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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01화 (201/269)

201화 지금 시세의 3배. (2)

휴베르트와 장로들은 손가락 세 개에 특별한 추억이 있었다. 절로 욕이 나오는 추억.

‘아이씨, 이 새끼 또 시작이네.’

‘지금 시세의 3배면 도대체 얼마라는 거야?’

‘아니 뭐 말만 하면 3배야. 숫자 3에 집착하는 병이라도 있나?’

휴베르트와 장로들은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저번처럼 뻗대다간 가격이 더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험에 기반한 훌륭한 선택이지만, 시세의 3배를 낸다면 어마어마한 출혈이 생길 터였다.

‘으으, 어떡하지? 지난 몇 년간 모은 돈을 다 날리게 생겼어.’

마탑의 수익을 전부 가져다줘도 2년 치 식량을 살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지셀이 은근한 어조로 속삭였다.

“아니면 다른 조건도 있긴 한데……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뭔데?”

“3서클 마법사 스무 명 추가 파견, 그리고 룬스톤 거래량을 절반으로 줄여 주시면 그 절반만큼 식량으로 채워 드리겠습니다.”

“콜!”

휴베르트는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현재 왕국의 모든 자금이 식량으로 몰려들고 있다. 심지어 타국과의 교역도, 피해가 적은 왕국에서 식량을 들여오는 쪽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식량값은 천정부지로 뛰었지만, 반면 룬스톤을 비롯한 다른 자재들은 구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룬스톤은 애초에 희귀한 광물이라 많이 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룬스톤 대신 식량을 준다는데 여기서 반대하면 바보다.

장로들도 휴베르트의 빠른 결단에 찬성했다.

‘지금은 무조건 식량으로 받는 게 더 이득이다. 개이득이지.’

‘다시 되팔아도 마법 도구를 파는 것보다 훨씬 많이 벌 거야.’

‘수련이야 조금 뒤로 미루면 되지. 나중에 해도 돼. 먹는 입도 좀 줄일 겸, 실력 떨어지는 놈들로 보내야겠다.’

원래부터 수련하기 싫어하던 휴베르트와 장로들이다. 룬스톤이 줄어들면 수련도 못 하게 된다는 점은 그들에게 걸림돌도 되지 않았다.

그 적극적인 태도에 지셀은 활짝 웃었다.

‘아, 공사 인원 부족했는데 잘 됐다. 스무 명 정도 늘어나면 큰 도움이 되겠어. 룬스톤도 이제 많이 아끼게 됐군.’

보통 마탑에는 3서클 마법사가 가장 많았다. 그 단계가 제일 어중간하기 때문이다.

사실 공사에 쓸 마법은 2서클 마법사도 충분히 시전할 수 있다. 하지만 한창 마법을 배우고 실력을 늘려야 할 그들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는 않았다.

3서클부터는 재능이 없다면 더 이상 위로 올라가기가 힘든 단계다. 아마 마탑에도 성장이 정체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터.

휴베르트가 재능 있는 자들을 보내 주진 않을 테니, 아마 그런 자들만 몰려올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열심히 구르면 한계를 깰 수 있겠지.’

재능이 부족해서 성장이 막힌다? 그러면 죽어라 구르면 된다.

그들의 성장도 돕고, 영지 발전에 도움이 되니 서로 이득이다.

물론 상대방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진 않겠지만.

“그러면 지금 계약서를 새로 작성할까요?”

“좋지! 어서 작성하세나!”

휴베르트는 바로 품에서 전용 펜을 꺼냈다.

금으로 된 펜대에 작은 보석들이 수없이 많이 박혀 있는 펜이었다.

어찌나 보석이 많이 박혀 있는지 따개비처럼 징그러워 보일 정도였다.

지셀은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여전하시네.’

룬스톤을 공급받고 돈을 다시 벌더니 세상 천박한 펜부터 만들었다.

그놈의 사치가 과해서 마탑이 어려워졌다는 걸 또 잊은 모양이다.

마탑 도시를 발전시킨 장본인인 데다 인망도 두터운 걸 보면 능력이 없는 건 아닌데,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었다.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뒤 휴베르트는 지셀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마법사들은 최대한 빨리 보내 주겠네. 대신…… 나 지금 돌아갈 건데 식량을 조금만 미리 가져가도 될까?”

“그러시죠. 근데 바로 가실 겁니까? 알포이도 안 보시고요?”

