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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07화 (207/269)

207화 새로운 기술 개발에 들어가겠다. (2)

드워프들이 연구에 전념하는 사이, 지셀은 다시 계획들을 검토하며 영지의 상황을 살폈다.

그간 제련소를 많이 지어 둔 덕분에 철괴는 무지막지하게 생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무장과 도구들은 대량 생산을 자제하고 있었다.

새로운 합금 개발에 성공한 뒤 그것으로 만들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성공만 하면 큰 변화가 일어날 거야.’

강도는 강철과도 같은데 무게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철이 들어가는 모든 물품이 그걸로 대체된다면, 군대의 전력부터 사람들의 생활까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철광석은 충분하다. 대량 생산만 시작하면 1년 내로 모든 영지민들을 무장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야. 하지만 다른 건 아직도 많이 부족해.’

제련소와 대장간만 대량으로 건설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간 너무나 빠르게 영토를 확장하고 인구가 늘어났다.

그 상태에서 지셀이 생각하는 수준까지 바로 끌어올리려니 문제가 없을 수가 없었다.

‘땅을 뺏어도 죄다 개판이니…….’

카발디 영지에도 최소한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작지와 거주지 등 여러 시설을 지어야 했다.

시설도 문제지만, 다른 자원들의 수급 또한 문제였다. 식량과 철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슬슬 영지 봉쇄를 풀고 교역 쪽에 힘을 써야겠어.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왕국 쪽도 같이 알아봐야겠군.’

결국 부족한 자원은 거래를 통해 얻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기형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영지의 경제적 균형을 어느 정도는 맞춰야 했다.

다시 계획을 점검하고 영지 개발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클로드가 헐레벌떡 찾아왔다.

지셀은 클로드를 보자마자 질색하며 뒤로 물러섰다.

“왜? 또 뭐가 문제인데?”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네가 오면 이상하게 자꾸 문제가 생겨. 사고를 몰고 오는 놈 같으니라고.”

클로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와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문제가 생기니까 제가 오는 거죠. 대부분 문제는 영주님의 무리한 계획 때문에 생기는 거고요.”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뭔데? 이번에는 뭐가 문제인데?”

“문제가 있어서 온 게 아니라……. 드디어 기다리던 엘프 노예들이 도착했습니다.”

“오! 도착했다고?”

그 말에 지셀이 반색하며 벌떡 일어났다. 사실 영지 안정화와 개발 때문에 너무 바빠서 깜빡 잊고 있었다.

지셀은 냉큼 뛰어가서 노예상을 만났다.

노예상은 지셀을 보자마자, 예전과는 다르게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바짝 숙이며 찬사의 말부터 던졌다.

“오! 북부의 변경백, 즈발터 페르디움의 고귀한 아들이자 영광스러운 페르디움의 정당한 후계자, 펜리스의 지배자이자 수호자며 불패의 승리자, 여신의 뜻을 이행하는 자, 드높은 덕목과 현명한 판단을 지녀 모두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력의 군주, 이 북부에 오직 한 분이신 펜리스 남작님을 뵙습니다.”

“…….”

주변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전과는 다르게 너무 과한 예로 인사를 올렸기 때문이다.

딱 봐도 온몸으로 아부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노예상을 지긋하게 바라보던 지셀이 조용히 물었다.

“……너 요새 많이 힘드냐?”

“……네.”

“돈도 잘 벌면서 뭐가 힘든데?”

“대금을…… 금화 대신 식량으로 받으면 안 되겠습니까?”

지셀은 피식 웃었다. 알 만하다.

지금 온 노예상은 브랜포드 후작이 소개해 준 노예상들의 대표였다.

왕국에서 가장 큰 노예 상단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딸린 식구도 많고 노예들도 많을 것이다.

어려운 시기라 장사도 잘 안될 텐데 그 많은 노예들까지 먹여 살려야 하니 아주 죽을 맛일 게 분명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지셀이 아니다. 그는 아낄 때는 무지막지할 정도로 아끼는 사람이다.

“그래, 식량으로 줄게. 대신 반값에 가져가.”

“네?”

“약속한 대금의 절반 치만 식량으로 주겠다고. 싫으면 그냥 약속한 대금으로 받아 가고. 30%만 줄까 하다가 데리고 있는 노예들 다 굶어 죽을까 봐 봐준 거야.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약하다.”

“으으으…….”

노예상은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엘프 노예들은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한다. 이번에 데리고 온 것만 해도 200여 명이다.

