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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50화 (250/269)

250화 우리 기사들은 그렇게 입을 거다. (2)

병력과 병기 수도 꾸준하게 늘려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지셀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영지를 발전시키더라도 과연 얼마나 늘릴 수 있을까?

‘공작가의 병력과 비교하면 턱도 없지.’

데스몬드 백작만 거꾸러뜨릴 거라면 갈바릭의 말대로 병력과 병기만 늘려도 괜찮다. 하지만 공작가에서 운용하는 병력은 다른 영지와 단위 자체가 다르다.

공작가를 따르는 영주들과 귀족들의 병력까지 고려한다면 십만 단위는 쉽게 넘어간다.

단기간에 그와 비슷한 규모의 병력을 준비하는 건 무리다. 그렇다면?

‘하나하나가 일당백으로 싸워야 해.’

400명의 기사가 적어도 4만 명, 100배는 되는 적과 싸울 수 있어야 한다. 1천의 병사가 만 명 이상의 적과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게 바로 델파인 공작가다.

‘그렇게 하려면 최대한 실력을 끌어올리고 최고의 장비를 갖춰야 하지.’

이 갑옷과 투구에는 경량화는 물론이고 야간 시야 확보, 근력과 민첩성 강화, 온도 조절을 비롯한 환경 적응 마법 등이 새겨질 것이다.

기사들이 마나를 룬스톤에 불어넣으면 마법진이 발동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한다면 반영구적으로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갈바니움으로 만든 무장을 갖추고 혹독한 훈련을 통해 정예로 거듭날 것이다.

‘남들에게야 대군으로 보이겠지만…… 내가 아무리 대군을 갖추어도 공작가에 비하면 소수가 될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강력한 소수 정예를 만들어야지.’

그리고 상대해야 할 것은 공작가뿐만이 아니다.

갈바릭은 문서를 살피다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런 장비를 입으면 더 강력해지겠지만……. 그런데 이거 정말 사람하고 싸우려고 만드는 장비 맞소?”

아무리 봐도 사람을 상대한다기에는 과했다. 너무나도 많은 기술과 돈이 들어간다.

이런 걸 입으면 기사 혼자서도 오우거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갈바릭의 말에 지셀은 피식 웃었다.

“상대하려는 적들이 워낙 강해서 말이야. 뭐, 나중에는 사람보다 더 무서운 놈들도 잡을 생각이긴 하지. 어쨌든 정말 중요한 일이니 제대로 작업해 줘.”

뭔가 숨기는 듯한 말에 갈바릭은 더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많은 돈이 들어갔으니 몬스터 사냥이라도 할 생각인가 보네. 그 마수의 숲인가 뭔가 하는 곳에 또 가려고 그러나? 그래도 그냥 이 돈으로 병력을 충원하고 훈련시키는 게 더 싸게 먹힐 텐데.’

효율로 따지면 이건 최악의 돈지랄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이런 배포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직 젊으니 겉멋에 빠져서 그냥 돈지랄하는 게 아닐까?

갈바릭은 편한 대로 생각하며 넘기고 다른 궁금한 걸 물었다.

“그런데 색은 왜 검은색이오?”

특이하게 지셀이 주문한 갑옷과 투구들은 모두 검은색이었다.

검은색으로 만들려면 갑옷이 닳아도 은빛이 나지 않게 특수 작업을 해야 한다. 그만큼 돈이 더 들기 때문에 특정 집단이 아니면 거의 쓰지 않는다.

“밤에 이동하고 기습하기 좋거든.”

“……아, 예. 어울리긴 하네.”

요새 전쟁 좀 하고 다니더니 정말 싸움질에 미쳐 있는 모양이었다.

전투 효율을 높이겠다고 기사들의 자부심인 은빛 갑옷도 검은색으로 덮어 버릴 생각을 하다니.

“아, 그리고 상징성도 나쁘진 않지. 예전 전쟁 때 검은 거 붙이고 다녔더니 나름 효과가 괜찮더라고.”

페르디움 공방전 때, 빅토르와 디갈드 백작이 검은 부대가 나타나면 발작을 할 정도였다.

확실히 검은색 갑옷은 우아함은 줄어들지 몰라도 기세만큼은 은색 갑옷보다 한 수 위였다.

“알겠소. 갈바니움 생산을 늘리면서 갑옷과 투구도 같이 제작하겠소. 마법사들이 또 짜증 내겠군.”

마법사들은 매일 공사장에서 구르면서 이곳저곳에서 필요할 때마다 불려 다니느라 쉴 틈이 없었다.

아마 자기들 일이 추가된 걸 알면 또 난동을 부릴 게 뻔했다.

지셀은 인심 쓴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갑옷하고 투구 제작이 끝나면 전처럼 똑같이 휴가를 준다고 해. 갈바니움 대량 생산과 무장들의 제작이 최우선이니 모두 여기에 집중하도록.”

