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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40화 (240/269)

240화 기만, 포위, 섬멸이지. (4)

도끼에 마나를 잔뜩 실었다. 노리던 부분에 정확히 꽂았음에도 날이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진 지셀은 손을 뻗어 마나의 실로 쿠스투의 몸을 묶어 보았다.

“으아아아아!”

투두두두둑!

무언가 몸을 속박하는 걸 느낀 쿠스투가 괴성을 지르자 단숨에 속박이 풀려 버렸다. 생각보다 더 괴물 같은 놈이었다.

“이거……. 빅토르와 비슷하잖아? 아니, 몸은 그 이상인가?”

북부제일검을 노리던 빅토르다. 비록 페르디움 공방전에서 지셀에게 죽었지만, 그 힘은 절대 만만치 않았다.

쿠스투는 비록 그보다 기술은 많이 달릴지언정, 그 힘과 맷집은 빅토르보다 뛰어났다.

어마어마한 신체 능력으로 부족한 기술을 메꾸고 있었던 것이다.

“죽어! 죽어라!”

그사이 눈이 돌아간 쿠스투는 야만인 전사답게 도끼를 사방에 휘두르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다른 야만인들보다 똑똑하다 해도 결국 그 근본은 감출 수가 없었다.

상대가 다른 자였다면 그 무지막지한 힘과 속도에 휘말려 벌써 죽었을 테지만, 검술이 극에 이른 지셀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물론 지셀도 섣불리 다가가지는 못했다. 저 도끼에 한 대만 제대로 맞아도 몸이 단숨에 박살이 날 것이다.

콰아앙! 콰아앙!

쉼 없이 땅이 파였다. 본래도 기술이 부족한데 흥분하기까지 했으니 쿠스투의 공격은 지셀에게 전혀 맞지 않았다.

“이이이익! 어째서! 어째서!”

이 북방에서 자신의 적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쿠스투였다. 그런데 상대방은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잘도 빠져나간다.

전사들을 마구 죽였을 때부터 괴물 같은 놈이라는 건 알았지만 직접 상대해 보니 생각 이상이었다.

“으아아아아!”

쿠스투는 고함을 지르며 온 힘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한 대, 단 한 대만 맞추면 된다. 그럼 상대방은 뼈도 못 추리리라.

콰아아앙!

전력을 다한 공격이 또다시 빗나갔다. 너무 힘을 준 탓에 쿠스투의 어깨가 크게 벌어지고 빈틈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지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도끼 하나를 던져 버리고, 한쪽 팔로 쿠스투의 목을 휘감으며 뒤에 매달렸다.

한 번에 안 죽는다는 건 공격에 힘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힘이 부족하면?

“그러면 죽을 때까지 찍으면 되는 거지.”

지셀이 씨익 웃으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이놈!”

쿠스투가 분노하며 지셀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지셀의 도끼가 그의 머리를 향해 움직이는 게 더 빨랐다.

퍼어억!

“크헉!”

쿠스투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본능적으로 모든 마나를 모아 머리를 감쌌다.

퍼억! 퍼억! 퍼억!

지셀도 마나를 끌어올리며 쿠스투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래도 쿠스투의 머리는 쉽게 깨지지 않았다.

일정 깊이 이상 파이지 않는 그 단단함에 지셀도 혀를 내둘렀다. 사람이라면 머리에 이 정도로 도끼가 찍히면 죽어야 정상이다.

“이거 완전히 괴물이었네. 신력을 타고난 놈인가?”

극히 드물게 신력을 타고나는 자들이 있다. 딱히 마나를 익히지 않아도, 수련을 하지 않아도 어마어마한 신체 능력을 자랑한다.

그런 자는 근육과 뼈의 밀도, 단단함, 구조 자체가 일반인과 다르다.

아무리 봐도 쿠스투는 그들과 비슷한 신체를 타고난 거 같았다.

그래서 지셀은 의아해졌다.

‘왜 이놈이 전생에 부족을 통일하지 못한 거지? 분명 다른 놈이 통일했었는데.’

이 괴물 같은 놈이라면 어지간한 전사들의 공격은 몸으로 버티면서 쓸어 버렸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쿠스투가 만약 자신의 전사들을 아끼려고 후방에 빠져 있지 않고 전방으로 직접 돌격했다면 방어선은 벌써 뚫렸을지도 모른다.

‘의외로 생각이 많고 몸을 아끼는 놈인가 보군. 아니면 부족장의 자존심인가?’

지셀의 생각은 길지 않았다. 쿠스투가 무기를 버리고 양손으로 그를 붙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옆에서 싸우던 전사들도 틈을 타 지셀에게 공격을 가했다.

“읏차!”

지셀은 쿠스투의 몸에서 뛰어내리며 다가오는 두 명의 전사를 번개 같은 속도로 죽였다.

그사이에 쿠스투는 다시 자신의 무기를 들고 지셀에게 달려들었다.

