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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90화 (190/269)

190화 내 옆에서 모두 떨어져라. (1)

지셀은 빠르게 전방을 훑어보며 말했다.

“길리언, 오른쪽 성벽을 제압해라. 카오르는 왼쪽 성벽을. 내가 중앙을 뚫고 성문을 열겠다.”

작전이 시작된 이상 의문과 항명은 용납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몸을 움직였다.

콰아앙!

잔뜩 마나를 모은 길리언과 카오르가 땅을 박차고 나아가자 굉음과 함께 바닥이 푹 패었다.

기사들 중 일부도 그들을 뒤따라 양쪽 성벽을 향해 달려 나갔다.

지셀은 손을 저으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벨린다는 성벽에서 견제하는 마법사들부터 따로 처리해 줘. 궁수들도 같이. 전부 다 죽이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적이 제대로 견제할 수 없게 혼란만 주면 돼. 할 수 있지?”

“그럼요. 도련님 덕분에 마나가 많이 늘어서 못 쓰던 기술을 쓸 수 있게 됐거든요.”

검은색 가면을 쓴 벨린다의 형체가 서서히 흔들리며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그녀가 있던 자리는 사람 형태로 주변 풍경이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사람이 투명해진 것만 같았다.

마법인 ‘인비저빌리티’와는 달리 주의 깊게 보면 무언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이런 야밤에 난전까지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눈치채기 힘들 것이다.

“그러면 저 먼저 출발할게요. 도련님도 몸조심하세요.”

스르륵.

마치 어둠이 일렁이는 듯한 잔상을 남기며 벨린다가 움직였다.

이 기술은 마나를 몸에 감싸 빛을 반사해 상대방의 눈을 속이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마나를 소모하지만, 기척을 알아채기 힘든 난전에서는 효과가 확실해 암살자들이 애용하는 기술이었다.

그걸 모르는 기사들은 벨린다가 모습을 감추는 것을 보고 경악했지만, 그들의 의문을 해결해 줄 시간은 없었다.

이 작전은 속도와 시간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콰앙!

지셀이 바로 뛰어나가자 남은 기사들은 이를 악물고 그를 따라가기 급급했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카발디군은 빠르게 다가오는 자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뭐지? 적이야? 아군이야? 누구냐!”

혼란에 빠진 그들의 앞으로 지셀이 번개처럼 다가왔다.

“누구긴 누구야. 여기 새 영주님이지.”

파악!

가장 앞에 선 자의 목이 단번에 날아갔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양, 지셀을 따라온 펜리스의 기사들이 학살을 시작했다.

“뭐, 뭐야! 이놈들 도대체 뭐야!”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어떻게 성안에 있는 거야!”

순식간에 정찰대가 전멸했다.

그들의 비명은 성벽과 성문에 대기하고 있던 카발디군에게도 전해졌다.

성벽 지휘관이 시끄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을 때.

콰아아앙!

사태를 파악할 틈도 주지 않고 지셀과 펜리스의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으아아아악!”

기습을 당한 카발디의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마나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휘두르는 기사들을 보통 병사들이 당해 낼 리 없었다.

갑자기 성안에서 적이 쳐들어오자 카발디의 병사들은 당황해서 진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성 밖에도 적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안쪽에서도 적이 몰려오니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당황한 건 병사들뿐만 아니라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일이냐!”

“도대체 적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상황을 파악해라! 어서!”

카발디의 기사들은 다들 우왕좌왕하며 병사들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분위기는 영 정리가 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갑자기 얻어맞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병사들은 이유도 모른 채 죽어 나갔다.

결국 기사들은 성벽 지휘관이자 무관장인 제이먼을 재촉했다.

“무관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갑자기 적이 나타났습니다!”

“기습입니다! 적의 기습이란 말입니다!”

어안이 벙벙한 건 제이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상황이 도통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중얼거렸다.

“왜? 왜 적이 여기에 나타난 거지? 땅굴은? 영주님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저놈들이 땅굴을 파고 있는 걸 눈치채고 주력을 그쪽에 배치했다.

카발디 백작도 승리를 확신했기에 직접 지휘를 맡겠다며 그쪽으로 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적이 갑자기 불쑥 나타났다고? 도대체 어떻게? 땅굴 쪽에 있던 아군 병력을 모조리 뚫고 왔다는 말인가?

그 순간, 제이먼의 머리에 아까 봤던 기이한 물체가 떠올랐다.

“서, 설마…… 하늘에서 날아오던 게……. 적들이 그걸 이용해서?”

믿기지 않지만,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무엇인지도 몰라 멍하니 구경만 했던 그것이 적들을 성안까지 옮긴 게 분명했다.

