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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46화 (246/269)

246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 (4)

“으에에엑!”

아스콘은 바닥에 엎어져 계속 말에게 공격당했다.

지셀은 신나게 밟히고 있는 아스콘을 무시하고 루미나에게 말했다.

“어때? 진심을 담아 얘기하니까 정말 들어주지?”

루미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이제 우리 종족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그녀는 예전처럼 권태와 나태에 빠진 엘프가 아니었다.

운동으로 건강한 몸과 정신을 되찾았고 종족의 사명까지 깨닫게 되었다.

지셀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조금 엘프 같네.’

엘프들이 본래 모습을 되찾으면 환란의 시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시기가 오면 종족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

세계를 지키는 건 자연을 지키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전생에는 숨어 살던 엘프들까지 인간들과 연합을 맺고 함께 싸워 왔다.

“이제부터 엘프들의 대표는 루미나다. 모두 루미나를 따라 당분간은 말을 길들이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다른 사람들도 쉽게 탈 수 있게 말이야. 그 뒤에 다음 훈련을 진행하겠다.”

“악!”

어차피 아스콘은 대표를 하기 싫어했으니 큰 반발은 없었다. 설령 불만이 있다 해도 지금은 말에게 밟히면서 욕을 하느라 반대할 수도 없었다.

말들이 얌전해진 틈을 타 엘프들은 루미나에게 달려왔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우리도 방법을 알려 줘!”

“얌전한 말이었던 건 아니지?”

루미나는 웃으면서 엘프들에게 그 방법을 말해 주었다.

“진심을 담아서 얘기하면 돼요.”

“…….”

미친 영주가 하던 말과 똑같았다.

‘정말 진심을 담아 말하면 저 말들이 알아들을까?’

엘프들의 얼굴에 떠오른 불신과 의아함을 읽은 루미나가 말을 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여러분과 똑같이 생각했어요. 하지만 우리 종족에게는 정말 쉬운 일이에요. 그게 세계수가 우리 종족에게 준 축복이거든요. 자신을 믿고 해 보세요. 정말로 진심을 담아서 대화해 보세요.”

확신에 찬 루미나의 발언에 엘프들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움직였다.

그나마 루미나가 성공한 뒤로 말들이 얌전히 있어서 다가가기는 쉬웠다.

엘프들은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말들과 소통을 시도했다.

‘당근 줄게. 조금만 더 얌전히 있어 줘.’

‘제발 하는 척이라도 해 줘.’

‘여자 친구 소개해 줄게.’

푸르르륵.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거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몇몇 말들은 엘프들과 마음이 통해 자리에 앉거나 엘프들의 뺨에 머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와, 와! 오오오!”

교감에 성공한 엘프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그들이 루미나만큼 깊은 교감에 성공한 건 아니다. 그녀 덕분에 말들이 조금은 안정감을 찾아서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았으니 곧 엘프의 특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말들과의 교감에 성공한 자들이 늘어 가자 가신들은 놀란 눈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이, 이게 정말 되는군요…….”

“우연이 아니라니…….”

“영주님은 어떻게 이걸 알고…….”

루미나가 성공했을 때도 놀라긴 했지만, 우연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있었다. 운이 좋게 말이 진정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명이 연달아 성공하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지셀의 말처럼 엘프들에게는 진짜로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모든 엘프가 교감 능력을 되찾으려면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릴 뿐, 성공 여부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먼저 방법을 깨달은 엘프들이 다른 엘프들을 도와주고 알려주면 되니까.

지셀은 루미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말들을 사육하는 건 문제가 없겠지? 일반 병사들도 잘 탈 수 있게 해 줘야 해.”

“그럼요! 다른 분들과 함께 최선을 다할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엘프의 사명을 깨달은 루미나는 연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욕도 하지 않았고 부정적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사람들에게 알려진 대로, 우아한 엘프다운 기품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지셀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러면 오늘부터 말들을 길들이자고. 최대한 빠르게. 내 스타일 알지?”

“네! 맡겨만 주세요! 엘프의 명예를 걸고 약속할게요!”

“좋아, 아주 믿음직해. 어이, 나머지 말들도 데리고 와.”

두두두두두두!

