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만들고 싶은 게 하나 있다. (1)
그동안 문제가 생기지 않았던 건 통제를 위해 제식 위주로 훈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가자 병사들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지금까지 척박한 북부에서 살아오며 만들어진 ‘몸’이 문제였다.
“그간 먹은 게 없으니 저 모양이지. 어우, 저 비실비실한 것 봐라.”
북부 사람들은 제대로 못 먹고 자라 대부분 왜소한 편이었다.
최근에서야 펜리스에 와서 잘 먹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밀에 국한된 얘기이다.
고기는 아무나 먹을 수 없다. 가장 먼저 귀족과 기사들에게 돌아가고, 병사들의 스튜에는 겨우 남은 찌꺼기 정도나 들어간다.
그마저도 없어서 그냥 풀뿌리나 끓여 먹는 게 대부분이었다.
‘다들 그렇게 고기도 제대로 못 먹고 자라 왔으니 체력과 지구력이 좋을 리가 없지.’
그러니 조금만 강도 높은 훈련을 해도 몸이 따라 주질 않는 것이었다.
체력은 훈련만 한다고 늘어나는 게 아니다. 그만큼 잘 먹는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
고기를 잘 먹고 지금보다 체구를 키우는 것도 중요했다. 고든처럼 징그럽게 커지는 건 오히려 비효율적이지만, 적당한 체격을 유지하면 전투력에 도움이 된다.
‘고기, 고기라…… 쉽게 구할 수는 없는 자원이지. 하지만 더 많이 필요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몇 가지는 도무지 구할 방법이 없었다. 가축을 이용한 자원들이 바로 그것이다.
고기와 우유, 가죽 등의 자원들은 수급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가뭄 피해 때문에 동물들도 수없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다른 영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빵만 먹어서는 부족하다. 어떻게든 고기 생산량을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해.’
이 문제는 지셀이 예전부터 고민하던 것이었다.
밀이 주식인 시대라 괴물 밀을 통해 식량난을 가장 먼저 해결했다. 하지만 그건 최소한의 조건이지, 만족할 만한 조건은 아니었다.
병사들뿐만 아니라 영지민들도 강해지려면 다들 쉽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특히 영지의 미래를 위해서는 아이들이 잘 먹어야 했다.
아동들의 노동을 금지하고 교육하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어도, 아이들이 못 먹어서 비실댄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나도 전생에는 몸집도 키우고 강해지려고 돈이 생길 때마다 고기를 사 먹었었지.’
지금이야 그럴 필요가 없는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랐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그럴 수 없었다.
“그 미친 엘프들도 매일같이 고기 달라고 외친다는데.”
엘프들은 좋은 대우만 받고 살아온 탓에 입도 아주 고급이었다.
풀 따위는 맛없어서 안 먹는단다. 술이며 고기며, 요구하는 것도 아주 지랄같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다. 특히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고기도 잘 먹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먹을 것도 제대로 안 먹이면서 체력 훈련을 시키는 건 지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역시 지금은 그것부터 진행하는 게 낫겠네.”
지셀에게는 여러 가지 계획이 있다. 간혹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큰 그림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고기와 가죽을 수급하는 건 그 그림 안에 당연하게 들어 있었다.
“슬슬 고기 수급부터 좀 늘려 볼까?”
지셀은 바로 길리언을 불러 말했다.
“훈련 강도를 조금 낮추도록 해. 병사들이 제대로 못 따라오는 거 같으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아니야. 우리가 지금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은 거 같아. 다들 빵만 먹어서 배도 금방 꺼질 테니 당분간 군기만 잃지 않게 진형 훈련 정도만 시키고 있어.”
“알겠습니다.”
성으로 돌아간 지셀은 바로 가신들을 소집했다. 갑자기 불려 온 가신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또 뭘 하려는 거지?’
‘제발 여기서 일을 늘리지 말아 줘.’
‘조금 쉬자는 얘기 아닐까?’
관리들이 충원된 뒤 그전보다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이 많다. 늘어난 인구만큼 필요한 것들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이 더 생겨서 좋을 건 없었다.
그런 가신들의 속내를 읽은 지셀은 픽 웃으며 말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역시나 새로운 일이다. 가신들은 우울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지셀은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을 이었다.
“별거 아니야. 당장은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아. 마법사들만 투입하면 돼.”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알포이만이 기겁하며 되물었다.
“왜 또 마법사입니까? 지금 일 엄청 많거든요? 나 죽을 거 같거든?”
“당분간 다른 일은 빼 줄게.”
“뭔데요?”