“말도 안 돼.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어떻게 하늘을 나는 물건이…….”

상식을 벗어나는 일을 이해하려 하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 와중에도 아군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계속 울려 퍼졌다.

“무관장님!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어서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적의 기세가 너무 강합니다! 아군이 전멸할 판입니다!”

제이먼은 기사들의 비명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적들이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궁금해할 때가 아니었다.

자신은 지휘관이다. 상황을 파악하고 최선의 지시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건 적의 의도를 알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 밖에 있는 펜리스군을 바라보았다.

소란스러운 안쪽과 다르게 성 바깥쪽에는 무거운 침묵이 깔려 있었다.

무섭다.

저 어둠 속에서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없이 가만히 성을 노려보고 있는 저 군대가 무서웠다.

마치 단번에 숨통을 끊기 위해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야수와도 같아 보였다.

“성문을 노리고 있었구나…….”

그제야 적들의 작전이 이해가 되었다.

땅굴에 속아 아군의 병력은 대부분 그곳으로 몰려가 있었다.

애초에 적들에게는 공성 병기가 필요 없었다. 몇 명만 들어와 성문을 열면 쉽게 들어올 수 있을 테니까.

저만한 대군이 들어온다면 그때는 아군이 달려와도 늦는다.

이쪽은 이미 상당히 굶고 사기까지 떨어진 상태다. 땅굴을 노리고 역으로 판 함정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 적의 군대가 별 피해 없이 들어와 진형까지 갖춘다면?

모든 것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필패였다.

‘이대로 죽는 건가…….’

소름이 끼친다.

하늘을 날아 적진에 진입한다는 일은 성공할 가능성을 떠나서,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런 기구를 만들고 이런 작전을 생각한 자가 소름 끼치도록 두려워졌다.

어떠한 군사학 서적에도 나와 있지 않은 새로운 작전을 떠올리는 창의력, 거기에 적진 한복판에 뛰어드는 과감함과 그걸 성공시킬 수 있는 능력까지…….

그런 자를 자신이 당해 낼 수 있을까?

‘너무 멍청하게 굴었어.’

만약 자신이 적의 양동 작전을 조금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만약 하늘을 나는 그것을 요격했더라면.

만약…….

짜악!

‘정신 차려라!’

제이먼은 자신의 뺨을 세게 때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적의 수는 약 100여 명, 이쪽의 수는 600여 명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지만, 적은 소수다. 그마저도 세 방향으로 나뉘어 움직인 덕분에 무리 각각의 수는 더욱더 적어졌다.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지만, 정신만 차린다면 충분히 싸워 볼 만한 수였다.

“당장 격퇴를…….”

제이먼은 다급히 말을 내뱉다가 전황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멈춰 버렸다. 적들을 격퇴하기는커녕 이쪽이 전멸당할 판이었다.

기습해 온 자들의 기세가 너무나 강하다. 아군은 우수수 쓰러지고 있는데 적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고작 저 인원으로…….’

100여 명 정도에 불과한 자들이 그보다 몇 배는 많은 병사들을 단번에 압도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군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설마 저 인원이…… 전부 마나를 쓰는 기사라고? 그건, 그건 정말로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나를 두른 검이 어두운 밤을 환히 밝히며 곳곳에서 휘둘러지고 있다.

‘펜리스가 이런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하늘을 나는 정체 모를 기구부터 100여 명에 이르는 기사들까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절대 이길 수 없다.’

애초에 병사들만으로 마나를 다루는 자를 상대하려면 전 인원이 제대로 진을 짜고 상대해야 했다. 그런데 이쪽은 기습당한 여파로, 진을 짜기는커녕 다들 혼란에 빠져 있었다.

기습이란 게 그렇다. 성공만 한다면 몇 배나 많은 적도 궁지에 몰아넣을 수가 있다.

지금처럼 이미 당한 상태에서는 판세를 뒤집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 시간을 벌어야 해.”

제이먼은 이를 악물었다. 분명 적들이 강력하긴 하지만, 이길 방도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만약 적이 성문을 열기 전에 아군의 주력이 도착한다면 포위해서 섬멸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아군이 올 때까지 상황을 수습하고 버텨야 한다.

그의 머릿속이 쉴 틈 없이 굴러가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정신들 차려라! 적은 공성 병기와 궁병이 없으니 성벽을 같이 공격할 수 없다! 성벽은 마법사와 견제에 필요한 최소한의 궁수만 남기고 모두 내려가라! 내려가서 당장 방어선을 만들어라! 나머지 절반의 병력은 성문의 방어에 집중해라!”

“알겠습니다!”

카발디 백작령은 단순히 병사들의 무장 상태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북부의 강자로 불린 게 아니다.

