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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23화 (223/269)

223화 될 때까지 한다. (2)

드워프들을 만나기 전에 알포이가 바네사에게 물었다.

“이렇게 성공률을 대폭 올렸는데 꼭 대형 부화기가 필요한가? 농부들에게 소형 부화기를 만들어 주고 환경을 어느 정도로 맞춰야 하는지만 알려 줘도 충분하지 않겠어?”

그렇게만 해도 고기의 생산량은 크게 늘 것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농부들에게 적절한 조건을 유지하는 방법만 알려 주면 될 테니까.

“내가 절대, 절대 귀찮고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그게 더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거지.”

귀찮음이 느껴지는 알포이의 말에 바네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 방법도 쓸 거예요. 그러면 농부들의 재산도 더 늘어날 테니까요. 하지만 영지에서 대규모로 운영하면 농부들 개인에게 맡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산량을 확보할 수 있어요. 영주님이 원하는 것도 그런 거고요.”

농부들 개개인의 고기 생산량도 몇 배가 되는데, 영주도 고기를 쏟아 낸다?

고기의 가격은 크게 내려갈 것이고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파급력을 상상하고 마법사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진짜 어마어마한 사업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바네사가 하자면 하는 거다. 마법사들에게 거부할 권한은 없었다.

그녀는 강제로 마법사들을 이끌고 드워프들과 회의에 들어갔다.

신소재를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갈바릭은 조금 귀찮다는 듯 말했다.

“저울? 수문? 부화기에 그런 걸 만든다고?”

“네네, 무척 정교한 기관이 필요해요.”

바네사는 신이 난 표정으로 드워프들에게 자신이 생각한 개념과 장치를 설명했다.

그녀가 제시한 건 저울을 이용해 물의 무게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물이 증발하면서 남은 무게를 측정하고 일정 이하가 되면 수문을 열어 다시 물을 채우는 장치거든요.”

“무게를 측정? 그러면 그냥 곳곳에 저울을 놓겠다는 건가?”

“아니요, 부화기니만큼 전체적으로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알을 놓는 바닥의 주변에 구멍을 골고루 뚫고 지하에 수조를 놓을 거예요. 그 무게를 측정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호오, 그러면 수조를 놓는 곳의 바닥만 저울 식으로 만들면 되겠군. 그리고 일정 이하로 내려가면 수문을 열어 물을 채우고.”

“맞아요. 물을 증발시키면서 습도를 맞출 거예요. 암탉이 품을 때와 같은 온도로 맞추는 건 저희가 할게요. 이렇게 하면 룬스톤을 최소한으로 아낄 수 있어요.”

바네사는 자신이 생각한 설계도를 보여 주었다. 알을 놓는 바닥의 한층 아래에 저울과도 같은 바닥을 다시 만들고 그 위에 수조를 여러 개 놓는 식이었다.

공학적 지식이 배제된 개념적인 설계도긴 하지만 드워프들은 충분히 알아보았다.

바네사는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한 번에 성공하기는 힘들 거예요. 부화기의 크기가 커진 만큼 습도를 맞추려면 물이 어느 정도나 필요한지 다시 확인해 봐야 하니까요. 하지만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녀의 열정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거기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드워프들에게 무엇보다도 즐거운 일이다.

결국 드워프들도 바네사가 제시한 장치에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토론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물의 양을 확인하고 지속적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은 따로 만들어야겠어.”

“너무 습기가 과하지 않도록 공기가 빠질 구멍도 만들어야겠군.”

“온도 조절 마법진은 얼마나 새길 거지?”

기준 수치와 개념은 바네사가 잡아 줬지만, 그에 맞춰 정교하게 구현하는 건 드워프들의 몫이다.

이들은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며 마법사들과 회의를 이어 간 끝에, 기존에 쓰던 것보다 훨씬 크고 정교한 부화기의 설계도를 만들어 냈다.

“좋아, 구현할 수 없는 기술은 아니야. 이 정도는 이미 몇 번 해 본 거거든.”

갈바릭이 별거 아니라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드워프들은 무게추를 이용해 공사를 한 경험도 많았다. 물론 이번에는 무게를 훨씬 정밀하게 측정해야 하니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드워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

이 영지에는 자존심 강한 ‘자칭’ 천재들이 너무 많았다.

“바로 작업을 시작하지. 이렇게 하면 관리 인원도 최소화할 수 있을 거야.”

물을 채우고 상태를 확인할 관리인 한두 명만 있으면 된다.

부화기는 한 번에 수만 개의 알을 부화시킬 수 있는 크기였다. 만약 성공만 한다면 어마어마한 양의 고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장치인 만큼 첫 제작에는 상당히 많은 예산이 필요했다.

그들은 바로 클로드를 찾아가 돈을 내놓으라고 외쳤다.

생각보다 많은 예산에 클로드는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말했다.

“다짜고짜 그렇게 내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해? 도대체 이게 얼마야? 룬스톤에 인부에 자재들에……. 하나 만드는데 이렇게 많이 든다고? 오히려 더 손해 보는 거 아니야?”