“오! 휴가? 알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이 영지에서 유일한 낙은 배가 터지게 먹고 잠깐 쉬는 것뿐이다. 갈바릭과 드워프들은 정말 완벽할 정도로 적응했다.

“언제나 빠르고 확실하게. 알지?”

“알겠다고오……. 은근히 잔소리 많다니까.”

저 소리는 이제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었다. 갈바릭은 투덜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지셀은 돌아가는 갈바릭을 보며 씨익 웃었다. 갈바니움은 영지의 전력을 엄청나게 끌어올릴 것이다.

그 정도로 새로운 소재의 힘은 막강했으니까.

갈바릭은 모르겠지만 지셀은 갈바니움을 이용해 다른 병기도 제작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게 완성되면 기동전의 개념은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

“빨리 끝내. 그래야 다음 일을 하지.”

지셀은 기대되는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 * *

“…….”

클로드는 드워프들이 요청한 자금 명세를 보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무표정하게 요청서를 바라보던 그는 그냥 승인해 주었다. 드워프들은 의외라는 듯 몇 번이나 클로드를 훑어보다가 떠났다.

클로드는 별다른 반응 없이 눈을 감고 차만 마실 뿐이었다.

웬만해서는 클로드에게 말을 붙이지 않는 웬디도 그런 모습이 신기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가만히 계셨어요?”

평소 같았다면 난리란 난리는 다 피우고 영주랑 한바탕하고 나서야 겨우 승인해 주는 편이었다.

소용이 없어도 일단 반대하는 이유는 영주에게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다.

영주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무지막지할 정도로 돈을 쓰는 사람이었으니까. 쓰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클로드는 찻잔을 내려놓더니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포기하면 편해.”

“…….”

“이 거지 같은 영지, 파산하든 말든 뭔 상관이람? 내 돈도 아닌데.”

“…….”

지셀이야 그냥 밀어붙이면 끝이지만, 그 뒤로 들어가는 돈을 계산하고 분배하고 일거리를 나눠 주는 건 클로드의 일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영지의 재정 상황은 여전히 빡빡했고, 그 사이마다 기름칠을 하느라 클로드는 머리가 돌아 버릴 거 같았다.

돈이 없어도 영주가 하라고 한 일은 무조건 진행해야 하니까. 진짜 미친 영지였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은 보수라도 더럽게 많이 받아서 행복해하는데, 무보수 노예인 자신은 그런 것도 없었다. 정말 미칠 거 같았다.

“아! 전쟁이나 다시 났으면 좋겠다! 데스몬드 백작 빨리 안 오고 뭐 하냐! 쫄았냐!”

망할 거면 빨리 망해 버리든가. 클로드는 그렇게 미쳐 가고 있었다.

웬디가 드물게 안쓰러워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갈바니움이란 합금은 대단한 거 같습니다. 병사들의 전력도 높아지고, 사람들의 생활도 크게 달라질 거 같아요.”

“그래, 그러겠지. 이제 미친 듯이 생산할 테니까.”

그간 제련소와 대장간들을 영지 곳곳에 잔뜩 지어 놨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시설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작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갈바니움을 만든 뒤에 본격적으로 가동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대장장이들도 영지의 다른 기술자들에 비해 조금 여유롭게 지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제 갈바니움이 개발되었으니 모든 제련소와 대장간이 바쁘게 돌아갈 것이다.

처음 드워프들에게 갈바니움을 받아 본 대장장이들은 깜짝 놀랐다.

“이, 이럴 수가! 이런 합금을 만들어 내다니!”

“역시 드워프들이야!”

“영주님이 기술을 알려 줬다는 소문이 있어.”

정말 엄청난 합금이었다. 철과 비슷한 강도에 훨씬 가벼운 금속이라니, 이런 건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들에게도 기술을 알려 주겠다는 드워프들의 말에 대장장이들은 굉장히 흥분했다. 이런 기술을 익힌다는 건 대장장이로서 큰 영광이기도 했으니까.

믿을 만한 사람들 위주로 뽑긴 했지만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결국 계속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몇몇 대장장이들은 앙큼한 생각을 떠올렸다.

‘이 기술만 익혀서 다른 영지로 가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보수를 많이 준다 해도 기술을 팔아먹는 것보다는 못하다. 거기에 다른 영지에서는 자신만 아는 기술이니 독점 판매도 가능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보물을 눈앞에 두면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미 완성된 기술을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며칠 사이에 새로운 기술을 배운 대장장이들 몇몇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영지 봉쇄가 풀렸으니 핑계만 잘 대면 영지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기술 교육이 끝나자 바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누구……세요?”

“영지의 중요한 기술을 익히신 분이니 저희가 당분간 호위하겠습니다.”

‘무슨 호위야! 감시구나!’

대장장이들을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대장장이 한 명당 두 명의 병사가 붙었다. 어쩔 수 없이 대장장이들은 도망가기를 포기했다. 그냥 높은 보수를 받는 거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데 병사들의 집착이 너무 과했다.