“아, 이 새끼 너무 터프한데?”

지셀은 공격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전사들의 수가 대폭 줄어 있다. 이미 승기는 잡았다. 포위도, 기습 돌격도 완벽했던 덕분에 아군의 피해는 전혀 없다시피 했다.

“이놈만 빨리 죽이면 되겠네.”

이 괴물이 설치면 아군의 피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셀은 도끼에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지이잉!

엄청난 마나가 몰려들자 도끼가 떨리기 시작했다. 지셀은 쿠스투의 공격을 피하며 계속 마나를 모으고 압축했다.

전장 한복판에 혼자 있다 보니 카발디성의 성문을 부술 때처럼 오랜 시간 모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련을 쉬지 않은 성과로 어느 정도는 모아서 쓸 수 있게 되었다.

화륵!

붉은 마나가 한곳에 뭉쳐 넘실거렸다. 원래는 이 상태에서 마나를 더 모아 압축하고 정제해야 했지만, 차분하게 집중할 여유는 없었다.

부우우웅!

“죽어라아아아아!”

마나를 모으느라 잠깐 멈칫한 지셀의 몸을 향해 쿠스투의 거대한 도끼가 쇄도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기회라는 듯, 쿠스투는 정말 온 힘을 다했다.

단숨에 몸을 가를 듯이 내리쳐 오는 도끼를 향해, 지셀은 자신의 도끼를 양손으로 잡고 강하게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음을 울리며 쿠스투의 거대한 도끼가 단숨에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 소리에 주변에서 싸우던 모든 이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연기를 내뿜으며 쿠스투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지르는 지셀의 모습이었다.

퍼어어어억!

거대한 강철 도끼도 단숨에 부수는 위력이었지만 쿠스투의 머리에는 날이 절반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과연 무시무시한 신체 능력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한들, 머리의 절반이 도끼에 파이면 살아남을 수 없다.

지셀이 도끼를 놓고 훌쩍 땅으로 뛰어내렸다.

“끄으……. 이, 이놈이…….”

쿠스투는 이마와 눈에서 피를 흘리며 그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양손은 결국 지셀을 붙잡지 못했다.

“너……. 너…….”

같은 단어만 몇 번 중얼거리던 쿠스투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그의 몸이 서서히 땅에 쓰러졌다.

쿠웅!

조금 떨어져 싸우던 야만인들은 눈앞에 있는 기사, 병사들과 싸우기 바빠서 쿠스투가 쓰러진 줄도 몰랐다.

지셀은 쿠스투의 시체를 밟고 서서 크게 외쳤다.

“대부족장 쿠스투가 죽었다!”

야만인 전사들은 그 소리를 듣고 경악해 눈을 크게 떴다. 쿠스투는 이곳에 모인 모든 전사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였고, 북방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히는 대전사였다.

“쿠스투가……. 죽었다고?”

“이렇게 모였는데도 지다니…….”

“페르디움 따위가…….”

전사들은 마지막 남은 전의마저 상실했다.

몇몇 전사들은 끝까지 호전성을 보이며 발악을 했지만 무의미한 몸짓일 뿐이었다.

이미 포위당해 수많은 전사가 쓰러진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쓰러지고 있다.

콰직! 콰직!

“으아아아악!”

쿠웅! 쿠웅!

주위에는 무기를 휘두르는 소리와 시체들이 쓰러지는 소리, 전사들의 비명만 연신 울렸다.

쿠웅! 쿠웅!

쿠웅…….

어느 순간 전장은 고요해졌다. 살아남은 자들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 왔다.

압승.

야만인들은 단 한 명도 살아서 도망가지 못했다.

“드디어 끝났다…….”

한 기사가 중얼거렸다. 그 말이 신호가 된 것처럼, 다들 하나둘씩 투구를 벗어 던지고 무기를 놓았다.

포위진의 안은 호수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피가 넘쳐났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털썩.

스코반은 그냥 핏물 위에 누워 버렸다. 너무 피곤해서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한참 숨을 고르던 그는 갑자기 킥킥거리며 웃었다.

‘이럴 수가 있나.’

수천의 야만인 연합을 이렇게 압도적으로 전멸시키다니. 그것도 상대의 절반도 안 되는 병력으로 말이다.

페르디움에 이런 적이 있었나? 없다. 적어도 자신이 기사가 된 뒤로는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요새 안에서 수성하기만 하고, 우회하는 소수의 약탈자만 추격해 죽였다.

이렇게 야전으로 대놓고 맞붙어서 대승을 거둔 적은 정말 없었다.

속이 시원했다. 지셀이 온 뒤로는 계속 그랬지만, 이번에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웃었다.

“으하하하하하! 이겼다! 저 새끼들을 다 죽였어! 우리가 이겼다고! 싯팔! 대공자님 만세다! 으하하하하!”

