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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4)화 (14/167)

14.

현재 여노와 자하는 날 앞에 두고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는 중이다.

어느 정도 걸음마를 능숙히 하게 되자, 여노와 자하는 나를 이따금 방 밖으로 데리고 놀아줬다.

내가 보기엔 내가 그들을 놀아주는 거지만.

백령의 궁, 한쪽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기 적합한 휴식처가 있었다. 아름다운 정자가 연못 중앙에 놓여 있었고, 맑은 물의 기운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곳이었다.

작은 공이 또르르, 하면서 내 앞으로 굴러왔다. 내 앞에 있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렸다.

그러니까, 지금 이걸 나보고 주우라는 거지?

내가 똥개도 아니고! 이런 걸 왜 해!

작은 공에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고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여노와 자하의 탄식이 들려왔다.

“자하 님, 아리 님이 공놀이를 별로 안 좋아하시는 거 아닐까요?”

“마짜!”

맞아, 여노야! 내가 이 정신으로 똥개나 하는 공놀이를 해야겠니?

나의 의사 표현에 자하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그의 초롱초롱하던 눈망울이 실망으로 물들어졌다.

“그렇지만…… 아리 님이 공놀이를 하시다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우실까?”

말을 마치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자하의 귀가 보란 듯이 축, 하고 쳐졌다.

수작 부리지 마! 난 자하, 너랑 오순도순 공 같은 걸 주고받을 생각 없다!

여노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지만, 자하는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는지, 열심히 내 쪽으로 공을 굴리고 있었다.

포기라는 걸 좀 알아라, 이 고양이야!

“뿌우!”

내가 인상을 구길 대로 구기자, 자하의 꼬리마저 축, 처졌다. 저거, 저거 또 시무룩한 척하는 거 봐! 아주 고수야, 고수.

잠깐만.

공놀이만 하면 되는 거지, 꼭 자하가 주는 공을 받을 필욘 없잖아?

자하가 이번에도 공을 내 쪽으로 굴렸다.

탁.

작은 공은 나를 위해 자하가 직접 만들기라도 한 건지, 아기라 힘이 약한 나도 가볍게 들 수 있을 정도의 무게였다.

“헉, 아리 님이……, 아리 님이!”

그래, 아리 님이 받아줬다. 됐냐?

자하가 어서 굴려달라는 듯 짧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짜!”

일부러 공을 이상한 쪽으로 던졌다. 그에 자하가 급하게 공을 주우러 갔다.

“아리 님! 여기요!”

어느새 공을 주워 온 자하가 내게 다시 공을 굴렸다.

그리고 이번엔 정 반대편으로 공을 굴렸다.

“앗, 아리 님! 제가 가서 얼른 주워 올게요!”

아니나 다를까, 열심히 자하가 공을 잡으러 쫓아갔다.

몇 번을 반복하자, 여노가 열심히 공을 주워 다니는 자하를 보며 당황했다.

“저…… 자하 님, 원래 목적은 이런 게 아니지 않나요?”

“……그러게.”

자하야, 공 더 던져줄게!

자하를 향해 활짝 웃자, 자하가 뿌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리 님이 좋으시다면, 난 그걸로 됐어! 헤헤.”

그래, 좋은 자세다, 고양아.

자하의 말에 여노가 못 말리겠단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여노의 아름다운 금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여노의 풀빛 눈망울과 눈이 마주쳤다. 여노는 아차차, 하며 내게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나래 님한테 저번에 보낸 초대장 말이에요…….”

아, 맞다. 요새 자하랑 놀아주느라 바빠서 새까맣게 잊고 있었네.

저번에 나래를 초대하기로 마음먹고는, 바로 여노한테 나래, 나래하고 노래를 불렀더니 용케 알아챈 여노가 자하를 통해 나래를 정식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을 보냈었다.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여노의 말에 집중했다.

“웅, 웅!”

여노가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다음 달 즈음에, 시간이 빌 때 온다고 하셨어요.”

“지짜?”

“네, 그럼요!”

여노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귀여운 아기 새 같으니라고. 이 언니가 많은 걸 가르쳐 주마!

“에? 나래 님이 초대장을 수락했다고?”

