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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84화 (184/269)

184화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전진한다. (1)

거의 포박당한 채로 끌려온 케인은 요 며칠 동안 지옥 훈련을 경험했다.

지셀이 아주 신이 나서 굴렸기 때문이다.

반항해도 소용없었다. 정당하고 거대한 폭력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같이 훈련하는 거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전장까지 끌고 갈 듯한 기세에 클로드는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영지의 후계자를 저렇게 일반병으로 삼아 끌고 가는 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잘라 말했다.

“내 돈을 갚지 않은 죄는 무척 크다. 그런 거 제대로 안 받아 내면 호구 되는 거야. 돈이 없으면 다른 걸로 갚아야지.”

“만약 전쟁에서 죽기라도 하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질 겁니다.”

“괜찮아, 저놈은 쉽게 안 죽어.”

“왜요? 뭐 숨겨진 능력 같은 게 있습니까?”

“감히 내 돈을 떼먹고도 아직 살아 있다는 건 운이 대단한 놈이라는 뜻이지. 그런 놈이 이 정도 전쟁에서 죽을 리가 없잖아? 그건 말이 안 돼.”

“……아, 네.”

혀를 몇 번 찬 클로드는 말리기를 포기했다. 역시 영주 놈의 사고방식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이왕 하는 거 확실히 박살 내고 오십쇼. 다들 깜짝 놀랄 정도여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 확실하게 쓸어 버릴 테니까. 그게 내 전문이거든. 내 승률 100%인 거 알지?”

“그럼요, 1전 1승이요. 2전 2승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 미친 작전이 꼭 성공했으면 좋겠군요. 부디 몸조심하시길.”

클로드는 처음 전략 회의 때 지셀의 작전을 듣고 기겁을 했다. 하지만 성공할 수만 있다면 가장 적은 피해로 승리할 방법인 건 확실했다.

그래서 그 작전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오직 이번 전쟁에서만 쓸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작전이 실패하면……. 영주는 반드시 죽겠지.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나? 너무 위험한데.’

클로드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미 말릴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준비할 때도 말리지 못했는데 출정할 준비까지 마친 지금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제발 승리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걱정하는 클로드와 다르게, 지셀은 기사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에 나간다는데도 다들 두려워하거나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의 지옥 훈련 덕분인지 다들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상은 독이 바짝 올라 화풀이할 곳을 찾는 표정들이었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맞으니까.

지셀은 그런 표정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주 좋아. 이번 전쟁이 끝나고 장비까지 바꿔 주면 더 좋아지겠어.

’현재 기사들은 블러드 퓌톤의 가죽으로 만든 언더 아머를 갑옷 안에 착용하고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어지간한 병사들에게는 쉽게 죽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무장들까지 생각한 대로 바꾸면 더 강력해질 게 분명했다.

각 부대의 출정 준비가 끝나자 길리언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준비 완료됐습니다.”

“좋아, 이제 슬슬 출발을…….”

간단한 출정식이 끝나고 출발하려고 할 때, 한쪽 구석이 시끌시끌해지더니 일단의 무리가 달려왔다.

바로 드워프들과 마법사들이었다.

갈바릭은 울 거 같은 표정으로 외쳤다.

“영주! 우리도 전쟁에 나가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 다 만들었잖아! 돌격대 안 하기로 했잖아!”

옆에 있는 알포이는 대놓고 울면서 외쳤다.

“우리도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 전쟁 나가기 싫다고! 그냥 집 지키고 있으면 안 될까?”

울부짖는 그들을 보며 지셀이 씨익 웃었다.

“안 돼. 이번 작전에 너희들이 꼭 필요하거든. 돌격대는 안 시킬 테니 걱정하지 마.”

갈바릭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급한 거 끝나면 휴가 주기로 했잖아! 우리는 지금부터 휴가라고! 이 거짓말쟁이!”

“무슨 소리야? 날짜는 아직 안 정했잖아?”

“…….”

“난 거짓말은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휴가는 전쟁 끝나고 나서야. 아무리 그래도 절차는 지켜야지.”

갈바릭은 할 말을 잃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 급하게 자리를 피하느라 휴가 날짜를 안 정하긴 했다.

그냥 막연하게 급한 거 끝나면 되는 줄 알았다. 확실하게 날짜를 안 받아 놓은 자신들의 실수도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그런데 펜리스에서, 아니 루타니아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막 나가는 인간일 영주가 ‘절차’ 따위 소리를 하니 혈압이 올라 죽을 거 같았다.

“으아아아! 파업이다! 파업! 안 가! 못가! 우리의 권리를 보장하라!”

“우리 마법사들도 절대 안 가! 노예도 인권이 있다!”

드워프들과 마법사들이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지셀은 고갯짓 한 번에 전부 치워 버렸다.

“끌고 가라.”

“우아아악! 싫어어어어어!”

길리언에게 끌려간 그들은 죽을상을 짓고 있는 케인의 뒤에 배치됐다.

정말로 모든 준비가 끝나자 지셀의 양옆으로 길리언과 카오르가 붙었다.

