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86화 (186/269)

186화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전진한다. (3)

브랜포드 후작은 잠깐 침묵하다 되물었다.

“전쟁이라고? 어느 곳과?”

“공작파의 카발디 백작입니다.”

다시 입을 다물었던 브랜포드 후작은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카발디 백작이 식량을 얻으려고 펜리스를 쳤다는 말인가?”

“…….”

분명 펜리스 남작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보고를 들었음에도 애써 현실을 회피하는 후작에게 기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신 급하게 작성한 보고서를 건넬 뿐이었다.

이미 전쟁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다. 북부의 여러 상단과 정보원들 덕분에 소식은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는 브랜포드 후작의 얼굴에서 점점 핏기가 사라졌다.

지금은 공작가든, 친왕파든 양쪽 다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싸워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내전이 벌어진다면 서로가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러니 조심하라고 귀족들에게 당부한 게 바로 조금 전이었다.

그런데 이미 전쟁을 일으켰다니. 그 정신 나간 놈이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큰 사고를.

언제나 품격 있게 살아온 브랜포드 후작은 난생처음으로 욕을 중얼거렸다.

“이 미치광이 새끼가…….”

“네?”

“아니, 아니다.”

브랜포드 후작은 이마를 짚었다. 그놈 소식만 들으면 두통이 몰려와 머리가 지끈거렸다.

회의장에 있는 귀족들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펜리스 남작이 전쟁을 일으키다니요! 그것도 공작파를 상대로!”

“그러니까 그런 놈을 밀어주면 안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라니, 그거 완전히 미친놈 아닙니까?”

“당장 잡아서 오리와 무게가 같은지 확인을 해야 한다니까!”

회의장은 귀족들의 고함으로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브랜포드 후작은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고민을 했다.

살면서 이 정도로 곤란에 빠진 적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놈은 정말 그저 미친놈이었을 뿐인가?’

겁 없고 웃기는 놈이란 건 진작 알았지만, 그래도 뭔가 감추고 있다고 여겼다.

이번 가뭄도 지셀 덕분에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건 면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하는 짓을 보면 미쳐도 이리 미친놈일 수가 없었다.

다른 귀족도 아니고 공작파의 귀족을 건들다니. 지금은 어떻게든 내전을 억제해야 할 때인데, 그런 정세도 보지 못한단 말인가?

후작이 고민하는 사이 회의장의 귀족들은 더욱더 과격하게 내뱉기 시작했다.

“펜리스 남작을 파벌에서 축출하고 손을 떼야 합니다!”

“절대 우리의 뜻이 아니라고 공작가에 해명을 합시다!”

“궁내부 장관님은 후견인을 철회하십시오! 그놈이 죽든 말든 상관하면 안 됩니다!”

“그 새끼는 흑마법사가 분명해! 당장 잡아 와서 확인해 보자고!”

브랜포드 후작은 여전히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명이 들리고 머리가 어지러워 솔직히 누가 뭐라 하는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속이 끓어오른다.

‘여기서 한발 물러나야 하는가.’

이번 일에서 손을 떼는 건 어렵지 않다. 굴욕적이지만 공작가에 충분한 보상을 하고 지셀을 포기하면 끝나는 일이다.

지셀은 공작가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아마 페르디움도 엮여서 같이 망하겠지만 그 이상 일이 커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화장품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한 후작가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후작의 권위도 크게 추락할 것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정도 피해는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역시 버려야 하는가.’

그 순간, 브랜포드 후작은 지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북부 대표로 저를 내세워 주십시오.

― 데스몬드 백작은 의심스러운 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자를 적으로 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카발디 백작은 북부 최대의 철광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데스몬드와 거래를 자주 하고 있지.’

‘데스몬드는 공작가와 한패일 수 있다.’

뭔가가 잡힐 듯 말 듯 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셀이 아무 생각 없이 전쟁을 일으킨 거 같지는 않았다.

‘북부의 영향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만약 지셀을 포기한다면 친왕파는 다시는 북부에 발을 들일 수가 없게 된다.

