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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68화 (268/269)

268화 곧 빨라질 거야. (1)

“말 위에서 쏠 수 있는 활이라니, 궁기병은 이미 사장된 병종이 아니오?”

갈바릭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말 위에서 기동력을 이용해 활을 쏘는 건 고대부터 있었던 발상이다.

그리고 실제로 궁기병이 전장의 공포로 군림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략과 전술, 장궁과 쇠뇌가 발전하며 궁기병만의 장점이 크게 줄어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궁기병을 육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일단 마상에서 활을 제대로 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소이다. 지금부터 육성해도 몇 년이 걸릴 텐데?”

궁기병은 궁술과 기마술 양쪽에 다 통달해야 한다. 둘 모두에 익숙하다 해도 말 위에서 활을 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상에서의 사격처럼 단단하게 발을 디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말 위에서 두 다리만으로 몸을 고정한 채 활을 쏘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이미 수많은 전쟁에서, 궁기병이 큰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게 증명되지 않았소이까?”

보통 궁기병은 사거리와 정확도의 제약 때문에 근접 궁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보병과 맞붙기 전 궁기병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은 강력한 장점이지만, 그걸 그대로 보고만 있을 지휘관은 없다.

갈바릭은 바로 그 점을 짚었다.

“궁기병이 다가오기도 전에 상대 궁병이 훨씬 더 월등한 사거리로 견제할 수 있소이다. 거리가 가까워진다 해도 중보병 대열을 뚫을 수도 없고, 상대 기병에도 막히기 쉽지. 그런 대응 조합 때문에 궁기병이라는 병종 자체가 사장된 게 아니오?”

“오, 제법 문제점을 알고 있네?”

“당연한 거 아니오? 우리가 가장 많이 만든 게 병기들인데, 전쟁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는 잘 알지.”

“대신 상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치고 빠지기에는 끝내주잖아?”

“육성도 힘든데 몇 명 만들어서 운용해 봤자 깔짝거리고 장난치는 수준이지, 회전에서 사용할 수준은 안 되지 않소. 남들이 다 안 하는 건 이유가 있소이다.”

루타니아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나라에서는 전통적인 기사 문화 때문에 군사 전략도 기사와 보병을 중심으로 짰다. 그에 따라 군대의 편성과 훈련도 주로 기사와 보병 위주로 이루어졌다.

궁기병을 양성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훈련과 장비는 따로 마련해야 하는 만큼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전투에서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활약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갈바릭의 걱정에도 지셀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적이 돌격하면 우리가 쏘고 적이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돌격하면 되잖아? 우리 다 기마병 되어 가는 거 몰라?”

“……그게 말처럼 쉬우면 세상에 어려운 게 어디 있겠소.”

“그래서 새로운 활이 필요한 거야. 말 위에서 쏘기 쉽게 기존의 활보다 작게 만들어. 대신 사거리는 떨어지지 말아야 해. 최대한 장궁병들이 쏘는 것과 비슷한 위력과 사거리가 나오게 만들어 줘.”

“그런 걸 어떻게 만들어…….”

갈바릭은 욕을 하려다가 입을 닫고 이마를 짚었다. 이 새끼는 뭐 말만 하면 다 나오는 줄 아나 보다.

그게 쉽게 되면 누가 길고 무거운 장궁을 만들어서 사거리를 늘리겠는가. 그만한 탄성과 장력이 필요하기에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아무리 드워프라 해도 기술의 한계를 월등히 뛰어넘기는 힘드오. 남들보다 더 잘만들 뿐이지. 차라리 기존 장궁을 개량해서 위력과 사거리를 늘리는 게 어떻소?”

한숨을 쉬는 갈바릭의 앞으로 지셀이 설계도를 하나 꺼냈다.

“이게 뭐요?”

“갈바니움으로 만드는 활.”

