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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33화 (233/269)

233화 난 당하고는 못 살아. (2)

“뭐야? 저 새끼들은?”

야만인들은 자신들의 뒤쪽에서 달려오는 군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수는 삼사백 명 정도로 제법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곳에는 6개의 부족이 연합해 무려 2천이 넘는 전사들이 모여 있었다.

공성 때문에 말들을 조금 떨어진 곳에 놓고 왔지만 이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까짓것 남자답게 몸으로 막으면 되니까.

다른 부족과도 그런 식으로 싸운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에 그들은 전혀 겁을 내지 않았다.

“도끼 들어! 저 새끼들부터 죽여 버리자!”

“대놓고 싸우면 더 좋지! 으하하하!”

“오늘은 피의 축제다!”

“우오오오오오오!”

야만인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다시 전의를 끌어 올렸다. 평원에서 대규모로 맞붙는 건 그들이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환호하는 야만인들의 모습을 보며 지셀은 씨익 웃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맞붙는 거였으니까.

지셀의 눈이 서서히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가 든 창이 붉은 마나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선두에 선 지셀의 말이 달리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뒤에 따라오는 기사들과의 거리가 점점 더 벌어졌다.

붉은 섬광.

지금 그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은 없었다.

지셀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하나의 빛살이 되어 야만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콰아아아앙!

“으아아아악!”

몸으로 덮치려던 야만인들의 몸이 순식간에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전생에서도 용병왕의 첫 돌격은 같은 대륙 7강이라도 섣불리 막을 수 없었다.

죽거나, 피하거나.

용병왕의 적에게는 오직 그 두 가지의 선택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가가가가가각!

지셀은 야만인들의 군대를 직선으로 뚫고 나가며 완전히 반으로 갈라 버렸다.

야만인들은 그 파괴력에 짓눌려 섣불리 덤벼들지도 못했다. 다들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지셀의 뒤를 이어 펜리스의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콰아아앙!

“크아아악! 이놈들 뭐야!”

“북방 요새에 이런 놈들이 있었다고?”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야만인들은 혼이 빠질 정도로 놀랐다. 뒤이어 들어온 놈들도 전부 창에 푸른 마나를 두르고 있었다.

기사가 수백 명이나 된다니, 이건 말이 안 된다. 북방 요새에서 싸우는 동안 이 정도로 기사들이 튀어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수는 우리가 더 많다! 모두 달라붙어라! 달라붙으란 말이다!”

대전사들의 고함에 전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달라붙었다. 야만인 특유의 호전성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죽어라!”

전사들의 저돌적인 공세에 돌격하던 기사들의 속도가 줄었다. 하지만 전부 마나를 쓰는 기사들이기에 속도가 줄었다 한들 전사들을 상대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는 특별히 뛰어난 자들이 몇몇 있었다.

퍼버버버벅!

지셀이 창을 휘두를 때마다 야만인들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머리가 뚫려 버렸다.

쾅! 콰아앙!

길리언과 카오르도 야만인들을 수없이 척살했다. 이들이 날뛰자 전장은 완전히 혼돈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카오르가 야만인들의 목을 치며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 영감! 오늘은 내가 더 많이 죽일 거다!”

“…….”

길리언은 카오르의 시비를 무시했다. 저놈과는 말을 섞는 시간도 아까웠다.

“으아아악!”

기사들의 활약이 이어지며 야만인 전사들의 비명이 끝없이 울려 퍼지고, 그들의 대열도 엉망이 되고 말았다.

“크아아! 물러서지 마라!”

“어떻게든 버텨라!”

“우리가 이길 수 있다!”

대전사들의 고함에 전사들이 다시 이를 악물며 기사들 주위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펜리스의 기사들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야만인들의 대열이 무너진 걸 본 즈발터가 크게 외쳤다.

“성문을 열어라!”

쿠우웅!

“와아아아아!”

페르디움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요새에서 뛰쳐나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기가 오른 상태였다.

무기력하게 버티기만 해야 했던 상황이, 지셀의 등장으로 일거에 바뀌었기 때문이다.

“끄아아악!”