처음이 어렵지, 하나씩 양보하다 보면 결국 모든 곳에서 영향력을 잃고 밀리게 될 것이다.

지셀을 포기하는 건 북부를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외통수였다.

‘이놈……. 설마 이것까지 예상하고 나를 후견인으로 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지셀은 정말 죽일 놈이다. 애초에 후견인을 요청했을 때부터 사고 칠 계획을 짜고 있었다는 뜻이다.

괘씸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막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공작가의 개입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두 영지 간의 명분 있는 싸움으로 포장하고 양쪽 다 거리를 두게 해야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지금은 자신이 나서서 수습해야 할 때였다.

결심이 서자 브랜포드 후작은 눈을 뜨고 천천히 말했다.

“펜리스 남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다가 우리 다 죽습니다!”

“내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귀족들의 아우성에도 브랜포드 후작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싸늘하게 되물었다.

“그래서? 공작가와 싸우기가 무서워 같은 편을 내치겠다는 말인가? 그렇게 되면 다음에는 무엇을 양보할 거지? 펜리스 남작을 버리면 우리한테 뭐가 남지? 앞으로 우리를 믿고 따를 자가 남아 있을 거 같나?”

“…….”

귀족들은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브랜포드 후작의 말대로, 결국 적이 무서워서 아군을 내치는 꼴이다. 아무리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지셀을 쳐 내면 눈치를 보던 귀족들도 하나둘씩 빠져나갈 것이다.

내치고 싶어도 내칠 수 없는 상황이다. 펜리스 남작은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절묘한 자리에서 전쟁을 걸었다.

불안해하는 귀족들을 보며 브랜포드 후작이 조금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했다.

“친왕파의 개입은 불허하겠소. 공작가의 개입은 내가 막을 것이오. 펜리스와 카발디는 적합한 명분으로 싸우는 것이오. 펜리스 남작이 패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보고서에는 억지에 가까운, 하지만 나름대로 논리적인 명분이 적혀 있었다.

그걸 토대로 파벌 싸움이 아닌, 개인 간의 원한으로 치부하면 공작파를 막을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브랜포드 후작이 직접 처리하겠다 나섰으니 모든 귀족이 불만을 내뱉지 못하고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사람, 브랜포드 후작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닌 자를 빼고 말이다.

모리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브랜포드 후작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 애송이를 감싸 주겠다는 건가? 우리가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는데?”

“왕국군의 총사령관께서 공작가가 무서워 발을 빼겠다는 소리로 들어도 되겠소이까?”

브랜포드 후작의 도발에 모리스는 입술을 몇 번 씰룩이더니,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공작가를 쓸어 버리고 난 뒤에, 그 애송이 새끼가 살아 있다면 오리와 무게가 같은지 내가 반드시 확인할 거야. 그리고 직접 목을 쳐 주지.”

“그때가 되면 마음대로 하시오.”

“혹시 모르니 군대를 준비하도록 하지.”

모리스는 그 말을 끝으로 휭하니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그를 따르는 같은 계파의 귀족들도 자리를 떠났다.

회의가 끝났지만 브랜포드 후작은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바로 다음 날, 공작가에서 보낸 사람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브랜포드 후작은 피곤한 기색을 간신히 감추며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포우드 백작.”

포우드 백작은 공작가를 따르는 귀족 중에서도 주로 중요한 외교적 업무를 전담하는 자였다.

라울이 공작가의 머리라면 포우드 백작은 공작가의 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한 인물을 보냈다는 건 공작가에서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 보여 주는 것이었다.

적당히 인사를 건넨 포우드 백작은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말했다.

“펜리스 남작이 공작파의 귀족을 공격했습니다. 이걸 친왕파 전체의 뜻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포우드 백작은 처음부터 강하게 나왔다. 친왕파의 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제프 자작은 그 애송이 놈의 돌발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친왕파는 지금 누구보다 내전을 피하고 싶어 하니까.’

‘절름발이의 악마’ 라울은 지셀을 만난 적이 있다. 직접 대화를 나눠 본 뒤 그는 지셀을 두고 젊은 혈기에 미쳐 날뛰는 놈이라 판단했다.

