포함해 여노와 자하, 백령이 일제히 앉아서 미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호의 곁에는 그녀의 측근인 마루가 서 있었다.

미호가 아름답고 고혹적인 보랏빛 눈동자를 빛내며 백령을 바라보았다.

이내 백령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백령의 답에 미호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움직이는데? 누군지를 모르니까 닥치는 대로 집합이라도 한 번 시켜야 하나?”

미호가 잔뜩 화난 어조로 말했다. 미호가 칭한 ‘누군지’는 네 땅의 주인 중 하나라는 걸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위압감에 나와 백령을 제외한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하필이면 내가 미호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아, 이런.

방금까지 화가 잔뜩 나 있던 미호는 온데간데없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뿌듯하게 나를 바라보는 미호가 백령의 위에 앉아 있는 날 자신의 품으로 가져갔다.

“미, 미오!”

“꺄. 어째, 가면 갈수록 넌 이리도 귀여우냐?”

미호가 자신의 볼을 내 볼에 비비적댔다.

부드러운 그녀의 뺨이 말랑말랑한 내 뺨과 맞닿았다.

“그런데 그 흑기들이 우리 귀여운 아리를 뭐 어쩌려고 했다고?”

미호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어조로 돌변했다.

언제부턴가, 미호도 나를 ‘우리’ 아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요새 부쩍 나를 ‘우리’라 칭하는 신수들이 늘었다.

이게 다 자하 때문이야!

“아리야, 걱정하지 마. 이 ‘언니’가 다 때려잡아 줄게.”

미호가 일부러 ‘언니’라는 단어에 힘을 빡, 주며 또박또박 말했다.

백령은 언니라는 단어에 할 말이 참 많아 보였지만, 굳이 그녀의 화를 긁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내버려 두었다.

……난 미호가 더 무섭다.

어차피 그때 그 흑기는 어떻게 나온 건지 모를 내 신력, 또는 구슬의 힘 때문에 날 건드리지 못했다.

“흐끼, 모태!”

“응?”

나의 서투른 말에 미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자하와 여노가 수긍하기 시작했다.

“그럼요, 흑기들한테서 아리 님이 절 구해주셨죠.”

“아리 님은 정말 대견하십니다. 역시 우리 아리 님이에요!”

‘이게 무슨 소리야?’라며 중얼거리던 미호는 여노와 자하에게 짧은 설명을 듣고 탄식을 내뱉으며 상황을 이해했다.

미호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의문을 품었다.

“흑기가 아리한테 손을 못 댔다고? ……벌써 구슬의 힘을 다룬다는 거야?”

미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자안이 작게 흔들리며 나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웅, 모태, 아리.”

“……응?”

또다시 미호가 어리둥절해하자 자하가 내 말의 해석을 도와주기 위해 옆으로 다가왔다.

“아직 구슬의 힘을 다루는 건 어색하시답니다.”

정확히는 ‘나도 내가 어떻게 쓴 건지도 모르고, 쓰는 방법도 모른다.’지만 뭐, 저 정도면 쓸 만은 하다. 어쨌든 의도만 전달되면 되니까!

자하의 해석에 언짢게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자, 미호가 놀란 눈으로 자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여우 귀가 빳빳하게 세워졌다.

“야, 너넨 이걸 어떻게 알아듣는 거야……?”

미호의 물음에 여노와 자하는 그저 나를 보며 헤실헤실 웃을 뿐이었다.

대답을 바라고 물어본 것은 아닌지, 미호는 그저 팔짱을 끼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어쨌거나 아리가 벌써 신력을 개방했다는 거지?”

미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인 나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건가?

이럴 땐, 설명을 해줄 만한 신수를 부르는 게 최고지.

“부우……, 짜하, 모라!”

“아아, 아리 님은 아직 모르시겠네요. 원래 아리 님보다 훨씬 큰 후에야 신수들이 신력을 개방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개방이라는 게 뭔데?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자하가 바보라는 것. 자하에게 물어본 나도 바보다, 바보.