병사들은 무장 수준에 걸맞은 훈련을 하며 정예로 거듭났고, 그들을 이끄는 기사들과 지휘관들 또한 수준이 높았다.

특히 제이먼은 카발디 백작이 믿고 이곳을 맡길 만큼 능력이 출중한 자였다.

기사들이 합류하고 제이먼이 직접 통솔에 나서자, 혼란에 빠져 있던 카발디군은 점점 진형을 갖추고 침입자들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철컹! 철컹! 철컹!

북부 최고의 철광석 산지답게 강철 방패와 강철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이다.

그들은 앞에서 죽어 가는 병사들의 희생 덕분에 가까스로 진형을 갖출 수 있었다.

“당장 영주님에게 구원 요청을 보내라! 다들 버텨야 한다! 버티는 게 우선이다! 잠깐만 버티면 곧 구원이 올 것이다!”

성벽이 위험하다는 나팔 소리가 울리고 폭죽이 몇 차례나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성문과 성벽이 적에게 점령당하느냐, 아니면 아군의 주력이 먼저 도착하느냐의 대결이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빨리, 제발 빨리 와 다오!’

이 시대의 성들은 성안에 도시를 포함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기에 무척이나 넓었다.

아무리 작고 가난한 영지라도 성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몬스터의 공격에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이먼도 넓은 카발디 성에 큰 자부심을 품고 있었지만, 지금은 규모가 큰 게 이렇게나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늦었나.’

가까스로 방어선을 구축하긴 했지만, 아군은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었다.

성벽과 감시탑의 병사들이 활을 쏘며 견제해도 통하지 않는다.

침입자들은 다들 어찌나 실력이 좋은지 소형 방패로 화살을 전부 막아 내며 차근차근 아군을 척살하고 있었다.

제이먼은 다급한 마음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마법사! 마법사들은 뭐 하는 거냐! 아군의 피해는 신경 쓰지 말고 바로 공격해라!”

강력한 화력을 낼 수 있는 마법사들이 공격해서 적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

적은 소수다. 마법사들의 마법을 정면으로 맞는다면 적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제이먼은 약간의 희생도 불사할 각오로 마법사들을 불렀지만, 여전히 성벽에서는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적들이 아직 성벽에 도착하지 못한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데 어째서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시선을 성벽 쪽으로 돌린 제이먼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성벽 위에 남아 있던 마법사와 궁수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있었다.

“이 썩을 놈들,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한 마법사가 다급한 표정으로 손을 높이 들어 올리자 이글거리는 거대한 화염의 구가 허공에 떠올랐다.

아무리 기사들이라 해도 마법사가 모든 마력을 퍼부은 마법을 맞는다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마법사가 공격을 시도하려고 할 때.

그의 뒤쪽 공간이 흔들리더니 누군가가 나타났다.

스각.

“컥, 커억…….”

단검에 목이 베인 마법사는 그대로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시전자를 잃은 마법은 곧 사그라졌다.

“적이다! 적이 성벽에 나타났다!”

“암살자다!”

“마법사님이 쓰러졌다!”

소란이 일어나자 성벽 위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지만, 이미 습격자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스각!

잠시 후, 이번에는 활을 들고 있던 병사 하나가 목이 베인 채 쓰러졌다.

“으아아악!”

“적이 보이지 않아!”

“악마다!”

병사들은 공포에 질렸다. 어둠이 일렁거리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적이 아군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다른 마법사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는 이질적으로 공간이 비틀어진 곳에 마법을 던지려 했지만, 암살자가 한 발 더 빨랐다.

파악!

어둠을 찢으며 나타난 암살자는 그대로 자신을 노리던 마법사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흥.”

검은 가면을 쓴 암살자는 한번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공간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뒤에서 지휘하던 기사들이 그제야 암살자를 잡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성벽 위의 병사들과 마법사들은 하나둘씩 죽어 나갔다.

한 번에 많은 사람을 죽인 건 아니지만, 차근차근 사망자가 늘어 가는 모습에 카발디군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이, 이 미친…….”

성벽과 감시탑의 상태를 확인한 제이먼이 이를 갈았다.

웬 암살자가 날뛰니 제대로 견제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들 암살자가 언제 자신을 공격할지 몰라 겁을 집어먹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덕분에 양쪽 성벽을 향해 달리는 펜리스군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기사들을 키운 거지?’

암살자의 실력도 놀랍지만, 양쪽 무리의 선두에서 기사들을 이끄는 자들도 그에 못지않았다.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그들의 손에 아군 병사들이 쓸려 나갔다.

다시 한번 눈을 깜빡이자.

“허…….”

어이가 없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습격자들이 어느새 양쪽 성벽에 도착해 학살을 벌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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