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난 당하고는 못 살아. (1)
클로드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따지기 시작했다.
“기강을 왜 영주님이 잡아요? 영주님이 무슨 야만인 담당 조교예요?”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출정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거칠기 이를 데 없는 야만인들을 상대로 말이다.
클로드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지셀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럼 그놈들 담당이 나지, 다른 사람이야? 지금은 우리 아버지가 하고 있지만 어차피 다음은 나 아냐?”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야만인 담당은 언제나 페르디움 가문에서 맡아 왔다. 그렇기에 변경백의 권한과 임무를 받지 않았던가.
“그……. 아니, 그래요. 좋습니다. 담당 후계라는 건 알겠는데……. 우리 지금 말을 어떻게 구할 건지 얘기하고 있지 않았나요?”
“아, 그놈들이 말을 많이 갖고 있거든.”
“말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뺏으러 간다는 거죠?”
“그렇지, 우리라고 약탈하지 말라는 법 있어? 이번엔 이쪽에서 그놈들을 약탈할 차례야. 난 당하고는 못 살아.”
“…….”
그 말에 클로드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만인들이 사는 북방 지역의 말들은 강인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야만인들도 기마에 익숙했다.
빠른 기동력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약탈하고 다니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만큼 야만인들은 공성전에는 취약했다. 여러 부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에 단합도 잘 안 되고, 대부분이 기마병이라 공성전에서는 별 힘을 쓰지 못했다.
야만인들도 그걸 알기에 요새는 가끔 건드려 보기만 할 뿐, 보통은 요새를 우회해서 왕국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렇기에 북방 요새에서 길목을 틀어막고 추적하는 전법이 잘 먹혔고, 가난한 페르디움이 야만인들을 상대로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지셀은 말로 먹고사는 야만인들에게서 말을 뺏어 오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저기, 괜찮을까요?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페르디움이 그간 그렇게 고생하지도 않았을…….”
“가난하니까 힘들었지. 쥐어패야 하는데 병력도 부족하고 식량도 부족하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가 못 팰 거 같아? 그놈들은 자기네들끼리도 싸우는 놈들인데?”
“…….”
가신들은 이번에도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숙였다.
페르디움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언제나 힘겨웠다. 병력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섣불리 토벌에 나설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펜리스는? 식량이 넘쳐나고, 기사가 400명이나 된다. 야만인들은 소수 부족 단위로 뭉쳐 있으니 일단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팰 수 있을 것이다.
“그놈들도 기근 때문에 힘든 건 마찬가지야. 말들까지 다 잡아먹기 전에 뺏어와야지. 안 그래? 그리고 난 그놈들 때문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이제 그 대가를 받으러 가는 거야.”
그 말에 벨린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페르디움 영주님은 야만인들 상대하느라 돈이 없어서 도련님 용돈도 많이 못 주셨죠. 도련님이 어렸을 때 삐뚤어졌던 것도 다 용돈이 부족해서 그랬을 거예요.”
“…….”
할 말이 없어진 클로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가신들도 비슷한 심정인지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영지 개발에 전념하는 상황에서 다시 전쟁을 벌이는 건 좀 부담스럽긴 했다. 그런데 지셀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또 그렇게 힘들진 않을 거 같았다.
클로드는 언제나 자신과 함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 온 벨린다에게 물었다.
“집사장은 어때? 반대야?”
벨린다는 조금 고민하더니 곧 시원하게 대답했다.
“전 찬성이요.”
“뭐? 왜? 전쟁 같은 건 항상 반대했잖아?”
“저 걔네들 싫어하거든요.”
“……싫다고 전쟁을 해?”
“아, 싫은데 어쩌라고요.”
할 말이 없었다. 하긴, 전쟁을 하는 이유로 세상에 저거보다 더 확실한 게 있을까?
클로드는 혀를 차며 다른 사람을 찾았다.
“퍼거스 영감님! 영감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허허허허……. 저도 야만인들은 참 싫어했습니다.”
‘글렀어!’