“갈바니움이 아무리 가벼워도 그 근본은 철이오. 탄성을 제대로 줄 수가 없어. 시위의 장력으로만 해야 하는데 그러면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설계도를 잘 봐. 갈바니움으로 만든 활대의 양 끝에 시위를 조절할 수 있는 레버를 만들어. 더 강하게 조일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거지. 그걸 버티려면 활대가 강력해야 하니까 갈바니움으로 처리하는 거고.”

“헐.”

갈바릭은 설계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개념적인 부분만 적혀 있었지만 조금만 연구하면 충분히 제작할 수 있을 듯했다.

“그, 그러면 활시위는 어떤 재료로 해야 하오? 강한 장력을 만들어 내려면 보통 재료를 써서는 힘드오. 어지간한 재료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끊어질 거요.”

“그거야 트롤하고 오우거 정도 되는 몬스터의 힘줄을 쓰면 되지. 엄청 질기고 탄성도 끝내주니까. 이번에 내가 잔뜩 가져왔잖아? 앞으로도 가져올 거고.”

“오, 오오…….”

갈바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만 한다면 지셀이 원하는 대로 위력과 사거리를 조절할 수 있을 터였다.

몬스터 사냥을 갔다 온다더니 가죽뿐만 아니라 활시위의 재료까지 미리 생각하고 가져온 게 분명했다.

“그런데 강하게 활시위를 조절하면 보통 힘으로는 당기기가 힘들…….”

갈바릭은 말을 하다가 멈췄다. 활대의 양쪽 끝, 시위를 거는 곳에는 작은 도르래가 달려 최대한 적은 힘을 들여 당길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휴대하기 편하게 활대는 삼단으로 나뉘어 쉽게 접을 수 있었다. 활대의 탄성을 최소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이건 보통 활이 아니었다. 정교한 공학적 기술과 최고의 재료들이 들어간 활이었다.

놀라웠다. 도대체 영주가 보여 주는 기술의 끝은 어디일까? 이런 활은 대륙 어디에서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개념적인 설계도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드워프들이 머리를 모아 해결할 수 있었다.

“영주! 이것도 영주가 생각한 것이오? 도대체 영주 머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단 말이오!”

다급한 갈바릭의 물음에 지셀은 슬쩍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이것도 전설의 대장장이가 만들었는데.”

“아아아! 하늘은 어째서 나 갈바릭을 낳고 또 전설의 대장장이를 낳았단 말인가!”

전설의 대장장이는 정말 대단했다. 갈바릭은 절규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갈바릭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전설의 대장장이가 남긴 것들은 대부분 개념에 불과하다! 완성품이 아니야!’

개념을 구체화하고 실제로 만들어 낸 건 자신이다. 그러니 전설의 대장장이도 제작 기술이 자신보다 뛰어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언젠가는 더 뛰어난 발상으로 전설의 대장장이를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내 기필코 그자를 뛰어넘고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가 될 것이다!”

갈바릭의 외침에 지셀은 턱을 긁적이며 괜히 딴 곳을 바라보았다.

‘저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건가? 아,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이 활의 정식 이름은 ‘비올렌투스 헌터’.

전생에 갈바릭과 드워프들이 환란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병기 중 하나였다.

휴대성과 파괴력을 모두 갖추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로, 각 왕국의 정예 부대는 이 무기를 필수로 장비했다.

지셀은 바로 이 활을 만들기 위해 몬스터의 힘줄을 잔뜩 구해 온 것이다.

“자, 이 정도면 됐지? 그러면 최대한 빨리 2천 개를 만들어 줘. 일단 바쁘니까 그 정도만. 앞으로도 계속 생산은 할 거야.”

“알겠소! 엘프들이 주력으로 쓴다고 했지? 대충 엘프들이 200명 정도였나? 재료는 다 있으니 그 숫자에 맞춰서 빨리 만들어 보겠소!”

“아니, 2천 개라고.”

“……2천 개?”

“응.”

