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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83화 (183/269)

183화 어때? 금방 구했잖아? (3)

다들 좋았던 기분이 팍 가라앉아 버렸다. 병사를 빼 가겠다는 말을 대놓고 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선을 넘는구나.’

‘세상에 식량을 주는 대가로 병사를 달라는 놈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얼마나 내놓으라는 거지? 아니, 얼마가 되었든 우리 영주님이 허락하지 않을 텐데.’

군사력이 약하면 외부의 위협은 물론이고 불만 많은 영지민들을 통제하기 힘들다. 어찌 보면 군사력은 영지를 유지하는 근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싫다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괜히 입 잘못 놀린 자들이 곧바로 쫓겨나는 꼴을 방금 눈앞에서 보았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셀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 그렇게 많이 달라는 건 아니야. 최소치는 50명이다. 작은 남작령은 그 정도만 보내 주고, 규모가 있는 곳은 조금 더 많이 주고. 서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하자는 거지. 대신 식량은 각 영지의 규모에 맞게 6개월 치를 제공해 주겠다.”

병사를 내놓으라는 첫 발언에 비하면 생각보다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식량 6개월 치란 말에 사신들의 일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남작령에서는 50명도 그리 적은 수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못 줄 정도로 많은 수도 아니었다.

병사 50명을 넘기고 6개월 치의 식량을 얻을 수 있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였다.

다시 눈치 게임이 시작되었다.

빠르게 계산을 끝마친 작은 남작령의 사신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희는 50명을 제공하겠습니다!”

“빠른 결정 마음에 들어. 제일 먼저 말했으니 8개월 치를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지셀에게 넘어갔다. 첫 기회를 놓친 사신들은 다급하게 외쳤다.

“저희는 100명을 제공하겠습니다!”

“거기 백작령이잖아? 덩치도 크면서 고작 100명 준다고? 200명으로 해.”

“어, 그게…….”

“싫으면 관두든가. 나가 봐.”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번 물꼬가 트이자 다음부터는 거칠 게 없었다.

다들 앞다투어 자신들의 영지 규모에 맞게 병사들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런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무런 말을 못 하고 있는 자가 있었다.

지셀은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자를 바라보며 알은척을 했다.

“어이, 오랜만이야. 백작님하고 고모님은 잘 계시지?”

“고, 공자님. 아니, 남작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긴장한 표정으로 인사하는 자는 바로 로게스 백작령의 총관이었다.

예전에 지셀과 결투를 했던 그의 사촌 동생, 케인이 후계자로 있는 곳.로게스의 총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물었다.

“저희는 어느 정도 보내야 할까요?”

로게스 백작령은 페르디움만큼이나 가난했다. 페르디움처럼 북방의 야만인이나 마수의 숲을 막아야 해서도 아니었다.

거기는 그냥 가진 게 없어서 가난했다.

무장병은 천 명이 안 되는 수준이고 징집병까지 끌어모아도 이천 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로게스는 전생에 페르디움을 편들어 주다 함께 멸망했다. 지셀은 그 의리와 은혜를 잊지 않았다.

“그래도 친척인데 야박하게 굴 수는 없지. 로게스에는 그냥 1년 치 식량을 주겠다.”

“오, 오오!”

로게스의 총관은 기쁜 웃음을 지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다 인맥, 인맥 노래를 부르는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저기만 공짜로 주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 페르디움 백작의 누이가 로게스 백작 부인이니 명분은 충분하다.

“아, 그런데 그냥 주면 모양새가 좀 그러니까 딱 병사 한 명만 받을게.”

로게스의 총관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량을 그렇게 준다는데 기사도 아닌 병사 한 명이 뭐가 문제겠는가?

완전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지셀이 사악하게 웃었다.

“케인. 로게스의 후계자를 여기로 보내. 그놈이 내 돈을 안 갚았거든.”

“돈을 안 갚았다고요?”

로게스의 총관은 처음 듣는 얘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나한테 천 골드를 빌렸는데 안 갚았어. 이래서 가족하고도 돈거래 하는 거 아니라니까. 실망이야, 정말.”

“헉, 처, 천 골드 말입니까?”

천 골드라니! 어떻게 그런 큰돈을 빌릴 수가 있다는 말인가?

로게스의 총관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지셀이 망나니였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케인과 함께 영지 사람들을 괴롭히고 놀러 다녔던 건 유명한 얘기였으니까.

