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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94화 (194/269)

194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2)

카발디 백작은 지셀의 눈을 마주 보고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승리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증오와 분노가 가득했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이 애송이 놈과 원한을 쌓은 일이 없었다. 앞으로 쌓을 예정만 있었을 뿐.

카발디 백작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물었다.

“네놈…… 단순한 욕심으로 이곳을 친 게 아니구나. 뭐냐, 무슨 목적으로 나를 친 것이냐.”

“목적이야 많지. 그중 하나는 네놈을 여기서 죽이는 거고.”

“큭, 크흐흐흐, 나를 죽인다고? 그러면 네놈과 네 아비가 무사할 수 있을 거 같으냐? 네 가문과 영지 또한 풀 한 포기 남지 않고 끝장날 것이다!”

“꽤나 자신만만하군.”

“그래,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물러가라.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지 않으냐. 친왕파는 절대 네놈을 지켜 주지 못할 것이다.”

카발디 백작은 잔뜩 비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

“네놈의 실력과 기지는 인정한다. 하지만 아직 어려서 정치는 잘 모르는 모양이지. 공작가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날 죽이면 정말 수습할 수 없게 된다.”

“…….”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날 살려 준다면 항복 협상에서 향후 20년간 철광석 생산량의 절반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하겠다.”

지셀은 말없이 카발디 백작의 필사적인 설득을 듣고 있었다.

카발디 백작은 지셀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확신했다.

비록 전쟁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자신은 공작파의 일원이자 북부에서 명망 높은 귀족이다.

펜리스 남작이 이곳을 먹는다면 반드시 체할 수밖에 없다. 다른 귀족들, 특히 공작가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아무리 멍청한 놈이라도 이 정도는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게 너에게는 더 이득이다. 아무리 대립하는 파벌이라지만 항복한 귀족을 죽여서 좋을 건 없다. 무려 절반이다! 철광석 생산량의 절반이란 말이다!”

만약 지셀이 평범한 귀족이고 이번 전쟁이 단순한 분쟁이었다면 이 조건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정치적 부담감도 덜고 엄청난 이득도 취할 수 있을 테니까. 북부의 강자를 꺾었다는 명성을 얻는 건 덤이다.

하지만 지셀은 그럴 생각으로 이곳을 친 게 아니었다.

“왜? 어차피 곧 내전이 일어날 테니 줘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뭐, 뭐?”

카발디 백작은 당황했다. 공작가에서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대놓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요새 친왕파와의 대립이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인정할 수는 없었다.

“네, 네놈 지금 무슨 위험한 말을 하는 거냐. 파벌의 대립은 그저 권력 다툼에 불과…….”

“까불지 마라, 카발디 백작. 내가 정말 모를 거라 생각했나?”

“지금 무슨 말을…….”

“중립이라는 데스몬드 백작이 공작가의 명령으로 북부의 영지들을 하나씩 집어삼키고 있다는 걸 말이다.”

“무, 무슨…….”

카발디 백작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친왕파도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일을 이놈은 어떻게 이렇게 확신하고 있다는 말인가?

지셀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것도 짐작이라 생각하나? 더 말해 볼까? 진홍의 마탑이 공작가의 숨겨진 칼이란 건 어떨까? 적당한 때 친왕파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 키운 걸로 아는데.”

“너, 너…….”

“레이폴드의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켜 차지하는 계획은? 아멜리아에게도 철광석을 지원하고 무장을 갖추게 하고 있었지?”

“어, 어…….”

“북부 영주들의 절반 이상은 자신도 모르게 데스몬드 백작에게 넘어가 있지. 가신들이 모두 그쪽 돈을 처먹고 약점이 잡혔으니까.”

“네, 네놈, 저, 정체가 뭐냐……. 도대체 어떻게…….”

카발디 백작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짐작하는 게 아니었다. 이놈은 데스몬드 백작이 몇 년에 걸쳐서 부려 온 수작질을 전부 다 꿰고 있었다.