자하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입을 떡, 하고 벌렸다. 그 모습이 마치 물고기를 놓친 고양이 같았다.

자하의 귀가 쫑긋, 하고 세워졌다.

“그럼 나랑 못 놀잖아!”

네가 애냐!!!

아무리 생각해도 자하는 어린 애임이 틀림없다, 저, 봐. 저거, 저거.

“나래 님이 오시려면 아직 멀었는데요, 뭐.”

“그건 그렇지만…….”

“어차피 아리 님 호위무사신 자하 님은 꼭 붙어있을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러다가 나래 님이랑만 앞으로 논다고 하면 어떡해!”

별걸 다 걱정한다, 이놈아!

보다 못한 내가 자하의 옷자락을 쥐고 그를 불러 세웠다.

“짜하, 바버!”

“아리 님…….”

자하가 갑자기 날 들어 올리더니 얼굴을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얘 진짜 왜 이래? 너 비교적 정상인, 아니, 정상적인 신수라고 생각한 거 철회야!

“아리 님, 저보고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라는 말씀이시군요.”

……내가 언젠가 진짜 자하 귓구멍을 파고 만다.

저게 어떻게 저렇게 들리지? 이쯤 되면 이것도 재주다, 재주.

나 정말 얘랑 계속 다녀야 해? 너무 끔찍한데?

가만히 보고 있던 여노가 자하를 향해 무언을 말하려는 듯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 여노야. 네가 좀 말해보련. 내 의증을 꼭 전해줘!

“자하 님은 정말로 아리 님을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나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여노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그거 아니라고, 여노야!

내가 여노를 노려보자, 여노가 활짝 웃으며 내 눈빛에 답했다.

“저도 우리 귀여운 아리 님 좋아요! 걱정하지 마셔요!”

……이런 말귀 못 알아먹는 신수들 같으니라고.

너희, 다 괘씸죄야!

그렇게 둘을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꼭 누군가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 그런데 그 기운이 약간 불길했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이내 불길한 기운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기분 탓인가?

애써 기분 탓으로 치부해 버리고 싶어도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누구냐.”

그때였다. 자하가 기운이 사라진 쪽으로 웃음기가 가신 얼굴을 틀었다. 이내 자하의 몸이 스라소니로 변했다.

자하가 멀어져 가는 기운을 쫓았다. 여노는 나를 안아 올리고 감싸 주었다.

“아리 님, 꽉 잡아요.”

여노가 나를 안고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여노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내 백령의 집무실에 도착한 뒤에야, 여노는 안심하고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백령의 집무실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백령 님이…… 어딜 가신 거죠?”

여노가 떨리는 동공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백령의 모습은커녕,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아까와는 다른 두 개의 검은 기운이 느껴졌다.

“여너!”

나의 외침에 여노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런 강아지 신수한테 구슬을 맡겨 놓다니, 백령의 자만심은 여전하군.”

우리의 뒤에 바짝 붙은 기운이 느껴졌다. 여노의 몸이 이내 검은 깃털들에 빨려 들어갔다. 여노가 마지막 힘으로 날 밖으로 내보냈다.

고개를 들어 검은 기운의 정체들을 보았다. 한쪽은 완전히 검은 기운으로 뒤덮인 흑기였고, 다른 한쪽은 어느 정도 이성이 있어 보이는 흑기였다.

저번에 바랑이 말했던 흑기에 대해서 생각이 났다.

“완전히 타락하지 않은 흑기가 있었어. 정신도 멀쩡해 보였어.”

바랑의 말이 사실이었다. 완전히 타락하지 않은, 정신이 박혀 있는 흑기가 검은 깃털을 날리며 내게 걸어왔다.

“흐음…… 분명 걔 말에 따르면, 백령의 아이랬는데.”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여노를 저 자식한테서 구해야 해!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내 안에 있는 구슬의 힘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내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식이 없었다.

그가 내게 손을 뻗을 때였다. 반사적으로 무언의 힘이 나를 감싸더니, 주위에 보랏빛이 감돌았다.

“뭐야, 벌써 신력을 제어하잖아?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나의 빛이 여노를 빨아들인 깃털로 향했다. 이내 깃털들이 사라지고, 안에 있던 여노가 정신을 차렸다.