페르디움 사람들이 야만인들에 대해 품은 감정은 생각보다 깊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클로드가 지셀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우리 병력이 대부분 보병인데 괜찮을까요? 야만인들은 기마술에 뛰어나지 않습니까. 도망가면 말짱 헛수고인데요? 우리가 기사가 많기는 하지만, 지속력이 좀 떨어지지 않습니까?”
“페르디움과 연계해서 기마병을 지원받으면 돼. 보병 중 일부만 뽑아서 보급을 맡기고, 나머지는 영지나 지키라고 해.”
클로드와 가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적인 파괴력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게 펜리스 기사단이다. 숫자로 밀어붙이는 데에는 당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뒤를 받쳐 줄 기마병들만 있으면 힘을 아낄 수 있기에 조금 더 긴 전투가 가능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좋아. 요새 반대하는 시간이 좀 짧아져서 아주 마음에 들어.”
‘사람 말을 안 들어서 반쯤 포기한 건데.’
그래도 벌이는 일마다 다 성공하니 믿음도 조금 생기긴 했다.
가신들의 속내야 어찌 되었든, 반대가 줄어든 건 지셀 입장에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군대를 이끌고 자리를 비우는 일이니, 최대한 빨리 처리할수록 좋았기 때문이다.
‘해럴드와 아멜리아의 발이 묶여 있을 때 빨리 처리해야 해. 공작가도 친왕파 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지금이 기회야.’
그래서 운송 문제로 공사가 지연되는 와중에도 아멜리아의 반란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사실 말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야만인들을 한번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더 큰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뒤를 안정시켜야 하니까.
중요할 때 페르디움의 전력을 나눠야 하는 상황은 좋을 게 없었다. 뒤통수가 근지러우면 시원하게 긁고 가야 한다.
“이것도 다 계획에 있던 일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빠르게 움직이자고. 기사들 전부 소집해.”
지셀의 명령에 모든 이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전력도 상승하고 식량도 넘치니 다른 사람들도 자신감이 꽤 생긴 상태였다.
누가 뭐래도 이 북부에서 한 손에 꼽히는 영지가 되지 않았던가.
클로드는 전쟁 준비를 하며 영지의 분위기를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다.
‘신기하긴 하네. 이 모든 게 영주의 미친 짓 덕분에 이루어진 거라니. 뭐…… 조금쯤은 협조해 줄까?’
클로드는 자신이 언제나 강제로 협조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애써 머리에서 지웠다.
어느새 사람들에게 이런 자신감을 심어 주고, 그 자신감에 어울리는 힘도 키워 준 걸 보면 참 대단한 영주긴 했다.
그렇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출정 준비를 하던 클로드에게 지셀이 와서 말했다.
“너도 간다. 짐 챙겨.”
“네? 왜요? 제가 왜 가요? 저 싸움 진짜 못하는데요?”
“참모 및 후방 지원.”
“…….”
클로드는 격렬하게 반대하지 않았던 걸 무척이나 후회했다.
* * *
와아아아아!
북방 요새에서는 야만인들과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올라가라!”
수많은 야만인이 북방 요새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말을 타기 좋은 가죽 바지와 짐승의 털로 만든 상의를 입고 있었다.
해골 모양의 투구를 쓰고 전투 도끼를 든 모습은 그들의 호전적인 성향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했다.
성벽을 오르는 야만인 전사들을 쳐내며 즈발터가 병사들을 독려했다.
“막아라! 충분히 격퇴할 수 있다!”
소수 부족 6곳이 연합해 요새를 공격했다. 생각보다 많은 수였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을 듯했다.
즈발터가 걱정하는 건 요새가 점령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큰일이구나. 우회해서 들어가고 있을 텐데.’
야만인들도 자신들이 공성전에 약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요새를 공격한다 해도 실제로 점령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페르디움의 병력을 이곳에 묶어 두는 역할에 불과했다.
진짜는 약탈을 위해 움직이는 별동대였다. 요새를 공격하는 자들 외에 나머지는 북방의 여러 마을로 들어가 약탈을 벌이는 것이다.
