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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12화 (212/269)

212화 방금 올랐어. (2)

식량 가격은 이미 오를 대로 올랐고, 철광석은 원래 비싼 자원이다.

30%를 올리는 것도 견디기 힘든데 50%나 더 받겠다고? 그것도 자기한테만? 이건 정말 부당한 처사였다.

“그,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제 말씀 못 들으셨습니까? 저희는 예전부터 페르디움과 오랜 거래를 진행한 상단으로…….”

“2배.”

“……네?”

“방금 2배로 올랐어. 어디서 페르디움 얘기를 꺼내?”

“자, 장난하지 마십시오, 영주님. 아무리 그래도 지금 거래를 장난으로…….”

당황하는 파릴을 보며 지셀이 비웃음을 내비쳤다.

“장난? 지금 본 영주가 하는 말이 장난으로 들리나?”

서늘한 압박에 파릴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로서는 도무지 지셀이 왜 이렇게 막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머리를 굴리던 파릴은 문득 예전에 페르디움과 했던 거래를 떠올렸다.

‘어디서 페르디움으로 얘기를 꺼내냐고? 설마 지금…….’

불길한 예감에 직면한 파릴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혹시 예전에 했던 페르디움과의 거래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그때는 북부 끝자락까지 옮기는 운송비와 인건비, 그리고 당시의 시세를 따져서 정당하게 책정한 금액으로…….”

“3배.”

“여, 영주님…….”

“아직도 여기가 네놈들의 수작에 끌려다니던 가난한 페르디움으로 보여?”

파릴은 절망 어린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확실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영주는 예전에 제 아비에게 상단이 잔뜩 바가지를 씌웠던 과거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식량과 철광석은 펜리스 남작이 꽉 쥐고 있다. 거기에 브랜포드 후작이란 거물이 그의 후견인을 자처한다.

펜리스 남작은 왕국의 떠오르는 신성이자 북부 친왕파의 기수로 평가받으며 그 명성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그런 자에게 찍혔으니 상단의 앞날이 어두워질 것은 뻔했다.

“여, 영주님. 죄송합니다. 부디 원래 가격인 30%로…….”

“말이 안 통하는군. 그냥 끌어내라.”

지셀이 귀찮다는 듯 고갯짓하자 병사들이 다가와 파릴을 끌고 나갔다.

“여, 영주님! 제발!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재고는 없다. 앞으로 파릴 상단에는 3배의 가격을 받겠다.”

‘이, 이 개자식!’

끌려 나간 파릴은 후회했다. 괜히 따지러 와서 더 큰 손해만 보게 생겼다.

하지만 동시에 그 후회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큰 분노도 치밀어올랐다.

‘젠장, 젠장! 이 애송이 새끼가! 그때는 그게 당연한 가격이었단 말이다! 페르디움 따위가 우리 아니었으면 물건이나 구할 수 있었을 거 같으냐? 이 악랄한 새끼 같으니라고!’

파릴은 끊임없이 지셀을 욕하고 저주했다.

아무리 식량과 철광석이 귀하다 한들, 3배나 주고 살 수는 없었다. 차라리 다른 상단이 구매한 걸 웃돈 주고 사 오는 게 싸게 먹힐 판이었다.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두고 보자! 분명 데스몬드가 군대를 움직였었다고 했지? 내 반드시 거기에 붙어서 네놈을 파멸시킬 테다!’

어차피 상단이 살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셀이 죽거나 망해야 자신이 산다.

그렇다면 적의 적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셀은 끌려 나가는 파릴을 보며 픽 웃었다.

안 봐도 뻔하다. 이번에 자신에게 당한 상단들은 반드시 수작을 부릴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북부만 평정하면 전부 다 먹어 치워 버릴 생각이니까.

딱 그 전까지만 필요한 자원을 얌전히 구해 오면 된다.

지셀은 바로 클로드를 불러 말했다.

“식량 넘기면서 페르디움에 빚을 지웠던 상단과 영지들의 차용증부터 전부 쓸어 와. 하나도 남김없이. 철광석은 일단 소량만 풀고.”

“알겠습니다. 페르디움 백작님이 좋아하시겠네요. 이제 이자를 안 내도 되니까요.”

“그 이자까지 다시 다 받아 낼 수 있지?”

“그럼요, 맡겨만 주세요.”

클로드는 확실하게 일을 처리했다. 먼저 싸구려 식량을 비싼 값에 넘기며 차용증부터 전부 회수했다.

그 뒤에 가격을 더 올리진 않았지만, 수량에 제한을 걸어 버렸다. 그 이상 구매하고 싶다고 하면 뇌물을 받는 식으로 야무지게 돈을 챙겼다.

상인들은 혀를 내둘렀다. 자신들도 남을 많이 등쳐먹고 살았지만 이렇게 독하고 부패한 새끼는 살면서 처음 봤다.

‘총관이랍시고 권한을 멋대로 휘두르겠다?’