“아휴, 괜찮아. 잘 지내고 있으면 됐지. 이제 걔도 지부장인데 스승인 내가 다짜고짜 보자고 하면 불편할 거야. 젊은이들끼리 잘 지내야지.”

겉으로는 인자하게 웃고 있지만 휴베르트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미쳤어? 혹시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가야지. 여기 뭐 더 볼 게 있다고.’

괜히 어물거리다가 지셀이 말을 바꿀까 봐 겁났다. 이놈이랑 거래할 때는 빨리 끝내고 도망가는 게 최고다.

떠나려는 휴베르트에게 지셀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 전에 진홍의 마탑도 식량을 얻으러 찾아왔었는데 그건 소문 들으셨죠?”

“아무렴! 들었고말고! 글렌 그 싹수없는 놈이 잘난 척하다가 자네한테 개망신당하고 돌아갔다며? 으하하하! 내가 그걸 듣고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잘했네. 정말 잘했어!”

휴베르트와 장로들은 정말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크게 웃었다.

그런 마법사들을 보며 지셀이 말을 이었다.

“나중에 가만 안 둔다고 하던데……. 진홍의 마탑이 만약 전쟁에 참여해서 저희랑 싸우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법이고 관습이고 다 무시하고 말이죠.”

그러자 휴베르트와 장로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진홍의 마탑이 전쟁에 참여한다? 그건 절대 못 참는다.

몇 번 입술을 씰룩거린 휴베르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면 바로 우리 불러. 내가 그 새끼들 머리를 다 태워 버릴 테니까.”

지셀은 만족감 섞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적의 적은 내 편이다.

오늘따라 휴베르트의 매끈한 머리가 유독 멋지게 빛나는 거 같았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스무 명의 마법사가 영지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공사에 투입된 마법사들은 격렬하게 반항했다.

“이게 뭡니까! 마법사에게 이딴 일을 시키다니! 다들 미친 겁니까?”

“나는 이런 일 절대 못 합니다! 품격 떨어집니다!”

“당신들은 이제 마법사가 아니야! 이런 하찮은 일이나 하고 있다니!”

물론 기존 마법사들은 그런 앙탈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일 시킬 사람이 늘어났으니 빠르게 기강을 잡아야 했다.

“지부장인 내가 까라면 까! 이 새끼들아! 여기가 이제부터 진짜 마탑이야!”

전과는 다르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은 알포이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같은 편도 여러 명이니 아주 든든하다. 무서울 게 없었다.

알포이가 손에 마력을 모으며 외쳤다.

“말 안 들으면 다 패 버릴 끄니까!”

“어디 한번 해 보십시오!”

새로 온 마법사들이 적극적으로 덤벼들었지만, 모두 순식간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본래도 알포이와 기존 마법사들이 그들보다는 수준이 약간 더 높긴 했지만, 이 정도로 크게 차이 나지는 않았다.

그 격차에 새로 온 마법사들은 경악하며 물었다.

“뭡니까! 갑자기 왜 이렇게 강해진 겁니까!”

“그러게? 뭔가 더 강해진 거 같네?”

정작 알포이도 의아해했다. 마력의 수발이 전보다 자연스러워지고 속도도 무척이나 빨라졌다.

그간 누구와 싸워 본 적도 없고 그렇게 살아서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잠시 고민하던 알포이가 말했다.

“공사를 하면 강해진다! 그러니까 너네도 열심히 하면 돼!”

이유도 모르고 할 말이 없어서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던진 말이었지만, 그게 진실이었다.

새로 온 마법사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포이는 이곳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남자답게 철저했다.

“그냥 말로만 해서는 열심히 할 리가 없지! 계약을 해야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법!”

그는 바로 새로 온 마법사들을 끌고 가 강제로 노예 계약까지 마쳤다. 남 편한 건 못 보는 고약한 심보 때문이었다.

하루아침에 노예가 된 마법사들은 분함을 참지 못했다.

화풀이할 대상을 찾던 그들은 분노의 화살을 열심히 일하던 바네사에게 돌렸다.

“야! 바네사! 나 대신 이거 해!”

“내 빨래는 저녁까지 끝내 놔!”

“여기서도 여전히 행동이 굼뜨네? 빨리 안 움직여? 오랜만에 혼나고 싶냐?”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바네사는 마탑의 하녀였으니까.

갑작스러운 엄포에 그간 평화롭게 지내던 바네사가 깜짝 놀랐다.

“네? 네?”

