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 (3)
“교감…… 능력? 우리 조상님들이 갖고 있었다는 그거요?”
아스콘의 물음에 지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드워프가 제작의 축복을 받았다면 엘프가 받은 진정한 축복은 자연, 그리고 동물들과 소통하는 능력이지. 그걸 통해 누구보다 뛰어난 정령사가 될 수 있었던 거고.”
나름 진지한 지셀의 말에 엘프들이 다 같이 배를 잡았다.
“푸하하하!”
“우와, 영주님 뭐야! 아직도 소년 같아!”
“교감 능력이라니! 그건 이야기책에서나 나오는 거라고요!”
“우리가 그런 걸 할 줄 알면 영주님한테 얻어터질 일도 없었지! 그딴 게 어디 있어!”
지셀은 별말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동시에 엘프들은 웃음을 멈추고 자세를 바로 했다.
순간적으로 상대의 마음과 소통한 것이다. 지셀과 함께 와 있던 가신들은 그 빠른 반응을 보고 진짜 ‘교감’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셀이 주먹을 천천히 내리고 엘프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방금 내 마음 읽었지? 할 수 있겠지?”
“악!”
엘프들의 우렁찬 대답을 들은 지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어이, 준비된 말들 끌고 와.”
잠시 후 병사들이 엘프들의 수에 맞게 말들을 끌고 왔다. 그런데 다들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히이이잉!
“워워! 가만히 있어!”
“무슨 힘이 이렇게 좋아!”
“제발 말 좀 들어라!”
말들은 연신 투레질을 하고 성질을 내며 병사들을 공격하려 했다. 병사들도 끌고 오는 동안 큰 곤욕을 치렀는지 꼴이 엉망이었다.
북방의 거친 환경에서 끊임없이 전투하며 살아온 말들이다. 당연히 그 성정이 흉포할 수밖에 없었다.
지셀은 그 모습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흠, 빨리 길들여야겠네. 갈수록 성질이 더러워지고 있잖아?”
이곳으로 끌고 올 때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기사들이 수백 명이나 있기에 말들을 강제로 연결해서 겨우 끌고 왔던 것이다.
갑작스럽게 살던 환경이 바뀐 탓에 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스트레스를 받으며 날뛰기 시작했다.
엘프들은 거친 기세를 뿜어내는 말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저딴 걸 우리보고 길들이라고?’
‘우리가 길들여질 거 같은데.’
‘와, 말 주제에 저 근육 멋진 것 좀 봐. 매일 뛰어만 다녔나 봐.’
저런 거친 말들을 어떻게 길들여야 할지 엘프들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귀족가에 살면서 애완동물은 몇 번 봤지만 그게 끝이었다. 딱히 관심도 없었고 조금 친하게 지내 봤자 특별한 걸 느낀 적은 없었다.
조상님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야 있지만, 그냥 과장된 전설이라 생각했다.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 엘프들을 보며 지셀이 말했다.
“자, 이제 각자 말을 한 마리씩 붙잡고 길들여 봐.”
“어떻게…… 하나요?”
“진심으로 부탁하면 된다.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해도 좋고, 도와 달라고 해도 좋다. 그러면 말들이 그 마음을 읽고 원하는 대로 해 줄 것이다. 그게 엘프들이 타고난 축복이니까. 정령 친화력과 다를 게 없어.”
“…….”
엘프들은 배운 대로 진심으로, 짠 내 나는 표정을 지으며 지셀에게 부탁했다.
“안 하면 안 돼요?”
“빨리 시작해.”
지셀은 대수롭지 않게 그 부탁을 무시했다.
이건 정말 전생에서 이미 검증된 방식이었다. 아직 엘프들이 감을 못 잡아서 그렇지, 환란에 함께 싸우던 엘프 동료들은 모두가 쓸 수 있었던 능력이었다.
전생에는 그들 덕분에 말만 있다면 빠르게 기마병을 육성할 수 있었다. 엘프들과 대화 몇 번 하고 나면 말들이 알아서 사람 말을 잘 듣고 알아서 잘 움직여 줬으니까.
하지만 지셀과 달리 확신이 없는 엘프들은 죽을상을 하고 말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곧 엘프들과 말들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히이이이잉!
“으아아악!”
진심으로 상대하라는 지셀의 조언에 따라, 엘프들은 진심으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 너! 내 친구가 돼라!”
상체 근육만 비대하게 발달한 엘프들은 말의 등에 올라타 이두박근으로 말의 목을 졸랐다. 지금까지 단련한 근육을 믿고 힘으로 제압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말들은 북방에서 사람과 몬스터들을 죽이며 살아왔다. 그 기세와 흉포함은 다른 평범한 말들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푸르르르륵!
눈이 시뻘게져서는 흥분해 날뛰니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엘프 몇 명이 바닥에 떨어졌다.
퍼억!
“케에에엑!”
