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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25화 (225/269)

225화 맛있긴 하네. (1)

지셀의 대규모 도로 공사 계획을 들은 가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지셀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번에는 왜 반대 안 해?”

클로드가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도로야 넓고 평탄하면 좋은 건 다 아니까요. 도로야말로 영지의 핏줄이나 마찬가지죠.”

도로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도로가 발전해야 지역 간의 상업 교류가 활성화되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도로는 매우 중요하다. 도로가 잘 닦여 있어야 병력 이동도, 보급도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북부 지역은 도로 공사보다 먹고사는 게 더 급하니 신경을 못 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클로드는 지도를 보며 대충 무언가를 가늠하더니 말을 이었다.

“공사 규모가 너무 커서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습니다. 북방 요새까지 연결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알고 있어. 그래도 어떻게든 연결해야 해. 그래야 페르디움과 유기적인 협조가 가능하니까. 작업에 들어가는 건 문제없겠지?”

“노는 사람들이야 남아도니까요. 그런데 이러면 또 식량하고 돈이 잔뜩 나가겠네요. 도대체 우리는 돈 언제 모아요?”

“나는 돈을 모으는 것보다 쓰는 데 최적화된 사람이야. 쓰는 걸 훨씬 더 좋아하지.”

“…….”

대놓고 저리 말하면 할 말은 없다. 어차피 화장품이며 식량 대금도 잘 들어오고 있고, 이제 곧 고기도 넘쳐나서 팔 수 있을 테니 쓰는 만큼 더 들어올 터였다.

다만 도로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구하려면 평소보다 더 많은 돈을 한 번에 써야 했다.

“상단들을 다시 소집하겠습니다. 고기는 아직 팔기 어렵지만, 식량은 많으니까요. 식량값도 아직 떨어지진 않았으니까 그 돈으로 건설에 필요한 자재들을 더 구하겠습니다.”

“좋아, 돈은 아끼지 마. 무조건 속도가 우선이야. 알겠지?”

“아,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영주님 스타일 다 안다니까요?”

매번 같은 잔소리에 클로드가 투덜거리며 물러났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계획에 맞추기 위해 클로드는 예정했던 날짜보다 이르게 상단들을 소집했다.

요새 북부에서 제일 잘나가는 곳이 펜리스 영지다. 클로드의 손짓 하나에 북부의 상단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캬아, 이게 권력이지. 내가 이 맛에 노예 총관한다.’

호출 한 번에 달려오는 것뿐만이 아니다. 뇌물도 잘 바치고 고개도 넙죽넙죽 잘 숙인다.

클로드는 그들을 닦달해서 다시 자원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식량과 철광석이 넘쳐나니 원하는 건 무엇이든 구할 수 있었다.

만약 이쪽에 넘길 자원이 없는 영지나 상단이라면 인구와 기술자들을 악착스럽게 받아왔다.

어차피 도로 말고도 영지 개발에 필요한 것들은 많았다. 개발 속도가 빠르니 예정보다 조금 일찍 구매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바쁘게 거래를 진행하는 와중에, 제법 규모가 큰 상단의 상단주가 그를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브란델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클로드는 상단의 정보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흠? 저희와는 처음 거래하시는 분이군요?”

“네, 아무래도 활동 지역이 동부 쪽에 더 치우쳐서 말입니다. 물론 북부에서도 꽤 큰 거래를 몇 번 했었습니다.”

과연 로웰이 가져온 정보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대략적인 파악이 끝나자 클로드가 물었다.

“그래요, 저희는 오는 상단 안 막습니다. 어차피 식량을 거래하러 오신 거죠?”

“네, 맞습니다. 이곳에 식량이 넘쳐난다는 소문은 진작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번에 거래를 한번 터 보려고 합니다.”

“음, 우리가 좀 비싸긴 한데……. 얼마나 구하시려고요?”

클로드의 말에 브란델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종이 하나를 건넸다.

“이만큼 가능하시겠습니까?”

“……헐?”

브란델이 요구한 양은 지금까지 거래했던 모든 상단을 통틀어서 최고 수준이었다.

단 한 번의 거래량이, 다른 상단 10개의 거래량을 합한 것보다 더 많았다.

클로드는 믿어지지 않아 다시 물었다.

“진짜…… 이 정도 거래를 하겠다고요?”

“네, 자재를 많이 구매하신다고 하던데 필요하신 걸 말씀해 주시면 맞춰서 가져오겠습니다. 아니면 금화로도 좋고요.”

여유로운 브란델의 미소에 클로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한 번에 대규모로 자원을 구할 수 있으면 자신들도 편하다.

일이 늘어났기에 자원도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불……이죠?”

