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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1)화 (1/167)

1.

인간들은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하고도 아름다운 땅. 그곳은 ‘신국’이라 불리는 신수들의 땅이었다.

신수들은 인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와 각기 다른 신력과 능력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신국의 신수들 안에서도 ‘구슬’의 선택을 받은 자가 절대적인 힘을 얻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신국의 질서가, 신수들 사이에서 질서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네 땅으로 나눠진 신국을 통치하는 지도자들이 생겼고, 그들을 네 땅의 주인이라 불렀다.

그리고 지금 이곳, 인간들의 세상과 신국의 경계. 중앙 숲. 그곳에는 또 다른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

“우…… 으아아아앙!”

“시끄럽군.”

근엄하게 내 목덜미를 물고 있는 호랑이의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 흘러내렸다.

호랑이한테 물려가고 있는데 어느 누가 조용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난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태어난 순간의 기억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나는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를 물고 있는 근엄한 호랑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어쩌다 이런 호랑이한테 물려가게 됐더라……?

기억을 차근히 돌아보았다.

전생엔 참 억울하게 죽었다. 영문을 모른 채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때의 기억이 점차 흐려질 때 즈음이었다. 따뜻한 빛에 감싸져, 다시 시작된 생에 눈을 떴다.

여기가 무얼 하는 곳인지,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만은 알겠다.

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게 되면 처음 보게 되는 풍경은 무엇일까?

나를 낳은 어머니라던가, 산파라던가 그래, 아니면 아버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 내가 보게 된 풍경은 어두운 밤하늘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될만한 건 밤하늘의 별이 참 예쁘다는 정도.

안 그래도 작은 고개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휘이잉.’

잔혹한 바람 소리만이 귓가를 간지럽힐 뿐이었다. 주위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그래, 이제 그만 인정하자. 난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듯하다.

‘진짜 태어나자마자 어디다 말도 못 하고 개서럽네.’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곧이어 갓 태어난 나는 우렁찬 목소리를 지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으…… 으아아앙!”

나조차도 말릴 수 없는,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었다. 숲속에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데 그럴만하지. 서러워 죽겠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다니. 이런 생이 어디 있어?

너무 무서웠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계속해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 전생의 기억은 흐려져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내 생보단 훨씬 나을 것 같다.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인 것 같지는 않고, 짐승이나 귀신일 것 같다.

‘짐승이어도 꺼지고, 귀신이어도 꺼져라.’

속으로 울면서 되뇐 말이었다.

크르릉.

산짐승들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여느 때보다 선명한 짐승들의 소리는 나를 두려움에 몰아넣기 충분했다.

어떻게든 살고 싶어…….

작은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려 애썼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사리 되는 게 아니었다.

짐승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누가 좀…….

이내 무언가가 빠르게 튀어나와 밤하늘을 향해 있던 나의 시야를 가렸다.

“인간 아이……?”

놀라 자빠질 뻔했다. 웬 호랑이가 내 위에 떡하니 서서 날 내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호랑이는 그렇게 한동안 나를 계속 쳐다보았다. 튀어나왔던 짐승들은 어디로 간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 호랑이를 보고 도망간 거 아닐까 싶다.

백색 호랑이의 등장에 나조차 너무 놀라 그 당시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정신 차려보니 이렇게 물려가고 있다. 다시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호랑이의 뱃속? 저승? 황천?

누군가가 그랬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진짜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는 거 맞……나?

나 같은 갓 태어난 아이도 살 수 있는 거 맞겠죠, 누군가 씨?

여전히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눈으로 호랑이를 잠시간 쳐다보았다.

빠른 속도로 날 물고 달려가는 호랑이에게 자비란 없어 보였다.

유심히 보게 된 호랑이는 푸른빛을 띠는 백호였다. 맑고 푸른 눈은 아름다웠지만 차갑고 잔혹해 보이기도 했다.

달빛을 받은 호랑이의 털과 눈이 빛을 받으며 흩날렸다. 내가 지금 호랑이한테 물려가고 있는 신세만 아니었다면 넋 놓고 그의 아름다움에 반해 감탄했겠지만 지금의 내겐 그럴 여유가 없다.