떨어진 엘프들에게 말들은 가차 없이 뒷발차기를 날리거나 그대로 밟아 버렸다. 그나마 근육을 단련한 덕분에 죽는 엘프들은 없었다.
“말 주제에 건방져!”
“우리가 우습게 보이냐!”
“우리가 바로 자연과 동물의 지배자다!”
퍼억! 퍼억! 퍼억!
흥분한 엘프들도 주먹으로 동물 친구들을 공격하니 곧 훈련장은 개판이 되어 버렸다.
난장판 속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말이 하나 있었다. 다른 말들보다 훨씬 더 몸이 단단하고 갈기가 멋진 흑마였다.
히이이잉!
“우와! 이 말 뭐야!”
“왜 이렇게 힘이 세!”
“생긴 건 졸라 멋있게 생겨 가지고!”
화가 잔뜩 난 흑마는 몇 번이나 발길질하며 투레질을 했다. 너무나도 사나운 기세에 엘프들과 병사들은 주변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말은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딱 봐도 성질이 무척이나 더러운 말이었다.
“으아아아! 피해! 놓쳤다!”
“저거 그냥 미친 말이잖아!”
“싯팔! 영주님 같아!”
사람들이 욕을 하며 흩어지자 검은 말은 분풀이할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눈을 빛내며 사나운 기세로 말이 향한 곳은 하필 지셀이 있는 방향이었다.
마치 모든 걸 쓸어 버릴 듯한 폭풍 같은 질주.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가신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영주님!”
“피하십시오!”
길리언과 기사들이 나서려 하자 지셀은 손을 뻗어 제지한 뒤 오히려 앞으로 성큼 나섰다.
히이이이잉!
그냥 그대로 머리로 받아 버리려는 듯, 검은 말은 사납게 울부짖으며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말이 다가오는 타이밍에 맞춰 지셀이 주먹을 천천히 뒤로 당겼다.
말과 지셀이 부딪치려는 그 순간.
빠아아아악!
지셀의 주먹에 얼굴을 얻어맞은 말은 그대로 고개가 돌아가며 쓰러졌다.
쓰러진 채 거품까지 물고 바들바들 떠는 말을 내려다보다가 지셀이 조용히 말했다.
“앉아. 느리면 죽인다.”
벌떡!
말은 언제 기절했냐는 듯 바로 일어나 다리를 굽히고 앉았다. 누군가가 타기 딱 좋은 자세였다.
지셀이 등에 올라타자마자 말은 꼿꼿이 다리를 펴고 고개를 쳐들었다.
오만한 지셀의 모습과 꼭 닮은 오만한 말의 모습.
말의 옆얼굴이 조금 부어 있긴 했지만, 탄탄한 몸과 멋진 갈기 덕분에 추한 상처가 크게 티 나지는 않았다.
지셀은 여전히 오만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봤지? 진심을 보여 주면 상대방도 받아들이는 법이다.”
“…….”
훈련장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구경하던 사람들과 엘프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난리를 피우던 말들까지 전부 멈춰서 지셀을 바라보았다.
“왜? 뭐? 이게 내 진심인데 어쩌라고. 그나저나 이놈, 몸도 튼튼하고 성깔도 있는 게 괜찮네. 내가 타고 다녀야겠다.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검은색이니까 검정콩이라고 지을까? 귀엽지 않아?”
성질이 더럽고 강인한 말일수록 전장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새롭게 좋은 말을 얻은 지셀은 흡족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가신들은 저 이상한 작명 센스에 다시 이마를 짚었다.
클로드가 지셀의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영주님이 다 한 대씩 때려 주면 안 될까요? 그럼 금방 끝날 거 같은데요.”
“안 돼. 그러면 나만 탈 수 있어. 모두가 쉽게 탈 수 있어야 기마병을 빠르게 키울 수 있지. 뭐 해! 다들 진심으로 말들을 설득하라고!”
다시 엘프들과 말들의 사투가 시작됐다. 나름대로 진심을 전하려는지 지셀처럼 말의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 치는 엘프도 있었다.
물론 그 엘프는 말의 뒷발차기에 가슴을 맞고 날아갔다.
다들 어떻게 해야 말과 소통할 수 있을지 감을 잡지 못했다. 결국 말 목을 잡고 매달리며 욕만 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말 좀 들어라! 이 괴물 같은 새끼들아!”
“그냥 근육 운동하는 게 나을 거 같아!”
“이 지랄을 하는데 어떻게 소통을 하라는 거야!”
엘프 루미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말의 목을 꼭 껴안고 땀만 뻘뻘 흘렸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지?’
진심을 담아 소통하라니, 말이야 쉽다. 무슨 동물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단 말인가?
지금도 말은 자신을 등에 태운 채 날뛰고 있다. 떨어지지 않게 버티는 게 전부였다.
‘제발 좀…….’
