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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69화 (269/269)

269화 곧 빨라질 거야. (2)

영지에서는 상시 병사를 모집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아예 대규모 모집 공고를 내었지만, 생각보다 병력 증가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영지민들이 군대를 보는 관점 때문이었다.

“우리 영지 정도면 병사가 많은 거 아닌가?”

“병사 안 해도 먹고 살기 편한데.”

“굳이 위험한 데 갈 필요는 없잖아?”

열심히 일하면 높은 보수를 얻는다. 식량값은 다른 곳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싸다.

예전에는 생필품이 상당히 부족했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았다. 여러 상단이 식량을 얻으러 와 많은 물건을 풀었기 때문이다.

물론 귀족이나 부유한 자들처럼 여유롭게 사는 건 아니지만 워낙 가난하게 살았던 이들이라 지금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거기에 범죄자들까지 다 잡아 ‘노동 돌격대’에 넣어 버리니 치안도 꽤 좋은 편이었다.

영지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러니 일도 많다. 보수도 높으니 적당히 벌고 놀다가 돈이 떨어지면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들 이 상태에서 만족해 버린 게 문제였다.

“병사 지원하면 보수가 높다는데.”

“에이, 그래도 힘들잖아. 난 이 정도면 충분해. 옛날 생각을 해 보라고.”

“그러게, 집도 깨끗하고 좋고 굶지도 않는데 굳이 더 욕심낼 필요 없지. 어차피 전쟁 나면 우리 다 징집될 거잖아?”

다들 이런 식이니, 영지가 아무리 넓고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병사 충원이 빠를 수가 없었다.

클로드는 골머리를 썩였다. 앞으로의 전쟁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충원이 더디니 답답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들이 심각함을 모르는군. 데스몬드와 싸워야 하고 공작가와도 싸워야 하는데. 레이폴드도 마찬가지고. 사방이 적인데 말이야.”

영지민들은 정치적인 사정 따위는 모른다. 앞으로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나마 지셀이 친왕파 소속이라는 건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도 클로드가 여기저기 팔아먹고 다녔기 때문이다.

왕실이 같은 편이라는 것도 사람들의 불안감이 떨어지는 데 한몫했다.

클로드는 총관의 권력을 이용해 병사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준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펜리스 영지군 모집! 복무 기간 중 세금 면제! 전신 판금 갑옷과 최신 무장 무료 지급!]

홍보지에는 클로드가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키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용감한 전사들이여! 영지 수호의 영예를 위해 지원하라!]

[함께 전장을 향해 나아가자! 승리의 영광과 보상이 여러분을 기다린다!]

[너만 오면 전쟁 시작!]

세금 면제 혜택까지 부여하자 지원병이 전보다는 크게 늘었다. 하지만 지셀이 목표로 하는 수에는 턱도 없었다.

적어도 1만 명은 채우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 상태라면 몇 년이 걸려도 무리였다.

클로드는 지셀을 찾아가 말했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는 강제 징집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그 전에 네놈 얼굴이 그려진 홍보지부터 치워라. 볼 때마다 내가 더 부끄러워.”

“……네.”

“의무 군사 훈련은 잘 준비되고 있지?”

“네, 그건 큰 문제 없을 겁니다. 어차피 다들 예상은 하고 있으니까요.”

보통 영지민들은 징집될 때를 대비해 매년 며칠씩 기본적인 군사 훈련을 받는다.

이건 다른 영지도 다를 바 없었고, 펜리스 영지에서도 다들 조금씩은 군사 훈련을 받고 있었다.

지셀은 그걸 조금 더 체계적으로 바꾸기 위해 제대로 된 훈련소를 곳곳에 세운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훈련일 뿐, 전쟁을 하려면 제대로 복무하는 병사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기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잠시 고민하던 지셀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클로드에게 말했다.

“이게 다 먹고살 만해지니까 긴장감이 떨어져서 그런 거 아니겠어? 누구랑 싸우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고 말이야.”

“그건 그렇죠. 적어도 먹고 자는 건 이제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다른 영지의 부유한 평민들처럼 사는 건 아니잖아? 아직 불편한 점도 많고.”

“워낙 없이 살았던 탓인지, 다들 이 정도로도 만족하더라고요. 안 뺏기기만 해도 좋다나? 거의 다 착취당하던 영지민이나 빈민들이었으니까요.”

“그래, 그러니 역시 긴장감을 좀 줘야겠어. 안 뺏겨서 살기 편하다면 뺏어 줘야지.”

“그…… 이제 악덕 영주를 하기로 마음먹으신 겁니까? 그래요, 그게 잘 어울리긴 합니다. 그 성격에 지금까지 잘 참으셨……. 아악!”

마나로 한 대 맞은 클로드는 이마를 비비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맞으니까 억울했다.