지셀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카발디 백작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항복 협상? 20년? 네놈이 데스몬드 백작과 페르디움을 치려는 걸 내가 모를 거 같으냐? 철광석의 수급을 끊고 우리를 짓밟은 뒤, 모두 노예로 부리려는 음험한 속내를 말이다.”

지셀의 눈빛을 본 카발디 백작은 머리가 띵해졌다.

왜 상대방이 자신을 저런 눈으로 보고 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라도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는 자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안 거지? 우리 쪽에 배신자가 있는 건가? 어쨌든 위험해, 위험한 놈이다. 죽여야 해. 기필코 이놈을 죽여야 한다.’

펜리스 남작은 친왕파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계획을 모두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계획이 모두 누설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든 공작가에 알려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이 짠 판에서 놀아날 수도 있었다.

‘잠깐? 잘만 하면 이놈을…….’

잠시 혼란에 빠졌던 카발디 백작은 이내 눈에 이채를 띠었다.

계획을 들켰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자신들의 세력은 왕국 최강이었다. 어설픈 수작질 따위는 힘으로 뭉갤 수 있을 만큼.

정치 감각이 제법 좋은 그는 순식간에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정말 똑똑한 놈이로구나. 네 말이 옳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너에게 진짜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기회?”

“네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 무력 시위를 한 거로 알겠다. 그 정도로 똑똑한 놈이라면 공작가의 힘을…… 아니, 공작가까지도 갈 필요가 없지. 데스몬드 백작의 힘을 잘 알고 있겠지?”

지셀이 말없이 미소 지었다. 이 북부에서 데스몬드 백작의 힘을 모르는 자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 미소를 본 카발디 백작은 더욱더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내 너의 뛰어남을 공작 전하께 직접 말씀드리겠다. 공작가의 그늘로 들어와라. 그러면 네놈과 네놈 아비는 무사할 것이고 영원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떠냐?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카발디 백작은 지셀이 이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들의 비밀 계획을 알고 있다는 건, 이쪽의 힘도 확실히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정말 살고 싶다면 자신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 오직 그 방법뿐이다.

지셀은 카발디 백작의 머리카락을 놓고 허리를 세웠다. 자연스럽게 카발디 백작은 지셀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이 구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은 이 애송이를 달래야 하는 시간이었다.

지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잘 알고 있지. 데스몬드 백작이 이 북부에서 얼마나 강력하고 대단한지 말이야. 공작가까지 갈 필요도 없지.”

“흐흐, 역시 똘똘한 놈이구나. 내 오늘의 무례는 그냥 넘어가 주겠다. 앞으로 우리가 손을 잡고 북부를 지배할 테니까 말이다. 자, 이제 그만 속박을 풀고 날 일으켜 세워 다오.”

카발디 백작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무리 뛰어나도 애송이는 애송이였다.

이제 이놈은 실컷 굴려지다가 버림받을 것이다. 그래도 살았다. 앞으로 기회를 봐서 오늘의 굴욕을 갚아 주면 된다.

그런 카발디 백작을 내려다보며 지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나는 너희와 손을 잡을 생각이 없어.”

“뭐?”

“모두 죽이면 되는데 뭐 하러 어렵게 가?”

“지금 무슨 말을…….”

휘릭!

카발디 백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셀의 검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목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카발디 백작의 얼굴에는 경악과 의문이 가득 차 있었다.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그의 귓가에 지셀의 마지막 말이 닿았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곧 데스몬드 백작도 보내 주지.”

* * *

콰앙!

데스몬드의 백작, 해럴드가 내리친 주먹에 의자의 팔걸이가 박살 났다.

그의 표정은 마치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듯 차갑게 굳어 있었다.

숨이 막힐 듯한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대전에 모인 가신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해럴드는 눈앞에 있는 부관에게 물었다.

“다시 말해 보거라.”

“펜리스 남작이…… 카발디 백작을 기습적으로 침공해 포위한 상태입니다. 현재 펜리스 남작은 3천 명의 군대로…….”

