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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36화 (236/269)

236화 먼저 쳐야겠습니다. (3)

“적이다! 적이야! 요새 놈들이 쳐들어왔다!”

괴성이 사방에서 오간다. 야만인들은 허겁지겁 도끼를 들고 모여들었다.

그들은 막 사냥하러 가려던 중이었다. 당연히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고 말도 타지 않았다.

“빨리 준비해! 벌써 다 왔잖아!”

전사들은 서둘러 말에 올라탔지만, 미친 듯이 달리는 지셀의 군대는 어느새 지척까지 와 있었다.

야만인들이 탄 말은 위험을 감지하고 흥분한 상태라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다.

어느 병종이든 제대로 진형을 갖추지 못하면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진형을 갖추기는커녕 말을 달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야만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지셀의 군대가 들이닥쳤다.

콰아아아앙!

“으아아아악!”

지셀의 창이 순식간에 야만인들의 머리를 박살 내며 지나갔다. 붉은 눈을 빛내는 그의 창에서도 똑같이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휘릭!

퍼어어억!

지셀이 창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야만인들이 하나씩 말에서 떨어졌다. 그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 해 보고 죽어 나갔다.

지셀은 압도적인 무위로 순식간에 길을 만들었다. 그의 뒤를 따라 진입한 길리언의 창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뿜어내었다.

단 두 사람만의 힘으로 야만인 부족 하나가 와해 되고 있었다.

그들을 뒤따라 페르디움의 기사들이 야만인들을 덮쳤다.

콰아아아앙!

지셀 덕분에 실력이 빠르게 성장한 그들은 뛰어난 기마술을 바탕으로 야만인들의 부락을 헤집었다.

“으하하하하! 이거 막상 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란돌프가 크게 웃자 페르디움의 기사들도 따라 웃으며 외쳤다.

“이 새끼들아! 우리가 언제까지 당하고 있을 줄 알았냐!”

“대공자님이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줄 줄이야!”

“너네도 당하니까 어떠냐? 맛이 끝내주지?”

다들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야만인들을 죽였다. 그간 쌓인 게 엄청 많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들어온 페르디움의 기마병들도 다를 게 없었다. 그들도 얼굴이 잔뜩 상기된 채 야만인들을 척살했다.

그간 야만인들 때문에 힘들었던 서러움이 시원하게 쓸려 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펜리스의 기사들은…….

“아이! 싯팔! 다들 왜 저렇게 빨라!”

카오르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자신도 말 좀 탄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도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말을 타고 싸운 적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냥 내려서 죽이는 게 손맛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지셀을 따라다니며 충격 전술을 제법 익혔지만, 확실히 수년간 말을 타고 싸운 자들을 따라가기는 힘들었다.

콰아아앙!

그래도 수백이나 되는 수는 모자란 기마술을 만회하기 충분했다. 펜리스의 기사들까지 짓쳐들어오자 야만인들은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첫 번째 충돌에서 너무나 큰 피해를 봤기 때문에 전력을 수습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북방의 거친 야만인들답게 이런 상황에서도 호전성을 잃지 않았다. 어떻게든 뭉쳐서 대응해 보려고 했다.

“이, 이 개자식들! 붙어! 빨리 붙으라고!”

“전사들의 힘을 우습게 보지 말아라!”

“물러서지 마! 죽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 기사와 기마병들이 퍼지며 포위 진형을 짰기 때문이다.

지셀은 진형이 완성되자마자 크게 외쳤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그간 쌓아 왔던 너희들의 분노를 마음껏 풀어라! 적들이 늑대의 깃발만 봐도 두려움에 떨게 하라!”

“와아아아아!”

지셀의 연설은 페르디움의 기사들과 병사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그들은 눈에 불을 켜고 야만인들을 죽였다.

지금까지 죽였던 야만인들과는 달랐다. 성에서 막고 약탈 부대를 추적해 죽였을 때와는 정말 달랐다.

비록 하나의 소수 부족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본거지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둘, 셋, 넷…….

야만인들을 죽일 때마다 가슴 속에 뭉쳐 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만 같았다. 죽은 동료들의 원혼을 달래 주는 기분이 들었다.

페르디움 사람들에게 이번 공격은 숭고한 의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과는 달리, 딱히 야만인들에게 당한 기억이 없는 펜리스의 기사들은 그저 훈련받은 대로, 명령을 철저히 수행할 뿐이었다.

딱 한 사람만 제외하고.

‘영감보다 더 많이 죽여야 해!’

카오르는 페르디움의 기사들 못지않게 열을 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길리언에게 지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영감은 내 영혼의 라이벌이니까!’

길리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아예 그에게 관심조차 없었지만, 카오르는 진지했다.

“으아아악! 네놈들을 저주할 테다!”

야만인들은 빠르게 죽어 갔다. 몇몇 야만인들은 무기를 버리고 손을 들었다. 어디에서나 목숨이 아까운 사람은 있는 법이다.

하지만 페르디움의 기사와 병사들은 그걸 무시하고 묵묵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용서해 주기에는 그간 쌓인 아픔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퍼억! 퍼억! 퍼억!