그걸 반값에 처리하면 엄청난 손해였다.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요새 식량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노예상은 눈물을 머금고 수락했다. 대금의 절반만 받아 가도 올해는 충분히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지셀은 노예상의 어깨를 다독여 주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내가 조만간 깜짝 놀랄 소식을 들을 거라고 했지?”

“네……. 전쟁 소식 들었을 때는 정말 망하나 했는데 승리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긴 했습니다. 기사들이 전에는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는데…….”

“그러니까 앞으로 이 몸이 하는 말들을 잘 새겨들으라고. 그래, 엘프들은 어디에 있지?”

“네, 성 밖에 있는 임시 막사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영지의 행정관에게 인수인계도 마쳤습니다.”

클로드가 바로 지셀에게 서류 하나를 넘겼다. 엘프들의 몸값과 개인 정보가 적혀 있는 신상 명세서였다.

대충 훑어본 지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클로드가 먼저 가서 엘프들을 숙소로 안내하고 우선 필요한 것들부터 챙겨줘. 난 거래 마무리하고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노예상과 인부들이 수레를 잔뜩 끌고 식량 창고로 이동했다.

엘프들의 가격이 가격이니만큼 절반만 쳐도 건네주는 식량의 양이 엄청났다.

지셀은 꼼꼼하게 식량의 양을 체크했다. 어지간한 건 그냥 넘기겠지만 워낙 대금이 크니 확실하게 해야 했다.

그 모습을 본 노예상은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영주가 이런 거까지 다 확인해? 사기 당하기 싫어서 별짓을 다 하는구나.’

슬쩍 식량을 좀 더 실어 보려던 노예상은 바로 포기했다. 저렇게 두 눈 부릅뜨고 보고 있으니 가능할 리가 없었다.

저런 모습을 보니 문득 다른 걱정이 앞섰다.

“저기…… 영주님. 혹시 엘프 노예들을 사 본 적이 있습니까?”

그 말에 지셀은 잠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답했다.

“아니, 처음 사 보는 건데?”

“그럼 뭐…… 오래 같이 지내거나 본 적도 없으신 거죠?”

“뭐…… 잠깐 본 적은 있는데.”

전생에 꽤 오래 알고 지낸 엘프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환란에 맞서 싸운 훌륭한 동료들이었지 노예들은 아니었다.

그가 본 엘프 노예라 해 봐야 용병왕으로서 대접을 받을 때 봤던 무희 정도였다. 그마저도 관심이 없어 큰 접점은 없었다.

그런 걸 신경 쓰기에는 그의 삶이 너무나도 고단하고 피곤했었으니까.

지셀의 반응을 본 노예상은 살짝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럼…… 대금도 다 받았으니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왜? 피곤할 텐데 하루 정도는 쉬다 가지.”

“아닙니다. 일이 너무 바빠서 말이지요. 다음번에는 조금 더 빨리 올 수 있을 겁니다.”

추가로 지셀이 부탁한 노예들은 일부 기술자나 인구를 채우기 위한 노예들뿐이다.

이종족 노예들보다는 훨씬 이동이 쉬우니 구하기 어렵진 않았다.

갑자기 급해 보이는 노예상의 모습에 지셀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바쁘다니 어쩔 수 없지. 멀리 안 나간다.”

“아, 엘프들도 드워프들처럼 다루기 어려운 건 아시죠? 인간보다 수명이 기니 나이들도 많은데, 몸값이 비싸니 대우만 받고 살았던 놈들이거든요.”

“엘프들도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을 테니 잘 대해 주면 돼. 드워프들도 지금은 마음을 열고 우리 영지에서 잘 지내거든.”

드워프들이 들으면 환장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래도 그런 대답을 들은 노예상은 조금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네, 그러면 전 설명 다 드렸습니다. 진짜 가 보겠습니다. 야야, 빨리 가자!”

노예상은 인부들을 재촉하며 식량 수레들을 끌고 급하게 사라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지셀이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저 새끼 저거, 뭔가 좀 수상한데? 어디 아픈 엘프들이라도 데리고 온 거 아냐?”

명단에 그런 얘기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이상해서 바로 확인하려고 돌아서던 그때, 클로드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노예상 이 새끼 어디 있습니까? 벌써 튀었나?”

“갔는데?”

인상을 확 찡그린 클로드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지셀을 바라보며 말했다.

“문제가 있습니다.”

“아, 또 뭐가 문제인데.”

“직접 보셔야 합니다.”

