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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3)화 (13/167)

13.

이번에도 다가오는 바랑을 자하가 막아섰다. 그러더니. 다리 사이를 벌리고 나와 바랑의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

“바랑 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아리 님한테 이 정도 거리 이내로는 접근금지입니다.”

“그런 게 어딨어!”

자하의 말에 바랑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도 굴하지 않고, 자하는 팔짱을 끼고 완고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이구, 우리 자하 잘한다.

“뭐 어때서 그래? 닳는 것도 아닌데!”

바랑의 말에 아루와 자하의 표정이 동시에 구겨졌다. 또한, 둘이 표정이 구겨짐과 동시에 표범과 고양이의 입이 함께 열렸다.

“닳습니다.”

“어딜 넘봐요?”

살벌한 자하와 아루의 말에 바랑의 늑대 귀가 축, 처졌다.

“……너희 둘 다, 너무하다.”

슬퍼하는 바랑을 보니 마음이 아프기는커녕 아루와 자하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흠흠, 역시 얘네들은 내 편이란 말이야.

바랑이 축 처진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저러니까 정말 똥개 같다. 아니, 진짜 똥개다.

“나도 똥개말고…… 이름으로 불려보고 싶어.”

바랑의 말에 자하와 아루가 코웃음을 치며 그를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불려 봤는데.”

“나도.”

심지어 옆에 있던 이랑까지 활짝 웃으며 바랑의 속을 긁었다.

“삼촌, 나도 불려 봤어.”

이랑의 말에 바랑의 귀가 쫑긋, 하고 세워졌다.

“뭐어? 네가 언제?!”

바랑이 소리를 치자, 이랑이 귀를 내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소리가 너무 크잖아, 예쁜 아리 놀란단 말이야.”

이랑의 말에 바랑이 헙, 하고 입을 막았다. 그를 본 이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니깐 삼촌은 아리한테 맨날 똥개라는 소리를 듣는 거야.”

“너, 너! 조금 컸다고 삼촌한테 그런 심한 말을!”

바랑이 적잖이 충격받은 듯, 경악한 표정을 하고 이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이랑은 능청스럽게 자하와 아루를 바라보았다.

“내 말이 사실인걸? 그치, 얘들아?”

이랑의 말에 자하와 아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랑 녀석, 말로 조곤조곤 두들겨 패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야.

고개를 끄덕이던 아루의 눈빛이 한순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이랑 님, 아무리 그러셔도 아리 님은 절대 안 됩니다.”

아루의 말에 이랑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너, 너! 그런 흑심을 품고 있었다니!

“……안 돼?”

어림도 없어, 이 작은 똥개 녀석!

“어림도 없습니다.”

자하 또한 아루를 따라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정말 둘이 이럴 때만 보면 환상의 짝꿍인데…….

세상에 어느 누가 지금 바랑과 이랑을 향해 한 마음 한뜻으로 으르렁거리는 저 두 동물을 맨날 티격태격하는 원수 사이라고 볼까?

으르렁대는 아루와 자하에 바랑과 이랑의 귀가 함께 처져 있었다.

“쳇, 그래도 오늘 아리 보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목적은 달성했다.”

“응, 응. 삼촌, 우리 그러고 보니 쫓겨날 줄 알았는데, 안 쫓겨났네.”

둘이 그렇게 서로 위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루가 갑자기 둘의 위안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문을 천천히 열고 두 똥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굉장히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손님?”

아루의 물음에 자하가 똥개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가십시오. 두 번 다시는 뵐 일 없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바랑이 둘의 갑작스러운 인사에 적잖게 당황하며 둘을 노려보았다.

“야, 이 나쁜 놈들아! 아직 안 가!”

아쉽다.

아쉬움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뭘 저리 오래 머무른담. 똥개라 집이 없나?

“하암.”

하품이 절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낮잠을 한 번도 못 잤네. 쓸데없이 똥개들 만나러 와서…….

“칫.”

입을 툭 내밀고 바랑과 이랑을 노려보았다.

“……왜?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아리야.”

제 발 저린 바랑의 말에 고개를 홱, 돌려서 아루의 품에 안겼다.

