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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19화 (219/269)

219화 일을 몇 가지나 처리한 거야? (1)

대주교를 따르는 자들은 다들 참지 않고 일어나 포리스코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남자는 계시를 받을 수 없네! 성전에도 오직 성녀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쓰여 있네! 주교씩이나 되었으면서도 정녕 모른단 말인가!”

“그렇다고 여신의 뜻을 전파하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한 적도 없잖아! 뇌물만 먹었지!”

“솔직히 그간 살아온 걸 생각하면 주교 자리에 오른 것도 말이 안 되네! 양심이 있어야지! 검증도 필요 없어!”

성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중에서 포리스코가 충족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회장에 모인 사제 중에서 가장 뇌물을 많이 처먹고 나쁜 짓도 가장 많이 한 건 단연 포리스코일 것이다.

그저 다른 자들도 어느 정도는 악행을 저질렀기에 서로 눈감아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썩었어도 사제는 사제였다. 저놈을 성자로 인정하는 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저런 놈이 성자가 된다는 건, 정말 세상의 종말이 왔다는 징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포리스코를 따르는 주교들은 그를 성자로 인정해야 한다며 난리를 쳤다.

“허어! 계시를 받은 분이 성자가 아니라면 누가 성자란 말입니까?”

“모든 사람이 바라고 있는 일입니다!”

“신의 뜻을 거스르는 불경스러운 자들 같으니라고! 뇌물은 너희도 같이 먹었잖아!”

사제들은 그렇게 정치판의 귀족들처럼 서로를 험담하며 며칠을 싸우기만 했다. 조금만 더 다툼이 심해지면 아예 교단이 반으로 쪼개질 기세였다.

결국 포리스코는 입맛을 다시며 한발 물러났다. 아무리 욕심 많은 그라도 이쯤에서는 양보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음, 역시 아직 이 정도로는 무리인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어. 교단의 인정을 받아야 왕실에서도 힘을 실어 줄 테니.’

교단과 왕국의 인정이 필요한 일이다. 만장일치가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확보해야 가능했다.

성자의 칭호를 받기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성자들은 사후에야 추대되곤 했다.

‘쯧, 내가 성녀처럼 어마어마한 신성력만 내보일 수 있었으면 쉬웠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수도의 교인들이 모두 자신을 칭송하고 따른다. 대주교는 이제 자신을 건드리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자신의 인기가 너무 커질 대로 커졌다.

‘휴, 정말 죽기 직전에 여신께서 살려 주신 것 같네. 아니, 그 애송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살려 준 건가? 젠장! 그나저나 계약서를 뺏어야 마음이 편해질 텐데.’

애송이 덕에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재산도 펜리스 남작에게 다 넘어가고 놈에게 약점까지 잡혀 버렸다. 강제로 청렴해진 셈이다.

어쨌든 이렇게 쭉 착하게 살다 보면 결국 성자 칭호를 달 수 있을 것이다.

순간 포리스코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착하게 산다고? 내가? 나 미친 건가?’

그 애송이를 만난 뒤부터 자신이 이상해진 것 같았다.

* * *

“뭐, 성자 임명까지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

지셀은 소식을 듣고 피식 웃었다.

성자 되기가 그 정도로 쉬웠으면 개나 소나 성자 칭호를 달고 살았을 것이다.

사람의 시기와 질투는 생각보다 무섭다. 특히 명예는 있지만, 귀족들처럼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지 못하는 사제들은 더 그랬다.

그런 그들이 순순히 포리스코의 성자 임명에 동의할 리가 없었다. 다른 교단의 사제들도 일부러 포리스코를 험담하고 다녔다.

그들도 성자가 나타나는 건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년만 지나면 대주교에 오르는 건 어렵지 않겠어.”

현재의 대주교는 순식간에 영향력을 잃었다. 대신 포리스코의 영향력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아졌다.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교단의 운영은 포리스코의 파벌이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대주교에 오르면……. 교구 지정을 하고 사제랑 신전 기사들도 좀 더 보내라고 해야지.”

포리스코가 들으면 속 터질 계획이지만 지셀은 야무지게 바닥까지 긁어서 받아 낼 생각이었다.

“뭐, 이쪽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수도에 온 김에 만날 사람이 있었다.

어차피 전쟁이 끝나면 한번 오긴 해야 했는데, 피오테의 일로 수도에 온 김에 처리해 두면 시간을 아낄 수 있을 터였다.

“이제 후작님 좀 보러 가 볼까? 내 소식은 잔뜩 들었겠지?”

난리가 난 건 교단뿐만이 아니었다. 수도에 머무는 귀족들도 지셀의 기행에 관해 연일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여신의 계시? 그걸로 가뭄을 예측했다고? 또 그놈만 엮이면 헛소문이야? 그 오리 새끼는 흑마법사라니까!”