심각한 어조에 지셀과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걸음을 옮겼다.

숙소 앞에 있는 공터에 도착한 사람들은 곧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이게…… 엘프라고?’

애초에 돈 많고 신분이 높은 자가 아니면 구경도 하기 힘든 게 엘프 노예들이었다. 다들 저택에 꼭꼭 숨겨 두고 아끼기 때문이다.

평생 살면서 한 번도 못 보고 죽는 사람들도 허다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책이나 이야기로 들은 신비로운 엘프의 이미지만 가득했다.

아름답고 노화가 거의 없으며 자연을 사랑하는 온화하고 고귀한 종족.

그런데 눈앞에 있는 엘프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야, 술 더 가져와! 오늘 도착한 기념으로 끝내주게 놀아 보자고!”

“둠칫! 둠칫! 아,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나? 관절이 아파서 춤이 예전 같지 않네.”

“술 더 없어요? 오늘은 실컷 마시고 푹 자고 싶거든요. 내일부터는 화끈하게 놀자고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어디서 무슨 백수건달들이 야유회를 나온 것만 같았다.

소문처럼 남녀불문하고 아름다운 건 맞다. 그런데 느낌이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지셀이 특정 성별만 요구하지 않았기에 여자와 남자가 반씩 섞여 있었다.

문제는 성별과 상관없이 전부 이상해 보인다는 것이다.

“푸우우우우! 나는 골초니까 매일 최고급 연초로 지급해 주셔야 해요.”

“어우, 취한다. 벌써 다 마셨네. 식사는 언제 할 거예요? 저는 고급술과 송아지 고기 아니면 안 먹어요.”

“난 고급 침대 아니면 잠을 못 자는데. 동네가 좀 가난해 보이네.”

몇 명은 연초를 물고 뻐끔뻐끔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몇 명은 벌써 술에 취했는지 비틀거리고 있었다.

드러누워서 코를 골며 자는 놈도 있고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엘프들도 있었다.

가만히 있는 놈들이라고 멀쩡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상태가 더 심각했다.

다들 나태와 권태가 온몸에서 묻어나왔다. 정말 삶에 찌들 대로 찌든 피곤한 얼굴들이었다.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 안 하는 지셀도 이 순간만큼은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이게 뭐야? 이게 엘프들이라고? 귀만 뾰족하게 붙여 놓은 거 아냐?”

지셀이 당황한 얼굴로 클로드를 바라보자, 클로드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저도 그런 줄 알고 확인해 봤더니 엘프 맞던데요? 항상 모르는 거 없이 아는 척만 하더니 이런 것도 모르고 구매한 겁니까?”

“내가 저런 거까지 어떻게 알아! 내가 아는 엘프들은 안 저랬다고!”

“아, 왜 저한테 성질이에요! 사기는 영주님이 당해 놓고!”

“사기? 이 내가 사기를 당했다고?”

황당함에 주변을 둘러보자 측근들이 모두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카오르는 배를 잡고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크하하하하! 대장 영주도 사기를 당할 때가 다 있네? 저게 무슨 엘프야! 엘프 탈만 쓴 오크 새끼들이지! 푸하하하! 으악! 뭐야!”

순간 열 받은 지셀의 날아 차기가 바로 카오르에게 작열했다.

“야!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빨을 보여?”

카오르는 밟히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 영주가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이건 절대로 못 참는다.

“푸하하! 바, 바보처럼 사, 사기 당하……. 크윽! 아, 아파! 푸하하핫! 그만 때렷…… 으히히힉! 컥, 뭐야? 발이 왜 늘어나?”

어느 순간 벨린다도 끼어들어 발길질을 날렸다. 그 모습을 본 클로드와 웬디도 다가가 열심히 밟았다.

구경 왔던 알포이도 눈치를 보더니 슬쩍 끼어들어 카오르를 강하게 발로 찼다. 피오테는 조금 고민한 뒤에 끼어들었다.

‘여신이시여, 제 죄를 사해 주소서. 제가 요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순하디순한 피오테까지 발길질을 하자 다들 거칠 게 없었다. 곧 주변에 있던 모두가 달려들어 카오르를 밟기 시작했다.

“억! 뭐야! 발이 왜 이렇게 많아! 이 새끼들 내가 신발 다 기억……. 아악! 잠깐! 그만 밟아! 아, 싯팔! 뭐야! 뭐냐고오오오!”

다들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과 성을 다해 발길질을 날렸다.

카오르는 결국 비명을 지르며 땅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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