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아니, 넌 돌아가야 해. (1)
펜리스의 초대장을 받은 각 영지의 공자들은 대부분 연회에 참석했다.
요새 북부에서 가장 잘나가는 젊은 귀족은 단연코 지셀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와 인맥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중 레이폴드의 4공자 데이븐은 조금 더 특별한 초대를 받았다. 초대장만 보낸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람을 보낸 것이다.
“그래……. 자네 이름이 로웰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펜리스 백작님의 명을 받아서 왔습니다.”
“크흠흠, 내가 그 친구가 성공할 줄 알았지. 예전에 무척 친하게 지낸 적이 있어. 그 누구더라……. 맞아! 케인이라고 그 친구 사촌도 있었어. 셋이 사고도 좀 쳤었지.”
데이븐은 부러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지셀과의 예전 친분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사실 친분 따위는 없었다. 아멜리아의 약혼자라 그나마 사람 취급만 해 줬을 뿐, 데이븐도 은근히 지셀을 무시하곤 했다.
그래도 사람까지 보내며 자신을 부른 걸 보면 지셀도 나름대로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데이븐은 꽤 뿌듯함을 느꼈다.
바로 연회에 참석하겠다는 답장을 적으려던 그에게 로웰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영주님께서 최대한 비밀리에 영지로 찾아와 주셨으면 한다고 전하셨습니다. 준비는 저희가 해 드리지요.”
“뭐? 왜?”
데이븐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가는 곳을 공개하지 않고 움직이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비밀리에 움직이다가 상대가 자신을 해하거나 억류하면 도움을 받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어지간히 친하고 믿을 만한 사이가 아니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러자 로웰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답했다.
“친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소문내기 곤란한 연회를 준비하고 있어서요.”
방탕하게 노는 귀족들은 은밀하게 모여서 놀 때가 있긴 했다. 어디 소문나면 안 좋은 행위들을 하는 연회다.
하지만 이것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믿을 만한 측근에게는 가는 곳을 밝히고 간다.
거기다 사실 자신은 지셀과 그리 친하지도 않았다.
“크흠흠, 그게 오랜만에 보니까, 예전만큼 친하지는…….”
거부하려는 데이븐에게 로웰이 다른 편지 하나를 건넸다.
그 편지를 읽어 내려갈수록 데이븐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며 조금씩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저희 영주님께서 예전부터 공자님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서, 설마 그런 취향……? 나도 사실…….”
“절대 아닙니다.”
단호하게 끊는 로웰의 말에 데이븐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편지에는 현재 데이븐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레이폴드 백작은 자식들이 많다. 특히 레이폴드의 대공자는 아버지를 닮아 욕심이 많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다.
대공자가 동생들을 죽이려고 한다는 건 알게 모르게 널리 퍼진 사실이었다. 어쨌든 백작의 피를 이은 자라면 누구든 후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공자들도 살기 위해 파벌을 만들고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는 중이었다.
데이븐도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을 쳤지만, 제대로 된 세력조차 없었다.
매일매일 머리털이 빠질 정도로 고민하고 도망까지 생각할 정도로 겁에 질려 있는데, 마침 지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황에 관한 설명을 빼면 결론은 단순명료했다.
[내가 널 후원해 주겠다. 레이폴드의 주인이 되게 해 주지.]
지셀은 현재 브랜포드 후작을 등에 업고 북부 전체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제는 고위 귀족인 백작의 위치까지 올랐다.
만약 지셀이 공식적으로 자신을 후원한다고 발표만 해 준다면 형들도 자신을 함부로 건들 수 없게 된다.
거기에 펜리스 영지는 식량과 철광석이 넘치는 곳이다. 그에게 후원을 받는다면 빠르게 세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이 영 사라지지 않았다.
‘으…… 어떻게 하지? 믿고 가 봐도 되나? 혹시나 날 인질로 잡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살짝 고민하고 있는데 로웰이 절묘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저희는 공자님을 데리고 있어도 득이 될 게 없습니다. 오히려 위험 부담이 커질 뿐이죠. 혹여 안 좋은 일이 생길까 하는 걱정은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뭔가 좀 기분이 나쁜데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남아 있었다.
“그러면 왜 날 후원하겠다는 거지? 형들도 있는데.”
“이미 세력을 갖추신 분들 아닙니까? 그런 분들은 고마움도 덜한 법이지요. 저희 영주님은 앞으로 레이폴드를 차지하는 분과 돈독한 사이가 되길 원하십니다.”
맞는 말이었다. 예로부터 투자는 가장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곳에 하는 게 정석이었다.
세력조차 없는 자신에게 투자한다면 이득도 곱절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셀의 뜻을 이해하니 데이븐의 가슴이 갑자기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내가…… 레이폴드의 주인이 된다고?’
자그마치 수백 년간 북부의 대영지를 자처하던 영지다. 형들 때문에 레이폴드를 차지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어떻게 하면 목숨을 이어 갈 수 있을지 고민만 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셀의 제안을 듣자 가슴속 깊이 숨겨져 있던 야망과 욕심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그의 눈에 살기가 맴돌았다. 그간 형들에게 억눌린 데 대한 반발심이 뒤늦게 올라온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죽이고 싶었다.