페르디움군까지 나서자 야만인들은 앞뒤에서 밀려오는 공격에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했으니 대응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페르디움군은 신이 나서 없던 힘도 쥐어 짜내며 싸웠다. 그중에서 가장 신이 난 사람은 마수의 숲 경비대장인 스코반이었다.

“죽어라! 죽어! 이 새끼야!”

페르디움에 돌아갔던 그는 몇 가지 내용을 보고할 겸, 보급 물자를 전할 겸 요새에 왔다가 재수 없이 야만인들의 침공에 발이 잡히고 말았다.

운도 지지리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생각도 바뀌었다.

‘속이 시원하다!’

북부에 사는 사람들은 야만인들에게 엄청난 감정이 쌓여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페르디움 사람들의 증오심은 남다를 정도다.

야만인들에게 많은 동료와 영지민들을 잃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니 당연한 일이었다.

공성전이 벌어지면 막기에만 급급하지, 이렇게 대규모의 야만인들을 척살한 적은 없었다. 약탈자들을 몇몇 처치해도 잠잠해지는 건 그때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속 시원한 일이 생길 줄이야!

비록 제대로 된 야전이 아닌, 공성전 중에서 지셀의 도움을 받아 나온 거지만 어쨌든 야만인들을 실컷 때려잡고 있지 않은가.

‘확 시원하게 처음부터 대놓고 다 죽이면 더 좋았을 텐데.’

페르디움군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것도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전력을 아껴야 하는 페르디움 입장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 이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일단 후퇴해라!”

“흩어져라! 흩어져!”

호전적인 야만인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목숨이 아까운 자들이 하나둘씩 도망가기 시작하자 본래도 엉망이었던 대열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펜리스와 페르디움의 기사들, 병사들은 하나라도 더 잡아 죽이려고 이를 악물고 야만인들을 쫓았다.

그렇게 요새 주변에 시체가 쌓이고 노을이 질 즈음에야 즈발터가 외쳤다.

“그만! 이제 끝났다! 더 쫓을 필요가 없다!”

도망치는 데 성공한 소수 야만인을 제외하면 살아남은 자들은 없었다.

페르디움군은 항복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고 야만인들 또한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

서로 오랫동안 싸워 오며 그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와아아아아!”

“이겼다!”

“대공자님이 오셨다!”

페르디움군은 드디어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야만인들이 물러나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인근의 6개 부족이 연합한 병력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기뻐할 만했다.

즈발터는 크게 기뻐하며 지셀에게 다가갔다.

“지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온 것이냐!”

지셀도 마주 미소를 지으며 즈발터를 맞이했다.

“야만인들이 활동할 때가 아닙니까? 기근 때문에 분명 더 극성을 부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 잘 왔다. 정말 잘 왔어. 네 덕분에 큰 승리를 거두었어.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너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전력이 부족한 페르디움은 야만인들이 연합할 시 활동 범위가 극히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긴 했지만, 기근이 심해지고 야만인들도 살기 위해 날뛰다 보니 페르디움의 약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즈발터는 그제야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급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놈들의 약탈대가 이미 왕국 내로 들어왔어. 다른 마을들이 위험하다. 어서 움직여야 하니 승리의 기쁨은 나중에 누리도록 하자.”

이곳에 왔던 야만인들의 역할은 약탈대가 일을 마칠 때까지 페르디움의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약탈대는 소수 인원에 빠른 기동력도 갖췄으니 지금쯤이면 몇몇 마을들에 이미 침투했을 가능성이 컸다.

지셀도 그걸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바로 움직이시죠. 저도 부대를 나눠서 움직이겠습니다.”

“그러자꾸나. 새로 갱신된 지도를 가져다주마.”

지금까지의 전투로 이미 피로가 엄청나게 쌓였지만, 다들 군말 없이 움직였다.

자신들이 늦어질수록 힘없는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지셀은 지도를 받자마자 펼쳐 들고 곳곳을 찍으며 말했다.

“길리언, 카오르가 각각 기사 백 명씩 이끌고 이곳으로 가라. 이미 약탈이 시작됐을 테니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쇼. 확 다 조져 버리고 올 테니.”

길리언과 카오르가 바로 요새를 떠나고, 즈발터도 란돌프와 부대를 나눠 바로 움직였다.

