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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11화 (211/269)

211화 방금 올랐어. (1)

“교관님은 애인 있어요? 교관님 근육 너무 멋지다. 징그럽게 크기만 해서…….”

“일단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대화로 풀어 보는 게 어때요?”

“교관님하고 진지하게 인생 얘기를 나눠 보고 싶어요. 어때요?”

일단 술만 들어가면 고든 정도야 쉽게 찜 쪄 먹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고든이 술을 안 마신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을 유혹한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눈치도 없었다.

“나는 술 안 마셔! 술 마시면 ‘근손실’이 온다고!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 일어나! 다시 한다!”

‘아이, 저 새끼 생긴 건 존나 잘 마시게 생겨서는.’

유혹이 안 통하자 엘프들은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모든 엘프가 처연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정말 힘들어서 못 하겠어요. 조금만 더 쉬었다가 해요.”

“하루에 팔 굽혀 펴기 3개, 달리기 반 바퀴만 해요. 저희는 무척 약하단 말이에요.”

“교관님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으신가요? 나이도 어린 새끼가…….”

인간 세상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엘프들이다. 눈물 연기는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엘프들이 눈물 연기를 하면 어지간한 인간들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 버린다.

과연 눈치 없는 고든도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그럴까? 그러면 조금 더 약하게…….”

순간 머릿속에 지셀이 건넨 경고가 떠올랐다.

― 제대로 안 하면 알지? 네가 특별 훈련에 들어갈 줄 알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영주의 특별 훈련은 정말 무섭다. 정신에 각인된 공포가 원초적인 본능을 억눌렀다.

“아, 안 돼! 그러면 나도 죽고 너네도 다 죽어! 빨리 일어나!”

‘아, 시발. 저 인류애도 없는 새끼.’

엘프들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일어났다. 한 엘프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우리는 엘프니까 이런 거 말고 그냥 정령술을 수련할게요! 아시죠? 엘프 하면 정령술이잖아요?”

“너희 그런 거 못 한다고 다 들었어!”

‘어떻게 알았지?’

그래도 포기할 엘프들이 아니다. 다른 엘프가 외쳤다.

“그러면 차라리 마법을 공부할게요! 저희 머리 좋거든요!”

“어차피 병사 시킨다고 하던데 마법을 익히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그래요! 영주님에게 다시 말해 주세요! 마법사가 되겠다고요!”

앉아서 공부하는 게 훨씬 편할 것이다. 몸 쓰는 건 너무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

“마법? 마버업?”

고든은 순간 할 말이 없었다. 마법을 공부하겠다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무식한 그도 병사보다 마법사가 훨씬 더 고급 인력이라는 건 안다.

훈련을 멈추고 이걸 보고 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그건 싫다. 진짜 마법 공부하면 기껏 얻은 직책이 날아가지 않겠는가.

거기에 사람을 굴리는 즐거움까지 알아 버렸다. 이건 절대 놓지 못한다.

잠시 고민을 한 고든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잘 봐! 이 멍청이들아!”

부우우웅!

콰아앙!

고든이 힘을 잔뜩 담아 주먹으로 땅바닥을 내리쳤다.

땅이 단숨에 파이며 흙먼지가 날린다.

엘프들이 기겁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새끼도 영주처럼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건가?

고든은 주먹을 들고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도로 발달한 근육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마법이 따로 있나? 사람 몸으로 하기 힘들면 그게 다 마법이지.

이게 바로 고든의 세계관에 있는 마법 개념이었다.

“…….”

고든의 억지에 엘프들은 할 말이 없어졌다.

얼핏 들으면 멋진 말 같은데, 내용을 파고들면 굉장히 무식하고 이상했다. 역시 이 영지에 정상적인 놈은 없었다.

하지만 고든은 그러거나 말거나 엘프들을 재촉하기에 바빴다.

“자, 빨리 일어나! 다시 시작한다!”

“네에…….”

“대답이 그게 뭐냐고! 기합이 빠졌잖아!”

“악!”

“좋아! 앞으로 대답은 무조건 그렇게 기합 넣어서 해! 알겠지!”

“악!”

엘프들은 세상 포기한 얼굴로 일어났다.

유혹도 안 통하고 눈물 연기도 안 통한다. 아니, 유혹이고 연기고 떠나서 아예 말도 안 통할 정도로 무식한 놈이었다.

그렇게 고든의 지도 아래, 엘프들의 지옥 훈련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 * *

펜리스 영지는 식량과 철광석 두 개를 손에 넣었다. 덕분에 북부에서 휘두를 수 있는 영향력도 기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졌다.