“그럼요, 저희 상단은 신용도가 꽤 높습니다. 가져온 물건을 확인하시고 식량을 넘겨주셔도 됩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이요?”

“첫 거래이고 큰 금액인 만큼 영주님과 직접 만나 뵙고 거래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왜요?”

클로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차피 모든 거래는 자신을 통해야 한다. 그런데 영주와 직접 거래하겠다는 건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그러자 브란델이 살짝 눈치를 보며 답했다.

“그……. 아무래도 금액이 금액인지라……. 총관님의 소문이 좀……. 대신 앞으로 거래를 계속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총관님과 거래를 진행하겠습니다.”

그 말에 클로드는 할 말이 없었다. 그간 영지의 창고를 채운다고 뇌물을 받아도 너무나 많이 받았다.

지셀의 새로운 별명이 ‘북부의 식량왕’이라면 클로드의 별명은 ‘북부의 뇌물왕’이었다.

‘아씨…… 솔직히 억울한데……. 난 먹은 것도 없다고…….’

그래 봤자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클로드는 고개를 몇 번 저은 뒤,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기다리세요. 영주님께 말하고 올 테니까.”

평판에 대해 할 말이 없는 클로드는 지셀에게 바로 보고를 올렸다.

지셀이 봐도 나쁠 게 없었다. 자원이야 빠르게, 많이 구하면 무조건 좋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큰 거래를 제시했다면 예의상 얼굴을 한 번쯤은 비추는 게 좋긴 했다.

“그런데 뭔가 이름이 익숙한데……. 자료 좀 가져와 봐.”

지셀은 브란델 상단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기억났다. 여기구나?”

“아시는 곳입니까?”

“뭐, 대충.”

지셀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문서를 구겨 뒤로 집어 던진 뒤 말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해. 물건을 가져오면 내가 직접 나가겠다고.”

지셀의 약속을 들은 브란델은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 브란델은 정말 영지에 필요한 자원들을 어마어마하게 싣고 왔다.

그걸 본 클로드는 턱이 빠질 정도로 놀랐다. 겨우 며칠 사이에 저 정도 양을 구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브란델은 클로드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비웃음을 보냈다.

‘후후, 죽기 전에 잘 봐 둬라.’

그는 데스몬드 백작이 지셀을 암살하기 위해 보낸 자였다. 당연히 그가 가져온 자원들도 데스몬드 영지가 이곳저곳에 비축해 두었던 물품들이었다.

데스몬드 백작은 그것들을 모두 버려서라도 지셀을 반드시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브란델은 넋이 나간 클로드에게 말했다.

“그럼……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혹시 물품 확인도 영주님께서 직접 하십니까?”

“그, 글쎄요……. 일단 브란델 씨가 오셨다고 영주님께 바로 전하도록 하죠.”

브란델은 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원들을 쌓아 두었다. 양이 양이니만큼 성안으로 옮기려면 하루 내내 움직여도 모자랄 정도였다.

이런 경우 관례상 바깥에서 거래를 진행하곤 한다. 물건을 옮기는 인력도,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다 돈이기 때문이다.

브란델은 그걸 노리고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모아 왔다.

클로드가 성안으로 사라지자, 브란델은 야외에 협상용 테이블을 세우고 같이 온 수십 명의 인부들에게 손짓했다.

이들 대부분은 데스몬드의 기사, 이번 일을 위해 고용한 암살자들이었다. 실제로 짐을 옮기는 인부들은 몇 되지 않는다.

브란델 주위에 호위 형식으로 네 명이 서고, 다른 이들은 적당히 거리를 벌려 퇴로를 확보했다.

‘어디 몇 명이나 데리고 오는지 보자.’

몇 명이 와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결국 계약서를 쓰기 위해서는 자신과 가까이 서야 할 테니까.

‘실력이 제법 괜찮다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브란델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상급에 이른 기사였다. 설령 지셀이 소문만큼 강하더라도, 기습적으로 주변의 암살자들과 함께 공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조금 기다리자, 지셀이 몇 명의 호위만 데리고 나타났다.

그리고 브란델은 작전의 성공을 확신했다.

‘진짜 미친놈이구나! 겁 없는 놈이라더니 고작 저 정도의 호위만 데리고 나오다니!’

지셀의 주변에는 길리언을 포함해 기사 몇 명이 전부였다. 당장 주변에 있는 암살자들과만 힘을 합해도 죽일 수 있을 듯했다.

그래도 브란델은 뛰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더 확실하게 죽일 방법이 있는데 굳이 조급하게 굴 필요가 없었다.

신중하고 침착한 그이기에 해럴드가 이런 큰일을 맡긴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브란델이라고 합니다.”