시간이 촉박했다. 야만인들이 곳곳의 마을들을 초토화하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즈발터는 말을 달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이미 늦었을지도…….’

여기 왔던 야만인들은 제 역할을 다하긴 했다. 그들 때문에 페르디움군은 이곳에서 발이 묶여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지셀이 오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

즈발터는 데리고 나온 기사와 병사들을 연신 독려하며 외쳤다.

“어서 사람들을 구하러 가자!”

* * *

“으하하하!”

“오랜만의 약탈이다!”

“뭐야? 이 새끼들 식량이 좀 있잖아?”

야만인들은 북부의 한 마을을 불태우며 크게 웃었다. 그리 크지 않은 곳이라 별 기대도 안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쌓아 둔 식량이 많았다.

바로 즈발터가 나눠 준 식량이었다.

그는 지셀에게 얻은 식량을 쥐고 있지만은 않았다.

페르디움의 영지민들에게 빠짐없이 나눠 주고, 심지어는 가까운 다른 영지의 마을에도 몰래 나눠 주었다. 야만인들의 위협에 맞설 수 있도록 힘을 기르라는 뜻이었다.

야만인들을 막는 건 자신의 책임이니, 설령 다른 영지의 마을이라도 야만인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페르디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북방의 호구라고 불리면서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에 야만인들은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작정하고 쳐들어왔다. 평소였다면 이런 약탈대는 요새의 추격대에 막혔겠지만, 지금은 페르디움도 발목을 잡힌 상태.

그래서 이들은 마음껏 사람들을 죽이며 오랜만의 약탈을 즐기고 있었다.

“꺄아아악!”

“살려 주세요!”

“제발 아이만은!”

불타는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의 비명이 끝없이 울려 퍼졌다.

마을을 지키던 자경단은 이미 모두 죽어 더 이상 야만인들을 막을 사람도 없었다.

야만인들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며 광기를 마음껏 드러냈다.

“크하하하! 이제 다 우리 거다!”

“북방의 호구 새끼들은 지금 못 움직인다고!”

“그 새끼들 다른 영지한테도 항상 무시당한다며? 아무도 안 도와주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야? 멍청한 새끼들! 으하하하!”

“자자! 여자는 모두 죽이고 남자는 모두 겁탈해라!”

흥에 취한 한 야만인의 외침에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야, 너…….”

“아, 아니야. 그냥 나도 모르게 실수로…….”

잠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다들 금세 잊고 오랜만의 축제를 즐겼다.

그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이려고 마을 구석구석을 뒤졌다.

덜컥!

집안까지 샅샅이 뒤지며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야만인들은, 한 집에서 어린 동생과 껴안고 벌벌 떨고 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으흐흐흐, 귀염둥이들이 여기 살아 있었구나?”

야만인 전사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무시무시한 해골 투구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끼를 보고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살려 주세요.”

“이히히힉!”

야만인은 그저 징그러운 웃음소리만 냈다. 소년은 울먹이며 다시 말했다.

“도, 동생만은 제발 살려 주세요.”

“크히히힉!”

이번에도 야만인은 기괴한 웃음소리만 흘리며 소년에게 다가갔다.

저벅. 저벅.

소년은 벌벌 떨며 눈물만 흘렸다. 야만인의 발걸음 소리가 마치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여신님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소년은 공포에 못 이겨 눈을 감았다. 곧 동생과 함께 죽을 거라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저벅. 저벅.

‘제발, 누가 좀……. 제발…….’

저벅. 저벅.

“키히히힉?”

퍼억!

쿠웅!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그 적막함에 의아해진 소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자신에게 다가오던 야만인은 뒤통수가 뚫려 이미 죽어 있었다.

문 앞에 한 남자가 피 묻은 창을 들고 서 있었다.

야만인들과 복장이 다르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그가 야만인과 적대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집 안은 어두워 남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마을 전체를 태우고 있는 불꽃의 역광이 그의 형체만 선명히 강조했다.

하지만 붉게 빛나는 남자의 두 눈만은 어둠 속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세요?”

잠깐 침묵하던 남자가 단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셀 페르디움. 앞으로 너희들을 지켜 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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