문제는, 식량과 철광석 외의 다른 자원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카발디 지역의 영지 봉쇄 단계를 내린다. 이제부터 상단과 사신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도록 해.”

지셀의 말에 가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영토가 넓어지고 영지민이 늘어난 만큼 전보다 자원이 훨씬 더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선별된 상단과만 거래하다 보니 자원 수급에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펜리스 지역이야 대규모 경작지 때문에 최대한 숨기는 게 좋지만, 이미 공개될 대로 공개된 카발디 지역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곳에 철광석이 넘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펜리스 영지에서 적극적으로 거래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곧 수많은 상단과 각 영지의 사신들이 몰려왔다.

“총관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갈수록 신수가 훤해지시는 거 같습니다.”

“이건 제 성의입니다.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상인들은 앞다투어 클로드에게 아부를 떨고 뇌물을 바쳤다. 사신들이야 전에 한 번 와서 크게 당한 적이 있으니 알아서 몸을 사렸다.

클로드는 영지의 이인자이자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자였다. 무조건 잘 보이는 게 중요했다.

또라이라는 소문도 그에게 아부하는 데 한몫 단단히 했다.

클로드는 부러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어, 이런 거 주셔도 가격 못 깎아 드리는데…… 그래도 주신 성의가 있으니 잘 받겠습니다. 흠흠.”

클로드는 웬디의 눈치를 한번 보고는, 옆에 쌓인 뇌물들을 힐끔거리며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 저거 다 내 건데.’

지셀은 뇌물을 받는 걸 굳이 막지는 않았다. 누가 주면 주는 대로 다 받게 했다.

하지만 혼자 날름 먹으면 가만두지 않았다. 저건 전부 영지의 창고로 들어갈 것이다.

‘으으, 영지가 부자가 되면 뭐 해? 영주가 영지 일이 아니면 쓰지를 않는데. 아, 아카데미에 다시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지.’

웬디가 옆에서 호위를 빙자하며 감시하고 있으니 따로 빼먹기도 참 힘들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클로드가 물었다.

“넌 휴가도 안 가냐?”

“안 갑니다.”

“애인도 없어? 결혼 안 해?”

“없습니다. 안 합니다.”

참 보면 한결같이 책임감 넘치고 목석같은 인간이다. 클로드는 괜히 장난기가 동했다.

“나는 어때? 노예지만 이 정도면 능력 있고 잘생겼잖아? 설마 벌써 나 좋아하는 거 아니지?”

웬디가 무척이나 경멸스러워하는 눈빛으로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마치 바퀴벌레 군집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농담이야.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 상처받는다고…….”

사실은 진담도 조금 섞여 있어 꽤 많이 상처받았다.

클로드는 코가 시큰해지는 느낌에 얼른 잡념을 털어 내고는, 찾아온 상단들의 명단을 훑어보며 말했다.

“흐음, 일단 너무 많이 오셨으니 몇 명씩 좀 나눠서 얘기하도록 하죠.”

첫 번째로 호명된 상인들이 따로 모였다. 클로드가 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자, 거래에 앞서 설명을 조금 드리자면, 저번 달보다 식량과 철광석 가격이 30% 올랐으니 그리 알고 맞춰 주세요.”

“네? 30%나요?”

“아니, 갑자기 가격이 또 올랐단 말입니까?”

“너무 비싼 거 같습니다!”

이들도 야금야금 펜리스에서 푸는 식량을 구하거나 소문으로 들어서 대략적인 시세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30%나 올린다고 하니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클로드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도 점점 비축분이 떨어져 가고 있거든요. 그러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요.”

‘사실 차고 넘칠 정도로 많지만, 그렇다고 깎아 줄 필요는 없지. 싫으면 다른 데 가든가.’

괴물 밀알에서 여전히 엄청난 식량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전에 사 놓은 것만으로도 창고가 터질 정도였다.

펜리스 영지에 한해서는, 갑자기 땅이 초토화되지 않는 이상은 향후 몇십 년간 식량이 줄어들 일은 없을 것이다.

광부들 또한 점점 나아지는 생활에 의욕을 얻어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고 있다.

그러니 철광석도 카발디 백작이 다스릴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캐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상인들은 클로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바가지를 씌워도 단단히 씌우는구나.’

‘두고 보자. 사태만 수습되면 반드시 복수할 거야.’

‘언제까지 그렇게 거만하게 굴 수 있는지 보자.’

상인들은 모두 이를 갈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의 식량과 철광석 공급은 펜리스에서 꽉 잡고 있으니, 힘으로 뺏지 않는 한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순순히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이건 너무 부당합니다!”