아루야, 나 너무 졸려.

“아리 님이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아루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루의 자상한 손길에 잠이 절로 쏟아질 것 같았지만, 저런 똥개 앞에서 자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애써 졸음을 참아보았다.

“흐음……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해.”

바랑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지 않아, 백령?”

바랑의 말에 백령이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무엇을 말하는 거지?”

“구슬의 힘을 이런 작은 몸으로 담다니 말이야.”

백령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고, 바랑 또한 더는 백령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네 땅의 주인들도 구슬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인데, 이 작은 몸으로 그걸 받아들이다니…….”

“그게 그렇게 의아할 일인가요?”

자하가 그에게 무심하게 답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저 눈빛은 보면 볼수록 꿈에 나타날까 봐 두렵다.

“우리 아리 님인걸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우리 아리 님은 이 세계 최강입니다.”

그건 나도 안다. 근데 너 자꾸 은근슬쩍 ‘우리’라고 한다?

자하의 대답에 바랑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긴, 그건 그래. 느껴지는 신력이 만만치 않거든.”

이내 그가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굉장히 묘했다. 작게 흔들리는 동공은 무엇을 암시하는지 나조차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누군가에겐 두려울 정도로 말이야.”

바랑의 말에 방 안에 적막감이 들 정도로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백령은 여전히 쌓여 있는 일들에 눈을 떼지 않았지만, 그가 꽤 고뇌하고 있다는 것쯤은 훤히 느껴졌다.

바랑이 날 보고 다시 환히 웃었다.

“근데 넌 진짜 귀엽다. 진짜 서쪽 땅으로 안 올래?”

이게 몇 번째 구애지? 이제 세기도 지친다, 지쳐.

“우…….”

나의 소리에 바랑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우끼…….”

“응? 우끼?”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바랑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끼지마, 또옹깨!”

나의 말에 모두가 나에게 집중했다.

“……아리 님.”

자하가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바랑한테 이런 말 하면 안 돼?

자하가 눈물을 글썽인다. 잠깐, 이거 어디선가 익숙한 풍경인데? 서얼마?

“어디서 그런 못된 말을 배웠어요?!”

내가 생각한 게 아니었다…….

뭐지, 이 씁쓸한 아쉬움은? 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자하가 처음으로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칭찬을 하지 않았…….

“물론, 바랑 님한테 하신 말씀은 매우 지당하신 말씀이라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뭐, 인마?”

바랑이 자하의 말에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랑을 무시하고 자하는 계속 나를 향해 있었다.

“물론, 아리 님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도 너무나 어여쁘시고 매우 귀여우시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우시지만…….”

서론이 너무 길다, 자하야.

이후에도 계속해서 길어지는 서론에 멍해져 가고 있을 때 즈음, 드디어 결론이 나왔다.

“그런 못된 말을 배우시다니, 대체 누가 아리 님 앞에서 그런 말을 쓴 거야!”

갑자기 주위를 둘러본 자하가 매섭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건 진짜 아리 님 앞에서 저런 못된 말을 쓴 놈 잘못이야!”

너요.

네가 너의 죄를 알렸다.

“너잖아!”

자하의 바보 같은 절규에 아루가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답했다.

아루야, 너도요.

너도 너의 죄를 알렸다.

둘이 다시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너잖아!”

“이건 또 무슨 헛소리래? 너잖아!”

그렇게 둘이 으르렁거리며 눈싸움을 시행하고 있자, 더욱더 피곤해지는 느낌에 내가 결론을 내려 주기로 했다.

“짜하, 해써!”

나의 말에 자하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봐, 이 고양아.”

넌 또 뭘 잘했다고 자하한테 그래!

“아루, 너더 해써.”

나의 말에 둘 다 표정이 시무룩해지더니,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리 님.”

그들의 사과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곤, 만족스럽다는 듯 환히 웃어주었다. 그러자, 언제 그랬는지 둘이 다시 기운이 솟아났다.

두 명의 행동을 유심히 보던 바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백령을 바라보았다.

“얘네,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냐?”

“신경 쓰지 마라.”

백령의 단호한 대답에 바랑이 입맛을 다시며 다시금 둘을 바라보았다.