클로드가 꼰대 짓을 시작하자 바네사는 각종 지표와 연구 자료들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 드워프들이 복잡한 기관에 관한 설명까지 시작하자 버텨 낼 수 없었다.

‘……이게 뭔 말이야.’

마법사들과 드워프들이 힘을 합해 몇 날 며칠에 거쳐 만든 자료다. 아무리 클로드가 똑똑해도 한 번에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개념만은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뭔가…… 그럴듯하다?’

결국 항복한 클로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승인하며 말했다.

“진짜 실패하면 큰일 나! 한번 할 때마다 나가는 돈이 엄청나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성공할 거예요!”

바네사는 자신 있게 외치고 바로 드워프들과 작업에 들어갔다.

크기가 전보다 커진 만큼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부화기 내의 공간이 너무 넓다 보니 균일한 상태가 되지 않았다.

부화율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시기가 제각각이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자 알포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이 정도로 하면 안 될까? 절반이라도 어디야?”

“안 돼요. 그러면 이렇게 대형 부화기를 만드는 의미가 없어요.”

“맞아, 이건 우리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바네사는 어떻게든 영지를 위해 이번 사업을 성공시키고 싶었다. 갈바릭은 자존심 때문에 포기를 못 했다.

두 사람이 고집을 부리니 다른 사람들은 말릴 수가 없었다.

단 한 사람을 빼고.

“뭐야아아아! 도대체 돈이 얼마나 나가는 거야아아! 이거 진짜 성공할 수 있는 거 맞아?”

매일같이 클로드가 찾아와 닦달하고 압박을 해 댔다. 몇 번이나 뜯어고치며 룬스톤을 날렸으니 클로드가 방방 뛸 만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보다 더 많이 나가는 영지다. 그 와중에 돈을 미친 듯이 쏟아붓고 있으니 바네사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 어떡하지……. 내가 영지에 큰 손해를 끼치고 있어. 괜히 한다고 나대서…….’

바네사 특유의 소심한 성격이 다시 나와 버렸다.

그녀는 영지에 손해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저번에 크게 사고를 친 뒤 그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

그런 성격에, 허드렛일을 할 때는 상상조차 못 했던 큰돈을 매일같이 날리니 죽을 맛이었다.

‘일단 멈춰야 하나……. 농부들의 생산량은 늘릴 수 있으니 차라리 다른 곳에 돈을 쓰는 게 더 나을 같은데…….’

그녀가 여기서 그만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지셀이 찾아왔다.

지셀도 생각보다 일이 쉽게 안 풀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영주님!”

“여, 바네사. 요새 고생 많다며?”

“죄, 죄송해요. 제가 계속 실패해서……. 너무 많은 돈을 써서…….”

바네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이자 지셀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우리 돈 많다니까? 걱정하지 말고 계속 진행해.”

“그, 그래도…… 총관님이 돈이 너무 많이 나가서 지금 힘들다고…….”

“걔는 항상 걱정을 달고 살아서 그래. 안전 주의자거든. 돈은 필요하면 내가 알아서 구해올 테니까 무조건 달려. 다시 말하지만, 저 북방의 야만인들이 저주를 하면…….”

“반드시 죽는다고요?”

바네사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지셀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무조건 될 때까지 해. 소형 부화기는 다 성공시켰다며? 조금만 더 하면 성공할 거야. 작은 게 됐으니 큰 것도 되겠지.”

“네…… 작은 건 다……. 아!”

순간 바네사는 무언가 영감이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몰입한 듯한 그녀의 모습에 지셀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이럴 때 방해하면 큰일 난다.

바네사는 지셀이 떠난 줄도 모른 채 계속 같은 말을 되뇌었다.

‘작은 거는 성공……? 그러면 지금보다 더 작게 하면 되잖아?’

한 번에 많은 양을 부화시키려고 너무 욕심을 부렸다.

‘공간을 더 작게 하면 돼!’

최적 온도와 습도를 맞출 수 있는 최대 규격을 찾고, 그걸 여러 개 만들어 붙이면 될 거 같았다.

어쨌든 한 번에 많은 양만 부화시키면 되는 게 아닌가? 무조건 크게 하려는 생각에 매몰된 게 문제였다.

크기를 줄이면 적절한 조건을 유지하기는 훨씬 쉬워질 것이다. 작다고는 해도 농부들이 쓰는 소형 부화기보다는 훨씬 클 테고.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어!’

바네사는 다시 의욕에 가득 차서 새로 설계도를 작성했다.

다 때려 부수고 처음부터 재작업을 한다는 말에 클로드가 난리를 쳤지만, 바네사는 일단 무시하고 밀어붙였다.

‘총관님 죄송해요……. 으으으…… 목숨 걸고 이번에는 꼭 성공시킬게요.’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속이 썩어 들어갈 대로 썩은 상태였다.

‘작은 걸로 성공한 자료들은 넘쳐 나. 공간을 너무 크게 키우지만 않으면, 그 자료들도 활용할 수 있을 거야.’