크게 소리친 자는 북부에서 제법 큰 상단을 운영하고 있는, 파릴이라는 중년의 상인이었다.

클로드는 귀를 한번 후비고 되물었다.

“뭐가 부당한데요?”

“아무리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고 하나 너무 매정하신 거 아닙니까! 최소한의 상도덕이라는 게 있습니다! 한 번에 30%나 올리는 건 너무 과합니다!”

“푸우!”

클로드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상도덕? 양심이 있으면 적어도 펜리스 영지에 와서는 그딴 소리를 내뱉으면 안 된다.

지금 모여 있는 상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건 단순히 이득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모르겠지만 더 싼 가격에 물건을 가져가는 곳도 있었다. 괜히 인원을 나눠 따로 보는 게 아니었다.

‘다 너희들 업보예요, 업보. 우리 영주님은 다른 건 몰라도 원한은 절대 안 잊는다.’

북부에서 활동하는 상단들이니, 당연히 과거 페르디움과도 몇 번씩 거래한 적이 있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페르디움에 실컷 바가지를 씌우고 큰 이득을 챙겨 갔다.

‘지원해 주는 영지들은 버리기 직전의 식량이나 던져 주고……. 상인들은 물건을 더 하품으로 바꿔치기를 하고……. 작은 생필품 하나에도 이득을 몇 배나 붙여서 팔았다지?’

그러니 페르디움은 적든 많든 이들에게 계속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페르디움의 재무관 알버트가 항상 징징거리던 빚이, 바로 이 북부의 상단들과 다른 영지에게 진 빚이었다.

페르디움 영지에서는 야만인들보다 이런 상인들을 더 무서워했다.

그리고 언제나 돈 때문에 시름에 잠겨 있던 아버지와 가신들의 모습을 지셀은 절대 잊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거래는 해야 하니까 30% 정도에서 끝난 거다. 너네 이미 영주님한테 제대로 찍혔다고.’

지셀은 페르디움에 사람을 보내 그들에게 바가지를 씌웠던 상단들의 명단을 받아 왔다.

알버트도 그 요청서를 보자마자 지셀의 의도를 눈치채고 신나서 명단을 꼼꼼히 적어 보내 주었다. 이럴 때는 더럽게 죽이 잘 맞는 사이다.

‘미안한데 데스몬드만 거꾸러뜨리면 너희들은 다 해체해 버릴 예정이야.’

지셀은 이들을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원한도 원한이지만, 북부 전체를 통합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이쪽에 손쓸 여유도 없고 자원도 많이 필요하니 적당히 이익을 붙여 거래를 진행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건 지셀의 최측근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클로드는 상인들에게 티 나지 않게 속으로만 비웃었다.

“뭐라 말씀하셔도 더 깎아 드릴 수는 없으니까 그리 아세요. 대화 길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일이었어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언제나 사람은 말을 적게 하고 듣는 걸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항상 잔소리를…….”

클로드가 쉬지 않고 자기 얘기만 계속하자 파릴은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딴 애송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펜리스 남작은 이제 북부의 강자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식량과 철광석이 아니더라도, 이번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그만큼 의미 있는 활약이었다.

도무지 어떻게 이겼는지 모를 정도로 헛소문만 가득했지만 말이다.

분노를 억누른 파릴이 클로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어렸을 때 일은 나중에 말씀하시고 영주님부터 만나게 해 주십시오! 내 직접 영주님과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습니다!”

“우리 영주님을 보겠다고요?”

“네! 저는 영주님의 아버지이신 페르디움 백작님과도 그간 많은 거래를 해 왔습니다! 분명 저를 알고 계실 겁니다! 예전에 잠깐 페르디움에서 뵌 적도 있습니다!”

‘미친놈이 스스로 죽으러 간다는 거네.’

페르디움에 실컷 바가지 씌운 주제에 직접 따지러 간단다. 그런 재미있는 일을 말릴 클로드가 아니다.

“어휴, 페르디움 백작님 지인이셨구나. 그럼 빨리 가 보셔야죠. 어이, 여기 안내해드려.”

살가운 클로드의 말투에 파릴은 당당하게 콧김까지 뿜으며 움직였다.

지셀을 만난 파릴은 지금의 가격이 얼마나 부당한지 열렬하게 성토했다.

그리고 앞으로 상단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영지에 도움이 될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도 건넸다.

가만히 듣고 있던 지셀은 파릴의 말이 끝나자마자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50%.”

“네?”

“그쪽에는 30%가 아니라 50%를 더 받겠다고. 방금 올랐어.”

지셀의 말에 파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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