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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91화 (191/269)

191화 내 옆에서 모두 떨어져라. (2)

제이먼은 지금 상황이 여전히 꿈만 같았다.

적군의 전략과 전술도 이 세계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기괴했으나, 침입자들의 파괴력과 속도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빨랐다.

양쪽 성벽을 향해 돌격하는 펜리스 군의 숫자는 고작 수십여 명 정도다.

이쪽이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방어선을 짠 인원은 그 몇 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빠르게 돌파하다니! 펜리스에서 어떻게 이런 기사들이 나왔단 말이냐!’

카발디 백작의 병사들은 대부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무장한 중보병이었다. 그 덕분에 방어전에는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기사라 해도 이렇게 빠르게 중보병을 죽일 수는 없었다.

‘전원이 상급 기사 수준이란 말인가? 아니, 아니다. 그 정도 수준은 아니야. 선두에 선 자들이 문제다.’

제이먼은 양쪽의 선두에 선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바로 길리언과 카오르였다.

길리언은 특히 이런 난전 속에서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하는 자다.

저번 전쟁 때는 지셀의 뒤를 따르는, 호위에 가까운 입장이었기에 특별히 활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따로 부대를 이끌고 공격하게 되면서 길리언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온몸에 별별 무장들을 주렁주렁 달고 나타나서는 아낌없이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것이었다.

파아악!

그가 접근하기도 전에 먼저 날아간 투척 무기들이 적들의 머리를 꿰뚫는다.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길리언에게 덤벼드는 적의 목이 날아갔다.

틈을 봐서 창과 검을 내지르던 카발디군의 공격은 길리언의 방패에 허무하게 막혔다.

“무, 물러나!”

“괴물이다!”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야!”

도무지 공략할 방법이 없었다.

조그마한 상처라도 나야 힘을 내서 계속 공격을 이어 갈 게 아닌가.

겁을 먹은 적들은 뒤로 물러나며 두꺼운 방패만 들어 올렸다.

어떻게든 막으면서 시간이라도 끌겠다는 속셈이었다.

오만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친 길리언은 검과 방패를 집어 던지고 등에 찬 도끼를 꺼내 들었다.

콰아앙!

“으아아악!”

방패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길리언의 도끼는 아예 방패째로 적을 쪼개 버렸다.

그가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적들은 부평초처럼 쓸려 나갔다.

이게 과연 북부에서 한 손에 꼽히는 카발디의 무장병들인지 의심이 갈 지경이었다.

결국 다른 병사들을 지휘하던 세 명의 기사들이 달려와 길리언에게 검을 내질렀다.

파악!

몸을 피하던 길리언의 볼이 검에 베이며 피가 새어 나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두 명의 기사가 양쪽에서 협공을 취했다.

“죽어라!”

북부 출신 기사는 다른 지역의 기사보다 거칠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연 카발디의 기사들도 북부의 기사답게 저돌적으로 길리언을 공격해 나갔다.

하지만 길리언의 공격은 더욱더 무지막지했다.

그는 공격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한쪽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콰아앙!

도끼가 적 기사의 검을 박살 내며 그대로 가슴까지 짓쳐 들었다.

“커억!”

기사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가슴이 갈라지며 쓰러졌다.

다른 한쪽의 기사가 그 틈을 이용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길리언은 몸을 비틀며 굵은 팔뚝으로 기사의 검을 막아 냈다.

터억!

검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막히고 말았다.

“이, 이 무슨?”

카발디의 기사는 당황하고 말았다. 마나를 머금은 검을 어찌 팔뚝으로 막는단 말인가?

블러드 퓌톤의 가죽으로 만든 토시를 차고 마나를 뿜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기사는 결국 그 의문을 해결하지 못했다.

콰지직!

바로 길리언의 도끼가 날아와 그의 머리를 쪼갰기 때문이다.

“이놈!”

남은 기사가 분노한 표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내질렀다.

길리언은 눈을 가늘게 뜨고 기사를 바라보았다. 첫 공격에 길리언의 볼에 상처를 낸 기사였다. 가장 실력이 뛰어난 것을 보아 기사들의 조장이었던 모양이다.

카앙!

길리언은 날아오는 검을 도끼로 막아 냈다. 그러고는 허리 뒤에 매달린, 다소 짧고 넓적한 검을 번개같이 꺼내 기사의 허리를 갈랐다.