그런 자들은 제멋대로 굴다가 반드시 실수를 한다. 역시 라울의 예상대로 지셀은 전쟁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그는 기회가 온 김에 친왕파가 지셀에게서 손을 떼게 하고 페르디움과 펜리스를 쓸어 버리려고 결심했다.

수도에 머물고 있던 포우드 백작은 바로 그걸 위해 곧장 브랜포드 후작을 찾아온 것이다.

‘두둑한 보상도 받아 내고 말이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포우드 백작을 향해, 브랜포드 후작이 나른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허락했소이다.”

“역시 그러셨군요! 그놈이 멋대로……. 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 사람이 허락했다고 했소이다.”

포우드 백작은 당황해서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라울의 예측은 빗나간 적이 없기에 이런 상황은 염두에 두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브랜포드 후작이 허락을 했다고? 미친 건가?’

지금껏 친왕파가 내세웠던 전략은 단순했다. 숨길 것도 없었다. 정말로 내전이 일어나지 않게 억누르는 게 전부였으니까.

거기다 브랜포드 후작은 냉철한 정치가다. 직감으로 하는 일을 혐오하며 오직 현실적인 면만 보고 판단한다.

같은 편이라도 방해가 되면 치워 버리는 그가 후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애송이의 편을 들 리가 없었다.

포우드 백작은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힘든 시기에 전쟁을 허락했다는 말씀입니까!”

“펜리스 남작과 카발디 백작은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소이다. 적합한 명분이었소. 공작가에도 이미 소식이 들어갔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때가 있는 법입니다! 이걸 허락했다는 건 결국 내전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알아도 되겠습니까?”

“내전이라니? 설마 포우드 백작도 반역을 꿈꾸고 있는 게요?”

브랜포드 후작의 서늘한 눈빛을 받고 포우드 백작이 움찔했다.

아무리 그가 공작가를 등에 업고 있더라도 상대는 공작에 못지않은 왕국 최고의 권력자였다.

“그, 그런 뜻이 아닌 걸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카발디 백작은 우리 쪽 사람입니다. 저희로서도 돕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가하오. 개인적인 원한에 공작가가 개입할 명분은 없소. 우리도 개입할 명분이 없기에 지켜보고 있는 것이오. 만약 공작가가 개입하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소.”

단호한 대답에 포우드 백작은 이를 악물었다. 도무지 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지? 그 애송이가 뭐라고 이렇게 편을 들어 주는 거지? 내전까지 불사하겠다고? 고작 북부의 애송이일 뿐인데?’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브랜포드 후작의 의중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포우드 백작은 다시 강하게 도발을 했다.

“정녕 힘으로 해결하실 생각입니까? 자신 있으신 겁니까? 각하께서 식량을 충분히 쌓아 두신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피해를 감수하고 움직이면 어느 쪽이 유리할지는 뻔히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이 사람을 협박하는 것이오? 백작.”

가뜩이나 지셀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던 브랜포드 후작이 포우드 백작의 건방진 발언에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원래 브랜포드 후작은 감정 변화가 이렇게 크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셀과 엮인 뒤로는 성질이 자꾸 더러워졌다.

지금도 그렇다. 편들어 주고 싶어서 들어 주는 게 아니다. 그놈이 자기 편을 들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으니 시도 때도 없이 화가 치밀고 폭발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브랜포드 후작은 차가운 표정으로 포우드 백작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입만 따로 떼어 공작에게 보내면 내 뜻이 확실히 전달되겠군.”

서늘한 기세에 포우드 백작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브랜포드 후작이 정말 내전을 결심했다면 여기서 바로 자신의 목을 칠 수도 있다.

그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제가…… 잠시 흥분하여 실언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받아들이지. 그대도 예전 같지 않구려. 아주 둔해졌어.”

포우드 백작은 입술을 깨물며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작정하고 친왕파가 지셀을 비호한다면 공작가 측에서 막을 방법은 없다.

친왕파와 같이 끼어들든가 아예 모른 척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뿐이었다.