내가 불만족스럽다는 듯 자하를 보자, 여노가 덧붙여 설명했다.

“신수들은 태어날 때 신력을 갖고 태어나지만, 개방, ……그러니까, 신력을 제어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신력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역시 여노야, 자하보다 설명을 훨씬 잘해!

여노의 설명에 만족스럽다는 의사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너, 또기!”

“칭찬 감사해요, 아리 님. 어린 나이에 이걸 알아들으시는 아리 님이야말로 대단하셔요. 똑똑이에요!”

자하가 여노를 부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자하가 고개를 돌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이놈아!

내가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고만 있자, 자하가 짧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리 님, 아리 님. 저는요?”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어떻게 내가 항상 말해주는 데도 자하는 모르는 거지?

“바버, 짜하!”

“흑. 아리 님한테 듣는 칭찬은 언제나 너무 감사합니다.”

저게 무슨 신박한 헛소리일까…….

……이쯤 되니 나 이제 얘한테 바보라고 하기 정말 무섭다.

자하의 모습에 미호가 한심하게 자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하가 누군가, 그는 미호의 시선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자하가 이 세계 최강이 아닐까?

“아무튼, 아리는 굉장히 빠르네.”

미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미호가 씨익, 하며 입꼬리를 올리고 웃자 모두가 경악하며 바라보았다.

미호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조금만 더 크면 교육도 받아야 하지 않겠어?”

미호가 백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백령이 미호의 시선에 귀찮다는 듯 턱을 괴었다.

교육이라니? 무슨 교육?

“또 그 얘기인가, 미호.”

“그럼! 아리가 신력을 스스로 사용하고 제어할 수 있으면 흑기들도 쉽게 접근 못 할걸?”

“교육쯤은 나도 충분히…….”

“백령, 너 누구 가르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천재가 누굴 가르쳐?”

미호의 말에 아무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미호 님, 그렇다면 제가……!”

자하가 손을 번쩍 들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미호가 싱긋, 웃었다. 그러자 자하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기각.”

“왜, 왜요?”

자하가 당황하며 묻자, 미호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리야, 자하가 뭐라고?”

미호의 물음에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이 열렸다.

“바버!”

나의 대답에 미호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재도 문제지만, 바보는 더 문제야. 그나마 아루인데……, 아루는 할 일이 많은 신수니까.”

“그, 그럴 수가!”

자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며 귀를 축 늘어뜨렸다.

‘누가 좋을까…….’라고 중얼거리며 고민하던 미호는 이내 손바닥을 마주쳤다.

“아, 우리 마루는 어때?”

“절대 싫습니다.”

자하가 경악하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지간히도 싫은가보다.

“그래? 그럼 하는 수 없지, 뭐. 은월을 불러 줄게.”

미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미호로 향했다.

“미호.”

“미호 님…….”

“은월…… 님이요?”

모두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은월이 대체 누구길래 저러는 걸까?

미호가 모두의 반응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다들 좋아하는 것 같아 다행이네.”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여노마저 표정이 심상치 않다. 대체 누구길래 모두 저런 표정을 하는 걸까?

어쨌든 모두의 반응을 보면 정상인은 아닐 거란 소리군.

“으너, 모라!”

은월이 대체 누군데! 왜 너희만 알고 있냐구!

“아리 님, 곧 아시게 되실 거예요. 미리 매를 맞을 필요는 없답니다.”

여노의 말에 호기심이 더욱 증폭되었다. 대체 누구길래 다들 저래?

“많이 궁금해요, 우리 아리?”

미호가 사랑스럽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며 말하자,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하다, 궁금해!

“흐음……, 아리한테 사법관은 너무 어려운 말이려나?”

“그렇죠, 아무래도……”

웃기지 마, 너희 다 날 뭐로 보는 거냐!

날 어린 애 취급하지 말라고! 물론 지금 몸은 아기긴 하지만!

잠깐, 그런데 사법관이라고? 그렇다면 꽤 높은 사람 아니야? 물론, 미호만큼은 아니겠지만.