‘그렇게 뇌물을 많이 처먹고 무사할 줄 알았냐?’

‘가뜩이나 비싸서 짜증 나는데 재수 없으니까 너라도 잘라야겠다.’

수많은 상인들의 투서가 영주성으로 날아들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애초에 영주랑 짜고 뇌물로 부가 수입을 올리는 거니 그딴 게 통할 리가.

클로드는 열심히 뇌물을 받아 영지의 창고를 채웠고, 지셀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 * *

벨린다와 퍼거스는 페르디움의 빚이 모두 청산됐다는 소식을 듣자 너무나도 기뻐했다.

그 두 사람에게 페르디움은 여전히 그리운 마음의 고향이자 아픈 손가락 같은 곳이었으니까.

“정말 잘 됐어요! 우리 도련님 너무 대견스럽지 않아요? 역시 제가 잘 키운 거겠죠?”

“허허허, 그래……. 집사장이 정말 잘 키웠……. 크흐흠! 갑자기 심장이…….”

퍼거스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흐뭇해도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차용증을 모두 건네받은 페르디움의 총관, 호메른은 그것들을 허공에 던지며 외쳤다.

“자유다! 드디어 빚에서 풀려났다! 으하하하하! 대공자가 멋대로 전쟁 일으켜서 죽어 버릴 줄 알았는데 승리하고 우리 빚까지 다 갚아 주다니! 이거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재무관인 알버트와 페르디움의 가신들도 옆에서 환호를 내질렀다.

“이제 이자 안 내도 된다! 우리도 이제 저축할 수 있다!”

“게다가 대공자에게 잔뜩 받은 식량 가격이 지금 엄청나게 오르지 않았습니까? 그 덕분에 우리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입니다! 대공자가 이렇게 갑자기 빚을 갚아 줄 줄이야!”

이들은 오랜만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지셀을 칭찬했다.

대공자가 사고 칠 때는 죽이고 싶은데 또 뭔가를 해 주면 좋아 죽겠다.

하도 온탕과 냉탕을 오가다 보니 이제는 그냥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욕하거나 칭찬하기로 했다.

북방 요새에 머물던 즈발터와 란돌프도 그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형님……. 드디어 저희가 빚을 다 갚았답니다…….”

란돌프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즈발터는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오르는 느낌에 차마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간 빚 때문에 얼마나 서럽고 힘들었던가?

성공한 아들이 나서서 그 빚을 다 갚아 주었다 하니 감개무량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늘따라 아내가 더욱더 그리워졌다. 이럴 때 옆에 아내가 없다는 게 참으로 서러웠다.

‘여보……. 왜 그렇게 빨리 가서 저 사고뭉치가 저렇게 성공하는 것도 못 봤단 말이오.’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명성을 날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사실 얼마 전 전쟁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었다.

자신과 상의도 없이 멋대로, 카발디 영지에 기습 공격을 했단다. 귀족다운 품격과 예의라고는 전혀 없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듣자마자 분노보다 걱정부터 앞섰다.

북부의 강자라 불리는 카발디 백작을 상대로 지셀이 이기기는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북방 요새에서 철군할 준비를 하며 페르디움의 병력을 소집하려 했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지셀부터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철군을 시작했을 때, 갑작스레 승전보가 전해졌다.

― 대공자님이 승리했습니다! 피해는 전무! 카발디 백작령을 차지했습니다!

즈발터는 그때 느꼈던 감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대단하구나. 믿을 수가 없을 정도야. 그 짧은 시간에 어찌 그리 힘을 키웠단 말인가.’

이제 일개 남작이라 할 수가 없다. 젊은 나이에 어지간한 백작들보다 더 큰 세력과 영토를 일구었다.

브랜포드 후작의 힘을 빌린다면 승작을 하는 것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미 나를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그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한 진실이었다.

즈발터 자신도 야전에서라면 모를까, 공성전에서 카발디 백작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돈을 버는 수완부터 용병술까지, 그 나이 또래가 쉽게 보일 수 있는 역량이 아니었다.

‘그래, 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도 이제는 궁금해지는구나.’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행보 때문에 여전히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그건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제는 말리기보다는 믿고 지켜볼 때였다.

어차피 말려 봤자 안 듣는 놈이니 다른 방법이 없기도 했다. 되지도 않을 일에 힘을 뺄 바에는 마음 편하게 믿는 게 나았다.

즈발터는 체념의 한숨을 내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오늘만은 마음 놓고 기뻐할 만한 날이다.

페르디움이 빚이란 족쇄에서 드디어 풀려난 기념비적인 날인 것이다.

그는 기사와 병사들을 모아 놓고 크게 외쳤다.

“우리 빚 다 갚았단다!”

“와아아아아!”

기사와 병사들이 크게 환호했다. 그간 영지에 빚이 많아 힘들게 사는 건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었다.