“오, 진짜 많이 가져왔네? 좋은 거래 상대가 하나 늘겠어.”

“그럼요. 일단 물건부터 확인해 보시지요.”

지셀이 고갯짓을 하자 행정관 몇 명이 물건들을 확인했다. 양이 너무 많아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었다.

브란델은 정중하게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그사이에 계약서도 확인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러지.”

지셀은 자리에 앉아 계약서를 확인했다. 깔끔하게 작성된 계약서는 생각했던 내용과 다를 게 없었다.

“흠, 뭐 문제없는 거 같네.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새 식량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요.”

브란델은 너스레를 떨며 이런저런 얘기를 건넸다. 제법 입담이 좋아서 지셀도 재미있게 들으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오늘 이렇게 뵙게 된 것도 영광인데 제가 멋진 술을 하나 대접하겠습니다. 큰 거래에 성공한 기념이라고 생각하셔도 좋고요.”

“술? 어떤 술?”

“대륙 최고의 특산품인 ‘레드 드래곤’인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오, 그래?”

‘레드 드래곤’은 고위 귀족도 쉽게 마실 수 없는 고급술이다. 가격을 떠나 수량이 극도로 적기 때문이다.

그런 술을 마다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지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단순한 놈. 비싸면 무조건 좋은가 보구나.’

브란델은 웃으면서 독이 든 술을 준비했다.

사실 독살은 생각보다 실패율이 높은 암살 방법이다.

우선 독을 먹이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단번에 죽일 정도로 강력한 독은 티가 안 날 수가 없었다.

색이나 냄새가 이상한 것도 문제고, 독성이 너무 강해 음식이 타들어 가는 경우도 많았다.

설령 그 문제들을 다 해결했다 한들, 귀족들은 남이 주는 걸 덥석 먹지도 않는다. 그들이 먹기 전에 사용인들이 먼저 맛을 보곤 하니 독살에 성공하는 사례는 드문 편이었다.

하지만 이 독은 조금 다르다.

‘사용인들이 먼저 마셔 봐도 소용없을 거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다. 오직 마나에만 반응하기 때문이다.

몸에 지닌 마나가 많으면 많을수록 독성이 강해진다. 상급 기사 수준에 올라도 독을 억제하느라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단점이라면 냄새가 독한 것이지만, 더 독한 술에 섞어서 그 문제를 해결했다.

이 독은 공작가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것이었다. 공작가 내에서도 제작에 성공한 게 다섯 병이 채 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제작이 어렵고, 자원도 많이 들어 양산할 수가 없었다.

해럴드는 그런 귀한 독을 고민 없이 브란델에게 건넸다. 오직 지셀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영주님 앞이시니 제가 먼저 마시겠습니다.”

의심을 피하고자, 브란델은 갈색빛 술을 잔에 가득 담아 단번에 마셨다. 미리 해독제를 먹은 뒤였기에 한 잔 정도는 마셔도 괜찮았다.

그는 곧바로 지셀의 앞에 놓인 잔에 정중하게 술을 따르며 말했다.

“맛이 아주 좋습니다. 혹여 찝찝하시면 드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선물로 놓고 갈 테니 따로 확인하시지요.”

브란델은 지셀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 정도 거리면 굳이 독을 쓰지 않아도 기습에 성공할 터였다.

만약 옆에 있는 기사가 먼저 마시고 이상을 느끼면 그 틈을 타 공격할 생각도 있었다.

가만히 잔을 바라보던 지셀은 피식 웃었다.

“맛있어 보이긴 하네.”

지셀은 잔을 들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기사들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브란델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살짝 쥐었다.

‘크큭, 멍청한 놈들. 기강이 개판이라더니 사실이구나. 제 주인이 정체도 모르는 걸 마시는데 구경만 하고 있다니.’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신 지셀이 잔을 턱 내려놓으며 말했다.

“와, 내가 살면서 먹어 본 것 중에서 두 번째로 독해. 뭐 이런 게 다 있어?”

브란델의 눈빛이 스산해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인부들의 눈빛도 점점 바뀌었다.

그때 지셀이 아예 직접 한 잔 더 따르더니 훌쩍 마셔 버렸다.

“그래도 맛있긴 하네.”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술을 더 마시는 멍청한 행동에 브란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넌 이제 죽었다! 이렇게 쉽게 일이 풀리다니! 하늘이 우릴 돕는구나!’

설령 지셀이 상급 기사라도 두 잔은 버티기 힘들 것이다. 자신은 미리 해독제를 먹었는데도 벌써 속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 공격 신호를 보내려고 할 때, 갑자기 지셀이 브란델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너도 한 잔 더 해.”

“네?”

“한 잔 더 하라고.”

예상외의 상황에 브란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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