“은월 님은 바랑 님과 반대의 의미로 껄끄러워요. 너무 성실하게 일하시니까 오히려 무섭다고요!”

“확실히 은월이 사법관이라 껄끄럽긴 하지.”

“맞아요, 게다가 동쪽 땅에 온 김에 감사라도 하실 것 같아서 무섭습니다. 벌써 피곤해져요.”

자하와 백령, 여노가 차례대로 말하고 마루가 그에 동감을 표했다.

그러자 미호가 특유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웃었다.

“응? 근데 나 이미 은월한테 말해 놓은 지 오래인걸? 포기해, 얘들아.”

뭐지, 이 여우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선택권은 없어, 이런 건가?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군.”

백령의 말에 미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지만, 교육하는 김에 겸사겸사 동쪽 땅 감사도 같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자하와 여노는 이미 은월이 오기라도 한 것처럼 해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린 죽을 거야…….”

“죽을 게 틀림없어요…….”

미호는 자하와 여노를 보며 뿌듯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다. 분명 미호인데 검은 기운이 가득해!

“그래도 백령 너한텐 좋은 거 아니야? 감사를 미리 알려주는 이 친절함, 다른 애들한텐 비밀이야.”

“어차피 켕기는 것도 없다.”

미호의 말에 백령이 칼같이 부정했다.

“뭐, 그거야 그렇지. 너도 참 신기하단 말이야, 바랑이 998번 걸릴 동안 한번을 안 걸리니까.”

뭐? 998번? 대체 뭘 한 거야, 똥개? 저 정도면 일부러 걸리는 수준 아니야?

그렇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바랑의 걸린 횟수가 폭로되었다. 하지만 모두 예상한 결과인지 아무도 그에 놀라거나 반발하는 이가 없었다.

똥개야, 좀 성실하게 살자.

똥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백령의 반이라도 닮아봐라.

“천이 곧 임박이네요.”

“어차피 다가올 미래였어, 그러게 좀 평소에 일 좀 열심히 하시지.”

여노와 자하는 이런 류의 훈수 아닌 훈수를 둘 뿐이었다.

“아리야, 넌 절대로 바랑처럼 크면 안 된다.”

미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우야, 미쳤어? 지금 나한테 누구를 갖다 대는 거야!

“우리 아리 님한테 불길한 똥개 얘기하지 마세요!”

자하가 미호의 말에 반박했다. 그럼, 그럼. 똥개는 진짜 아니다.

“지지 묻어요, 지지!”

“지지!”

맞아, 지지 묻어, 지지!

가끔 자하가 가뭄에 콩 나듯이 말을 참 잘할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바랑 욕을 할 때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자, 자하의 어깨가 승천했다.

그렇게 자하와 내가 바랑을 지지라고 부를 동안 아무도 반박을 하지 않았으며, 부정하는 이 또한 전혀 없었다.

좀 착하게 살자, 바랑아.

오래오래 사는 신수가 주위 평이 이래서 되겠니?

나중에 바랑을 혹여나 악몽처럼 만나거든, 꼭 이 말을 전해줘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본론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은월이 대체 누군데!

다행히 작은 대화가 오가고, 이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뭐, 은월정도면 아리 교육자로서는 손색이 없지 않아? 사법관이라 직급에 구애도 받지 않고, 공과 사는 철저한 애니까.”

미호의 말에 모두가 수긍 아닌 수긍을 했다. 그렇게 나만 모르는 은월이라는 신수가 내 교육자가 되었다.

언제쯤 올까? 모두의 반응을 보니 정말로 궁금해 미치겠다.

얼른 크던가, 해야지. 나도 답답해서 이 생활 못 해 먹겠다.

“그럼, 다음 보고를 기다릴게. 흑기들이 이번에 대량으로 죽어 나갔으니, 당분간은 사리고 있을 거야. 그때까지 아리가 신력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미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호가 바라보는 눈빛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대체, 왜 날 저런 눈으로 보는 걸까?

그렇게 미호에 대해서 속으로 작은 의문을 하나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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