지셀은 그런 클로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 강제로 뺏고 징집하면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우리 영지군은 언제나 사기가 높아야 해. 그래야 훈련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거든.”

“그럼 어떻게 긴장감을 높이시려고요?”

“내가 다 계획이 있지. 일단 흉흉한 소문부터 내라.”

너무 살기 편해서 문제다? 그러면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지셀은 여전히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데스몬드 백작이 곧 여기를 침공한다는데?”

“거기 북부 최강이라 불리는 영지 아니야?”

“벌써 정찰대를 우리 영지로 보냈대.”

요새 영지민들은 모이기만 하면 불안한 얼굴로 저들끼리 숙덕거렸다. 이야기의 주제는 북부 최강이라 불리는 데스몬드가 곧 이곳을 칠 거라는 소문이었다.

영지의 주요 인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영지민들은 그간 영지 개발에만 힘쓰느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점령 직후 영지 분위기를 안정시키려고 일부러 알리지 않은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종종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풍문을 들어도 다들 헛소문이라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당장 먹고사는 게 더 중요했었으니까.

하지만 전쟁이 코앞이라는 소문을 듣자 마음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 영주님은 친왕파라고 하지 않았어? 왕실에서 보호해 준다고 했잖아?”

“데스몬드 백작은 공작파래. 공작님이 더 센 거 몰라? 엄청 유명한 공작님이라는데.”

“무슨 소리야! 국왕님이 제일 세지! 그러니까 왕을 하지! 왕이 뭔지 몰라? 이 무식한 놈아!”

“뭐, 이 새끼야? 글도 모르는 게 누구보고 무식하다는 거야!”

불안감이 올라가니 티격태격 싸우는 일도 잦아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간 활약했던 지셀의 업적을 떠올리며 애써 걱정을 놓으려 했다.

“우리 영주님이 싸움을 엄청나게 잘하신다며? 그러니까 잘 막지 않을까?”

“그래, 우리 영주님이 카발디 백작도 쉽게 이기고 여기도 다 뺏었잖아?”

“어허, 데스몬드 백작은 카발디 백작이랑 차원이 다른 인물이야. 괜히 거기가 북부 최강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고.”

사람들의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싸우면 질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 막연하게 영주가 잘 막아 줄 거라고 믿는 사람 사이에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사람이란 게 원래 그렇다. 지금 워낙 평화로우니 실감이 안 나는 것이다.

그래서 첩보관인 로웰은 소문을 더욱더 부채질했다. 쉬지 않고 선동을 하며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예전에는 영지민들이 안심하게 하려고 숨겼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알려 느슨해진 영지민들의 마음에 긴장감을 주어야 했다.

“데스몬드군의 정찰대가 벌써 영지 인근에 나타났대!”

“이미 한번 전투가 벌어졌다더라! 영주님이 겨우 몰아냈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북부 영주들이 연합해서 이곳을 뺏으려 한다잖아!”

실제로 북부의 일부 영주들이 연합군을 꾸리고 있긴 했다. 펜리스 영지가 아니라 다른 곳을 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로웰은 진실 속에 거짓을 섞어 일부러 와전된 소문을 퍼트렸다.

사람들은 더 불안해졌다. 펜리스 영지처럼 살기 좋은 영지가 또 없다는 건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불안감과 긴장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다시 예전처럼 다 뺏기면서 살고 싶지 않아. 우리 건 우리가 지켜야지.”

“굶는 건 지긋지긋해. 다른 영주가 이곳을 차지하면 또 굶게 될 거야.”

“어차피 공사장에서나 일했는데, 이 기회에 그냥 병사로 지원해야겠다.”

사지가 멀쩡하고 건장한 자들이 자원입대하기 시작했다.

인부로 일하던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지만, 영지민들이 워낙 많기에 인부를 새로 모집하는 데도 별문제는 없었다.

애초에 일손이 모자라면 병사들도 공사에 투입하는 게 펜리스 영지다.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입대자가 전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그마저도 지셀은 성에 안 찼다.

아직도 머뭇거리는 영지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갈 필요는 없잖아?”

“그, 그래. 진짜 전쟁이 나면 위험하다고.”

“차라리 눈치 보다가 징집병으로 들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남이 대신 싸워 주길 바라고 남이 대신 희생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 나서는 사람이 대단한 거지, 나서지 않는다고 나쁜 건 아니니까.

물론 그러다 영지가 망했을 때는 알아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던 와중, 미적대는 사람들을 재촉하기라도 하듯 새로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약탈자다! 약탈자들이 나타났어!”

“뭐? 어디서? 우리 영지엔 병사들도 많은데 약탈자가 돌아다닌다고?”

“다른 영주들 군대를 막아야 해서 영지를 지킬 병사들이 부족하대!”