“아이씨! 그만 좀 따라오쇼! 여긴 화장실이라고!”

“내가 뭘 먹는지 왜 구경하는 건데!”

“씻는 곳까지 따라오면 남들이 오해한다고!”

어찌나 거머리처럼 따라붙는지 화장실도 마음 편히 가기 힘들었다. 친구들과 마음껏 술도 마시지 못했다.

“너무 늦었으니 집에 가시죠?”

“이러다 취하면 별로 안 좋습니다.”

술에 너무 취해서 말실수할 거 같으면 잽싸게 나타나 강제로 끌고 갔다. 밤에는 새로운 병사 두 명이 와서 날이 밝을 때까지 지켜(?) 주었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개인 호위를 데리고 다니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대장장이들은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갈바니움은 오직 영주성 인근의 대규모 제련 구역에서만 생산된다. 이곳에서 생산한 뒤 각 지역으로 보내 주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 제련소 주변에는 아주 크고 멋지고 좋은 집 여러 채가 비어 있었다.

“설마…….”

다들 그동안은 별생각 없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호위까지 붙어서 감시하는 걸 보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이들의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여보! 언제 이런 좋은 집을 사셨어요? 그동안 그렇게 돈 모으느라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구박만 해서 죄송해요. 게다가 우리 집에 경호원까지 붙여 준대요! 당신 언제 이렇게 성공한 거예요?”

“우와! 우리 아빠 최고! 이제 이게 우리 집이에요? 진짜 넓다!”

아이의 엄마는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아빠가 바로 옆에서 일하니까 일 끝나면 금방 집에 올 수 있을 거야. 아빠가 바쁘면 우리가 가서 봐도 되고.”

“와! 나 아빠 일하는 거 구경 갈래!”

“…….”

기뻐하는 아내와 아이들, 또는 부모의 얼굴을 본 대장장이들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제는 절대 도망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일을 끝내고 강제로 끌려갔더니 자신도 모르게 새집에 이사까지 다 되어 있었다.

가족들이 너무 기뻐하니 가장으로서 아니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한 대장장이의 아내는 감격에 겨운지 연신 눈물을 닦았다.

“바보같이 왜 말도 안 하고 혼자 그렇게 고생했어! 그런 남자인 줄도 모르고 이혼을……. 아니, 흑! 어쨌든 역시 남편밖에 없다니까.”

‘아니야, 제발……. 나 그동안 일 많이 안 했어……. 이 집 싫다고 해 줘. 원래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해 줘.’

남편의 마음도 모른 채, 아내는 머리를 휙 풀고 도발적인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잠깐만 기다려. 빨리 씻을게.”

“여, 여보. 그게 무슨 말이야? 씻다니, 왜?”

대장장이는 공포에 질려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갈바니움 생산을 담당한 대장장이들 모두의 집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들은 이제 제련소 구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집도 바로 옆이다. 어디 몰래 놀러 가려 해도 가족과 병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다.

‘진짜…… 조, 좆같아. 이 영지.’

몇몇 대장장이들은 집에 가기 싫어 퇴근도 안 하고 야근을 자처했다. 그렇게 되자 갈바니움의 생산 속도는 더 빨라졌다.

그렇게 생산된 갈바니움은 각 지역의 대장간으로 보내졌다.

갈바니움을 생산하는 자들만 고생하는 게 아니다. 각 지역의 대장장이들도 갈바니움이 도착하는 대로 병장기와 영지민들의 도구를 만들어야 했다.

거의 멈춰 있던 제련소와 대장간들이 드디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였다.

탕! 탕! 탕! 탕!

“으아아아! 왜 이렇게 일이 많아!”

영지 곳곳에서 망치 두드리는 소리와 대장장이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병사들의 갑옷과 무기들이었다. 각지에 있는 대장장이들이 전부 달라붙으니 엄청난 수량이 매일같이 뽑혀 나왔다.

새로운 갑옷을 받은 병사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전신 판금 갑옷? 이거 잘못 온 거 아니야?”

“우리는 기사가 아니라 경보병인데?”

“이런 걸 우리가 어떻게 입어? 금방 지쳐 버릴 거라고.”

보통 병사들은 솜을 채운 천 갑옷이나 입는다. 돈이 많은 영지도 흉갑이나 가죽 갑옷 정도나 제공해 준다.

모든 병사들에게 기사들이나 입는 장비를 제공하는 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얇고 가볍게 만들어도 병사들은 금속 갑옷을 입고 싸울 만한 실력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병종도 가리지 않고 이런 갑옷을 지급해 주니 다들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좋긴 좋은데……. 아무리 잘 만들어도 우리가 입기에는 꽤 무겁…….”

중얼거리며 갑옷을 들어 본 병사는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갑옷이 가벼워도 너무나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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