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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04화 (204/269)

204화 ‘가족 같은 영지’거든요. (1)

“……우리 영지는 왕국 최고의 식량 생산지이자 철광석 산지로서…… 왕국 최고의 화장품을 개발하고…… 룬스톤 자원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가뭄에도 엄청난 생산량으로 영지민들은 단 한 명도 굶지 않아 모두가 칭송하는…… 영지의 군사력은 무려 기사가 400여 명으로…….”

하나하나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뿐이었다.

식량, 철광석, 화장품, 룬스톤. 이 중 한 가지만 있어도 부유한 영지로 손꼽힐 텐데, 전부 다 한 영지에서 나온다면 돈이 얼마나 들어올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들어 보니 지금도 실시간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식량도 넘쳐나 굶는 이가 없으며 돈이 너무 많아서 세금도 거의 안 걷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지상낙원 중의 낙원이었다.

모든 이들이 바라고 꿈꾸던 곳. 만약 그곳에서 관료직을 맡는다면 인생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일 것이다.

말론은 더욱더 인상을 찌푸렸다. 사기꾼인 건 알았지만 허풍이 너무 과했다.

‘저걸 지금 믿으라고 하는 거야? 요새 상황이 아무리 안 좋다지만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정치를 조금만 배운 신입생들도 믿지 않을 말을…….’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믿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그런 영지가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말론은 그 학생을 돌아보았다. 제법 우수한 성적을 내는 친구였다.

항상 잘난 척을 하고 따지는 걸 좋아해서 가까이하기는 싫은 놈이었다.

‘그래도 이럴 때는 대신 나서 주는 게 좋기는 하네. 저놈 잘 따지는데 망신 좀 당하시겠어. 속 시원하게 그것만 보고 돌아가야겠다.’

다른 학생들도 모두 말론과 비슷한 마음이었다. 절박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딴 자리에는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분위기가 확 가라앉자 클로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허어, 제 말을 못 믿겠습니까? 제가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이 아카데미의 선배로서 후배님들을 도우러 왔을 뿐입니다만?”

클로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좋은 점은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고 안 좋은 걸 숨겼을 뿐이다.

뻔뻔한 클로드의 대답에도 학생은 물러서지 않았다.

“루타니아의 북부는 저도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곳은 척박하여 식량 사정이 좋지 않고 야만인들의 침략에 시달리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북부에 있는 펜리스 영지가 그렇게 상황이 좋다는 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 새끼가? 공부 많이 한 놈인가?’

저 학생이 말한 것과는 다른 이유 때문이지만, 확실히 펜리스의 상황이 좋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펜리스 영지는 관리 인력마저 부족해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기는 중이 아닌가.

하지만 그걸 어떻게 확인할 건데? 그것 때문에 너희들 꼬시러 온 건데? 어쩔 건데?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클로드는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물었다.

“와 봤어요?”

“네?”

“그거 그냥 소문이지 않습니까? 와서 보셨냐고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쯧쯧쯧, 학문을 닦는다는 사람이 직접 보지도 않고 소문으로만 들은 것을 맹신하다니……. 그래서야 진리와 이치를 궁구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학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클로드의 호통에 질문을 던졌던 학생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좋다는 말도 아직 확인 안 했는데 그건 왜 믿으라는 말인가?

다시 따지려고 할 때 클로드가 선수를 쳤다.

“가지고 온 식량들은 보셨죠? 그게 바로 증거입니다. 아카데미에 기부하고도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다른 곳에도 나눠 주기 위함이지요. 세이론 왕국의 대영주 중에 그 정도를 아무렇지 않게 나눠 줄 수 있는 자가 있습니까?”

웅성거리던 학생들은 클로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론도 산처럼 쌓여 있던 식량을 떠올리고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지, 대기근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같은 시기에 그 정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눠 주는 건 쉽지 않지. 진짜…… 부자 영지인 건가?’

할 말이 없어진 학생은 다른 걸로 따졌다.

“좋습니다! 돈이 많다는 건 믿어 보겠습니다! 하지만 400명의 기사요? 그건 정말 말이 안 됩니다!”

다른 학생들이 다시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도 보통 귀족들이 기사들을 몇 명이나 거느리는지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루타니아가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한 영주가 거느릴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다.