그러니 그의 말이 진실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응, 케인 그놈이 말하지 않았나 보네.”

“요새 공자님은 조용히 영지에서 학문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놈이 공부를 한다고? 그거 진짜 웃기는 얘기인 거 알지?”

“…….”

로게스 총관은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 공부는 그저 변명일 뿐, 케인은 그냥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누가 왜 그러는지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으니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다들 그저 철이 조금 들었나 보다 여기고 넘어갈 뿐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사람들도 안 괴롭히고 조용히 살고 있었으니까.

사실 케인은 철이 든 게 아니라, 무서워서 나오지 않는 거였다.

그런 큰돈을 부모님께 달라고 할 수도 없었고 구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니 밖에 나가지도 않고 숨어 있을 뿐이었다.

사실을 말하기에는 너무 창피하기도 했고, 오히려 소문이 날까 봐 더욱더 조용히 있었던 이유도 컸다.

케인이 돈을 안 갚고 버티는 이유는 그거였다. 영지에 처박혀 있으면 괜찮겠지, 하는 얄팍한 믿음.

하지만 그걸 지셀이 배려해 줄 이유는 없었다.

“그거야 직접 확인하면 될 일이고. 어쨌든 그게 내 조건이다. 1년 치 식량을 받고 싶다면 케인을 보내.”

“그, 그래도 어떻게 케인 공자님을…….”

영지의 후계자인 그를 펜리스로 보내는 건 인질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겨우 총관이 수락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그를 보며 지셀이 부드럽게 말했다.

“가서 백작님하고 상의해 봐. 요새 내 활약을 들어서 잘 알고 있을 테니 허락할 거야. 여기서 나와 같이 훈련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런 거지. 앞으로 영지를 이끌어 갈 후계자들끼리 같이 힘을 합쳐 보자는 좋은 의미야. 우리는…… 사촌이잖아?”

“그렇군요! 그런 뜻이라면 백작님도 당연히 허락하실 겁니다.”

로게스의 총관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페르디움과 로게스는 피로 이어진 혈맹이나 마찬가지다.

지셀과 힘을 합치는 건 케인에게 이득이면 이득이지,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지금의 지셀은 브랜포드 후작을 등에 업은, 루타니아 귀족계의 떠오르는 신성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백작님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케인 공자님에게도 절대 나쁜 일은 아닐 테니까요.”

“그래, 그래. 서로에게 정말 좋은 일이라고.”

물론 지셀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오면 뒤졌어, 이 새끼.’

감히 용병왕의 돈을 떼먹는다?

그런 일은 하늘 아래 있을 수가 없다.

전생에서는 일국의 왕이라도 그런 간 큰 짓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결투할 당시엔 힘이 조금 모자랐던 탓에 교육이 덜 된 모양이었다.

지셀과 로게스 총관과의 대화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의 권한이 허용하는 한 많은 병사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괜히 미적거렸다가 영지의 후계자를 보내라는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난리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협상이 끝나자 지셀은 재차 강조했다.

“병사만 보내는 건 아닌 거 알지? 그 가족들까지 모두 보내.”

그러자 사신들은 당황했다. 병사만 보내면 될 줄 알았는데, 가족들까지 모두 보내라니?그렇게 되면 예상보다 더 많은 영지민이 빠져나가 버린다.

합리적인 거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혀 합리적이지가 않다. 평시였다면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영지의 노동력을 뺏기게 된 이들의 표정은 절로 떨떠름해졌다.

지셀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여전하군.’

이들에게 영지민은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노예보다 더 낫다. 세금도 거둘 수 있고, 자신이 먹여 살리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니 가족과 생이별을 시켜도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다들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대이니 욕할 것도 안 된다.

하지만 시대가 그렇다고 해도 지셀은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떨어져 사는 가족들은 병사들의 약점이 된다. 그렇게 되면 병사들이 제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지셀은 그런 문제를 원천 차단할 생각이었다.

머뭇거리던 사신들은 어쩔 수 없이 병사들의 일가족까지 같이 보내기로 합의했다. 그들을 넘겨야 남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겉보기와 달리 속마음으로는 천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젠장, 두고 보자. 이번 어려움만 넘기면 반드시 가만두지 않겠다.’

‘애송이 새끼가 친왕파 귀족들을 믿고 날뛰는구나.’

