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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93화 (193/269)

193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1)

모두가 침묵했다.

성벽을 넘어오던 펜리스의 병사들도, 이미 전투에 지친 기사들도,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던 적들마저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순간 터져 나온 눈 부신 빛 때문에 지셀이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쿠르르릉.

그저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니 성문이 무너지고 있었을 뿐이다.

지셀의 곁에서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결국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서, 성문이…….”

“어떻게 검으로 저걸…….”

“영주님이 이런 힘을…….”

지금까지 지셀과 함께한 펜리스의 기사들도 얼빠진 얼굴로 성문만 바라보았다.

넋이 나간 건 아군뿐만이 아니다. 카발디의 병사들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성문이 무너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우, 우리 성문이 무너졌어.”

“저걸 한 사람이 해냈다고?”

“도대체 저자가 누구길래…….”

왕국제일검 발자크 백작은 홀로 성문을 부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그저 소문일 뿐, 그들에게는 아주 먼 세계의, 실감 나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어마어마한 짓을 한 사람이 눈앞에 있다.

그것도 적으로서 말이다.

“이, 이길 수 없어.”

“우리 모두 다 죽을 거야.”

카발디 병사들의 얼굴이 서서히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오래 굶고 포위까지 당한 상태라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펜리스군이 땅굴을 파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 희망이 깨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급박하게 움직이던 전장이 조용해졌다. 전쟁 중인 걸 모두 잊을 정도로 충격적인 일에 놀라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적을 일으킨 지셀은 잠시 무너진 성문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후우…….”

크게 한번 숨을 내쉰 그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끄응, 오랜만에 쓰니 아주 죽을 거 같네.”

전생에서처럼 자유롭게 쓰는 건 역시 아직 무리였다.

마나의 소모가 극심하기에 이렇게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겨우 한 번 정도 쓸 수 있었다.

만약 전생의 경지를 되찾았다면 이렇게 요란한 빛도 나지 않았을뿐더러, 딱 한 번 쓰고 주저앉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영주님!”

“괜찮으십니까?”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달려왔다. 그런 그들을 보며 지셀은 손을 휘휘 저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전투 중인데 다들 넋 놓고 뭐 하는 거야? 적이 코앞에 있다, 코앞에. 쯧쯧, 다들 훈련 부족이야.”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펜리스의 기사들이 다시 전투 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건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눈치 빠른 카발디 백작은 지셀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저놈이 아무리 강해도 이미 힘을 다 쓴 상태다! 저것 봐라! 지금 움직이지 못하고 있지 않으냐! 힘이 다 빠진 게 분명하다! 어서 쳐라! 몸으로라도 성문을 막으란 말이다!”

그 말에 카발디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무기를 꽉 움켜쥐었다. 지금이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들은 미친 듯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와아아아아아!”

달려 나가는 카발디군을 지배하는 것은 단 하나의 감정이었다.

바로 공포.

성문 앞에 앉아 있는 저자를 죽일 기회는 지금뿐이다.

적의 대군이 몰려오기 전에 성문을 막을 수 있는 기회도 지금뿐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자신들은 모두 도륙당할 것이다.

그 공포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마지막 원동력이었다.

“영주님, 몸을 피하십시오!”

“저희가 막겠습니다!”

“모두 어서 모여라!”

이미 힘이 빠진 기사들이 이를 악물고 지셀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길리언과 카오르도 성벽을 넘어온 아군 병사들을 이끌고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지셀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됐다. 길 막지 말고 옆으로 좀 비켜 있어라.”

“네?”

기사들이 뜬금없는 지셀의 말에 의문 섞인 대답을 내뱉었을 때.

두두두두두두!

땅을 울리는 소리가 점차 커지며, 성 밖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켜어어어어어!”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기사들이 옆으로 비켜났다.

그들이 길을 내어 주자마자, 한 남자가 말을 타고 성안으로 뛰어들었다.

파앗!

“영주님! 제가 왔습니다! 괜찮으십니까!”

폼 잡기를 좋아하는 루카스는 들어오자마자 소란을 떨며 지셀을 챙겼다.

그런 그에게 지셀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바로 쓸어 버려라.”

“알겠습니다!”

루카스는 그대로 창을 높이 들고 적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빨리 멋지게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상태였다.

“영주님! 저도 왔습니다!”

그 뒤로 바로 나타난 자는 오줌싸…… 아니, 근육의 고든.

그 또한 루카스처럼 창을 들고, 적들을 향해 용맹하게 돌진했다.

그나마 두 사람의 경력과 실력이 제법 괜찮았기에 선두의 지휘를 맡겼던 것이다.

루카스와 고든의 뒤를 따라 성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펜리스의 기사들이 속속 뛰어들었다.

그들은 모두 지셀의 양옆을 지나치며 한마디씩 건넸다.