거기에 펜리스 영주는 영토를 넓히기 전에는 고작 남작령의 주인이었다고 한다.

기사 400명은 왕국 최고의 권세가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전력이었다. 아직 젊은 영주가 거느릴 수 있는 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클로드는 그 반박에도 우습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제가 데리고 온 호위 기사만 해도 50명입니다. 전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정식 기사죠.”

“그런! 믿을 수 없습니다!”

세이론 왕국의 백작급 고위 귀족은 기껏해야 20여 명 내외의 기사들을 거느린다.

기사가 더 많은 루타니아에서도 백작급 영지의 기사는 평균 50여 명, 대영주급은 되어야 100여 명 이상을 거느릴 수 있었다.

특히 척박한 북부의 영지는 기사의 수가 조금 더 적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고위 귀족도 아닌 총관의 호위로 기사가 50명이나 붙어 있다고?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말론의 마음에도, 다른 학생들의 마음속에도 다시 의심이 피어올랐다.

클로드도 불손한 눈빛을 감지했는지 손가락을 튕기며 웬디에게 말했다.

“기사들 전부 들어오라고 해.”

곧 길리언과 함께 50명의 기사들이 들어왔다.

말론은 기사들을 보곤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켰다.

‘저게…… 진짜 기사?’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말론과 다를 게 없었다.

‘아무리 봐도 용병이나 산적들 같은데…….’

‘그냥 기사처럼 꾸민 게 아닐까?’

‘저렇게 건들거리는 기사들은 처음 봐.’

복장만 보면 기사가 맞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짝다리를 짚고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놈, 건들건들 고개만 까닥이는 놈, 들어오자마자 쪼그려 앉는 놈, 괜히 여기저기 노려보는 놈 등 가지각색이었다.

‘바닥에 침 뱉는 놈도 있어! 신성한 아카데미에서 도대체 무슨 짓이야!’

‘더러워! 천박해! 저게 무슨 기사냐고!’

‘완전 사기꾼 새끼들이야! 사기꾼이 분명해!’

기사의 품격이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들을 보며 학생들은 다시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클로드도 그런 기사들을 보며 인상을 팍 썼다.

‘하여튼 이 새끼들은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이 못 배워 먹은 놈들아, 여기서도 이러면 어쩌자는 거냐?’

길리언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다들 이제 맞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무리 패도 그때만 잠깐 빠릿빠릿하게 굴 뿐, 버릇이 잘 고쳐지질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팰 수는 없으니 길리언도 눈을 부라리며 위협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기사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세를 바로잡았다.

클로드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고는 길리언에게 말했다.

“길리언, 학생들에게 기사들의 마나를 보여 주도록. 뭐 해? 빨리 안 하고?”

길리언은 입술을 몇 번 씰룩이더니 기사들에게 손짓했다. 기사들의 검에서 곧 푸른 마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학생들은 모두 감탄을 내질렀다.

“지, 진짜다. 전부 기사들이야. 그런데 왜 하는 짓들이 저따위…….”

“이럴 수가……. 영주 본인도 아니고, 총관의 호위로 기사를 50명이나 지원하다니…….”

“영지엔 여기 온 것보다 기사들이 더 많이 남아 있을 거 아니야! 정말 군사력도 엄청난 영지였잖아?”

학생들의 반응을 본 클로드가 기사들을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

“자자, 됐어. 그만, 그만! 우리 후배들 놀라겠어. 이제 그만해도 돼. 빨리 집어넣어!”

피 토하고 쓰러지면 진짜 놀랄 것이다.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어떻습니까? 이제 믿을 만합니까?”

이 엄청난 전력을 보고 안 믿으면 바보다. 따지던 학생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학자들의 가장 큰 꿈이 무엇인가?

바로 왕실이나 대영지의 고위 관료가 되어 자신의 꿈과 이상을 펼치는 것이었다.

지금 이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눈앞에서 기사들까지 확인한 말론은 더 이상 흥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저 정도 숫자의 기사들을 데리고 있으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대우도 확실해야 한다.

의심 따위는 이제 전부 던져 버렸다. 증거가 이렇게나 많은데 안 믿으면 세상에 믿을 것 하나 없다.