그녀는 힘으로 제압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눈만 꾹 감고 애원했다.
‘얌전히 좀 있어 줘!’
‘정말 이 망할 영지, 피곤해 죽겠단 말이야!’
‘그냥 쉽게 태워 주면 안 되는 거야?’
처음에는 짜증과 원망이었다. 귀족가에서 편하게 살아왔는데 이곳에 온 뒤로는 정말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미친 영주, 미친 가신들, 이제는 미친 말들까지. 정말 자신도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원망은 서서히 절실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될지 안 될지 확신은 없다. 아니, 솔직히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영주가 강제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뿐이었다.
저 미친 영주는 어떻게든 성공해야 이 미친 짓을 끝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루미나가 할 수 있는 일은 말에게 계속 애원하는 것뿐이었다.
‘제발 얌전히 있어 줘…….’
‘친구든 뭐든 좋으니까 내 말 좀 들어줘.’
‘이렇게 부탁할게.’
심하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달래려 했다.
그렇게 계속, 계속 말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언제부터인지, 루미나는 말의 흔들림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 그런 움직임 자체가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인식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지잉―!
루미나는 갑자기 정수리부터 등줄기까지 훑고 지나가는 무언가를 느끼고 눈을 크게 떴다.
“아…….”
무언가가 느껴졌다.
흩날리는 바람, 언제나 굳건히 서 있던 나무들, 나풀거리는 풀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새들이 말하고 있다. 벌레들도 말하고 있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다들 무언가를 자신에게 계속 말하고 있었다.
“아아…….”
화아아악!
세상이 흔들렸다. 모든 것이 물감처럼 섞였다가 다시 풀어지며 자리를 갖춰 갔다.
그 직후 그녀는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꼈다. 주변에 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뿜어내는 감정을.
그 뜻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나마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느껴졌다.
자신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자신들을 사랑해달라고, 자신들과 함께해 달라고.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아…….”
그제야 그녀는 드디어 알게 되었다.
왜 엘프가 자연의 수호자라 불리었는지.
지킬 수밖에 없었다. 지켜 줄 수밖에 없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이상, 생명의 속삭임을 듣는 이상, 그들의 감정을 알게 된 이상, 이제는 외면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그녀의 가슴에 파고들어 그녀와 하나가 되었다.
“아아, 그랬구나…….”
그래서 엘프들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택했으리라.
“괜찮아…….”
루미나는 다시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말은 여전히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아무런 힘도 주지 않고서도 말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그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루미나는 말과 하나가 된 듯 움직였다.
“난 널 해치지 않아.”
“내가 널 지켜 줄게.”
“우리는 언제나 함께할 거야.”
그녀가 부드럽게 말할 때마다 말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루미나에게는 말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다시 전장을 누빌 수 있을 거야. 쉬지 않고 뛰게 될 거야. 나는 싫지만……. 저 영주님이 반드시 그렇게 해 줄 테니까.”
그녀의 진심이 말에게 전달되었다. 말은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고 몇 번 투레질을 한 뒤 결국 얌전해졌다.
루미나는 땅으로 내려와 천천히 말의 볼을 매만지며 말했다.
“우리와 함께해 줄 거지?”
푸르르륵.
말은 그녀의 말에 화답하듯 그녀의 볼에 머리를 비볐다. 그리고는 자신이 도와주겠다는 듯 소리 높여 울었다.
히이이이잉!
그 울음소리에 모든 말이 움직임을 멈추고 루미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엘프들도 바닥에 쓰러지거나 말에게 매달린 채로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정말이야?”
“미친 말이 저렇게 빨리 얌전해진다고?”
“이게 말이 돼?”
엘프들뿐만이 아니었다. 지셀의 곁에서 구경하던 가신들도 입을 쩍 벌렸다.
그들도 영주가 또 미친 짓을 한다고 생각했을 뿐, 정말 가능할 거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난폭한 북방의 말들을 강아지처럼 얌전하게 만들다니!
오직 지셀만이 흐뭇한 미소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봤지? 진심으로 말하면 통한다니까?”
지셀의 말에도 엘프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루미나가 그나마 얌전한 말을 상대한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모든 말들이 갑자기 얌전해진 게 또 말이 안 된다.
아스콘은 반신반의하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말을 바라보았다.
말도 아스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눈싸움이 되어 버렸다.
푸르르륵.
말의 눈빛이 다시 사나워지기 시작한다. 아스콘은 말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진심, 진심이라……. 진심을 담아 얘기하라고 했지?’
자신도 힘으로만 말을 제압하려 했지, 진심을 전하지는 않았다.
아스콘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다. 말은 처음과 다르게 얌전히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아스콘은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전했다.
“시발아.”
그 순간 아스콘은 자신의 진심이 말에게 전해진 걸 느꼈다. 말도 그에 응해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히이이이잉!
퍼억!
말의 뒷발이 아스콘의 가슴에 작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