왕국군 총사령관 모리스 맥쿼리 후작은 소식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며 외쳤다. 그가 아무리 미신에 약한 자라 해도 순순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이미 한번 수도를 강타한 뒤였다. 펜리스 백작이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에 관한 정보였다.

“하늘을 나는 기구? 거기서 기사들이 떨어져? 그 오리 새끼가 소드마스터라고? 그게 말이 되냐 이 새끼들아! 도대체 그 새끼에 대한 소문은 왜 다 그 모양이야!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잖아!”

펜리스와 싸웠던 카발디군의 생생한 증언들이 있었지만, 말로만 전해 들은 다른 지역의 귀족들은 절대 믿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모두 상식을 파괴하는 소문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소문을 취합해 온 정보원들은 연일 깨지기 바빴었다.

“그 새끼가 정보 조작을 하는 거야! 더 헷갈리게 하려고 아예 황당한 소문을 퍼트린 거지! 당장 그쪽 관리들을 포섭해서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얻어 와!”

아직 전쟁에 관한 소문도 제대로 진위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성자니 계시니 하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으니 모리스는 애꿎은 부하들만 닦달했다.

모리스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수도의 귀족들은 혼란 속에서 의미 없는 토론을 이어가기에만 바빴다.

“사제도 아니고 성녀도 아닌 펜리스 남작이 무슨 계시를 받았겠습니까? 저번처럼 또 엉터리 소문을 낸 게 분명합니다!”

“어허! 그러면 가뭄을 미리 준비한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 딱 이해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늘을 날고 소드마스터인 것도 여신이 힘을 준 거랍니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세요! 상식적으로 좀!”

“그게 왜 말이 안 되는데! 여신께서 하늘도 날게 해 주고 힘도 주고 그럴 수 있지! 식량도 쌓아 두라고 말해 주고!”

“이미 정보원들이 다 분석하지 않았습니까? 이주민 계획에 대비하던 게 운 좋게 터진 겁니다! 전부 다 헛소문이라니까요!”

“기후 위기는 사실이다!”

그렇게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만 미친 듯이 퍼져 나갔다. 귀족들이 모이는 연회마다 지셀의 이야기가 빠진 적이 없었다.

‘투자 성공자들의 모임’ 연회에서 메리엘도 로잘린에게 물었다.

“얼마 전에는 하늘을 날았다든가, 마스터라든가 하는 헛소문이 돌았는데 이번에는 여신의 계시라고? 당연히 거짓말이겠지?”

“네, 그냥 또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거겠죠.”

“하여튼 무슨 짓을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니까. ‘성자 펜리스 남작’이라고? 그거 너무 웃기지 않아?”

“돈에 미친 성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로잘린은 예전 생각을 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마어마한 식량을 푸는 데는 분명 많은 돈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셀의 성격을 제법 안다고 자부하는 그녀는 지셀이 손해를 보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노리는 게 있었겠지. 아마 쓴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어디선가 받아 냈을 거야. 분명 포리스코 주교를 털었겠지?’

그와 별개로 한 가지 확실한 건, 지셀의 인기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올라갔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수도의 모든 이들이 포리스코와 지셀에 대해서 떠들기만 하니 브랜포드 후작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지셀, 지셀. 그놈 때문에 정보관들마저 쓸데없는 일에 힘을 다 빼는구나. 전쟁에 관해서도 이상한 소문을 내더니, 갑자기 포리스코 같은 탐욕스러운 놈을 밀어줘? 도대체 이놈은 왜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거지?”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원들이 쉼 없이 움직여 정보를 갱신하면서, 연일 쓸데없는 서류가 쌓여 갔다.

당연히 그걸 보고하는 자도, 확인하는 자도 난감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 소문의 주인공이 뜬금없이 브랜포드 후작을 찾아왔다.

수도에 오자마자 먼저 들러 인사를 하지도 않고, 자기 볼일이 끝나고서야 설렁설렁 오다니. 여전히 참 건방진 놈이었다.

“후작님 잘 지내셨습니까! 저 왔습니다!”

친구 집에 찾아온 듯한 명랑한 인사에 브랜포드 후작은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인기가 아주 넘치더구나.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고 다니는 거냐? 네놈이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놈은 아니지 않느냐.”

“그냥 자선 사업을 좀 했습니다. 요새 다들 힘들잖아요?”

“네가 자선 사업을 한다고? 대가도 안 받고? 그것도 포리스코와 함께? 그게 말이 되나?”

“제 요새 별명이 성자입니다, 성자. 못 들으셨습니까?”

“…….”