퍼어어억!

그걸로 끝이었다.

자신들을 지휘하던 기사들이 순식간에 죽어 버리자, 병사들은 겁에 질려 더욱더 뒤로 물러났다.

길리언은 멈추지 않고 도끼와 검을 양손에 든 채, 다시 적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콰앙! 콰아앙!

“으아아악!”

“도, 도망가!”

움직일 때마다 길이 뻥뻥 뚫린다.

지셀 덕분에 실력이 더 늘어난 길리언은 그야말로 전장의 파괴자라 할 수 있었다.

길리언이 적의 방어 진형을 손쉽게 무너뜨리니 펜리스의 기사들도 싸우기가 편해졌다.

아직 그들의 실력으로는 두꺼운 방패를 한 번에 가르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길리언 덕분에 그를 따르는 기사들은 빠르게 성벽 앞에 있는 방어선을 뚫고 돌진할 수 있었다.

다른 쪽에서 전투를 벌이는 카오르도 속도는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속도 자체는 더 빠른 편이었다.

“빨리빨리 달려라! 영감보다 늦으면 내 손에 다 죽을 줄 알아!”

카오르는 연신 기사들을 재촉하며 달렸다.

길리언이 거대한 망치와 같이 앞을 막는 모든 걸 부쉈다면, 카오르는 마치 뾰족한 송곳과도 같았다.

그는 집요할 정도로 적 부대의 중심을 파고들었다. 그러다 보니 같이 딸려 간 아군 또한 양옆에 적을 둘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돌파하는 속도는 길리언보다 더 빨랐지만 그만큼 더 위험해졌다.

그래도 카오르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크으, 오랜만에 싸우니 기분 죽이는데?”

그는 원래 위험을 즐기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기사들도 카오르와 다를 게 없었다.

전 광견단 소속의 기사들은 모두 카오르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크흐흐! 바로 이 맛이야!”

“역시 우리 영주님 따라다니면 재미있는 일이 가득하다니까?”

“하늘도 날고! 적도 죽이고! 키야, 이게 바로 진정한 사나이의 삶이지.”

그들은 독기 하나로 거친 북부를 살아가던 용병들이다. 위험을 즐기던 이들의 본성은 기사가 되었다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상처 입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바짝 붙어서 마구 검을 휘둘렀다.

악바리 같은 그 모습에 카발디의 병사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이쪽에서도 카오르를 막기 위해 세 명의 기사들이 달려 나왔다.

“흐으, 이제야 손맛이 있는 놈들이 왔네.”

잔뜩 흥분한 카오르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세 명의 기사와 어울렸다.

카앙! 카앙! 카앙!

몇 번의 공방이 오갔다. 예전보다 실력이 부쩍 늘어난 카오르는 기사들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 냈다.

카오르의 전투 방식은 길리언과 사뭇 달랐다. 그는 바로 역습을 취하지 않고 기사들을 살짝 훑어보았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포식자처럼.

그는 잠깐 나타난 적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푸욱!

“커억!”

번개같이 움직인 카오르의 검이 상대 기사의 목을 뚫었다.

갑옷 사이, 움직일 때 보이는 아주 작은 틈으로 검날을 집어넣은 것이다.

남은 두 명의 기사들이 바로 공격했지만, 카오르는 죽은 기사의 몸을 잡아 자신의 앞에 세웠다.

카앙! 카앙!

기사들의 공격은 방금 죽은 동료의 시체에 막혔다.

“이,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기사의 시체를 모독하다니! 네놈은 명예도 모른단 말이냐!”

카발디의 기사들은 당황했다. 상대도 기사로 보이는데 이런 불명예스러운 짓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그리고 카오르는 그들이 또다시 내보이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시체의 뒤에 숨은 채로 잽싸게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푸욱!

급소를 노리는 것이야말로 그의 장기. 남은 두 명의 기사도 목이 뚫린 채 쓰러지고 말았다.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침을 뱉은 카오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미 뒈진 놈 시체가 뭐 어쨌다고 쫑알거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제일 강한 거 같아. 크크큭.”

날카로운 눈으로 겁먹은 카발디의 병사들을 둘러본 카오르가 말을 이었다.

“어이, 나 먼저 갈 테니 나머지 놈들 빨리 다 죽이고 와라. 시간 없다.”