결국 바네사는 다시 엄청난 재원을 투자하여, 방 여러 개를 합친 모양의 대형 부화기를 제작했다.

당연히 방마다 따로 온도와 습도를 맞춰야 하니 이전 것보다는 자원과 노동력이 더 많이 들었다.

영지에 있는 달걀들까지 죄다 긁어 왔다. 무려 3천 개에 달하는 숫자였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 피해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마법사와 드워프들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벌게진 눈으로 부화기의 상태만 살펴보았다.

그리고 예정된 날짜가 되자.

……빠직!

빠직, 빠직!

알을 깨고 병아리들이 열심히 기어 나왔다. 농부들의 소형 부화기로 실험할 때와 같았다.

“우와아아아아!”

마법사와 드워프들은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소리를 질렀다. 처음부터 문제가 있던 알을 제외하면 부화율은 거의 100%에 육박했다.

이번에도 시차는 약간 있었지만, 어쨌든 한 번의 시도로 수천 마리의 병아리가 탄생한 것이다.

“성공이다! 성공이야! 으하하하!”

성공 소식이 퍼지자 영지 전역에 난리가 났다.

이 정도로 많은 계란을 한꺼번에, 이렇게 높은 확률로 부화시킨 사례는 왕국을 통틀어 한 번도 없었다.

인근의 관리들과 농부들까지 모두 찾아와 이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고 환호를 내질렀다.

“진짜 됐다! 병아리가 도대체 몇 마리야!”

“빨리 따뜻한 곳에 옮겨서 잘 키워야 해!”

“이게 정말 성공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

그 모습을 본 지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클로드에게 말했다.

“봐. 되잖아? 될 때까지 하면 다 되더라고.”

“…….”

클로드도 할 말이 없었다. 막상 이렇게 되니 그간 바네사를 갈군 게 조금 미안해졌다.

그도 이번 일이 성공해서 기쁜 건 다른 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고기가 넘쳐난다? 이건 이 자체로 영지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기쁜 마음에 바네사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해서 클로드는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와아아아! 바네사가 해냈다! 역시 대단해! 나는 믿고 있었다고오! 바네사 최고!”

웬디가 옆에서 경멸의 눈빛을 보냈지만 클로드는 애써 모르는 척했다.

어쨌든 클로드가 분위기를 몰고 가자 모든 이들이 그녀의 이름을 연호했다.

“바네사! 바네사!”

“고기의 마법사!”

“역시 기적의 손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칭송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드워프들도 같이 개발하긴 했지만, 그녀의 집념이 없었다면 이번 일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갈바릭과 다른 드워프들도 그 부분은 인정하고 바네사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 상황을 그냥 가만히 지켜볼 알포이가 아니다.

“내가 가장 큰 도움이 됐어!”

천재 마법사인 자신이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알포이는 열심히 자신의 공을 어필했다.

다들 고생한 건 사실이기에 사람들은 마법사와 드워프들에게도 박수와 칭송을 보냈다.

조금 마음이 풀린 알포이는 지셀 앞에서도 잘난 척을 해 댔다.

“역시 내가 손을 대니까 다 성공할 수밖에 없지. 내가 주도한 거라니까……요!”

지셀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래, 수고했다. 그런데 품에 안은 건 뭐야?”

“이건…… ‘꼬꼬’야……. 내 애완용 닭.”

알포이는 살짝 부끄러워하며 답했다.

그의 품에는 살이 잘 오른 수탉 하나가 안겨있었다. 예전에 처음으로 부화시키는 데 성공한 병아리를 기념 삼아 직접 키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이 들어서 이름까지 붙이고 매번 이렇게 데리고 다녔다.

“……그래, 잘 키워라.”

피식 헛웃음을 흘린 지셀은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자, 오늘은 기쁜 날이니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배불리 술과 고기를 먹고 쉬어라! 성공 보수도 따로 두둑하게 챙겨 주겠다!”

성공에 대한 대가는 확실하게 챙겨 주는 게 지셀이다. 그 말에 작업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좋다! 회식이다!”

밀이야 넘쳐나니 싸구려 곡물주는 많다. 그간 실험하는 중에 부화하고 다 자란 닭들도 꽤 많았다.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오늘 하루 정도 먹고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좋네요, 다들 고생하셨으니 그건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간 고생한 사람들을 위해 벨린다는 직접 사용인들을 지휘하며 술과 고기를 준비해 주었다.

물론 정식 연회가 아니니 성에서 진행된 건 아니다.

오히려 바깥이 편한 인부들은 부화장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닭을 잡고 술을 마시며 오랜만의 회식을 즐겼다.

모두가 바로 자리를 잡고 먹고 마시며 놀기 시작했지만, 은근히 결벽증이 있는 알포이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간 쌓인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우선이었다.

“휴, 오랜만에 씻으니 좋네. 나도 이제 술 좀 마시러 가야겠다. 꼬꼬야, 너도 같이……. 응? 꼬꼬? 꼬꼬가 어디 갔지?”

깨끗하게 씻고 나온 알포이는 사육장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육장에 넣어 둔 꼬꼬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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