지셀은 전장을 지휘하며 중간중간 확실하게 외쳤다.

“말은 죽이지 말고!”

야만인들을 쓸어 버리는 것도 목적이지만, 말들을 얻는 것도 목적이다. 말들은 최대한 살려서 데려가야 했다.

결국 야만인 전사들은 다들 도끼 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하고 전멸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천막 안에 숨어 벌벌 떨고 있는 노인과 아이, 여자들뿐이었다.

촤아아악!

페르디움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천막을 거칠게 찢으며 그들을 끌고 나왔다.

얼마 전, 페르디움군이 연합한 부족의 근거지를 찾아갔을 때는 다들 이미 도망을 간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격이 워낙 갑작스러워서 도망칠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한 기사가 눈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무기를 들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아예 싹을 짓밟으려는 각오였다.

그때 지셀의 목소리가 전장에 크게 울렸다.

“그만!”

기사들과 병사들은 동시에 무기를 내렸다.

어쩌면 이들은 누군가가 말려 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비전투 인원을 죽여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란돌프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공자님, 조금 마음이 불편하겠지만 이 기회에 다 없애 버리는 게 낫습니다. 저놈들이 크면 결국 우리가 상대해야 할 야만인만 늘어나는 겁니다.”

지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건 그렇죠. 그런데 지금은 쓸 데가 있거든요.”

“네? 어디에 쓰려고요?”

“그런 게 있으니까 일단 모두 끌고 갑시다. 그리고 싸우지도 못하는 사람들 죽이는 취미는 없어요. 그거 좀 자존심 상하는 일이거든요.”

뭔가 묘한 여운이 남는 말에 란돌프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만약 쓸데가 없었다면 다 죽였을 겁니까?”

지셀은 잠시 침묵하다가 짧게 답했다.

“그래야 한다면.”

표정은 무심했지만 눈빛만은 기이할 정도로 일렁였다. 그 모습을 본 란돌프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올라왔다.

‘이 새끼, 이거 설마…… 이미…….’

지셀이 무슨 짓을 하고 살아왔는지 란돌프는 모른다. 하도 망나니짓만 하고 살아서 어느 순간부터 지셀에 관해서는 아예 관심을 껐기 때문이다.

그러니 같이 지냈어도 자신이 모르는 시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란돌프는 무언가를 물으려 하다가 그냥 말을 삼켰다. 물어도 알려줄 거 같지 않았고, 알아서 좋을 게 없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뛰어난 기사답게, 지셀의 눈빛에 잠깐 스쳐 지나간 무시무시한 살의와 흉포함을 엿보았다.

그 눈빛만 보면 지셀은 평생을 전장에서 살았던 자신보다도 사람을 더 많이 죽인 것만 같았다.

‘그건 말이 안 되지. 나이도, 전쟁 경험도 훨씬 더 적은데……. 어디서 몰래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고 해도 그 정도로 죽였다면 예전에 들켰겠지. 내 착각이었을 거다.’

란돌프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생각을 털어냈다. 그는 곧바로 병사들이 전장을 정리하는 걸 지휘했다.

꽤 많은 포로와 말들을 획득한 지셀은 북방 요새로 돌아왔다.

같이 갔던 기사들과 병사들은 잔뜩 상기된 채 자신들의 전공을 자랑하기 바빴다.

“으하하하! 그 새끼들 완전히 약하던데?”

“진작 가서 죽여 버릴 걸 그랬어! 저 말들이 다 전리품이라고!”

“진짜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원 없이 풀었다!”

그들의 자랑은 끝이 없었다. 부러운 표정을 지으며 듣고 있던 다른 이들이 하나둘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저 새끼보다 제가 훨씬 더 강합니다!”

“우리도 데리고 가 주십시오!”

열광적인 요청에 지셀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렇게 의욕 넘치는 자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사기가 높을수록 강해지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좋아! 다들 돌아가면서 쓸어 버리자고!”

“와아아아아!”

전투에 참여했던 페르디움의 기사와 병사들 중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은 요새에 있던 사람들과 교체되었다.

이런 식으로 교대해 가며 전투를 한다면 야만인들을 더 빠르게, 많이 척살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펜리스의 기사들은 교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들에게는 더 혹독한 환경과 많은 경험이 필요했으니까.

지셀은 빠르게 주변을 돌며 요새와 비교적 가깝고 머릿수가 적은 부락을 쓸어 버렸다.

포로 외에는 생존자가 하나도 남지 않았던 탓에, 야만인들은 며칠이 지나서야 이웃 부족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다.

그마저도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요새의 호구들이 갑자기 미쳐 날뛴다는 소문이 도는 것에 불과했다.

갑작스러운 위협에 야만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몇몇 부족들은 대놓고 지셀의 부대를 찾아다녔다.

물론 수가 많지 않은 그들이 수백 명의 기사와 기마병들을 당해 낼 리가 없었다.

“으아악! 이 새끼들 뭐야!”

“왜 이렇게 많아! 왜 이렇게 강해!”

“요새에 있는 주력이 전부 나온 모양이다!”