그 말만 던진 채 카오르는 다시 앞만 보고 달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성벽에 먼저 도착한다는 생각밖에 없어 보였다.

그래도 카오르의 활약 덕분에 가는 길이 훤히 뚫렸다. 이미 카발디군의 방어진은 와해된 상태였다.

남은 펜리스의 기사들이 그들을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런 놈들이야 쉽지! 모두 죽여!”

“달려라! 달려! 으하하하!”

펜리스의 기사들은 전의를 상실한 적들을 무자비하게 척살하며 달려 나갔다.

이게 고작 몇 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빠르게 양쪽 성벽에 진입한 펜리스군을 보고 제이먼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성벽은 끝났다.’

성벽은 곧 점령당하고 자신이 있는 지휘 망루도 공격당할 것이다.

남은 희망은 단 하나.

어떻게든 아군이 올 때까지 성문이라도 열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저 제이먼의 희망일 뿐이었다.

성문의 병력을 학살하는 자는 양쪽 성벽에 있는 자들보다 더 무지막지했다.

제이먼은 그자를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막아라! 어떻게든 성문만은 막으란 말이다!”

성문 근처에서는 성벽보다 더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양쪽 성벽보다 더 많은 병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어선을 가장 두껍게 세웠음에도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뚫리고 있었다.

콰아앙!

“으아아악! 괴물이다!”

붉은 눈을 빛내며 움직이는 지셀의 검에 카발디군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지셀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번개 같았다.

블러드 퓌톤의 독을 먹고 놀랄 정도로 마나의 양이 많아졌다. 지셀은 그 마나를 통제하기 위해 육체의 단련을 쉬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쌓아 오기만 했던 그 힘을 드디어 이곳에서 폭발시킨 것이다.

카발디의 병사들은 지셀에게 접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포위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드드드득!

어둠 속에서 붉은 선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몇 명씩 목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거기에 뒤를 따르는 펜리스의 기사들도 몸을 사리지 않고 카발디군을 몰아붙였다.

보다 못한 카발디의 기사들이 모두 지셀 한 사람을 노리기 시작했다.

“비켜라! 뒤로 물러나라!”

병사들을 물린 카발디의 기사 다섯이 지셀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지셀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처음부터 협공을 취한 것이다.

저 괴물을 잡아야 전세를 다시 뒤집을 수 있을 테니까.

가장 중요한 곳을 가장 강한 자들이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는 기사들이 다가오자 지셀은 손을 흔들어 펜리스의 기사들을 뒤로 물렸다.

카아앙!

순식간에 공간이 만들어지고 다섯 명과 한 명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지셀에게 검을 휘두른 기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섯 명이 내지르는 모든 방위의 공격을 지셀은 손쉽게 피해 내거나 막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역습.

휘리리릭.

지셀의 손에서 검이 한 바퀴 돌아가자 한 명의 목이 떨어졌다.

그 틈을 타 공격을 하려던 기사는 붉은 섬광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의식이 사라졌다.

남은 세 명의 기사들은 자신들이 상대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속도면 속도, 힘이면 힘, 기술이면 기술, 그 어떤 것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카발디의 기사단장도 뛰어나다는 평을 듣지만, 절대 눈앞에 있는 자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스각!

상대가 언제 움직였는지도 모르고 다시 한 명이 목을 베여 쓰러졌다.

지셀이 움직일 때마다 허공에 아름다운 붉은 선이 그어진다.

그 선은 마치 어둠 속에서 그림을 그리듯 움직였다. 격렬한 음악의 선율 같아 보이기도 했다.

기사들의 눈에는 그 붉은 선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극에 이른 기술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스각!

그들이 아름다운 선에 시선을 빼앗겨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다시 한 명의 목이 떨어졌다.

“소드마스터…….”

남은 한 명은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검을 내리고 중얼거렸다.

소드마스터를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런 기술을 보여 주는 자를 마스터라 부르지 않는다면 그 누가 어울리겠는가?

마스터의 칭호를 누군가에게 줘야 한다면, 그건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자야말로 검의 주인이라 할 만했다.

다시 붉은 선이 번쩍이며 다가온다.

카발디의 기사는 반격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언제나 기사로서 검의 극의를 꿈꾸며 살았다. 그리고 바로 지금, 자신의 눈으로 그것을 확인했다.

스각!

아쉬움은 없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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