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이곳은 우리가 접수한다. (2)
여관 주인은 지셀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기사들도, 헌터들도 모두 잘못 들었다 싶어 눈만 껌뻑거렸다.
여관에 왔으면 빌리든지 나가든지 해야지, 접수는 무슨 접수란 말인가?
그러자 지셀은 귀찮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뭐 해? 다들 빨리 짐 싸고 방 빼.”
여관 주인은 황당했다. 이놈이 지금 뭘 알고 이딴 짓을 벌이는 건가? 수가 좀 많다고 이러는 건가? 그래서 확인차 물어봤다.
“너……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그딴 소리 하는 거냐?”
“여관 받으러 왔는데 뭐 그것까지 알아야 하니?”
“풉, 푸흐흐흐! 이거 또라이야, 뭐야?”
여관 주인이 마구 웃었다. 구경하고 있던 헌터들도 배를 잡고 웃었다.
“미친 새끼인가?”
“이제 막 온 애송이들 같은데 상대를 알아보고 움직여야지.”
“으하하하, 간혹 저렇게 세상 물정 모르는 놈들이 있다니까?”
카오르도 주변을 한번 훑어보다가 지셀에게 물었다.
“뭐 하십니까, 지금?”
“뭐 하긴, 숙소 구하는 중이지.”
“이제 완전히 강도로 전업한 겁니까? 뭐, 그게 어울리긴 합니다만……. 그래도 강도단을 결성하실 거면 미리 말을 해 주셔야 저도 마음의 준비를 할 거 아닙니까?”
카오르는 주절주절 말이 많았다.
그도 용병 일을 하던 시절엔 미친개라 불렸을 정도로 성질이 더러웠고 사고도 많이 쳤다.
하지만 형편이 안 좋아도 강도질은 하지 않았다. 그건 사나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의뢰인에게 바가지를 좀 씌우긴 했지만, 그것도 다 관례였다.
주절대는 카오르에게 지셀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너 또 쫄았어?”
“안 쫄았거든!”
카오르가 다시 발끈했다. 지셀은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놈들도 다 강도거든.”
“……?”
“여기가 괜히 무법 지대가 아니야. 원래는 아무것도 없었지.”
“그럼요?”
“누군가가 작게 시작한 걸 뺏고, 다시 그걸 누군가가 뺏고. 계속 서로 뺏으며 키워 온 거야. 이 안을 잘 둘러봐 봐. 이게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여관 같아?”
카오르와 기사들이 그 말에 주변을 둘러봤다. 음침하고 찝찝한 기운이 맴도는 낡은 건물 안에는 곳곳에 말라붙은 핏자국들이 수도 없이 남아 있었다.
그제야 카오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살인을 금지한다고?’
원칙이야 그렇다지만 실제로는 아닐 것이다. 온갖 범죄자 놈들이 모인 곳에서 살인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공식적으로는 죽은 놈이 없어도 비공식적으로는 죽은 놈이 꽤 많을 것이다.
뚜둑, 뚜둑.
기사들이 목을 꺾으며 몸을 풀었다. 주변에 있는 헌터들의 눈빛이 수상했기 때문이다.
여관 주인은 실컷 웃다가 지셀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사람당 10골드.”
지셀도 마주 웃으며 물었다.
“숙박비인가? 너무 비싼데? 외지인이라고 바가지 씌우는 거야?”
“아니, 너희들의 목숨값.”
여관 주인이 자신의 앞에 있던 작은 종을 흔들었다.
딸랑, 딸랑.
그러자 다른 쪽에서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딸랑, 딸랑.
곧 종소리가 멈추고 위층에서 수많은 헌터들이 어슬렁거리며 내려왔다.
덜컹!
바닥에 난 문이 위로 열리며 그곳에서도 헌터들이 기어 나왔다. 다들 무기를 들고 있었다.
여관 주인은 헌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이, 어이. 날붙이들은 일단 집어넣어. 이 정도 인원을 죽이면 왕국에서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그냥 반병신만 만들어서 밖으로 내보내. 그러면 알아서 돌아가든, 굶어 죽든 하겠지. 아, 돈 되는 것들은 다 뺏고.”
아무리 무법 지대라 해도 최소한의 룰은 있었다. 무조건 죽이지는 않는다. 힘으로 뺏는 일은 종종 일어나지만, 그것도 과해지지 않도록 각 세력이 적당히 서로를 견제한다.
견디지 못한 헌터들이 모두 떠나면 결국 남은 자들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끼리 나름대로 원칙을 세우고 질서를 지켜 가며 살고 있었다. 왕국은 최악의 상황에만 개입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 놈들은 그냥 바로 교육을 빙자한 처벌을 하는 편이다. 기강을 유지하려면 본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헌터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몽둥이를 들거나 주먹을 쥐었다. 모인 수는 약 200여 명. 넓은 여관의 1층이 꽉 찰 정도였다.
애송이를 반병신으로 만드는 데는 충분한 수였다.