눈이 벌겋게 변하고 침까지 흘리는 미친 말들이 병사들을 질질 끌며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

그 모습을 본 루미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오자마자 체력 훈련에 들어가서 이 영지가 얼마나 미치도록 바쁘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그리고 출정을 갔다 온 영주가 얼마나 많은 말들을 끌고 왔는지도 몰랐다.

지셀은 상식을 넘어서는 광경에 굳어 버린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미소 지었다.

“빨리하자고. 우리 영지가 생각보다 더 바쁘거든.”

두두두두두두!

병사들이 말에 질질 끌려오며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잡아 줘요!”

“말들이 너무 흉포합니다!”

“죄송합니다아아아!”

루미나는 몰려오는 말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시발……. 뭐야……. 이 영지…….”

자신 있게 말한 게 너무나 후회가 됐다. 자연의 소리고 뭐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자연에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저 영주 성격에 했던 말을 바꾸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아스콘은 성난 말에게 밟히고 있었다.

“악! 싯팔! 그만 때려! 이 미친 말 새끼야!”

그의 진심과 소통한 말은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 * *

“이야! 기마병이 쭉쭉 늘어나네!”

지셀은 며칠간 엘프들이 길들인 말들을 살펴보며 무척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히이이잉!

말들이 병사들을 태우고 훈련장을 뛰놀고 있었다. 위에 올라탄 병사들도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우와, 내가 말을 이렇게 잘 탄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움직이고 있어!”

“원래는 이렇게 온순하지 않았는데!”

병사들도 새로 데리고 온 말들이 흉포하게 날뛰는 걸 직접 봐서 잘 알았다. 그런데 엘프들과 몇 번 면담(?)을 하고 온 말들은 아주 온순한 양처럼 변했다.

기초적인 기마술만 배운 병사들도 말을 쉽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탄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말들이 잘 움직여 줬기 때문이다.

숙련된 기마병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말 위에서 무기를 휘두르고 움직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러니 기마병이 순식간에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엘프들 살도 쭉쭉 잘 빠지네!”

엘프들은 따로 근육을 줄이는 훈련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미친 말들과 실랑이를 하다 보니 알아서 근육이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진행이 수월한 걸 보고 지셀은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기회에 병사들 전부가 기마술을 익히게 해야겠다.”

말들이 잘 따르니 기마술도 쉽게 향상된다. 며칠이면 초급 기마병으로 써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셀은 영지의 모든 보병이 말을 탈 수 있게 가르쳐 볼 생각이었다.

“모든 병력이 말만 타면 기마병으로 변한다? 이건 절대 못 참지.”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어느 상황, 어느 지형에서도 대응 가능한 병력을 이끄는 건 모든 지휘관의 꿈이었다.

가신들도 그 모습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기마병이 이렇게 빨리 양성될 줄이야…….”

“이 정도 속도면 운송에도, 전투에도 빠르게 투입할 수 있어.”

“이래서 엘프들을 데리고 왔구나. 엘프들이 말 사육을 이렇게 쉽게 할 줄이야.”

말을 탈 줄 아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니 이제 배송 사업을 시작할 때였다.

각 마을과 도시에 마구간과 전보소, 물류 창고 등이 빠르게 지어졌고 기마술을 익힌 병사들이 배치되었다.

병사들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우리보고 치안대 역할도 하고, 배송 일도 하고, 전쟁 때 기마병도 하고, 보병도 하고, 훈련도 하라는 거지…….”

말 타는 기술을 익힌 건 좋은데, 일이 너무 많았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자며 훈련만 하던 병사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거부하기엔 또 추가 보수가 너무 좋았다. 오히려 가족들까지 빨리 지원하라며 등을 떠밀 정도니 울면서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기본적인 준비는 끝났다. 지셀은 가신들을 모아 놓고 ‘펜리스 화살 배송’ 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오픈 기념으로 한 달간 영지민들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한다!”

지셀은 주먹까지 쥐고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괴짜 영주에게 익숙해진 가신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준비한 대로 사업을 시작했다.

대대적인 홍보가 시작됐지만 영지민들의 반응은 그다지 시원찮았다.

“화살 배송……? 이게 뭐야?”

“편지나 물건을 빠르고 안전하게 보내 준다고?”

“그냥 상단이나 용병들한테 맡기는 거랑 다른 건가?”

생소한 개념을 접하니 아예 써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단 한 명도 이용하지 않자 가신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을 온순하게 길들이고 기마병이 늘어난 건 좋은데……. 이거 정말 사업성이 있을까요?”