“정말 놀랄 노 자란 말이야.”

“아리가 예뻐서 그래.”

바랑의 말에 옆에 있던 이랑이 답했다.

이랑이 참, 말을 예쁘게 하긴 하지만, 그렇대도, 난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이랑의 말에 무언의 위기의식이라도 느낀 건지, 아루와 자하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아리 님, 사실은 이랑 님 같은 분들이 진짜 속내가 시꺼먼 똥개, 아니, 신수랍니다. 그렇지, 아루?”

자하의 말에 아루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럼요, 저런 남자들을 정말 격하게 조심해야 해요. 우리 아리 님은 워낙 똑똑하시고 아름다우시니까 원래 저런 놈들이 자꾸 들이대는 거랍니다.”

나 아직 아기야, 이 자식들아! 이상한 거 세뇌 교육 하지 마!

아루와 자하의 말에 이랑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아루와 자하를 노려보았다.

“너무하네, 진짜.”

이랑이 둘을 향해 그만하라 일렀지만 둘은 결국 30분가량 날 붙잡아놓고 옆에서 세뇌를 시켰다.

피곤하다, 피곤해!

결국, 듣다 지친 내가 둘을 향해 노려보고 나서야 그들이 멈추었다.

바랑이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맞다.”

그의 소리에 방 안에 있던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여기 진짜 온 이유를 잊고 있었네.”

“그것참 반가운 소식이네요. 여태까지 잊고 있던 바랑 님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아루가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바랑이 얼떨떨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새끼 새가 전해달라고 한 물건이 있었어.”

새끼 새라면…… 나래?

“나래 님이요?”

아루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그렇게까지 구슬이 나한테 온 게 불만인 아이가, 전할 게 있다고?

바랑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아루가 가장 먼저 안전한지 확인하려는 듯 천천히 상자 뚜껑을 열어 보았다.

뚜껑이 천천히 열리고, 안에 있는 물건의 정체가 드러났다.

“장미……?”

안에 있었던 것은 보석으로 세공된 노란 빛의 장미였다.

“노란 장미라면…….”

바랑이 쿡, 하고 작은 실소를 터트렸다.

“질투를 뜻하기도 하고, 부정을 뜻하기도 하지.”

……진짜 징하다, 징해.

“쪽지도 있는데요?”

자하의 말에 노란 장미 밑에 있는 쪽지를 아루가 열어 보았다.

“난 널 아직 인정할 순 없다. 하지만 앞으로 잘 지내보……자?”

이쯤 되면 나래가 귀여워 보였다. 그래, 이 정도면 어린아이의 투정이지. 원하는 걸 얻지 못한 어린아이의 작은 질투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난 참 나래가 딱하기도 하고, 마음에 들기도 했다.

어린아이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도 성숙한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 아니겠어?

새로운 작은 목표를 하나 세운 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더 크고, 말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면 나래를 한 번 초대해 보겠다고!

아쉬운 쪽이 만나러 와야지, 그럼 그럼!

좀 더 인생의 선배로서 많은 조언을 해줄게, 나래야!

그렇게 나 혼자 작은 목표를 정하고 뿌듯해할 동안, 때를 놓치지 않는 이들이 있었으니…….

“자, 바랑 님, 이랑 님.”

“응?”

자하가 바랑을 불렀다. 이내 자하가 또다시 문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용건이 끝났으면 이만.”

자하를 따라 아루도 바랑에게 인사를 했다.

“함께해서 끔찍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야, 이 나쁜 놈들아!”

이번엔 진짜 바랑을 보내고 싶은 건지, 자하가 바랑을 질질 끌고 나갔다. 나를 안은 아루 또한 한 손으로 자하를 도왔다.

“야, 나 이대론 안 가! 아리야, 아리야?”

그가 격렬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 얼른 이 똥개들을 보내고 여노 품에서 쉬고 싶다.

“똔깨, 빠빠!”

한쪽 손을 들어 인사를 해줬다. 바랑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자하의 손에 질질 끌려나갔고, 이랑도 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이 악마들아!”

물론, 바랑은 나가면서 악바리를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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