흥분을 가라앉힌 갈바릭이 조목조목 따지듯이 말했다.

“아까 말했다시피 궁기병은 기사만큼 육성이 힘든 병종이오. 정말 2천 개를 다 쓸 수 있겠소? 지금 엘프들도 활쏘기부터 연습해야 할 텐데,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 않소?”

“괜찮아. 우리 병사들 이제 다 말 타고 다니잖아? 그러니 활만 잘 쓰게 가르치면 돼. 특히 엘프들은 활쏘기 정도는 금방 잘할 거야. 전에 자연과 소통하는 거 못 봤어?”

“……말을 길들이는 거랑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거랑은 다르지 않소?”

“엘프 하면 활, 활 하면 엘프. 몰라?”

“……그건 그냥 이야기책에서나 나오는 거요. 활은 오랜 숙련이 필요한 기술이잖소.”

“그건 그렇지. 그런데 지금 자연과 소통한 엘프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야. 직접 가서 보자고.”

지셀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갈바릭을 데리고 엘프들을 찾아갔다.

엘프들은 이미 1만 마리가 넘는 말들을 다 길들인 상태였다. 말들은 영지 곳곳에 배치되어 운송 업무와 기마병 육성에 쓰이고 있었다.

덕분에 시간이 남게 된 엘프들은 길리언에게 기본적인 제식 훈련과 체력 훈련을 받고 있었다.

지셀은 일부러 궁술 훈련을 먼저 시키지 않았다. 체력 훈련이 가장 우선이었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말을 길들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 엘프들은 오늘부터 궁술 훈련에 들어간다.”

“악!”

어느 정도 자연과의 교감에 성공한 엘프들은 예전처럼 나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아한 품격마저 보이는 듯했다.

단지 군대에 소속되어 단체 생활을 하다 보니 아직 말투가 바뀌지 않았을 뿐이다.

단 한 사람, 욕으로 자연과 소통한 아스콘만이 혼자 투덜거렸다.

“시벌, 또 무슨 궁술 훈련이여. 이놈의 영지는 쉴 틈을 안 주네. 대자연의 분노를 한번 따끔하게 맛봐야 한다니까.”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루미나였다. 말과의 교감에 가장 먼저 성공했기에 지셀이 대표로 뽑았기 때문이다.

지셀은 그녀를 보고 말했다.

“자세만 날 보고 대충 익히면 돼. 목표를 맞춘다는 생각만 하라고.”

그간의 훈련 덕분인지 루미나는 활시위를 어렵지 않게 당길 수 있었다. 지셀이 자세를 몇 번 잡아 주자 어느새 그럴듯한 모습이 나왔다.

끼익.

그녀는 시위를 당겨 목재로 만든 과녁판을 겨누었다.

처음에는 연습이라 생각해 딱히 맞출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신을 집중할수록 다시 미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건…….’

이미 자연과의 소통에 성공한 상태였다. 바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껴졌다.

그녀의 활은 처음과 다르게 조금 더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본능적인 느낌 그대로, 바람의 흐름을 따라 손을 놓았다.

파앙.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조금 높이 쏜 게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연습이니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퍼억!

하지만 화살은 정확히 과녁판을 맞췄다. 완전한 중앙은 아니지만 처음 활을 쏜 사람의 솜씨가 아니었다.

“우와……. 저거 뭐야?”

“우리 몰래 활쏘기 연습이라도 한 거야?”

엘프들은 모두 놀라 루미나를 바라보았다. 그녀 스스로도 놀랐는지 자신의 손만 어리둥절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엘프 하면 활이지.”

“…….”

갈바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연과의 소통? 그거 하면 동물들과 친구도 되고 활도 저렇게 잘 쏘게 된다고?

엘프 새끼들은 진짜 사기 종족이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정령까지 다룰 기세였다.

갑자기 드워프로 태어난 게 속이 상했다.