헌터들이 지셀과 기사들을 포위하자 여관 주인이 건들거리며 말했다.
“어때? 꼴을 보아하니 귀족인 거 같은데 평생 기억될 치욕을 남기고 싶지 않으면 돈으로 해결하시지? 아니면 한번 붙어 보든가.”
헌터들은 이곳에서 몬스터를 잡으며 실전으로 실력을 기른 자들이다. 어지간한 병사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대부분 준기사급은 되었고, 조금이나마 마나를 쓰는 자들도 있었다.
지셀은 그들을 쭉 둘러보다가 피식 웃었다.
콰아아앙!
그러고는 여관 주인의 머리를 잡고 나무로 만든 바 테이블에 내리찍었다.
테이블이 박살 나고 여관 주인은 그대로 머리가 깨져 기절하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헌터들도 멈칫했다.
지셀은 주변을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 아직 시작한 거 아니었어?”
“푸하하하핫!”
카오르가 크게 웃었다. 영주가 왜 여기 자신을 데리고 왔는지 알 거 같았다.
지금 보니 이곳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곳이 아닌가.
그간 영지에서 괜찮은 사람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그들을 따라 하고 싶었던 거 같다. 본래도 품고 있었던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그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더 커진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미친개는 미친개답게 살아야지. 미친개에게도 어울리는 역할이 있을 테니까.’
어설프게 착한 사람들을 따라 할 필요는 없었다. 원래도 ‘나쁜 남자’가 제일 멋있다고 대놓고 읊고 다녔던 카오르였다.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헌터를 냅다 발로 걷어차며 외쳤다.
“싯팔! 다 덤벼! 이 새끼들아!”
그 외침에 정신을 차린 헌터들이 달려들었다.
“이 새끼들 조져!”
퍼억!
양측이 붙으니 바로 난장판이 되기 시작했다. 기물들이 사정없이 부서졌다.
펜리스의 기사들도 의자를 부수고 손에 잡히는 건 무작정 휘둘렀다. 용병 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이런 상황은 매우 익숙했다.
뻐억!
“크윽! 이 새끼들 뭐야?”
수가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헌터들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모두 마나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수많은 사냥을 해 온 헌터들도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중간중간 마나를 익힌 헌터들이 기사들의 공격을 막아 주었다. 그렇게 공격을 막거나 다른 놈이 맞는 틈을 타 몇 놈이 달라붙어 기사들을 공격했다.
몬스터를 잡을 때 자주 협공해 봐서 그런지 그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퍼억! 퍼억! 퍼억!
이러니 기사들도 조금씩 상처를 입거나 넘어져 밟히기도 했다.
그리고 지셀은 그 난전에서 쏙 빠져나와 구석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음, 좋아. 이런 것도 수련의 일환이지. 헌터들하고 빠르게 친해질 수도 있고.”
어차피 이곳에서 오래 지내려면 이름을 알리고 서열 정리도 해야 한다. 지셀이 보기에 지금 상황은 친분도 쌓고 여관도 빠르게 차지할 수 있는 무척 좋은 상황이었다.
퍼억! 퍼억! 퍼억!
“야이, 개새끼들아!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크윽!”
“몰라! 이 새끼들아! 그냥 뒈져!”
고성과 욕이 끊이지 않고 싸움은 점점 과열되어 갔다.
날붙이를 안 쓰고 싸우니 쓰러졌던 놈이 다시 일어나 덤빌 때도 있었다. 그러니 주먹질은 더욱더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둘씩 어딘가 부러지고 전투 불능에 빠지는 자가 늘어났다.
“싯팔! 내가 최강이다! 영감도 나한테는 안 돼!”
“뭔 개소리야! 난 아직 젊어 이 새끼야!”
이 싸움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자는 역시 카오르였다. 그는 정말 미친개처럼 날뛰며 덤벼드는 자들을 사정없이 후려 팼다.
하지만 실력이 제법 괜찮은 헌터들에게 합공당한 탓에 그도 한쪽 눈이 조금 부었고, 뒤통수도 깨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검 없이는 단번에 죽이거나 제압하기가 힘드니 공격을 여러 번 허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독기와 그간 쌓아온 실력을 바탕으로 헌터들을 차근차근 쓰러뜨렸다.
콰앙! 콰앙!
싸우다 보면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카오르의 눈에서는 점점 거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악!”
카오르는 넘어진 놈을 가차 없이 짓밟고 상대의 목을 물어뜯었다. 팔다리를 부러뜨릴 기회가 보이면 망설이지 않았다.
손속에 자비가 없었다. 미친개라 불리던 예전의 모습이 오랜만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점점 피투성이가 되어 날뛰는 그의 모습에 헌터들도 질린 듯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 새끼 뭐야? 존나 독한 새끼네.”
“설마 다들 진짜 기사였어?”
“다들 물러나! 일단 피하고 다시 정비하자!”
남은 헌터들이 잽싸게 문 쪽으로 뛰어갔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상대가 생각보다 강했다. 이럴 때는 도망부터 가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야.”