“이 꼬맹이, 들은 거랑 전혀 다른데?”

이내 그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 눈치 빠른 호랑이 녀석.”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괴물 같은 놈. 그 많은 걸 언제 다 죽였대.”

그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기운을 감췄다.

그가 사라지고 남은 흑기가 정신을 못 차리고 내게로 다가왔다.

“구슬…… 구슬을…….”

“아리 님!”

여노가 내게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닿기에는 다소 먼 거리였다.

이내 익숙한 아름다운 푸른 빛이 반짝이고, 흑기가 반으로 갈라져 빛 속에서 사라졌다.

빛이 사그라지고, 푸른 빛을 내뿜는 검을 든 백령이 서 있었다.

“다들 죽고 싶어 안달 났군.”

백령이 검을 집어넣었다. 이내 백령을 따라 들어온 아루가 지쳐 쓰러지듯 자리에 앉았다.

“아, 아루 님!”

여노의 외침에 아루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곤 정말 힘든 건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벌레들은 대낮에 대량으로 쳐들어오고 지랄이야!!!”

아루가 짜증 난다는 듯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여노가 놀란 눈으로 아루를 바라보았다.

“대량으로요?”

“그래, 왜인지 영문을 모르겠어. 흑기들은 원래 자아가 없어서 이렇게 단체로 쳐들어온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는데!”

여노가 인상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했다.

“백령 님이 보호하고 있는데도 쳐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대체 누굴까요?”

그때, 누군가가 백령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네 땅의 주인 중 한 명이 관여하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아까 우리를 지켜보던 기운을 쫓아갔다 돌아온 자하였다.

“자, 자하 님! 어쩌다가……!”

“자하!”

아루와 여노가 자하를 보며 기겁을 했다. 자하의 한쪽 팔에는 심각한 치명상을 입은 듯, 피가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짜하…….”

“별거 아니에요, 아리 님.”

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자하가 날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흑기를 쫓아가는데, 누군가가 관여했어. 나한테 바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존재가.”

여노가 자하의 팔에서 떨어지는 피를 닦아내었다. 자하가 쓰라린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만난 흑기는 분명 자아가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여너!”

“네, 아리 님?”

여노가 자하를 치료해주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해써, 말!”

“네?”

“해써! 흐끼!”

여노가 나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 기억이 떠올랐는지 눈을 똥그랗게 떴다.

“맞아요, 아리 님! 흑기가 분명 말했어요. 찰나의 순간이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 저를 보고 강아지 신수라고 했어요!”

여노의 말에 모두가 일제히 나와 여노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야?”

“네!”

아루의 물음에 여노가 확실하다는 듯, 분명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루.”

백령이 아루를 불렀다. 아루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백령을 따라 나갔다.

뭐야, 둘이 어디 가!

나도 갈래, 나도!

백령을 따라가려던 내 움직임은 어느 한 고양이의 말에 멈추게 되었다.

“그런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내가 아리 님을 지키지 못했다니…….”

자하의 귀가 축, 처져 있었다. 비 맞은 고양이처럼 처져 있는 귀가 안쓰러웠다.

어휴, 저런 바보 자하!

백령을 따라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자하에게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다치지 않은 다른 팔에 매달리며 자하를 노려보았다.

“아, 아리 님?”

자하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자, 내 입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갔다.

“바버, 짜하!”

흥,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지, 뭐!

고개를 돌려 자하가 다친 팔에 가까이 가져갔다.

“호오!”

흥, 인심 썼다. 내 호나 받고 빨리 나아라, 자하!

“아, 아리 님…….”

자하가 감동한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그럼 감사해야지. 내가 너한테 호를 해줬는걸?

“아리 님은 천재임이 틀림없어. ‘호오’를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하시다니!”

아니, 또 이상한 길로 새지 말라고!

내가 노려보자, 자하가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아리 님, 저 이제 하나도 안 아파요!”

거짓말하지 마!

자하의 뻔한 거짓말에 여노가 자하의 다친 팔을 꾹, 눌렀다.

“정말 안 아파요, 자하 님?”

“아악! 여노, 너!”

자하가 화난 고양이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는 꼴에, 저절로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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