‘흐흐흐……. 내가 레이폴드의 주인이 된다는 말이지?’
그 핏줄은 어디 안 가는 것일까? 데이븐의 얼굴이 잔인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대충 10년 정도만 버티면 충분한 세력을 갖출 수 있겠어……. 내가 여기만 차지하면……. 지셀 따위도 나한테 함부로 할 수 없겠지. 레이폴드야말로 북부의 최강자니까. 아무렴, 혈통부터가 다르지.’
로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데이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만 봐도 욕심이 덕지덕지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데이븐은 로웰과 많은 얘기를 나누며 결정을 내렸다.
“좋아, 내 펜리스 백작님을 만나 보도록 하지. 은밀하게 가야 한다고 했지? 준비를 도와줄 수 있나?”
“그럼요, 제가 또 그런 데 전문입니다. 맡겨만 주시지요.”
두 사람은 빠르게 움직였다. 대역을 세우고,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만나는 사람을 최소화했다.
로웰이 데리고 온 첩자들이 사용인들의 자리를 채웠다. 이들은 레이폴드 백작의 생일에 대역과 함께 마차만 가져다 놓고 도망갈 계획이었다.
그렇게 흔적을 지우고 모든 준비를 마친 데이븐은 바로 펜리스로 가 지셀을 만났다.
“펜리스 백작님, 잘 지내셨습니까?”
“오, 데이븐! 오랜만이야. 이야, 얼굴은 하나도 안 변했네. 잘 지냈지?”
지셀은 데이븐을 보며 과하게 반겨 주었다.
물론 데이븐은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셀이 연회를 연 것은 주변 영지에 들어갈 정보에 조금이라도 혼선을 주기 위해서였다.
은밀한 곳에서 만난 데이븐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물었다.
“그나저나 절 도와주시겠다고…….”
“그래, 그런데 아직 때가 안 됐어. 어이, 이 친구 좀 조용한 곳에 가둬 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네?”
그렇게 지셀의 손아귀에 들어온 데이븐과 그의 수하들은 바로 감금되고 말았다.
“야이! 개자식아! 날 도와준다며! 날 속인 거냐! 우리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데이븐은 몇 날 며칠을 난리 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속았다는 생각에 분함이 앞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이 생겼다.
‘왜, 왜 날 가둔 거지? 날 죽이려는 건가? 날 인질로 삼아서 뭘 하려고?’
그렇게 정신병이 걸릴 거 같은 상태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데이븐은 드디어 풀려났다.
그리고 그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했다.
“아멜리아 아가씨가…… 반란을 일으켜 레이폴드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기사들이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자신도 알고 있는 레이폴드의 기사였다.
지셀이 뿌려 놓은 첩자들이 겨우 도망치거나 살아남은 기사 몇 명을 구출해 온 것이다.
“혀, 형들은? 형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모두 죽었습니다……. 공자님들을 따르는 가신들과 기사들, 지휘관들 또한 전부 처형당했습니다.”
“어, 어떻게 그런…… 아,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떻게 됐지? 위르겐이 있잖아! 북부제일검이 있잖아!”
“위르겐 단장님도 죽었습니다. 영주님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죄송합니다.”
데이븐은 처음에 믿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서 소문이 다 퍼지자 결국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 아멜리아가…… 그년이 어떻게, 어떻게 반란에 성공을…….”
아무런 힘과 세력도 없는 그녀가 어떻게 반란에 성공할 수 있었던 말인가! 저택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고 사는 여자가 말이다!
넋이 나간 데이븐에게 지셀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왜 널 가둬 놨는지 알겠지? 내가 지금 너 살려 준 거야.”
데이븐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자신은 돌아갈 곳마저 잃고 말았다.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이제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하고 무시했던 아멜리아에게서 도망쳐 다녀야 했다.
반란에 성공한 그녀가 계승권을 지닌 자신을 살려 둘 리가 없다.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것이다.
데이븐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외쳤다.
“배, 백작님! 저 좀 살려 주십시오! 레이폴드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여, 여기서 살게 해 주십시오!”
자신이 다른 영지에 있는 걸 알면 암살자들을 보낼 게 분명하다.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곳은 북부에서 펜리스와 데스몬드밖에 없다.
그 두 영지가 아니면 다른 지역이나 수도까지 도망가야 하는데, 북부 밖으로 무사히 나갈 자신도 없었다. 암살자들이 올까 봐 두려웠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셀이 무감정하게 말했다.
“아니, 넌 돌아가야 해.”
“네? 그, 그러지 마시고 제발 살려 주십시오!”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그럴 거면 자신을 뭐하러 감금까지 시키며 살려 줬단 말인가!
지셀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돌아가라. 가서 아멜리아하고 싸워. 내가 식량을 충분하게 지원해 주도록 하지. 죽기 싫으면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할 거다.”
“식량만 가지고 어떻게 싸웁니까! 싸울 사람이 있어야 싸울 거 아닙니까!”