‘지, 진짜다! 기사가 맞는지는 절대 사기 칠 수 없는 일이야! 다른 게 거짓말이더라도, 식량과 기사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진짜 엄청난 영지구나! 가고 싶다! 저 낙원 같은 영지에 가서 일하고 싶어! 내 능력을! 내 꿈을 펼쳐 보고 싶어!’

하지만 믿음이 커진 만큼 불안감도 커졌다. 이런 시기에 사람을 많이 뽑을 리가 없으니 경쟁률이 엄청날 것이다.

‘어, 어떡하지? 이러면 거의 다 지원할 텐데. 다들 굶어 죽을 지경이라 다른 왕국에 가는 건 신경도 안 쓸 거야.’

이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정말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확 피어올랐다.

주변을 둘러보자 역시나, 모든 학생이 상기된 얼굴로 클로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펜리스 영지에 가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말론은 다른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손을 들고 소심하게 물었다.

“혹시…… 몇 명 정도 뽑으실 예정입니까?”

다른 학생들도 눈을 빛냈다.

지금부터는 모두가 경쟁자나 마찬가지다. 뽑히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분에게 잘 보여야 했다.

서로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 분위기를 감지한 클로드가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원하는 자는 전부.”

“예?!”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말론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저, 정말입니까? 원하는 사람은 전부 그곳에 갈 수 있습니까?”

“네, 앞서 말했다시피 저희 펜리스 영지는 영토도 꽤 넓고, 인구도 상당히 많습니다. 관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왜 굳이 저희를 뽑으려고 하십니까? 저희는 경력도 부족하고 능력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루타니아 왕국에는 훌륭한 인재들이 더 많을 텐데요…….”

주눅 든 말론의 목소리에 클로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세이론 아카데미 출신입니다. 다른 아카데미 출신들보다 제 후배들이 성공하기를 바라죠. 그렇게 서로서로 이끌어 주다 보면 우리 아카데미 출신이란 것 자체가 힘이 됩니다. 다들 무슨 뜻인지 아시죠?”

“오오…….”

학생들은 감탄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들었던 학연, 지연인가 보다. 이래서 다들 인맥, 인맥 하는 모양이었다.

상위권에는 든 적이 없었던 말론은 여전히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그래도 아직 능력이 부족해서…….”

“어허! 능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건 그냥 가서 존나게 맞으면서 구르면……. 아니, 가서 성실하게 배우고 익히면 다 됩니다. 현장에서 익히는 것이야말로 진짜거든요. 중요한 건 성적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합니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과 열정뿐입니다! 저는 오직 그것만을 봅니다! 그게 없으면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펜리스 영지에서는 꺾이면 죽고 열정이 없어도 죽는다. 클로드는 처음으로 오롯한 진실을 얘기했다.

그리고 순진한 학생들은 그 말에 다시 감탄을 내뱉었다.

“총관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직접 해 봐야 그 능력이 검증되는 법이지요!”

“인재를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니! 정말 좋은 정책입니다!”

“과연 대영지의 총관님이라 그런지 확실히 그릇이 다르십니다!”

홀 전체가 순식간에 열광적인 분위기로 가득 찼다. 클로드는 그 틈을 타 잽싸게 계약서를 학생들에게 나눠 주었다.

“자자, 이거 한번 읽어 보시고 결정하세요. 조건은 마음에 드실 겁니다.”

계약서를 훑어보던 학생들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보수가 정말 엄청나잖아?”

“거기에 가족들의 거주와 생계까지 전부 책임져 준다고?”

“역시 대영지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세이론 왕국의 어느 영지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보수도 높고, 복지 내용도 훌륭했다.

다들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만 끔벅거렸다. 말론은 저도 모르게 클로드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신입 관리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이렇게 대우가 좋은 영지는 정말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모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같은 시기에 대영지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대우까지 어마어마하다. 단순히 보수만 놓고 봐도 세이론 왕실의 중견 관리보다 훨씬 나을 정도였다.

넋이 나간 말론을 바라보며 클로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저희 영지의 신조가 ‘가족 같은 영지’거든요.”

학생들의 얼굴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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