사실 이런 방법은 야만인들도 피해가 크기에 거의 쓰지 않는다.
하지만 기근이 심하다 보니 이들도 나름대로 강수를 둔 것이었다. 어쨌든 자신들도 부족민들을 먹여 살려야 했으니까. 심지어는 자기네들끼리도 싸움이 더 잦아졌다.
“형님! 아니, 영주님! 이러다가는 북부에 있는 다른 영지들 몇 군데는 또 침공당할 겁니다. 그 새끼들은 우리한테 책임을 전가할 거요!”
“끄응…….”
즈발터도 앓는 소리를 내었다. 욕먹는 거야 한두 번이 아니니 상관없다. 하지만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 나갈 걸 생각하니 속이 끓어올랐다.
도대체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요새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예전보다 형편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전력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상황인 건 여전했다. 야만인들은 저 너른 북방의 대지에 수없이 많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나가서 싸우다 피해를 크게 입은 게 소문이 난다면 다른 야만인 부족들이 연합해서 또 쳐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깎이고 깎여 나간다면 결국 이곳은 무너진다. 다른 방법이 없어…….’
지셀은 클로드에게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그리 녹록한 상황이 아니었다.
다른 영주들은 자신의 병력을 아끼려고 대충 지원만 해 주고 모른 척한다. 공작파의 귀족들은 이곳에 관심도 없다. 친왕파는 공작파를 견제하느라 신경도 못 쓰고 있다.
오직 페르디움만이.
이곳에서 오랜 시간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지셀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려 했건만……. 이렇게 벌써 연합해서 쳐들어올 줄이야.’
즈발터는 아쉬움을 털어내려 몇 번 고개를 젓고는 다시 크게 외쳤다.
“어서 격퇴해라! 저놈들이 물러나면 최대한 빨리 추격대를 꾸린다!”
그 말에 기사와 병사들도 이를 악물고 전투에 임했다.
“이 개자식들아!”
“그만 좀 처와라!”
그간 실력도 늘고 형편도 나아진 덕분에 이들의 사기는 낮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해소되지 않는 피로와 고단함 탓에 다들 만성적인 우울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걸 단지 긍정적인 생각과 그간 쌓인 증오심을 불태우며 버텨 내고 있을 뿐이다.
버티지 못한 자는 결국 떠나간다. 페르디움은 그래서 항상 기사 부족에 시달렸고, 예전 엘레나를 납치했던 쟈말과 필립 같은 배신자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즈발터도 잘 알고 있다. 책임감으로만 버티기에는 이곳이 얼마나 힘든 곳인지.
“괜찮아! 괜찮아! 우리는 언제나처럼 승리할 것이다!”
그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다. 지금 저들이 물러난다 한들 진짜 승리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야만인들이 통합되지 않고 자기 부족끼리 움직이기에 그나마 이 정도라도 버틸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즈발터는 사랑하는 가족과 영지민들, 더 나아가 왕국을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즈발터는 고단한 눈으로 전장을 둘러보았다.
‘이제 나도 늙었구나…….’
젊고 패기 넘치던 북방의 늑대는 점점 약해져 갔다.
실력은 더 강해지고 연륜은 더 쌓였지만, 마음은 북방의 거친 바람에 매일같이 깎여 나갔다.
그리고 마음이 약해지면 그 몸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쉬고 싶구나.’
그 책임감 강한 즈발터마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니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페르디움의 모든 이들은 훌륭한 영주인 즈발터를 끝까지 따랐다.
그에게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모두를 보살펴 주고 사랑하는 인덕, 힘들어도 절대 자신의 의무를 놓지 않는 책임감.
페르디움의 사람들은 그 고결한 태도에 감화되어 목숨마저 아끼지 않고 이 힘든 여정을 따르는 것이다.
지쳐 가는 페르디움군과 달리 야만인들은 갈수록 기세등등해졌다.