어떻게 해야 도망갈 수 있을까? 도망간다고 내가 살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호랑이한테 이대로 물려가서 죽느냐, 무언가라도 시도해보고 죽느냐.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이대로 가만히 먹혀 죽는 것보단 그래도 뭐라도 해보고 죽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난 젖도 못 먹고 버려진 듯하지만, 어쨌거나 젖 먹던 힘까지 짜내 호랑이 입을 마구 때렸다.

“뭐 하는…….”

솜방망이 같은 내 주먹에 호랑이가 날 놓칠 리 없다. 아기 손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어?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간다. 지금 휘두르는 것도 기적 아니야?

하지만 내 우렁찬 목소리가 합해지면 말은 달라지지.

그리고 내 목소리가 우렁차다는 것은 다행히 아까 깨달은 사실이었다.

“우아아아앙!!!”

나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귀가 따가운지 근엄한 호랑이한테도 빈틈이 생겼다.

‘이때다!’

다시 한번 호랑이의 입가를 두들겨 팼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다친 듯한 상처 부위에 자그마한 손이 닿았다.

“이런.”

호랑이의 입이 벌어지고, 나는 그대로 호랑이에게서 벗어났다. 그런데 작은 문제점이 하나 생겼다.

좀…… 아니, 많이 큰일 난 거 같다.

호랑이한테서 벗어날 궁리만 하느라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주위 풍경조차 보지 못했다.

그리고 호랑이의 상처를 가격한 그 순간은 호랑이가 절벽에서 아래로 가기 위해 뛰어내리던 때였고, 호랑이에게서 풀려난 나는 그대로 수직 낙하하는 중이었다.

“우……아아앙!”

“……귀찮게 하는군.”

떨어지면서 천천히 시야가 흐려졌다. 완전히 시야가 흐려지기 전, 호랑이가 아닌 웬 남자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

꿈을 꿨다. 아주 슬프고, 씁쓸한 꿈이었다. 어떤 한 남자가 쓰러진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하고, 그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다음 생엔……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행복하기를.”

남자에겐 미안하지만 난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고, 이번 생은 그른 거 같다. 다음 생을 노리던가 해야지.

꿈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눈을 뜨면 호랑이의 뱃속일까 무서워 쉽사리 눈을 뜰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눈을 계속 감고 있는 게 힘에 겨워 눈이 번쩍 떠졌다.

뭐지? 이 안락함은?

이제야 나는 아름다운 수가 놓인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비단 이불 위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내 주위는 고요했고 편안했다.

설마 호랑이 뱃속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면, 난 아직 살아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뭐 어찌 되었건 난 살아 있는 거고, 이불은 매우 만족스러울 정도로 푹신했다.

작은 손을 줬다 폈다.

……작아!

아직도 내가 아기인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말랑말랑하고 작은 손은 부드럽기까지 했다. 이불에 손을 비비적거렸다.

……재밌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이불의 폭신폭신함을 느끼는 것도, 손을 비비적대며 줬다 폈다 하는 것마저 너무 재미있었다. 새로운 재미에 눈을 뜬 기분이랄까.

내가 미쳤나 보다.

열심히 손을 비비적대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낯선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열어.”

“미, 미호 님…….”

“안에 있는 거, 동쪽 땅의 기운이 아닌데. 누구야?”

“백령 님께서 직접 주술을 걸어놓은지라……, 하등한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웬 신분이 높은 것 같은 여자와 하인으로 추정되는 자들의 목소리였다. 미호라는 여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 긴장한 나는 일부러 숨을 죽였다.

“괜찮아. 백령의 주술 따위, 깨부수면 그만이니까. 비켜.”

“미, 미호 님…….”

“비키라 했을 텐데. 감히 내 앞을 막는 것이냐?”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문 너머로 듣기만 해도 숨이 컥하고 막히는 느낌이었다.

혹시나 문이 열릴까, 손에 땀을 쥐고 제발 문이 열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절대자보다 주인이라는 것이냐? 힘으로 여는 수밖에 없겠네.”

여자가 차가운 어조로 말을 했다. 안 봐도 앞에 있는 하인들이 덜덜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일어날 것 같은 적막감을 깬 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남자의 음성이었다.

“그만해라, 미호.”

그래, 이 목소리……. 틀림없다. 날 물어온 호랑이의 목소리였다.

