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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26화 (226/269)

226화 맛있긴 하네. (2)

‘뭐, 뭐지? 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거지?’

브란델은 기습하려던 생각도 잊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해독제를 먹은 자신도 반응이 올라오고 있는데 두 잔이나 마셔 놓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잠시 멍하게 있자 지셀의 말이 들렸다.

“뭐 해? 안 마시고?”

“아, 네, 네.”

갑작스러운 상황에 습격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당황한 브란델은 일단 한 잔 더 마시고 지셀을 치기로 했다.

그르르르…….

뱃속에서 더 확실하게 반응이 왔다. 해독제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뜻이었다.

‘크읏, 독은 문제없어. 저놈이 독에 늦게 반응하는 체질인 건가?’

사람마다 독에 반응하는 정도는 다르다. 브란델로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지셀이 한 잔을 더 따르더니 단번에 마셔 버렸다.

‘이, 이번에야말로 반응이…….’

“맛있네. 자, 한 잔 더 마셔 봐.”

브란델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손도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치, 침착해. 여기서 실수하면 안 된다.’

지셀의 옆에 있는 기사들이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상대방의 경계심을 키워 주는 꼴이 될 것이다.

‘마시는 척하면서 바로 쳐야겠다.’

브란델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잔을 들었다. 힐끔 지셀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평온 그 자체였다.

이럴 리가 없다. 당황하던 그때, 브란델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소문에 속았구나! 이놈은 마나가 없거나 현저하게 적은 놈이야! 그러니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다!’

그간의 활약은 부풀려진 게 분명했다.

물론 결과가 있으니 모든 걸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휘력이 뛰어날지언정 그 자신의 무력은 형편없는 게 분명했다.

브란델은 천천히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독 때문에 코어가 있는 부분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될 거 같았다.

너무 천천히 잔을 들어 올렸을까? 다시 지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 마셔? 술을 잘 못 마시나?”

그러자 옆에서 클로드가 깐족거리며 끼어들었다.

“마시기 싫으면 내가 마시면 안 돼요?”

클로드가 보기엔 몇 잔이고 마신 둘 다 멀쩡해 보이니, 마셔도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고급술은 구하기도 힘들었으니까.

군침을 흘리는 클로드를 보며 지셀이 픽 웃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수작을 좀 부린 거 같으니, 안 먹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그 말을 듣자마자 브란델이 잔을 집어던지며 지셀에게 손을 뻗었다.

그걸 신호로 브란델의 호위를 가장하고 서 있던 네 명의 암살자들이 움직였다.

“으허허헉!”

클로드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웬디가 그의 목덜미를 잡고 집어던졌다. 그의 몸이 뒤로 휙 밀려나며 나동그라졌다.

가장 먼저 움직인 브란델의 소매에서 검이 쑥 뽑혀 나오며 지셀의 머리를 노렸다.

‘성공이다!’

브란델은 움직이는 순간부터 성공을 의심치 않았다. 마나도 제대로 없는 놈이 이 일격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어?’

검을 앞으로 내지르던 그 찰나의 시간, 브란델은 지셀이 하품을 하는 걸 보았다.

분명 미간을 확실히 노리고 찔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검은 옆으로 빗나가 있었다.

푹.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목에 뭔가가 날아와 꽂혔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용도로 두었던 펜이었다.

‘뭐……지? 마나도 없는 놈이…….’

브란델의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그의 귓가에 지셀의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내 펜이 네 칼보다는 강하군.”

지셀은 브란델의 시체에서 펜을 뽑아내어 계약서 위에 놓았다. 점점이 떨어진 붉은 핏물이 계약서에 쓰인 글씨를 일부 가렸다.

“계약은 취소네. 위약금을 좀 받아야겠어.”

브란델 옆에서 같이 움직였던 암살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미 길리언과 웬디가 움직여 적들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앙!

웬디는 클로드를 공격하던 암살자의 검을 단검으로 가볍게 막았다.

“이년이!”

암살자가 재차 공격하려던 찰나, 웬디가 순식간에 그의 품으로 파고들며 손을 뻗었다.

그녀의 반지에서 뾰족한 침이 여러 개 튀어나와 암살자의 목을 꿰뚫었다.

푸욱!

“그르르륵…….”

강력한 독이 묻은 침에 맞자마자 암살자는 피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스륵.

상대를 죽인 웬디는 지체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노리고 다른 암살자의 검이 날아왔다.

차앙!

빠르게 허리 뒤를 스치고 제자리로 돌아온 웬디의 양손에는 어느새 두 개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휙!

카앙! 카앙!

암살자는 빠르게 날아오는 단검을 쳐 냈다. 단숨에 두 개의 단검을 막아 낸 암살자는 바로 웬디를 공격하려고 했다.

푸욱!

이마에 세 번째 단검이 꽂히지 않았다면 말이다.

“대체…… 언제……?”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클로드도 중얼거렸다.

“너 진짜 세구나? 그런데 좀 치사한 거 같기도…….”