빚도 다 갚았는데 전에 목재값으로 받아 온 식량도 넘쳐나는 상황이다. 즈발터의 성격상, 여유가 생기면 자신들의 생활도 챙겨 줄 거라고 다들 내심 기대를 품었다.

즈발터는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눌 줄 아는 영주였다.

“오늘부터 모두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급여를 지급하겠다. 급여 외에도 따로 식량을 나눠 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들 그간 너무나도 고생이 많았다!”

“우와아아아아아!”

아까보다 더 큰 환호가 울려 퍼졌다. 즈발터는 그 모습을 감격스럽게 바라보았다.

꿈만 같은 현실에 왠지 목이 메었다. 이런 날은 절대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가문의 선조들이 모두 실패했던 일을 자신의 아들이 자랑스럽게 해낸 것이다.

즈발터는 잠긴 목을 몇 번이나 다시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힘든 시기를 끝까지 버텨 낸 그대들의 충정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준 것이 영지의 후계자인 지셀이란 걸 모두 잊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우렁찬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특히 기사들은 더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마나 연공법을 익힌 뒤부터 아주 죽을 맛이었다. 야만인들과 싸우면서도 수련을 쉴 수 없었다.

확실히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 갔다. 아니, 영혼까지 피폐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럴 때 기쁜 소식을 들으니 괜히 힘이 솟았다. 힘들 때는 대우라도 잘 받아야 버틸 수 있는 법이다.

정말 병 주고 약 주는 짓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지셀이었다.

* * *

지셀은 그간 거래했던 가격을 계산해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야, 식량 가격이 전쟁 전보다 더 올랐네. 이건 뭐, 완전히 공짜로 빚을 치우는 거네.”

남아도는 식량을 조금 건넸을 뿐인데 페르디움의 빚이 증발해 버렸다.

그뿐인가? 목재, 약초, 직물 등 영지 개발에 필요한 자원들이 끊임없이 펜리스로 빨려 들어왔다.

그런데 실제로 펜리스의 재산 가치에는 미동도 없었다. 계속 수확되며 미친 듯이 쌓여 가는 식량 덕분이었다.

소소하게 판매하는 철광석은 덤이다. 이건 영지 내에서도 엄청나게 쓰고 있어서 많이 팔지는 않았다.

“음, 그래도 아직은 부족해.”

아무리 자원을 쓸어 담아도 영지 개발 속도에 비하면 항상 빠듯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박박 긁어모으고는 있으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훨씬 나아질 것이다.

자원을 모으고 영지를 개발한다고 끝이 아니다. 이 모든 게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한 밑바탕일 뿐이다.

훈련과 복지를 포함해 병사들의 상태는 언제나 최상으로 유지해야 했다.

“전술 훈련도 점검해야겠군.”

지셀은 서류 업무를 끝내자마자 바로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식량을 빌미로 얻어 온 병사들이 영지에 제대로 적응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하지만 지셀은 훈련 상황에 관해서는 눈곱만큼도 걱정하지 않았다.

전쟁에 승리하면서 사기와 충성심이 많이 높아졌고, 길리언 또한 사람들을 훈련 시키는데 이골이 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후 처리와 영지 개발 쪽에만 신경을 썼는데…….

훈련 상황을 지켜보던 지셀은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다.

“우에에엑!”

“나, 나는 더 이상 못 움직이겠어.”

“너무 힘들어서 토할 거 같아.”

여기저기서 병사들의 신음이 터져 나온다.

펜리스의 훈련 강도가 다른 영지보다 높기는 하지만, 기사들을 굴리는 만큼 심하게 굴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병사들 대부분이 훈련을 제대로 못 따라가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도 못 해서 어떻게 영지를 지키겠다는 거냐!”

언제나 과묵한 길리언도 답답했는지 연신 병사들을 재촉했다. 하지만 다들 다리를 후들거리며 서 있는 게 전부였다.

“으…… 여기 훈련 너무 힘들어. 몸이 안 따라 주는데 어떻게 하라고…….”

“전에 있던 곳에서는 이렇게까지 안 했는데. 우리는 기사가 아니란 말이야.”

“전쟁에도 쉽게 이겼는데 여기서 더 강해질 필요가 있나?”

북부 영주들은 이렇게까지 병사들을 훈련 시키지 않는다. 적당히 군기가 잡힐 정도로만 훈련되어 있으면 된다.

전쟁보다는 영지민들을 통제하는 역할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펜리스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정예병이 되어야 했다.

그러니 이런 훈련을 생전 처음 경험해 본 병사들은 죽을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긴 하겠지만, 못할 정도의 훈련도 아닌데.’

지셀과 길리언의 기준이 높긴 하지만 사람을 혹사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병사들이 단계별로 꼼꼼하게 성장할 수 있는 훈련 일정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이 못 따라온다는 건 다른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가만히 병사들의 상태를 지켜보던 지셀은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너무 못 먹고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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