그 웃음이 신호였다. 모든 기사와 병사들이 양팔을 높이 들며 외쳤다.

“와아아아! 이겼다!”

“우리가 승리했다!”

“드디어 다 죽였다!”

모두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이렇게 크게 승리한 것이 누구 덕분인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와 함성은 곧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피에 절은 채 웃고 있는 사람에게 말이다.

“대공자님이 또 해냈다!”

* * *

즈발터는 병사들과 어울리며 웃는 지셀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볼 때마다 참 대단하구나.’

이번 전투로 확실하게 알았다. 마나 연공법을 뜯어고친 게 그저 치기로 벌인 일은 아니었다.

이미 지셀은 페르디움의 누구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도대체 저런 대담함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지셀에게서는 평생 전장에서 살아온 즈발터 자신도 보이지 못하는 여유가 느껴졌다. 승리했다는 흥분감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표정과 행동에서는 그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만이 묻어날 뿐이었다.

페르디움 공방전 때도 비슷한 걸 느꼈지만, 그때는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지셀이 바로 디갈드를 점령하러 움직여서 제대로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즈발터는 지셀이 어릴 적부터 자리를 비웠던 탓에 아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는 못했지만, 그가 기억하기로 지셀은 절대 저런 성격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이 아들을 저렇게 바꾼 걸까?

‘그러고 보니 전략 전술도 대단하구나. 어찌 이리 딱 맞는단 말인가.’

약속과 다르게 혼자 달려와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 어쨌든 결과는 계획했던 대로 나왔다.

야만인들의 움직임을 모두 예측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클로드란 자와 함께 만들었다고 했나?’

전장의 흐름을 원하는 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정보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정보를 통해 적들의 움직임을 예측해야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지셀이 말하기로는, 클로드라는 자가 정보를 수집하고 작전을 같이 수립했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아이고오! 우리 영주님 또 이기셨네! 아휴, 이게 몇 전 몇 승이야아아아? 작은 거 다 빼고 큼직한 걸로만 계산해서 3전 3승 하시죠? 저번 거 포함해서 4전 4승 할까요?”

그때, 웬디를 뒤에 달고 나타난 클로드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지셀에게 말을 걸었다. 허리까지 굽히고 손을 삭삭 비비는 게 파리 새끼 저리 가라다.

즈발터는 그 모습을 보며 잠깐 회의감에 잠겼다.

‘아무리 봐도 이놈은 간신인데. 뇌물도 무척 잘 받게 생겼어.’

움직이는 것도 연신 흔들거리며 중심이 없는 게 가벼워도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이런 놈이 그런 정보를 모아 전략을 짰다니, 영 믿음이 안 갔다.

클로드는 자신을 수상스러워하는 즈발터의 눈빛을 무시하고 지셀에게 말했다.

“이번 전투로 수천 필의 말을 추가로 확보했습니다. 이제 슬슬 돌아가시죠? 나 집에 가고 시푼데.”

그간 소수 부족 여럿을 쓸어 버리고 꽤 많은 말을 확보한 상태였다. 이번에 쳐들어온 놈들의 말들뿐만 아니라 그놈들의 부락까지 정리한다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이왕 왔는데 더 얻어 가야지.”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는데요? 데스몬드 백작이 언제 수작을 다시 부릴지 모르니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쯤이면 우리가 자리를 비웠다는 정보가 들어갔을 거예요.”

클로드의 말도 맞았다. 벌써 이곳에 온 지 2개월이 지났다. 지형적으로 데스몬드 영지와 그리 멀지 않은 만큼 자리를 오래 비워서 좋을 건 없었다.

“그래, 슬슬 마무리 지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나저나 포로들 전투 구경은 잘 시켜 놨지?”

“네, 말씀하신 대로 몇 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했습니다.”

“말에 태워서 이곳저곳에 풀어 줘. 소문이 쫘악 나게.”

“알겠습니다. 이제 저놈들을 상대하기 조금 더 쉬워지겠군요.”

“그렇지. 이 정도로 패 줬으면 우릴 우습게 보지는 못할 테니까.”

대화를 듣고 있던 즈발터가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크흠, 수고했다. 이번에도 정말 잘해 주었구나.”

“아버지도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페르디움군입니다. 작전대로 잘 움직이더군요.”

“당연하지! 누가 훈련시켰는데.”

즈발터는 부러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폈다.

페르디움군이 가난하고 수가 적어서 그렇지, 실전 경험과 훈련으로 쌓은 역량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지셀이 짠 작전을 완벽에 가깝게 수행하지 않았던가.

속으로 자화자찬을 몇 번 한 즈발터는 곧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런데 포로들을 일부러 풀어 줘도 되겠느냐? 자칫하면 저놈들이 또다시 연합해서 오지 않겠냐는 말이다.”

즈발터의 걱정 어린 질문에 지셀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장은 싸우기 싫은 놈이 하나 생겼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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