‘매일 뭐 만들기만 하고……. 부려 먹히기만 하고……. 엘프들은 잘생기고 예쁘기까지 한데……. 아, 더럽다 세상.’

갈바릭의 속을 모르는 지셀은 신이 나서 외쳤다.

“자! 이번에는 말을 타고 한번 쏴 보자고!”

히이이잉!

루미나는 말을 타고 달렸다. 빠르게 달리는 상태라 몸이 마구 흔들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연스럽게 모든 걸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흔들림 사이에서 하나의 길을 찾아 활시위를 놓았다.

파앙!

퍼억!

화살은 그대로 과녁에 가 꽂혔다. 말을 타고도 맞추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우와!”

구경하던 엘프들이 낸 감탄성이 아니었다. 루미나는 자기가 쏘고도 못 믿어서 감탄성을 내질렀다.

다른 이들은 그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도! 나도 해 보자!”

“내가 더 잘 쏠 거 같아!”

“내가 바로 바람의 지배자다!”

엘프들은 앞다투어 활을 쏘기 시작했다. 몇몇은 과녁을 빗나가긴 했지만, 대부분은 과녁의 끄트머리라도 맞추었다.

말을 타고 쏘는 건 조금 더 실패율이 높았지만 과녁에 거의 근접했다. 이건 십 년 이상 훈련을 한 궁기병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던 아스콘은 자신의 말에게 손짓했다.

“야, 일루 와 봐.”

푸르르륵.

아스콘의 말 ‘시바리’는 매서운 눈빛 쏘아 대며 건들건들 다가왔다.

아스콘이 직접 지은 이름은 아니었다. 누군가 부른 걸 우연히 듣고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붙인 것이었다.

주인을 닮아 무척이나 흉포한 말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우리도 해 보자.”

히이이잉!

말도 힘차게 울부짖었다. 저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오만한 모습이었다.

“가자! 시바라!”

끼이익.

아스콘은 말을 타고 달리며 활시위를 당겼다. 갑자기 자신도 뭔가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바짝 들었다. 이건 자연의 소리였다.

‘바람이 느껴진다.’

온몸의 감각이 자신에게 길을 알려 주고 있다. 지금이다, 지금 쏘면 저 과녁을 뚫을 수 있다고 바람이 말하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파앙!

쐐애애애액!

화살은 그렇게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졌다.

“에이 시바라, 난 안 되네.”

푸르르륵!

아스콘의 말이 뭐가 웃긴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쨌든 엘프들은 대부분 처음 하는 활쏘기에도 믿을 수 없는 실력을 보여 줬다.

지셀은 갈바릭을 보며 말했다.

“어때?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될 거 같지 않아?”

“……엘프들이나 가능한 거지, 일반 병사들은 힘들지 않겠소?”

“당연히 훈련은 좀 해야겠지만, 엘프들과 함께 훈련하면 금방 늘 거야. 당장은 말을 타고 활만 쏠 줄 알면 돼. 중요한 건 2천 명이 한꺼번에 쏜다는 거거든.”

“…….”

2천 명의 궁기병이 목표를 향해 쏘면 사실 정확히 맞출 필요도 없다. 그냥 적당히 방향만 잡을 줄 알아도 화살 비가 쏟아질 것이다.

제작 수량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든 줄여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오면 방법이 없었다.

갈바릭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제작에 착수하겠소이다. 그런데 영지의 병사가 4천 명이 조금 넘는 걸로 아는데 절반 이상을 궁기병으로 만들 생각이오?”

이번에는 반대가 아니라 순수한 궁금증으로 물어본 거다.

“아니, 지금 신병 모집은 계속하고 있잖아? 병력이 더 늘어나면 문제없을 거야.”

“내 듣기로는 생각보다 병력 충원이 많이 늦어지고 있다던데.”

지셀은 고개를 몇 번 젓더니 씨익 웃었다.

“곧 빨라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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