“반응이 영 별로인데요?”

“그냥 자재 운송에만 쓰시죠. 그래도 손해는 아니잖아요?”

가신들의 말에도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이게 얼마나 편한지 아직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래. 걱정할 필요 없다. 계속 더 확장해.”

지셀은 정말 자신만만했다. 전생에도 이건 한 번 써 보면 절대 끊을 수 없는 서비스였다. 단 몇 사람이라도 이용하고 나면 소문이 빠르게 퍼질 것이다.

영주가 고집을 피우니 가신들은 언제나처럼 그러려니 했다.

‘돈이 많이 나가긴 하지만……. 그 정도 손해는 이제 감당할 수 있으니까.’

‘기마병이 이렇게 빠르게 양성되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지.’

‘영주님이 하는 일이 다 잘 될 수는 없잖아? 이번에 망하면 우리 얘기도 좀 듣겠지.’

다들 별일을 다 겪다 보니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는 대범함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게 파리만 날리던 전보소 중 한 곳에 마침내 한 중년 여성이 찾아왔다.

“어서 오세요!”

얼마 전부터 전보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보수도 높은데 일주일을 넘게 일이 없어 빈둥거렸다.

이런 꿀 직장에서 일하니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잘리기 싫었다.

중년 여성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서신하고 물건을 바로 배달해 주나요?”

“그럼요! 저희 화살 배송은 누구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고객님이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바로 배송해 드리고 있습니다. 단 한 분만 요청하셔도요! 거기에 지금은 무료 기간입니다!”

“고기라 상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가능한가요?”

“그럼요! 저희는 모든 전보소, 각지의 물류 창고와 배송 거점에도 냉동 마차를 갖춰 두었거든요!”

“그러면…… 고기를 좀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서 서신도 대신 써 주신다고 하던데 맞나요?”

펜리스 곳곳에 아카데미가 생기고 글을 배운 사람도 제법 많아졌지만, 아직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런 이들을 위해 전보소에서는 대필을 하는 직원도 상주하고 있었다.

과연 한쪽 구석에서 졸고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대신 써 드립니다. 너무 길게는 안 되는데……. 지금은 손님이 하나도 없으니 원하시는 만큼 써 드릴게요.”

일주일 동안 편지 한 통 써 본 적이 없으니 이 정도는 충분히 해 줄 수 있었다. 하는 일 없이 돈을 받기는 양심에 너무 찔렸다.

중년 여성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필을 부탁했다. 내용도 그리 길지 않았다.

“페르디움 마수의 숲 경비대에서 일하고 있는 리카르도예요. 푸른 머리카락에 키는…….”

여성은 리카르도의 엄마였다. 지셀이 펜리스를 차지한 뒤, 일자리를 구하러 남편과 함께 페르디움에서 넘어온 것이었다.

페르디움과 펜리스 사이에는 거주의 이동이 자유로워서 가능한 일이었다.

영지민의 수가 곧 영지의 힘이 되는 시대이지만, 페르디움에서는 오히려 영지민들에게 펜리스로 이주하라고 열심히 권유했다.

디갈드의 절반을 차지한 뒤 급격히 늘어난 인원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리카르도의 신상 명세를 다 들고 꼼꼼하게 적은 청년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걱정하지 마시죠. 빠르고 안전한 배송이 저희 화살 배송의 신조니까요.”

첫 손님을 맞은 직원들은 신이 나서 움직였다. 대기하고 있던 병사는 품목을 보더니 바로 소형 냉동 마차를 말에 연결했다.

― 단 한 사람의 고객이라도 최선을 다한다. 고객이 원한다면 오지라도 달려간다.

펜리스 화살 배송의 좌우명이다. 모든 배송병들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이 교육을 받았다.

제대로 안 하면 영주한테 맞아 죽는다는 협박과 함께 말이다.

정신 무장이 단단히 된 병사는 비장한 표정으로 한 통의 편지와 고기를 싣고 마차를 움직였다.

“가자!”

병사의 외침과 함께 말이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배송 업무를 수행하는 병사들은 다른 이들과 구분할 수 있게 푸른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조끼의 뒷면에는 큼지막하게 글씨가 쓰여 있었다.

[화살 배송]

드디어 ‘펜리스 화살 배송’의 첫 업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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