“백령, 절대자의 명이다. 열어라.”

여자가 단호한 투로 말했다. 호랑이의 이름이 백령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나 호랑이한테 물려온 거 맞구나.

호랑이가 주위 하인들을 모두 물린 건지, 문 밖은 이전보다 훨씬 조용했다.

“여긴 내 영역이다. 관심 꺼라.”

“모든 영역은 절대자의 권력 아래 존재해.”

“네가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질 줄 몰랐군.”

“인간이라고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네 방에 꼭꼭 숨겨놓은 인간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너라면 궁금하지 않겠어?”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내 짐작컨대, 호랑이의 한숨 소리임이 틀림없었다.

“미호, 재미없는 취미가 늘었군.”

“나도 이제 늙어서 말이야. 이상한 데에 흥미가 생겨버렸지, 뭐야. 게다가 난 지금 북쪽 영토를 박살내고 온 백령, 네가 참 아니꼽기도 하고.”

북쪽 영토? 박살?

그러고 보니 호랑이 털 곳곳에 묻어 있던 피가 생각났다. 뭔진 모르지만 호랑이가 대학살이라도 하고 온 것 같았다. 내가 때렸던 작은 상처 빼고는 눈에 띄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하기도 했고.

“귀찮게 하는군.”

“신력 낭비할 생각 마. 나도 네 신력을 감당하려면 귀찮으니까.”

둘의 대화 내용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하나만은 명확했다. 호랑이를 응원해야 한다는 것.

호랑아, 조금만 더 힘내. 절대 저 여자를 이 방에 들이지마!

하지만 이내 내 응원이 무색하게도 결판이 났다.

“네가 열래, 내가 부숴버릴까?”

“비켜라. 열어줄 테니.”

아니, 백령 호랑이씨. 사람이 끈기가 있어야지! 아. 사람이 아니긴 하다.

나의 맞은편에 있던 문에서 푸른빛이 반짝였다. 호랑이가 문을 열고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빛을 바라보았다. 너무 아름다운 빛이었다.

‘드르륵’

서서히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빛이 점점 사라져가면서 문 앞에 서 있는 형체 두 개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중 하나는,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에 봤던 남자였다. 아름다운 은발에 푸른 눈을 한, 호랑이의 흰 귀를 달고 있는 그는, 그때 그 호랑이와 매우 흡사한 듯했다.

옆에는 비단 같은 연보랏빛의 머리에 여우 귀가 달린 짙은 자색의 아름다운 눈이 돋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자신의 턱에 갖다 대었다.

“어제 북쪽 땅을 그렇게 박살내놓고도, 신력으로 이런 주술까지 쓰다니……. 절대자는 내가 아니라 너 아니야, 백령?”

“시끄럽다.”

백령이 벽에 기대어 섰다.

“아직 기절해 있는 듯하니, 건드리지 마라.”

백령의 말에 미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기절? 왜?”

백령은 미호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짜증난다는 듯 눈을 감을 뿐.

미호는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 기절한 척이라도 해야 하나?

눈을 질끈 감았다. 억지로 감은 눈은 부르르 떨리는 듯 했다.

또각또각

서서히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미호가 바로 코앞까지 온 듯 했다.

실눈을 떠 앞을 보니 미호가 가만히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마 안가 미호의 손이 내 쪽을 향했다.

“우으…… 으아아앙!!!”

나도 모르게 울음보가 터졌다. 자의가 아니라, 본능이었다. 낯선 이의 손이 다가오자 반응하는 자그마한 몸의 본능.

진짜 아기의 몸은 너무 불편한 것 같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뭐, 뭐야? 얘 왜 울어?”

미호가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 했다. 백령은 묵묵히 서서 잠시간 미호를 째려보더니, 벽에 기댄 몸을 일으키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손을 뻗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게도 백령의 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울음이 그쳤다.

물려오며 정이라도 든 걸까. 그의 손이 싫지 않다.

울음을 멈추고 눈물로 범벅된 눈을 떴다. 백령은 큰 손으로 내 눈가의 눈물을 대충 닦더니, 도로 손을 거두었다.

“뿌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좀 더 해주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호랑이 같으니라고.

방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옆에서 지켜본 미호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너 키우기라도 하려고 인간 데려온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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