지셀은 지도를 크게 펼쳤다.
그는 레이폴드와 카발디 지역의 중간쯤을 가리키며 말했다.
“레이폴드의 충성스러운 봉신, 발루아 남작이 남아 있다. 그곳으로 가라. 그가 널 지켜 줄 것이다.”
발루아 남작은 전생에 아멜리아의 반란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웠던 레이폴드의 봉신이다.
수성 능력이 뛰어난 그는 끝까지 레이폴드 백작의 살아남은 후계자를 찾으려고 애썼다.
전생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일이 벌어졌던 터라 식량 사정은 조금 개선이 되었지만, 그래도 가뭄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황은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식량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도 무려 3개월이나 아멜리아의 공세를 버텨 냈다.
결국 후계자가 모두 죽었다고 판단하고 나서야 발루아 남작은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만약 데이븐이 합류한다면 발루아 남작은 끝까지 싸울 것이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아멜리아는 뛰어난 지휘관이지만 공성전을 치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발루아 남작도 만만치 않은 명장이지. 점령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발루아 남작에게 충분한 식량을 지원해 준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치고받고 싸우면 지셀에게는 무조건 이득이었다.
‘레이폴드의 전력도 이 기회에 최대한 깎아 놔야 해.’
북부를 제패하려는 지셀에게 레이폴드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멜리아와는 상관없이, 레이폴드의 전력 자체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반란을 이용해 아예 레이폴드 자체의 전력을 깎을 심산이었다.
가장 좋은 건 레이폴드 백작이 데스몬드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었지만, 아멜리아 때문이든 가뭄 때문이든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데이븐을 납치해 온 것이었다. 발루아 남작이 데이븐을 보호한다면 아멜리아는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발루아 남작과 아멜리아가 싸우는 사이에 지셀은 따로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지셀은 데이븐에게 경고를 건넸다.
“전쟁을 지휘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특히 아멜리아가 직접 나타나면 말이야.”
“네?”
“전부 발루아 남작에게 맡겨라. 섣불리 네가 손을 대면 모든 게 망가질 테니까.”
데이븐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발루아 남작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레이폴드의 남쪽 지역을 지키는 봉신이자, 뛰어난 기사들과 강병을 다룬다고 들었다.
데이븐이 생각하기에 아멜리아는 운 좋게 자리를 차지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발루아 남작이 자신을 도와만 준다면 정말로 레이폴드를 차지할 수도 있을 터였다.
식량은 지셀이 지원해 준다고 하니 그 부분도 걱정이 없었다.
‘아멜리아는 검도 쓸 줄 모르고 병력 지휘도 할 줄 몰라. 항상 저택에서 책이나 읽고 영지민들과 어울렸으니까. 그냥 밑에 있는 놈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대충 상징 삼아 세워 놓은 게 분명해. 그년이 영지민들에게 인기는 많았으니까.’
아멜리아에 대해서는 지셀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 어쨌든 그녀와는 가족인 자신이 더 오래 보지 않았겠는가.
데이븐의 눈에 서린 공명심과 탐욕을 본 지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성문을 열고 나가면 너는 그날로 죽는다.”
“…….”
“만약 네가 지휘권을 잡으면 지원을 끊을 테니 그렇게 알아라.”
“아, 알겠습니다.”
아멜리아의 진짜 역량은 오직 지셀만이 알고 있었다.
그녀의 무서운 점은 야전에서의 임기응변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허를 찌르는 움직임과 상황 판단 능력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그녀는 대륙에서 손꼽히는 명장이라 할 수 있었다.
‘공작가도 아멜리아의 진짜 능력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그냥 똑똑하고 제법 정치 감각이 있는 여자로만 알고 있지. 다들 우습게 보고 있어.’
전생에 빅토르도, 해럴드도, 공작가의 뛰어난 기사들과 지휘관들도 모두 지셀에게 목이 날아갔다.
마지막 전투를 제외하고는 그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대륙 7강, 용병왕의 힘은 그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누구도 전장에서 지셀과 맞서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오직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지셀과 여러 번 맞붙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아멜리아뿐이었다. 초인의 힘으로도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
오히려 지셀이 없는 전장에서는 언제나 그녀가 승리했다.
데이븐 따위는 성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바로 목이 따일 것이다.
믿을 건 수성의 대가인 발루아 남작의 능력뿐이다. 그가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게 지원할 생각이었다.
‘기회가 되면 내 쪽으로도 끌어오고.’
데이븐은 지셀의 속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일단 몸을 사리는 게 중요했다. 상황이야 직접 가서 판단하면 된다.
자신이야말로 이제 유일하게 남은, 레이폴드의 진정한 후계자였으니까.
“그럼 언제쯤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저를 안전하게 그곳까지 데려다주실 수 있겠습니까?”
“따라와.”
지셀을 따라 처음으로 영주성 밖으로 나간 데이븐은 입을 쩍 벌렸다.
수많은 수레에 엄청난 식량이 실려 있다. 거기에 백 명쯤 되어 보이는 기사들과 2천여 명의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지셀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