그리고 뒤에는 유일하게 검은 로브를 둘러 입은 벨린다가 자리했다.

지셀은 그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출발하지.”

클로드의 옆에 서 있던 퍼거스가 지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도련님, 꼭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정말 제가 안 가도 되겠습니까?”

걱정 가득한 퍼거스의 얼굴을 보고는 지셀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제발 집에서 잘 쉬고 있어. 나 따라오면 심장에 무리가 간다고.”

퍼거스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카오르가 끼어들었다.

“어이, 최고 영감님. 아무런 걱정 할 필요가 없어. 나는 지금 무척 강.해.졌.거.든.”

제법 강한 건 알겠지만 이놈은 이상하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퍼거스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자네만 믿겠네. 우리 도련님 좀 꼭 잘 좀 지켜 주시게.”

“크으, 나만 믿으라고.”

지셀에게 새로운 마나 연공법과 검술을 배운 카오르는 무척이나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벨린다는 그런 카오르를 보고는 혀를 몇 번 차더니 퍼거스의 옷매무새를 만져 주며 말했다.

“영감님, 식사 제때 하시고요. 약 꼭 챙겨 드시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실력 알잖아요?”

“그럼, 그럼. 내 집사장 실력은 잘 알지. 집사장도 꼭 몸조심하고.”

퍼거스는 길리언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몇 번이나 무사히 돌아오라는 당부를 남겼다.

유독 걱정이 많은 퍼거스의 배웅까지 끝나고 나서야 지셀을 필두로 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주가 직접 출정한다는 소식에 영지민들도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걱정이 가득했다.

점점 영지가 좋아지고 있는데 갑자기 전쟁을 한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영주가 직접 출정한다고? 혹시나 영주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지금의 행복도 사라지는 것이었다.

“어떡하지? 정말 괜찮으시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병사로 지원할 걸 그랬어.”

“영주님이 공사가 끝나면 모집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벌써 전쟁이 일어날 줄이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이곳의 영주가 페르디움을 치러 갈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때는 영주가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가서 죽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군대가 출정하는 것도 죽은 생선 같은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영주는 다르다. 사람들의 희망이자 모두를 책임지는 기둥이었다.

그때, 감정이 격해진 몇몇 사람들이 외쳤다.

“영주님!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기사님과 병사님들도 몸조심하세요!”

“여신이시여, 펜리스에 축복을!”

몇 사람이 시작한 외침은 곧 줄줄이 이어져 영지를 가득 메우는 함성이 되었다.

진심이 가득한 사람들의 걱정과 응원이다. 이런 걸 처음 받아 보는 기사들과 병사들은 조금 당황했지만, 곧 뿌듯해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지셀 또한 사람들에게 살짝 손을 들어 주며 미소를 지었다.

“와아아아! 꼭 승리하십시오!”

사람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성 밖으로 나온 지셀은 말고삐를 틀어쥐며 말했다.

“전군,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전진한다. 적들이 제대로 준비하기 전에 몰아쳐야 한다.”

“알겠습니다!”

사기가 올라간 기사들과 병사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히이이잉!

지셀이 탄 말이 울부짖는 것을 신호로.

펜리스군은 카발디 백작령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 * *

카발디 백작도 펜리스에 식량이 쌓였다는 소문은 진작에 들었다.

자신의 영지도 식량 부족으로 상황이 무척 어려워진 상황인지라, 그 소문에 혹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카발디 백작은 침중한 표정으로 가신들과 현 사태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데스몬드 백작이 뭐라 하던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현재 내부 수습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공작가는?”

“최대한 빨리 식량을 보내 주겠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언제까지!”

카발디 백작이 버럭 외치며 의자를 내리쳤다.

지금도 영지민들이 숨겨 둔 식량까지 모조리 긁어모아 병사들을 먹이고 있었다. 더는 버티기 어려웠다.

가뜩이나 카발디 영지민들은 철광산에서 극심한 강제 노동에 시달리느라 불만이 가득하다.

카발디 백작은 그런 사람들이 들고 일어서지 못하도록 군대로, 힘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군대마저도 굶게 생겼으니, 이대로는 위험했다.

언제 폭동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군대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리면 정말로 수습할 방법이 없었다.

“펜리스에 식량이 많다고 들었다. 거기를 칠 방법이 없나?”

카발디 백작의 말에 가신들이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전쟁을 할 만한 식량이 없습니다. 보급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병사들도 굶고 있어서 사기가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공작가에서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를 한 상태가 아닙니까?”

“지금 움직이면 친왕파에게 빌미를 주게 됩니다. 지금은 사태를 수습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카발디 백작은 입술만 깨물었다.

가신들의 말은 구구절절 틀린 점이 없었다. 지금 움직이면 친왕파와 공작파 양쪽 다 같이 죽자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싸우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승리를 해도 상처뿐인 승리일 뿐이다. 다른 영주들이 호응해 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카발디 백작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안을 제시했다.

“철을 주고 펜리스에서 식량을 얻어 와라.”