잠시 일을 빼 준다는 말에 알포이가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공사장 일은 너무 힘들고 지겨워서 죽을 거 같았다.
“고기 생산을 좀 늘리고 싶거든.”
“고……기?”
알포이의 입에 순간 침이 고였다. 아니, 알포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배불리 먹고는 있지만 그래 봐야 밀 빵 정도지 고기가 아니다.
펜리스 영지에는 가뭄 피해가 적었지만, 애초에 키우던 가축이 적었던 탓에 고기를 쉽게 먹기는 힘들었다.
그걸 알고 있는 클로드가 나서서 물었다.
“고기를 어떻게 늘리시려고요? 지금 가축 수가 워낙 적어서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늘리는 게 힘든 건 소와 양 같은 걸 키우는 데 오래 걸리기 때문이잖아?”
“그렇죠. 개체도 적은데 성장도 오래 걸리니까요. 그나마 돼지랑 닭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키울 수 있지만, 영지민들이 배부르게 먹기에는 아직 현저하게 부족합니다.”
“그중에서 제일 빠른 게 뭐지?”
“뭐…… 그래도 닭이 낫긴 하죠. 알도 많이 낳고, 성장도 제일 빠르고, 사육비도 제일 적게 들긴 하니까요.”
지셀은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로 그거야. 이제부터 닭을 대량으로 늘릴 거다. 고기를 먹어야 병사들과 영지민들이 건강해질 수 있거든. 모든 영지민들이 일주일에 한 번은 닭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하는 게 내 목표다.”
“풉.”
클로드가 자신도 모르게 썩은 표정으로 웃음을 내뱉었다.
생명체는 지금까지 만들었던 기술과는 다르다. 인위적으로 늘리고 싶다고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북부의 식량왕 칭호에 이어 고기왕의 칭호도 갖고 싶으신 건 알겠습니다만…… 갑자기 닭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대량으로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러니까 자체적으로 늘려야지. 내가 몇 가지 방법을 알려 줄게. 먼저 사육법부터 바꾼다.”
“사육법이요?”
“지금처럼 대충 방치해서 키우지 말고 활동 반경을 줄인 뒤에 최대한 사료를 많이 먹여. 그러면 체중이 증가하니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다.”
‘앉아서 놀고먹기만 한다고? 부럽구나! 닭!’
클로드를 비롯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사람 먹기도 힘든 탓에 그간 닭의 체중을 키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고기의 양을 늘리는 곳도 있을 법했다.
“그거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닭을 키우는 시설만 조금 바꾸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고기양이 조금 더 늘어나는 것뿐입니다. 절대적인 닭의 수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내가 만들고 싶은 게 있다는 거야. 지금 알들은 어떻게 부화시키지?”
“뭐…… 닭이 품게 두는 건 드물고 대부분은 부화기를 쓰지요.”
닭은 한 달 보름 정도면 알을 품고 한 번에 10개 이상의 알을 낳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환경의 영향 때문에 절반 이상이 제대로 부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화기는 알을 부화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부 환경의 변화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적인 문제로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닭이 품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생산성이 높기에 계속 쓰는 편이었다.
지셀은 바로 그 점을 짚었다.
“그걸 아주 크게 만들면 되잖아? 전부 안정적으로 부화시킬 수만 있다면 닭 수도 빠르게 늘어날 거라고! 성공만 한다면 한 달에 수천, 수만 마리씩 쏟아질걸?”
“…….”
지셀의 말을 들은 클로드는 이마를 짚었다.
‘아, 이 새끼 또 시작이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답답했다.
일단 머릿속에서 할 말을 정리한 클로드가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입을 열었다.
“제가 설명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 해 봐.”
“부화기를 크게 만들기 싫어서 안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만들 수가 없으니까 작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크게 만들자니까? 크게 만들면 된다니까?”
‘너는 왜 항상 말이 안 통하니? 왜 사람 말을 제대로 안 듣니?’
클로드는 끓는 속을 억지로 가라앉힌 뒤 말을 이었다.
“……지금 사용하는 부화기도 방치하는 것보다 나은 수준이지, 부화율이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온도나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크기가 클수록 균일하게 맞추는 게 어렵습니다. 거기에 사람이 수시로 확인을 하면서…….”
이 시대에 쓰는 부화기들은 지역에 따라, 만든 사람에 따라 모양이며 재료들이 다 제각각이었다. 나무로 만드는 곳도 있었고 석재로 만드는 지역도 있었다.
공통점이라면 불을 이용해 안을 따뜻하게 만들고, 매번 물을 뿌려 주며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사람 손도 많이 타고 어렵다는 뜻이었다.