“영주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믿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누군가는 놀랍다는 표정을, 누군가는 감격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안에 공통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영주의 힘이 되어 주겠다는 굳은 결의였다.

“적들을 쓸어 버리자!”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펜리스 기사들의 창이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강렬한 기세로 다가오는 기사들을 보며, 카발디군은 이를 악물었다.

성문을 향해 달려가던 중이라,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제대로 진형을 짤 시간은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입은 중무장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펜리스 기사들과 그대로 맞부딪쳤다.

하지만 희망은 희망일 뿐.

콰아아앙!

“으아아아악!”

기사들의 푸른 창은 적들의 갑옷을 단숨에 뚫어 버렸다.

단 한 번의 충돌로 카발디군의 전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러나 펜리스의 기사들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적들을 갈아 버리듯이 전진했다.

아무리 중보병이라 해도, 돌격해 오는 기사들을 진형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로 저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발디 백작은 자신의 군대가 추풍낙엽처럼 쓸려 가는 광경을 뒤에서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럴 수가……. 기사가, 기사가 저렇게 많다고?”

제이먼이 그랬듯, 그도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길 수 없다. 저 정도 수의 기사들이라니, 정면으로 맞붙어선 절대 이길 수 없는 전력이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와아아아아!”

양쪽 성벽에서 진형을 갖춘 펜리스의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미 성문을 통해 잔뜩 들어온 병사들 또한 넓게 퍼지며 사방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살려 줘!”

카발디군의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학살, 이것은 완벽한 학살이었다.

카발디 백작의 시야에, 북부의 자랑이었던 그의 병사들이 허무하게 쓰러지는 모습이 들어왔다.

마치 꿈만 같은 광경에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정신을 일깨우듯 크게 외쳤다.

“영주님! 피하십시오! 피하셔야 합니다!”

카발디의 기사단장, 레슬리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카발디 백작은 이를 악물었다.

“친왕파가 기사들을 지원해 준 게 분명하다. 우리가 당했구나!”

펜리스 영지에 기사도, 병사도 이렇게 많을 리가 없었다. 카발디 백작으로서는 이 힘든 시기를 이용해 친왕파가 공작파를 먼저 친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레슬리는 다급하게 카발디 백작의 팔을 잡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피하셔야 합니다! 적들이 이곳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놔라! 나보고 저런 애송이를 피해 도망가라는 말이냐!”

카발디 백작은 거칠게 레슬리의 손을 떨쳐 냈다.

펜리스 남작과 같은 애송이에게 당하는 건 자존심상 용납할 수 없었다.

“뭣들 하느냐! 진형을 갖춰라! 진형을 갖추고 대항하란 말이다!”

카발디 백작은 눈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실 승부는 이미 난 상태다.

펜리스 기사들의 돌격으로 카발디군은 순식간에 절반의 병력이 날아갔다. 포위를 시작한 펜리스의 병사들 또한 손쉽게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카발디 병사들은 방패의 뒤에 숨어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포위 진형이 완성된 순간, 펜리스의 기사들이 곳곳에서 크게 외쳤다.

“무기를 버리고 바닥에 엎드리는 자는 살려 주겠다! 끝까지 대항하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외침은 전투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털썩.

카발디의 병사 한 명이 무기를 버리고 바닥에 엎드렸다.

그것이 신호가 된 것처럼, 간신히 버티고 있던 카발디군은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챙그랑, 챙그랑.

곳곳에서 무기를 집어 던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아직 절반 정도는 무기를 쥐고는 있었지만, 이들도 이미 전의를 상실할 대로 상실한 상태였다.

펜리스군의 강력한 힘을 목도하고 나니 더 이상 싸울 의지조차 남지 않았다.

전부 지셀이 의도한 바대로였다.

그는 루카스와 고든에게, 일부러 첫 돌격만 빠르게 밀어 버리고 그 뒤로는 공세를 늦추라고 명령해 두었다.

굳이 병사들까지 전부 죽일 필요는 없으니까. 저 병사들은 이제 펜리스의 군대로 강제 편입될 것이다.

전장은 순식간에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해졌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부상병들의 신음을 제외한다면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평소에 쉼 없이 건들거리며 떠들던 펜리스의 기사들마저 침묵을 지켰다.

그들의 주인에게 할 일이 남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어나라! 일어나서 싸우란 말이다!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

그때, 카발디 백작의 목소리가 침묵을 깨고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의 주변에는 기사단장인 레슬리와 십여 명의 호위 기사가 전부였다. 하지만 카발디 백작은 아직도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자존심과 집착, 오기는 아직도 지셀이라는 애송이를 인정하지 못했다.

저벅저벅.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모든 펜리스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길을 내듯 양옆으로 도열했다.