브랜포드 후작은 자신도 모르게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가뜩이나 골치 아픈 놈인데 이제는 인기까지 얻고 말았다.

‘가면 갈수록 통제하기 힘들어지는 것 같은데.’

아니, 언제 통제가 되긴 했었나?

한숨을 내쉰 브랜포드 후작은 짐짓 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자선 사업이야 그렇다 치고. 사고 치지 말라고 했더니 기어이 아주 큰 사고를 쳤더구나. 공작가에서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그 정도야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2군단을 보내신 거겠지요. 솔직히 기분 좋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도 맞았다. 솔직히 승전 소식을 듣고 기분은 좋았다. 그간 공작가에 밀려 가라앉았던 친왕파의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켰기 때문이다.

당돌한 지셀의 말에 브랜포드 후작은 피식 웃었다.

“그래, 나쁘진 않았다. 그나저나 네놈 때문에 수도의 모든 정보원이 고생하고 있다.”

“뭐 때문에 말입니까?”

“이번 계시 일도 있고, 전쟁과 관련된 문제도 있으니 말이다. 이참에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낫겠군. 어떻게 그리 빠르게 성을 점령했느냐?”

브랜포드 후작의 물음에 지셀은 숨길 것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후작님이시니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하늘을 나는 기구를 만들어서 100명의 기사들과 함께 적의 성 내로 진입했습니다. 기습으로 성문을 지키던 적들을 소탕한 뒤에 제가 성문을 부수었고, 곧 아군이 진입하여 적들을 일거에 소탕했습니다.”

“…….”

정보원들이 알아 온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문들 말이다.

브랜포드 후작이 가만히 있자 지셀이 슬그머니 물었다.

“뭐…… 더 궁금하신 거 있으십니까?”

“……하늘을 날아서 들어갔다고? 기사들과 함께? 기사가 100명이라고?”

“네!”

“성문은 어떻게 부수고?”

“제가 혼자 부쉈습니다.”

“혼자…… 부쉈다고?”

“맞습니다!”

“…….”

펜리스에 기사들이 없다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뭐? 100명? 일개 남작 주제에 대영주급이나 가능할 법한 수를 얘기한다.

하늘을 나는 건 너무 황당해서 논의할 가치도 없다.

무엇보다, 두꺼운 성문을 단숨에 홀로 부순다? 그게 가능한 자는 왕국에 딱 두 명밖에 없다. 마스터의 칭호를 받은 발자크 백작과 왕실기사단장.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은 정보다. 제대로 본 사람은 없으니까.’

어쨌든 그들도 중년의 나이를 넘어서고 나서야 그 정도의 무위를 갖게 됐다.

아무리 재능이 넘쳐도 지셀의 나이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푸훕!”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후작가의 기사단장 톨레오가 결국 자신도 모르고 웃고 말았다.

브랜포드 후작이 노려보자 톨레오는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브랜포드 후작은 지금껏 살면서 당황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하지만 지셀을 만난 뒤로는 당황하는 일이 무척 많아졌다.

그는 다시 관자놀이를 몇 번 꾹꾹 누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다. 군사 비밀일 테니 제대로 말하기는 싫겠지. 공작가가 대응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으니 충분히 이해하겠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아보지 말라고 전해 두지.”

‘……내가 생각보다 신용이 없네.’

지셀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어차피 열기구는 영지 내에서 곧 운송과 정찰 수단으로 운용할 계획이었다. 기사들 또한 계속 활약할수록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다.

결국 모두 드러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에 애초에 감출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현시대의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니,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직접 보면 조만간 다들 알게 되겠지. 내 실력도……. 아니다, 그건 계속 의심할지도.’

아직 반쪽짜리 마스터에 불과한 터라 지셀로서도 쉽게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일부러 인정받겠다고 대놓고 광고할 생각도 없었다.

남이 믿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닌데.

지셀의 속을 알 길 없는 브랜포드 후작은 혀를 차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넌 단순히 인사나 하러 올 놈이 아니지. 그래, 뭐가 필요해서 왔느냐?”

“역시 후자님은 대화가 빨라서 참 편하고 좋습니다. 저 관직 하나만 주십시오.”

그 말에 브랜포드 후작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디 얽매이기 싫어하는 놈이 갑자기 관직을 달라니? 그리고 명목상이라지만, 이미 직함은 하나 달고 있지 않은가. 북부 군수지원 관리관이라는 직함 말이다.

“무슨 관직이 필요하다는 거냐?”

“북부군 사령관에 저를 임명해 주십시오.”

“…….”

브랜포드 후작은 할 말을 잃었다.

늘 그랬듯, 지셀은 이번에도 아주 큰 걸 받으러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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