지셀의 부대를 만나는 족족 다 깨져 버리니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는 사실은 금세 밝혀졌다. 인근에 있던 부족들은 그제야 서로에게 연락을 취했다.

결국 요새 부근에서 제법 강한 세력을 이룬 소리바람 부족을 필두로 11개의 부족이 만나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했다.

“지금껏 우리 공격을 막기에만 급급했던 놈들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전력이 범상치가 않아. 지금 같은 기근 상황에서 그렇게 움직이는 것도 이상하고.”

“어쨌든 간에 그놈들을 가만히 둘 수는 없어! 따로 떨어져 있다가는 놈들이 오는 족족 당할 거라고! 그놈들이 점점 북상하고 있단 말이야!”

지셀은 요새와 가까운 부족부터 쓸어 버리고, 점점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과는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소리바람 부족의 대족장, 쿠스투는 고민에 빠졌다. 그는 이 북방에서 강하기로 유명한 전사였다.

‘젠장, 이런 시기에 페르디움이 움직이다니. 태양돌 부족과도 아직 결판을 내지 못했는데.’

태양돌 부족은 소리바람과 경쟁하는 대부족이다. 서로 상대 부족을 잡아먹기 위해 노리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적들이 자신들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놈들을 상대하다 큰 피해를 보게 되면 태양돌 부족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전사들이 부족한 상태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근거지를 옮길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러려면 그곳에 있는 부족과 또 싸워야 한다. 당장 형편이 안 좋은 지금은 무리였다.

어차피 어딘가와 싸워야 한다면 페르디움 놈들을 없애는 게 낫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놈들을 상대하겠다고 11개 부족이 모였다는 것이다. 다들 페르디움의 움직임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전에 6개 부족이 당했다고 했나?”

쿠스투의 말에 다른 부족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2천이 넘는 전사들이 당했다고 한다. 그놈들 전력이 만만치가 않아.”

“공성전 중에 기습을 당했다고 하던데.”

“맞아. 솔직히 우리도 요새를 점령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전처럼 기습당할 가능성도 있지만, 애초에 우리는 공성전에 약해.”

“그거야 우리끼리 싸우느라 제대로 힘을 합치지 않고 건드리기만 했기 때문이지. 그리고 어차피 놈들을 없애 봤자 왕국에서 또 다른 영주를 보낼 테니까 일부러 적당한 선에서 끝냈던 게 아닌가?”

“그건 그렇지.”

“그놈들한테 끌려다닐 필요 없어. 놈들을 찾아다니는 건 우리만 손해야. 부족의 전사를 전부 모아라.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자고.”

“그 말은……?”

잠시 이를 몇 번 간 쿠스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놈들이 밖에 나온 틈을 타 요새를 완전히 무너뜨리도록 하지. 즈발터 페르디움의 목을 베 버리자고. 루타니아에서는 북방의 늑대라고 불린다던데, 이름값을 하는 자인지 궁금하군.”

* * *

클로드는 피곤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지도를 보며 지셀에게 말했다.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위험한 상황입니다.”

“뭐가 위험한데?”

“11개의 부족이 뭉쳤습니다. 전사들의 수만 어림잡아 5천 이상이에요. 아예 싸울 수 있는 놈들은 죄다 긁어모은 모양입니다.”

“오, 꽤 많이 모였네?”

“네! 그리고 우리는 위험해진 거고요! 굳이 이런 상황을 만드셔야 했냐고요!”

클로드는 분통을 터트렸다.

야만인들과의 전투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다. 지셀의 방식이 통했다면 진작에 왕국 차원에서 토벌을 진행했을 것이다.

친왕파와 공작가가 대립하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북방엔 너무 많은 부족이 존재해 토벌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기에 이미 수세대 전부터 토벌은 포기하고 막기만 했던 게 아닌가.

“건드리면 뭉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싸워 봤자 우리만 위험하고 피해가 커진다니까요? 괜히 왕실이나 다른 영주들이 지금까지 내버려 둔 게 아니라니까요? 왜 그 시간을 단축해서 위험을 자초하냐고요!”

클로드는 가슴까지 치며 답답해했다. 왜 우리 영주님은 평범하게 살지를 않는 걸까?

어릴 적에 도대체 어떤 경험을 했길래 이렇게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걸까?

“협상합시다, 협상. 우리 식량 많으니까 적당히 주면 받아들일 겁니다. 저쪽도 힘든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그러자 지셀이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협상 좋지. 어차피 지금은 야만인들을 모조리 없앨 수는 없으니까.”

“그렇죠. 설사 이번에 막아 낸다 해도 또 모일 겁니다.”

“그런데 협상은 유리할 때 하는 거지. 누가 불리할 때 협상을 해?”

“우리가 불리하니까 협상을 해야죠!”

“그러면 이쪽이 유리하게 판을 바꿔야지.”

“어떻게요?”

그러자 지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하긴 뭐 어떻게 해. 지금 모인 놈들부터 목을 죄다 따 버리면 돼. 그러면 남은 놈들은 말을 잘 듣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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