“벌써 몇몇 마을이 초토화됐어! 가진 재산들도 다 뺏기고 피난민들이 줄을 잇는다고!”

“자, 자경단은? 마을마다 기초 훈련은 다 받고 있잖아?”

“다 죽거나 도망쳤대! 주둔한 병사들도 수가 적어서 후퇴만 하고 있다더라!”

흉흉한 소문이 영지를 강타했다.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계속 이렇게 평화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이렇게 식량도 많고 철도 많은 영지를 다른 자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언제 어디서건 힘만 있다면 뺏을 수 있는 시대다. 다른 귀족들이건 도적 떼들이건, 다들 펜리스 영지를 먹음직스럽게 여길 것이다.

자신의 것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 영주의 안락한 보호 아래에 그걸 잊고 살았다.

약탈자들에 관한 소문에 깨달음을 얻은 영지민들이 추가로 자원하면서 입대자가 대폭 늘어났다. 그리고 그 약탈자들도 날이 갈수록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또 마을들이 당했어! 그놈들이 영지 안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고!”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놈들인데 못 막는 거야? 우리 영지군은 뭐 하고 있고!”

“무장 병력이 500명이 넘는대! 작은 마을로는 막을 수가 없어! 다들 인근의 요새나 도시로 도망가는 중이야!”

“어디서 나타난 놈들이야? 북부의 도적 떼들이 다 뭉친 거야?”

“몰라! 소문으로는 스스로를 ‘북부의 약탈왕’이라고 부르고 있대!”

그렇게 ‘북부의 약탈왕’이라 자처한 남자는 야트막한 언덕에서 복면을 쓰고 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이번에는 저 마을 맞지?”

“네, 영주님……. 곧 이주 작업을 시작할 마을이긴 합니다.”

“씁, 영주님이라고 하지 말랬지? 두목님이라고 부르라고.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우리는 지금 도적 떼라고, 도적 떼.”

“……알겠다고요.”

약탈왕의 정체는 지셀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는 클로드였다. 두 사람은 지금 기사 40명을 이끌고 마을을 습격하는 중이었다.

500명은 그냥 부풀려서 소문을 낸 것에 불과했다. 소문이 나지 않기 위해서는 소수의 실력자로만 움직여야 했다.

“어때? 실제 상황에 가깝게 해야 긴장감이 팍팍 사는 법이라고. 사람들이 요즘 바짝 긴장한 거 알지?”

“……네.”

‘넌 진짜 미친놈이야……. 자기 영지를 이렇게 터는 영주가 어디 있냐…….’

지셀과 기사들은 마을을 부수고 식량을 약탈해 갔다. 진짜 약탈하는 게 좀 어이없긴 했지만,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사실 사망자는 한 명도 없다. 지셀 일행은 자경단이 덤비면 기절시키기만 했다. 그렇게만 해도 사람들은 알아서 소리 지르며 도망갔다.

어차피 펜리스 영지는 주요 요새와 도시로 모든 마을을 통합하는 중이었다. 겸사겸사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작업도 빠르게 진행하게 된 셈이었다.

혹시나 도망쳤던 사람들이 소중한 물건을 다시 찾으러 올 걸 대비해 불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의외로 섬세하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이었다.

“이주한 사람들한테는 집을 빨리 마련해 주고 잃은 식량과 재산을 보상해 줘.”

“각 영지의 행정관들에게 가장 먼저 처리하라고 확실하게 말해 놨습니다.”

“좋아, 그래야 더 이를 악물고 힘을 내지.”

애초에 이주 계획이 진행 중이었던 만큼, 인구수에 맞춰 집은 다 준비된 상태였다. 거기에 잃은 식량과 재산만 보상해 주면 되는 문제였다.

오히려 그 덕분에 사람들의 사기는 더 올라갔다. 직접 큰일을 겪으니 꼭 영지를 지켜야겠다는 의지도 올라갔다.

마을들이 박살 나고 실제 피난민(?)들이 생기니 소문은 근거를 더해 더욱더 퍼져 나갔다.

“근처 부대들은 다 후퇴했지?”

“네, 이미 명령을 받고 물러난 상태입니다. 이주민들 보호 임무에만 전념할 것입니다.”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에는 싸우지 말고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려 두었다. 병사들은 영문도 모르고 후퇴하기 바빴다.

이제 약탈왕이 된 지셀이 옆에 있는 기사들에게 물었다.

“전에 야만인들이 마을 약탈할 때 뭐라고 막 외치던데. 그게 뭐였지?”

“그……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겁탈…….”

“그건 하지 말자.”

“네, 그거 솔직히 좀 창피해요.”

“그러면 그냥 소리나 질러라. 가자!”

“와아아아아아!”

약탈왕과 40인의 도적들이 다시 한 마을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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