‘으으, 어차피 쓸어 버릴 놈들이지만 이런 시기에 움직일 줄이야. 도대체 어떤 놈의 머리에서 나온 전략이지?’

방어적인 태세로 일관하던 왕실과 친왕파가 이렇게 갑자기 움직일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모두가 고통받고 있는 이 시기에 말이다.어떤 계획인지, 함정이 있는 건지, 무엇을 노리고 움직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친왕파도 가뭄으로 큰 피해를 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움직일 수가 있는 거지? 우리가 움직이기를 유도하는 건가?’

만약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는 거라면 사태를 관망해야만 했다.

‘하지만 카발디 백작이 패하면 곤란해진다.’

북부 최대의 철 생산지인 카발디 백작령은 공작가에게도 중요한 곳이었다.

더 급한 곳이 있어 지원을 조금 뒤로 미뤘을 뿐인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터져 버렸다.

‘젠장, 그 애송이가 식량을 빌미로 그만한 병력을 끌어모았을 줄이야.’

평소였다면 그냥 코웃음 치고 무시했을 것이다. 카발디 백작이 운용하는 무장병들은 강력하기로 북부에서 손꼽혔으니까. 펜리스 따위가 덤벼 봤자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지금 카발디 백작에겐 식량이 없다. 그저 포위만 당해도 죄다 굶어 죽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포우드 백작은 브랜포드 후작에게 물었다.

“친왕파도 중립을 지키고 끼어들지 않을 것을 약속하십니까?”

“그쪽도 끼어들지 않는다면.”

“알겠습니다. 각하의 뜻을 전하고 저희도 중립을 지키도록 말을 올리겠습니다.”

“그리하시오.”

몸을 돌린 포우드 백작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잔인한 눈빛을 띠었다.

‘데스몬드 백작이 움직이면 되겠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데스몬드 백작은 계속 중립인 척해 왔다.

데스몬드 백작은 똑똑한 자다. 공작가에서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일 게 분명했다.

어차피 정치 관계란 복잡한 법이니, 적당한 명분이야 전쟁에 승리한 뒤 억지로 만들어도 충분하다.

‘그러면 피해를 보고 싶지 않은 친왕파는 물러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대전을 벗어나는 포우드 백작의 뒤로, 브랜포드 후작의 나른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내 경고를 잊지 마시오, 백작. 친왕파와 공작파 어느 곳에서도 개입해서는 안 될 것이오.”

잠깐 멈칫한 포우드 백작은 다시 몸을 돌려 싱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를 말씀입니까. 저희는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포우드 백작은 자리를 완전히 떠났다.

포우드 백작이 떠난 뒤에도 브랜포드 후작은 눈을 감고 계속 생각에 잠기었다.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지셀의 말.

― 데스몬드 백작은 의심스러운 자입니다.

만약 대영주인 데스몬드 백작이 정말 공작가의 하수인이라면, 카발디 백작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펜리스의 뒤를 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펜리스를 비롯한 페르디움은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 뒤는 뻔하다. 북부가 완전히 공작가의 손에 넘어간다면 친왕파는 더 수세에 몰리게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더 이상 북부의 다른 영지를 믿고 밀어줄 만한 여력은 없었다.

‘그놈이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패해도 북부를 잃고, 손을 떼도 북부를 잃는구나.’

가뭄 때문에 소강상태가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겁 없이 날뛰는 놈 하나 때문에 상황이 이전보다 더 복잡해져 버렸다.

‘역시 내전은 피할 수 없는가.’

한숨을 내쉰 브랜포드 후작은 이내 결심한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사.”

“네.”

“맥쿼리 후작에게 도렌 자작의 북부 2군단을 데스몬드 백작령 인근으로 움직인 뒤, 그곳을 감시하라고 전해라.”

“그 말씀은…….”

“우선은 감시와 저지를 목표로 삼아라. 하나 만약 데스몬드 백작의 군대가 펜리스 남작을 공격한다면…….”

잠깐 침묵하던 브랜포드 후작은 곧 스산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곧바로 데스몬드를 치라고 전해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