웬디는 경멸 어린 눈빛으로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그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다른 쪽에 있던 암살자 둘은 더 허무하게 죽었다.

길리언은 공격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더 가까이 접근하며 손을 뻗었다.

텁!

무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냥 맨손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잡고 서로의 머리를 강하게 충돌시켰을 뿐이었다.

퍼어어억!

암살자들은 제대로 된 공격도 해보지 못하고 머리가 깨져 죽었다.

그 모습을 본 펜리스의 기사들은 혀를 내둘렀다.

‘무슨 노인네가 갈수록 더 강해져.’

‘도대체 뭘 먹은 거지?’

‘저, 저 근육 꿈틀거리는 것 좀 봐라. 회춘이라도 한 건가?’

길리언의 실력은 지셀을 만나고 난 뒤부터 더 빠르게 늘고 있었다.

원래도 강한 자였는데 부족한 부분을 지셀이 채워 주었기 때문이다.

무려 대륙 7강의 자리에 올랐던 지셀이 전해 주는 깨달음이다. 길리언 정도쯤 되는 강자에게는 수련보다 이쪽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순식간에 브란델과 암살자들이 처리되었다. 옆에 있던 펜리스의 기사들은 할 일도 없었고 거들 생각도 없었다.

바로 옆에 괴물들이 있는데 뭐 하러 끼어들겠는가?

거기다 영주가 뭘 먹든 걱정은 하나도 되지 않았다.

‘블러드 퓌톤의 독도 다 먹은 사람이 뭘 못 먹겠어.’

지셀의 뱃속이 강철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는 건 이미 측근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인부들로 위장하고 있던 암살자들도 곳곳에서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그들은 일단 수량을 확인하고 있던 행정관들부터 노렸다.

아니, 노리려고 했다.

퍼억!

갑자기 행정관들이 품에서 무기를 꺼내 암살자들을 먼저 기습했다.

그중에서 유난히 덩치가 크고 머리가 빛나는 사내가 옷을 찢으며 외쳤다.

“내가 바로 근육의 고든이다!”

“크윽! 어쩐지 행정관치고는 덩치가 너무 크더라니!”

암살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상황을 보니 이미 적들은 계획을 알고 준비한 것만 같았다.

행정관들은 역으로 기습했음에도 암살자들을 쉽게 처리하지 못했다. 수준 높은 데스몬드의 기사들도 중간중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길어지는 전투로 주위가 난장판이 되어 갔다. 지셀은 팔을 빙빙 돌리며 웃었다.

“자, 위약금을 받을 시간이네. 이제 이거 다 우리 거지? 나머지도 빨리 다 쓸어 버리자고. 우리 애들 다치겠다.”

엄청난 자원을 공짜로 얻게 됐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지셀은 브란델 상단의 주인이 해럴드 데스몬드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전생에는 널리 알려져 있었던 사실이었다.

공작가가 반란에 성공하고 해럴드도 북부를 손에 넣은 뒤였으니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상단의 주인이 자신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한다? 물량이 너무 많으니 밖에서 보자고?

“그럼 뭐 뻔한 거지.”

설령 브란델의 정체를 몰랐어도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진짜 실력은 적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독 또한 마찬가지였다. 원래도 지셀에게는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 않았다. 몸 안에서 독 성분을 분리해 가둘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마나 운용 능력 덕분이었다.

그런데 블러드 퓌톤의 독을 마신 뒤에는 그럴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냥 마시면 다 살이 되고 피가 된다.

“저거 조금 있다가 마저 마셔야겠다.”

꽤 강력한 독인지 마나도 조금이지만 더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지셀까지 끼어들자 암살자들은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아직 초급 수준인 펜리스의 기사들이 당할까 봐 힘도 조금 더 과하게 썼다. 그러니 암살자들이 당해 낼 리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쓰러진 암살자는 덜덜 떨며 말했다.

“소,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강해도 너무 강했다. 자신들도 어디 가서 떨어지지 않는 실력인데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상대하고 있으니, 이건 숫제 괴물과 다름이 없었다.

성문을 홀로 부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그렇게 뛰어난 자들은 어릴 때부터 검에 재능이 있다고 명성을 날리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지셀에 관한 소문은 망나니라는 것뿐이니, 검술에는 다소 손색이 있을 거라는 게 세간의 평이었다.

그래도 만전을 기해 실력이 있는 자들만 추리고 몇 번이나 사전 연습도 했다.

이렇게 쉽게 역으로 당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퍼억!

지셀은 별말을 하지 않고 암살자의 목을 날렸다.

그렇게 정리가 끝나자 클로드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왜 말 안 해 주셨어요? 첫 거래라 혹시 몰라서 기사들을 행정관으로 위장시키셨다면서요? 이번에도 사실 알고 있었던 거죠?”

“그래. 그런데 싸울 거라고 미리 말하면 너 잔머리 굴리다가 도망갈 티 다 낼 거잖아.”