아무리 6서클에 올랐다지만 마력은 아직도 현저히 부족하다. 거기다 어릴 때부터 당해 온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바네사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자 한 마법사가 크게 외쳤다.

“뭐 해? 빨리 내 거부터 하라니까? 정신 안 차려?”

그 모습을 본 알포이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높이 뛰어올라 발차기를 날렸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퍼억!

“으악!”

바네사를 핍박하던 마법사가 넘어지자 기존의 마법사들도 달려와 다 같이 발로 밟았다.

퍼억! 퍼억! 퍼억!

“악! 왜 이러십니까! 왜 때려요!”

마법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고상한 마법사가 아니라 순 깡패 새끼들 같았다.

기존의 마법사들은 항의를 듣고서도 발로 밟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야, 너 지금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너 손 없어? 니 빨래는 니가 해, 이 새끼야. 아니, 그냥 죽어. 너 같은 새끼는 제발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너 분위기 파악 못 해? 눈치 문제 있어? 우리 다 죽이려고 작정했니? 너 암살자야? 누가 보냈어?”

“쟤 화나면 여기 있는 사람 다 뒤져. 불기둥에 몸 터져 볼래? 너야말로 정신 안 차려?”

새로 온 마법사들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탑에 있을 때 바네사는 그냥 하녀나 마찬가지였다. 여기 와서도 업무를 보조하며 허드렛일이나 하는 줄 알았다.

예전에 마탑에서 지낼 때는 같이 괴롭히더니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인가!

그때 알포이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렸다.

“그만.”

구타가 멈추자 알포이가 바네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바네사는 이곳의 부지부장님이다. 앞으로 나를 대하듯이 깍듯하게 대하도록.”

“부……지부장님?”

새로 온 마법사들은 그런 걸 들은 적이 없다. 물론 바네사도 처음 들어봐서 황당한 표정으로 알포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물쭈물하는 마법사들에게 알포이가 크게 호통을 쳤다.

“알아들었냐고! ‘부지부장님 죄송합니다!’라고 크게 외쳐 봐!”

매에는 장사 없다. 쥐어박으면서 시키니 반항할 수도 없었다.

일단 자존심이고 뭐고 내려놔야 했다.

“부, 부지부장님……. 죄송……합니…….”

“더 크게!”

“부지부장님! 죄송합니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알포이가 이번에는 바네사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쟤네들이 괴롭히면 말만 해. 알았지? 넌 나 다음으로 뛰어난 마법사니까. 공부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고.”

“네, 네…….”

“저기, 그런데 아까 하던 마법진이…… 그게 뭔가 문제가 좀 생긴 거 같은데…… 물론 해결할 수 있는데 내가 지금 조금 바빠서…….”

“아, 그거 제가 다시 한번 봐 볼게요.”

“어, 그래. 고마워. 아, 얘 공부 많이 했어. 내가 하던 것도 이어서 할 줄 알고.”

알포이와 기존 마법사들은 바네사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예민하게 구는 것도 당연했다. 그간 일을 하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바네사가 없으면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간다. 마법과 관련해서 문제가 생기면 전부 그녀에게 물어봐야 했다.

‘지식으로는 우리도 바네사를 절대 못 따라가. 비교 불가능이야.’

‘미친 공붓벌레야. 우리는 그냥 밥 먹고 똥이나 싸는 진짜 벌레들이고.’

‘저 방대한 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그냥 일하다 덜컥 죽어 버릴 거야.’

만약 그녀가 없다면 지금보다 일이 두 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아니, 몇 배를 떠나서 그냥 일이 진행되지 않고 막혀 버릴 게 확실했다.

실제로도 그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도움을 받기 힘들어서 유독 피폐해졌다.

마법사들은 일을 할 때마다 바네사의 도움을 받으려고 집착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탑에 있을 때 바네사에게 막 대하지 말 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바네사 없이는 못 살아! 최대한 잘해 줘야 해! 기분 거슬리게 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애지중지 떠받들며 살고 있는데 감히 허드렛일을 시키고 괴롭히려고 한다?

그런 놈들은 죽어야 한다. 안 그러면 자신들이 죽는다.

마법사들이 바네사를 보호하는 건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우연히 지켜본 지셀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저런 재주도 있었어? 마탑의 후계자라더니. 나중에 볼 만하겠네. 아니면 그냥 성질이 더러운 건가?”

알포이가 들었으면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고 화냈을 법한 발언이었다.

어쨌든 알포이는 마법사들 사이에서의 기강을 단단히 잡으며, 펜리스 영지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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