클로드가 그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지셀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에게는 기존 방식의 문제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만드는 게 중요한 거다.
기술적 한계? 그런 건 모른다. 전생에서 그런 걸 본 적이 있었다. 미래에서 봤으니까 무조건 되는 거다.
“아, 지금 방식의 문제는 뭔지 알았으니까 이제부터 개량하자고. 마법사들은 당분간 신형 부화기를 만드는 데 투입한다. 최대한 크기를 키우고 최대한 손이 덜 가도록 만들면 돼. 알겠지?”
전생에는 환란 때문에 도시가 요새화되었다.
한정적인 공간에서는 소와 양을 대량으로 키울 수 없었다. 그럴 자리에 전투를 위한 군마들을 키우는 게 나았다.
그렇다고 고기를 안 먹을 수는 없으니, 제일 만만한 닭을 키우게 되었다. 결국 모든 도시에는 대형 부화장이 들어섰었다.
그 광경을 직접 본 적이 있는 지셀은 당연히 지금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법사들은 아니었다.
한참 동안 눈만 끔뻑거리던 알포이가 물었다.
“그러니까 대형 부화기를 만들라고……요?”
“응.”
“방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만들어요?”
“지금 쓰는 작은 부화기를 크게 만들고 온도와 습도만 자동으로 균일하게 잘 맞추도록 하면 돼.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는 몇 번 실험하면 되고. 어렵지 않잖아?”
지셀은 당연하다는 어조로 답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마법사들에게 닭 사육장이나 부화기 같은 건 천하디천한 일이었으니, 감을 못 잡는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면 금방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셀의 생각과는 다르게 알포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습도 조절 마법 같은 건 세상에 없는데요.”
“뭐? 왜 없어? 온도 조절 마법은 있는데 습도 조절 마법은 왜 없어? 그게 말이 돼?”
“없는 걸 없다고 하죠……. 누가 그딴 마법을 만들겠어……요.”
그 말에 지셀은 팔짱을 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마법사들끼리도 학파에 따라 모르는 마법이 많다. 그러니 마법사도 아닌 지셀이 방대한 마법의 세계를 세세하게 알고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분명 전생에는 그런 마법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 부화장을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니겠는가.
그만한 부화기 안에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려면 마법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런…… 역시 그때 새로운 마법을 만들었던 건가?’
당시에는 생존을 위해 머리 좋은 마법사들과 학자들이 죄다 모여서 필요한 것들을 마구 만들었었다.
그렇다면 습도에 관련된 마법도 그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어쩔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연구를 해서 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알고 있는 모든 마법을 응용해서 만들어. 실험을 위한 룬스톤도 충분히 지원해 줄게.”
그런데 다들 대답은 안 하고 지셀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원하는 눈빛이었다.
뭔가 조금 부담스러워진 지셀이 고개를 살짝 뒤로 빼며 물었다.
“왜?”
“습도 조절 마법은 어떻게 만들어……요?”
알포이의 물음에 지셀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영주님은 다 알고 있잖아. 화장품도 만들고 농사도 하고 병도 치료하고 열기구도 만들고……. 그러니까 이것도 더 자세히 알려 줘야죠. 마법 말고 부화기 구조나 기술들도요.”
알포이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영주가 직접 만들진 않았어도 핵심이 되는 이론은 거의 다 알려 줬기 때문이다.
드워프들에게 개발을 맡긴 신소재도 필요한 재료는 전부 다 알려 줬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연구해 볼 만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없는 마법을 새로 만들라고 하니 물을 수밖에 없었다.
“…….”
지셀은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이건 부작용인가? 지금까지 뭐든 밀어붙여서 성공시켰으니 이런 반응이 나올 만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달랐다.
화장품이야 수도를 점령하고 차후에 돈을 마련하려고 기술을 익혀 놓은 거였다.
농사도 마찬가지다. 용병단 거점의 자급자족을 위해 알아 둔 것이었다.
‘애초에 나는 마법을 모른다고. 부화기를 만드는 기술도 자세히는 모르고.’
대륙 7강이나 되는 사람이 닭을 어떻게 키우냐고 꼬치꼬치 물어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클로드가 알고 있었지.’
순진하게 눈만 껌뻑거리는 클로드를 보며 지셀은 혀를 찼다.
‘저놈도 같이 회귀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니면 그때 자세히 좀 물어볼걸.’
어쨌든 만드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듣긴 했다. 만들기 어려웠다면 모든 도시에 보급되었을 리가 없었다.
마법이 없다고는 하지만 개념은 알려 줬다. 고민하다 보면 분명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몰라, 그런 마법.”
알포이의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