오죽하면 현재 어떤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지 잊을 정도였다.
“야야! 조심해! 이 등신들아!”
“이 미친 새끼들아! 오늘은 점령하러 온 거 아니라고!”
“몸 사리고 시간만 끌라고!”
곳곳에서 야만인 대전사들이 전사들을 통제하려 했지만, 전사들의 호전적인 성격 탓에 통제가 잘 안 되었다.
야만인 전사들은 대부분 전투를 즐기는 성향인지라, 피를 보고 다들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이다.
원래 계획은 페르디움군의 발만 묶어 놓고 다른 전사들이 약탈해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맛이 간 놈들이 너무 열정적으로 요새를 공략하는 바람에, 갈수록 전투가 과격해지며 야만인 전사들의 피해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촤아악!
“끄아아악!”
“죽어! 이 새끼들아!”
“너나 죽어라! 이 개자식들아!”
전투가 과열될수록 서로 악이 받쳐 감정이 쌓여 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싸움은 공격하는 쪽보다 막는 쪽이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야만인 대전사들은 곳곳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제 빠져!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한다!”
“한 이틀만 더 하면 돼! 그러면 다른 놈들이 식량을 가지고 올 거야!”
“이 새끼들은 병신이야! 북방의 호구 새끼들아! 크하하하!”
야만인들은 크게 웃었다.
피해는 크지만 어쨌든 요새 병력의 발을 완전히 묶었다. 식량이 부족해서 온 거긴 하지만 역시 이렇게 싸우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야만인들은 페르디움군을 조롱하며 썰물처럼 물러나기 시작했다.
페르디움군은 피곤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적이 큰 피해를 보고 물러나도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지 않았다.
실제로 이건 진짜 승리가 아니었으니까.
이 순간에도 다른 놈들이 사방으로 우회해 왕국의 북부를 침략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요새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무력감과 굴욕이 그들을 덮쳤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힘들다…….’
페르디움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예전보다 더 강해졌지만, 그들의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고단함도 더 커져 갔다.
‘이제 쉬고 싶어…….’
‘언제쯤 이놈들과의 싸움이 끝이 날까…….’
‘누군가가 제발…….’
하지만 그건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일 뿐이다.
이건 끝나지 않는 일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기서 도망가거나 죽어야만 이 일이 끝날 것이다.
그래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이야말로 이제 이곳에 남은 마지막 정예들이자, 왕국의 북방을 지킨다는 긍지로 살아가는 자들이었으니까.
그렇게 무기력하게 야만인들이 물러가는 걸 보고 있던 한 기사가, 저 멀리에서 일어나는 먼지구름을 보고 중얼거렸다.
“뭐지? 추가로 오는 건가?”
이곳에서 말을 끌고 돌아다니는 군대는 야만인들밖에 없었다.
본래는 소수 단위로 움직이는 놈들이 이렇게까지 모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저놈들도 기근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었다.
“다시 전투 준비를 해라! 후속 부대가 오고 있다!”
기사들이 곳곳에서 고함을 질렀다. 여기서 야만인들의 병력이 더 충원되면 힘들어질 것이 뻔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이곳을 지키는 게 이들의 임무였으니까.
다들 쉬지도 못하고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다시 무기를 들었을 때.
한 기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중얼거렸다.
“어, 어? 저, 저 깃발은?”
검은 바탕에 하얀 늑대가 새겨진 페르디움의 문장과 매우 닮은 형태. 오직 늑대의 색깔만 붉게 바꾼, 펜리스의 문장이었다.
촤아아아악!
북방의 강자로 새로이 떠오른 군대의 상징.
곳곳에서 달려오는 무리 위에 붉은 늑대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그 모습이 잘 보였다.
두두두두두!
땅을 부술 듯이 달려오는 군마들, 그리고 가장 앞에서 그들을 이끌고 있는 자.
그 정체를 알아챈 한 병사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대공자님이다! 대공자님이 군대를 끌고 왔다!”
지셀이 야만인들의 뒤쪽에서 요새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