카발디 백작은 묵직한 분위기를 풍기며 다가오는 자를 바라보았다.

“너는……?”

성문을 부수었던 자였다. 놀라운 무력을 보여 준 자.

그에게도 성문을 부순 것은 부담이 되었던 듯했다. 얼굴이 무척이나 창백하고, 내딛는 걸음걸이에서도 피곤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카발디 백작은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세와 주변의 반응으로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설마…… 네가 펜리스 남작?”

“그래, 내가 펜리스 남작이다.”

“어떻게 네놈이 그런 실력을…….”

카발디 백작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 옆에 있던 레슬리가 말을 돌려 도망갔기 때문이다.

한 영지의 기사단장이라는 작자가 영주를 버리고 도망을 가다니!

펜리스군이고, 카발디군이고 상관없이 주변에 있던 모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카발디 백작의 얼굴은 치욕으로 물들었다.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펜리스의 병사들이 레슬리를 저지하기 위해 무기를 들어 올렸다.

“비켜라!”

레슬리는 다급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이대로 포위망을 뚫고 도망갈 생각이었다.

그래도 백작령의 기사단장이다. 그 실력이 만만치는 않을 터.

병사들이 긴장해서 공격에 대비하던 그때, 레슬리의 뒤에서 길리언의 도끼가 날아왔다.

퍼어억!

“크아악!”

도망가느라 급급했기에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피하지도 못하고 등에 도끼가 꽂힌 레슬리는 그대로 말에서 떨어졌다.

“쿨럭!”

그는 피를 토하면서도 일어나려고 애썼다.

검을 지팡이 삼아 겨우 일어난 그의 앞에, 어느새 다가온 길리언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레슬리는 부들거리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잠깐. 나는 항복…….”

퍼억!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길리언의 검이 레슬리의 목을 쳤다.

머리를 잃은 레슬리의 몸은 잠시 흔들리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길리언은 검을 한번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 내고는 오만한 표정으로, 남은 카발디의 기사들을 둘러보았다.

“당장 영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라.”

길리언의 말에 카발디의 기사들은 피식 웃었다.

이들은 병사들과 다르다. 오랜 기간 기사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품고 살아온 자들이었다.

이미 기사단장이 추하게 도망가다가 죽었다. 자신들까지 무릎을 꿇는다면 카발디의 명예는 영원히 주워 담을 수 없을 것이다.

한 기사가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영주님과 영지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그 말을 신호로 카발디의 모든 기사가 길리언을 향해 덤벼들었다.

동시에 지셀의 옆에 있던 카오르와 펜리스의 기사들도 뛰어나갔다.

카앙!

순식간에 십수 명이 뒤엉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카발디 백작은 하나둘 쓰러지는 자신의 기사들을 보며,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진정으로 끝이라는 실감이 났다. 그간 자신이 쌓아 왔던 모든 명성과 지위가 무너지고 있었다.

“영주님……. 어서 몸을 피하…….”

가슴이 뚫린 채 피를 토하던 카발디의 기사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카오르의 검에 목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마지막 기사가 쓰러지는 모습을 본 카발디 백작은 눈을 감았다.

지셀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끌어 내려라.”

기사 몇 명이 카발디 백작을 말에서 강제로 끌어 내려 무릎을 꿇렸다.

“놔라! 이 무도한 놈들! 감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카발디 백작이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쳤지만, 기사들의 우악스러운 손에서 빠져나가지는 못했다.

결국 저항할 힘도 빠져 버린 카발디 백작은 고개를 숙였다. 끓어오르는 굴욕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어느 순간 그의 곁에 다가온 지셀이 차가운 어조로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군. 카발디 백작.”

카발디 백작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옅은 웃음을 내뱉었다.

“크큭, 네놈이 날 언제 봤다고 오랜만이라고 하느냐. 날 아느냐?”

“그럼, 아주 잘 알고 있지.”

지셀은 전생을 떠올렸다. 공작가에서 페르디움을 목표로 삼자마자, 카발디 백작은 페르디움으로 들어가던 철광석 지원을 끊었다.

덕분에 페르디움은 무기를 새로 수급하기는커녕 정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발디 백작은 군사까지 보내 페르디움의 멸망에 한 손을 거들었다.

그런 자를 어찌 모를까? 그런 자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전생에는 직접 찾아가 머리를 쪼갰다. 그래도 지셀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던 어두운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모든 걸 부수고 부숴도 그 불꽃은 점점 더 커져 자신의 영혼을 끝없이 태워 갔다.

이제 그 불꽃 중 하나를 끌 시간이 다가왔다.

천천히 허리를 굽힌 지셀은, 카발디 백작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강제로 고개를 들게 했다.

“큭, 네놈…… 너 따위가 감히…….”

분노하는 카발디 백작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지셀은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너 따위가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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