“…….”

분하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 사실 기사들이 행정관으로 위장한 순간부터 그냥 오지 말까 고민했었다.

민망해진 클로드가 말을 돌렸다.

“어쨌든 이거 다 공짜죠? 완전 대박!”

기뻐하는 클로드만큼 지셀도 상당히 만족했다. 자신이 이득을 본 만큼 해럴드는 큰 손해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양이면 잠깐은 재정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거기에 암살자가 아닌 진짜 인부들은 살아남았으니 저쪽에 곤란한 소문도 날 것이다.

직업을 잃은 그들에게 위로금을 조금 주면서 여기저기 떠들라고 부채질할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노골적으로 나를 노리는군. 그렇다면…….’

해럴드가 저 정도의 자원과 귀한 상단을 버리는 패로 썼다는 건 다른 의미가 있었다.

‘아멜리아 쪽에서는 이제 손을 뗐다는 거지. 준비가 끝났거나…… 아니면 권한을 일임했거나.’

레이폴드의 반란은 해럴드가 맡은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공작가에서 그걸 포기할 리는 없으니, 해럴드가 손을 뗐다는 건 결국 아멜리아도 곧 움직인다는 뜻이다.

미래를 꽤 많이 바꾸었어도 이것만은 지셀이 예상했던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역시 반란은 전생과 같은 날 일으키겠군.”

몇 번 고개를 끄덕인 지셀은 높이 쌓인 자원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멜리아라면 어떻게 방해해도 반드시 성공하겠지. 그 여자한테 나름대로 고마운 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발목은 좀 잡아 놔야겠어.”

아멜리아가 신경질 내는 걸 상상하고 지셀은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 * *

도로 공사는 쉴 틈 없이 진행되었다. 각 성과 요새, 마을들 사이에 도로망이 촘촘히 깔리자 클로드는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당장 활용하기는 힘들 거 같습니다.”

지셀도 어떤 것이 문제인지는 알고 있었다.

“운송 수단 때문이지?”

“네. 영지의 말들은 대부분 군마로 쓰고 있으니까요. 말들의 수량이 현저하게 부족합니다.”

길이 아무리 좋아도 빠르게 다닐 말이 없으면 큰 효용이 없다.

하지만 말은 귀한 자원이었다. 가격도 비싸고 쉽게 구하기도 힘들었다.

전투, 수송, 농업 등 다방면에서 널리 쓰이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길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대신 군대의 이동과 보급에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겁니다.”

“흠, 그래. 운송 혁명이 일어나려면 말이 필수지. 그래야 경제도 더 활성화될 수 있으니까.”

뭔가 대수롭지 않은 듯 보이는 지셀의 반응에 클로드가 슬그머니 물었다.

“혹시 말도 구할 계획이 있으십니까?”

없으면 만들고, 그래도 안 되면 강제로 뺏어오는 게 영주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은 만들 수도 없고 뺏을 곳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근히 물었는데 지셀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답했다.

“당연히 말들도 구할 계획이 있지.”

“오오! 역시 우리 영주님! 그게 뭡니까? 이번에는 반대 안 할 테니 말 좀 해 주세요!”

“진짜 반대 안 할 거야?”

뭔가 살짝 불안해지는 말투였다.

최근의 부화기 제작이나 도로 건설 사업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굳이 저렇게 확인하니 불안한 예감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도 클로드는 말이 나온 김에 뻔뻔하게 밀어붙였다.

“네! 반대 안 하겠습니다!”

그 말에 지셀은 피식 웃었다. 지금이야 저렇게 말해도, 막상 지셀이 방법을 가르쳐 주면 다들 거품 물고 반대할 게 뻔했다.

그래서 당장은 얘기해 줄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그 전에 할 일이 좀 있거든.”

‘아씨, 말 안 해 주니까 더 궁금하네? 이게 또 뭐라고 궁금하냐?’

클로드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다 물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뭔데요?”

“연회를 좀 열자. 주변 영지에서 젊은 공자들 좀 초대해 봐.”

“네? 연회요?”

클로드와 가신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셀은 귀족들의 딱딱한 연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연회를 열어도 영지민들과 어울리며 격의 없이 노는 걸 좋아한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귀족들과 연회를 한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젊은 사람들끼리 친목을 좀 다지자는 거지. 우리도 이제 꽤 커졌잖아?”

“으음, 그렇긴 하죠. 이제 영주님도 인맥 관리를 할 때가 왔죠.”

지금이야 그냥 공자 신분이더라도, 어차피 대부분은 뭔가를 물려받을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과 젊을 적부터 어울려서 인맥을 쌓아서 나쁠 게 없었다.

클로드가 그렇게 헛물을 켜고 있을 때, 지셀이 씨익 웃으며 강조하듯 말했다.

“대신 꼭 초대해야 할 놈이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초대해 와. 납치해서라도.”

말을 구하기 전에, 일단 적들의 정신을 좀 빼 놓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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