부관은 다시 한번 상세한 전황을 보고했다.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보고를 듣고 있던 해럴드는 곧 눈을 감았다.

그는 평소처럼 지셀을 비웃거나 폄하하지 않았다. 그저 분노를 최대한 억누르며, 묵묵하게 그간의 일을 다시 되새김하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걸 부수고 싶을 정도로 화가 일었지만, 지금은 그럴 기력마저 아껴야만 했다.

‘내 판단이 틀렸단 말인가?’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이 있기에 잠시 내버려 두었다. 거슬리긴 하지만, 언제든 쓸어 버릴 수 있는 놈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저 해럴드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기에 상대가 운이 좋았다고 치부했던 게 아닐까.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놈이 한 일 중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마수의 숲을 개척하고, 페르디움 공방전에서 승리했으며, 화장품을 개발하고, 친왕파의 지원도 얻어 냈으며, 마치 가뭄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식량을 대량으로 구매하기까지 했다.

해럴드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사이, 그놈은 야금야금 제 이득을 챙기며 무서울 정도로 성장하고 말았다.

‘내 실수다.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다.’

라울의 평가를 들었을 때,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을 해야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놈을 없앴어야 했다.

사실 지금도 그의 성공이 실력보다는 운에 기댄 결과였다고 생각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날씨를 예측하는 건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저 운 좋게 이주민 계획에 맞물려 크게 성공했을 뿐이다.

‘하지만 운만 있는 놈은 아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운도 실력이 있는 놈이 잡는 법이다.

그놈은 그 운을 그냥 흘려 버리지 않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카발디 백작을 쳤다. 그 판단력과 행동력만큼은 절대 운이 아니다.

해럴드는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상대의 약점을 물어뜯는 이리 같은 놈.’

카발디 백작은 분명 강력한 무장병들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굶고 있는 상황에서 나가 싸울 자신은 없을 것이다. 한 번만 패해도 끝장이 나니까.

오히려 성에 처박혀 지원을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카발디 백작은 포위를 버틸 수 없다.’

카발디 영지는 본래도 식량 수급 상황이 좋지 않았던 영지다. 전쟁을 버틸 만큼 비축분이 있을 리 없다.

원래대로라면 진작 대량의 식량을 지원해 줬어야 했다. 하지만 비축분을 전부 지셀에게 팔았던 탓에 내부를 수습하기도 바빴다.

이쪽부터 먼저 정비가 끝나야 다른 곳을 도와주든 말든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 잠깐의 틈을 지셀이 파고든 것이다.

‘그래, 그것도 그놈 때문이었지.’

애송이 하나 때문에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꼬임 하나였지만,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일의 중요도를 잘못 판단했다는 뜻이었다.

‘안일했다. 나도, 공작가도.’

라울도 지셀을 높이 평가했지만, 아멜리아의 일보다는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놈을 우습게 본 결과가 결국 큰 부담으로 돌아왔다.

‘그놈 뒤에는 친왕파까지 붙어 있다. 더 성장하기 전에 지금 완전히 싹을 밟아 놔야 한다.’

엉망으로 변한 북부의 판도를 다시 정리해야 했다. 그래서 해럴드는 독단적인 판단으로 일의 우선순위를 바꾸었다.

공작가의 명령과 상관없이.

보고를 올릴 필요도 없었다. 지금 보고를 올리고 새롭게 논의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는 눈앞에 있는 부관을 보며 다시 물었다.

“전에 아멜리아가……. 허락만 한다면 반란은 알아서 준비하고 진행하겠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전해라. 결정 권한은 줄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요청하라고 하고.”

“네? 영주님, 그건 공작가에서 최우선 순위로 잡으라 명했던 일 아닙니까. 그쪽에 결정 권한을 맡기는 건…….”

해럴드는 부관의 말을 끊으며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펜리스와 페르디움의 멸망을 최우선 목표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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