그의 결정에 가신들은 우려를 표했다.

“펜리스 남작은 친왕파입니다. 철을 제공하면 공작가에서 좋게 보지 않을 겁니다.”

“공작가와 데스몬드 백작이 지원을 약속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는 게…….”

부정적인 반응에 카발디 백작은 이를 갈며 말했다.

“대체 자네들은 누구의 가신인가! 군량미마저 다 떨어져 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이지? 거래가 싫으면 자네들의 재산부터 전부 압수할까?”

카발디 백작의 분노에 가신들은 동시에 입을 닫았다.

카발디 백작령이 북부 최대의 철 생산지이다 보니, 공작가 파벌 내에서 카발디 백작의 입지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식량을 지원해 줘야 할 데스몬드는 갑자기지원을 끊어 버렸다.

넘치던 여유분을 이미 지셀에게 다 팔아 버려 그쪽도 버티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지만, 그걸 모르는 카발디 쪽에서는 버려졌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공작가에도 지원을 요청했지만, 워낙 피해를 본 곳이 많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말았다.

눈치 빠른 카발디 백작은 금세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정치적 감각이 제법 좋은 편에 속했다.

“잘 생각해 봐라. 아무리 우리가 날고 기어봤자 공작가 입장에서는 북부의 촌놈일 뿐이야. 철광산은 우리 영지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말에 가신들은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카발디 백작령이 무시할 만한 곳은 아니지만, 공작가 입장에서는 카발디 영지보다 더 중요한 곳들이 많았다.

공작가 쪽에서 도와주지 않는데, 이쪽만 의리를 지키겠다고 굶고 있을 수는 없었다.

카발디 백작도 악독하기로는 북부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유명한 영주다.

강력한 무장병들을 보유한 덕에 다른 영주들보다야 안전한 편이지만, 만약 누군가가 병사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킨다면 훨씬 더 위험해진다.

“어쨌든 데스몬드를 뒤에서 받치고 있는 건 우리다. 그야 그놈과 거래하면 불쾌해하기야 하겠지만, 거래 몇 번 한 걸 가지고 우리를 쳐 낼 수는 없어.”

데스몬드가 북부의 영주들을 회유할 때 가장 먼저 손을 뻗친 곳이 카발디 백작령이었다.

그만큼 이곳이 전략상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쥔 패를 잘 이용할 줄 아는 카발디 백작은 대세를 보고 빠르게 공작가에 붙었다.

그만큼 복잡한 정치 지형을 잘 파악하고 있는 그는, 이번만큼은 공작가와 데스몬드 백작도 어쩔 수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들이 용납할 수 있는 선을 지킬 자신도 있었다.

“펜리스 남작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지금 철광석을 조금 준다고 해서 변할 건 없어. 군사력도 약하니 문제없을 거다.”

가신들은 일리가 있다는 듯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펜리스 남작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약간의 철을 주고 식량을 얻어 오는 정도로는 별다른 문제가 될 거 같지 않았다.

파벌이 달라도 필요한 게 있다면 서로 거래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원수가 아닌 이상 아예 모른 척 지내지는 않는다.

그저 철이 전략 자원이기 때문에 공작가에서 예민하게 통제할 뿐이었다.

한 가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펜리스 남작이 유리한 입장이니 가격을 너무 후려치지 않을까요? 저희가 그간 그쪽에 철의 공급을 거의 막았으니까요.”

“앞으로 철 공급을 조금 풀어 주겠다고 약속해라. 대신 건방지게 굴면 아예 공급을 안 해 주겠다고 협박도 조금 곁들여. 그놈도 우리가 아니면 방법이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적당히 밀고 당기면 결국 저희 제안을 받을 수밖에 없겠군요.”

“그래, 생각이 있는 놈이면 이 기회를 통해 우리한테 잘 보이려고 하겠지. 앞으로 철을 제값에 구하고 싶으면 말이야.”

카발디 백작과 가신들은 지셀이 자신들의 제안을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북부 지역에서 철의 생산과 유통은 거의 카발디 백작이 통제하고 있다. 그러니 펜리스는 그간 철을 쉽게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식량 가격이 폭등했지만, 사태만 수습되면 철의 가격이 더 비싸진다.

식량을 빌미로 까불었다가는 나중에 더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당장 출발해라. 데스몬드 백작의 귀에 들어가면 괜히 피곤해진다.”

카발디 백작의 명에 가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려 할 때였다.

대전의 문이 벌컥 열리고, 한 기사가 뛰어 들어와 다급하게 외쳤다.

“적이 쳐들어왔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소식에 카발디 백작과 가신들은 눈만 껌뻑거렸다.

선전 포고도, 전쟁의 징후도 없었다. 경계 요새에서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무슨 적이 쳐들어왔다는 말인가?

걱정이 되는 건 반란뿐이다.

카발디 백작이 석상처럼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무슨 말이냐? 똑바로 말해 봐라. 반란이라도 일어났다는 말이냐?”

기사는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셀 페르디움……. 아니, 펜리스 남작의 군대가 우리 성 앞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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