지셀이 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한 헌터가 외쳤다.
“한 놈이야! 그냥 밟고 가!”
“뭐라는 거야?”
빠악!
지셀이 슬쩍 주먹을 휘두르자 달려오던 헌터는 그대로 목이 돌아가며 쓰러졌다. 거품을 물고 있는 게 반쯤은 죽은 거 같았다.
그 한 수를 보고 달려오던 헌터들은 모두 걸음을 멈췄다.
뒤에서는 화가 잔뜩 난 카오르와 기사들이 씩씩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뒤에는 50명, 앞에는 하나.
하나가 좀 세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앞쪽을 치는 게 빠를 거 같았다.
“밀어!”
한 헌터의 외침에 지셀이 씨익 웃었다. 그와 동시에 지셀의 주먹이 달려오는 헌터들을 향해 날아갔다.
빠악! 빠악! 빠악!
경쾌한 박자에 맞춰 소리가 울릴 때마다 헌터들이 족족 쓰러졌다. 기가 막힌 타이밍의 주먹질이었다.
뻐억!
마지막으로 쓰러진 헌터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괴물 같은 새끼들…….”
여관은 거친 숨소리와 신음으로 가득 찼다. 쓰러진 헌터들로 들어찬 바닥을 내려다보며 지셀이 말했다.
“할 만하지?”
카오르와 기사들이 웃었다. 머리가 산발이 되어 꼴은 영 말이 아니었지만, 오랜만의 싸움질로 몸은 확 풀렸다.
이런 주먹질은 전장의 칼질과는 확실히 달랐다. 큰 피를 보지 않으니 이들에게는 놀이에 가까웠다. 겸사겸사 서열 정리도 할 수 있고.
지셀은 모두를 둘러보며 씨익 웃었다.
“이제 여기가 우리 거점이다.”
* * *
쓰러진 헌터들은 모두 여관 밖으로 던져졌다. 그 숫자에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200명에 가까운 헌터들이 전부 초주검이 된 채 쌓여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셀은 여관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와 말했다.
“이곳은 이제 우리가 차지했다. 다들 알겠지? 불만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고. 숙박비는 하루에 100골드다.”
끄덕끄덕.
구경하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관의 주인이었던 아놀드는 이곳에서 제법 큰 세력과 힘을 자랑하는 자였다. 그런데 저 많은 헌터들을 단번에 쥐어패서 쫓아냈다.
법보다 힘이 우선인 곳이다. 저런 실력자들에게 반대하거나 덤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놀드는 머리가 깨져 기절했네? 저놈이 저렇게 쉽게 당한다고?”
“웬 꼴통들이 온 거 같은데 괜찮으려나?”
“그래도 새로 온 놈들 꽤 강하지 않아? 돈카드와 협상만 잘하면 큰 세력을 이루겠어.”
오자마자 이렇게 큰 사고를 치고 실력을 보여 준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요새에서 나름대로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몰려든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갑자기 등장한 실력자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셀과 기사들은 여관 청소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휴, 이제야 좀 깨끗해졌네. 사람이 너무 더럽게 살면 안 되거든.”
전보다는 깨끗해진 여관을 보며 지셀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청소를 마치고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뒤 지셀은 모두를 소집했다. 거점을 마련했으면 이제는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였다.
지셀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자, 거점도 확보했으니 이제부터 우리가 이곳에서 할 일을 명확하게 알려 주겠다. 모두 그 목표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그 말에 한 기사가 물었다.
“몬스터 잡고 가죽 구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려고 오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런데 우리 영지에 가죽이 좀 많이 필요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난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여기 남아서 영지로 가죽과 부산물들을 보내라.”
기사들은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영주가 돌아가면? 술 마시고 놀면서 적당히 잡아 보내면 된다. 정말 놀러 온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들 힘차게 외쳤다.
“네! 열심히 해서 보내겠습니다!”
의욕이 넘치는 모습에 지셀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수련도 병행하겠다. 몬스터를 사냥하면 실력도 많이 늘 거야.”
기사들은 피식거렸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영주님은 우리를 너무 무시한다.
“영주님! 저희 용병 출신입니다. 몬스터도 꽤 잡아 봤습니다.”
“마나도 익혔는데 그까짓 몬스터 몇 마리 잡는다고 실력이 얼마나 늘겠습니까?”
“마수의 숲도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몬스터를 매일 잡는다고 실력이 확 늘지는 않는다. 그게 가능했다면 헌터들은 전부 소드마스터가 됐을 것이다.
목숨을 건 실전도 말이 좋아 실전이지, 까딱 잘못하면 실력이 늘기도 전에 죽어 버린다.
실력을 올리는 데는 적당한 상대와 꾸준히 싸우는 것이 정석이었다. 무작정 몬스터와 싸운다고 실력이 쉽게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셀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열심히만 하면 당연히 안 되지. 수련이 될 수 있게 목표량을 정해 주겠다.”
“……목표량이 몇 마리인데요?”
“반년 내로 10만 마리를 잡아 와라.”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기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