‘진작에 여기를 쳐서 식량과 룬스톤을 뺏었어야 했는데.’

소문을 듣자마자 연합을 해서라도 이곳을 치고 모두 뺏었어야 했다.

서로 욕심 때문에 눈치를 보고 진위를 확인하느라 늦어 버렸다.

이제는 공격할 수도 없다. 친왕파의 고위 귀족들이 뒤에 있는 데다, 각 영지에서 넘기기로 한 병력을 합하면 물경 3천에 가까운 수였다.

식량 하나로 단번에 수천의 병사와 영지민들을 획득해 버린 것이다.

지셀은 쐐기를 박듯이 말을 이었다.

“영지민들을 이주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릴 테니 병사들부터 최대한 빨리 보내도록. 보름 내로 도착하지 않으면 없던 일로 하겠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상비군으로 보내라. 만약 엉터리 병사를 보내면 바로 돌려보낼 테니까.”

“알겠습니다.”

대충 징집병으로 채우려 했던 사신들은 수작을 부릴 생각도 버렸다. 괜히 지셀에게 꼬투리를 잡혀 거래가 취소되면 영지 전체가 굶게 되기 때문이다.

사신들은 바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시간이 빠듯하니 한시라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모든 거래가 끝나자 지셀은 흡족한 표정으로 클로드를 돌아보았다.

“어때? 금방 구했지? 쉽잖아? 영지민도 많이 늘어났고 말이야.”

“…….”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클로드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대단한 수완이었다. 돈으로도 구하기 힘든 것이 사람인데, 그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했다.

거기에 지금까지 받은 이주민들과는 달리, 전투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훈련받은 병사들을 얻어 냈다.

영지의 병력과 합하면 무려 3천이 넘어가는 수였다. 정말 장담한 대로 그 병력을 마련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가뭄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클로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운이든 진짜 능력이든, 이 새끼는 정말 대단한 새끼다.

그래서 이번에는 깐족거리지 않고 엄지를 들어 올렸다.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

거만한 미소를 지은 지셀은 길리언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새로 오는 병사들은 최대한 빨리 통제에 따를 수 있게 제식 훈련 위주로 시키도록. 지역을 가리지 말고 다 섞어서 부대를 편제해라. 어차피 보병들만 보낼 게 뻔하니까.”

“알겠습니다.”

부족한 병사들을 채웠다. 비록 반쪽짜리지만 수백에 이르는 기사들도 만들었다.

친왕파와 공작파, 양쪽 다 자기들 앞가림하느라 바빠 이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차곡차곡 준비해 왔다.

지셀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전쟁을 시작하겠다.”

* * *

각 영지에서 보낸 병사들은 빠르게 도착했다. 영주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니 불쾌함을 참고 거래를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급하게 쫓겨나듯이 넘어온 병사들은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갑자기 살 곳이 바뀌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당황하는 것도 잠시, 풍부하게 제공되는 식량을 보자 병사들의 얼굴에는 금세 화색이 돌았다.

‘와, 식량 많다더니 사실이었구나.’

‘이런 곳에서 계속 살게 된다고? 이게 꿈이야, 생시야?’

식량이 떨어져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이들에게 펜리스는 꿈의 영지였다.

악덕 영주 밑에서 항상 굶고 가난에 허덕이던 기억밖에 없다 보니, 고향에 대한 미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배부르게 먹을수록 새로운 영지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다. 거기에 가족들까지 곧 이곳으로 올 예정이란다.

안 좋으려야 안 좋을 수가 없었다.

병사들이 만족스러워하니 그들을 통제하는 데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이주해 온 병사들은 고작 일주일 만에 제대로 군기가 들었다.

기본 훈련은 이미 되어 있으니 큰 어려움도 없었다. 그저 펜리스의 군율에 적응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역시 잘 먹이고 잘 재우는 게 최고였다.

그러나 병사들의 기분은 며칠 만에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지셀이 출정을 한다며 모든 병사를 소집했기 때문이다.

‘오자마자 전쟁이라고? 어디를 치려는 거지?’

‘미치겠네. 그런데 우리 숫자 좀 많은 듯?’

불안해하는 병사들과 다르게 지셀은 사열한 군대를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출정 병력이 기사들을 포함해 무려 3천에 이르는 수였다. 보병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북부에서 대영주들을 제외하면 이 정도 병력을 거느리는 곳은 없다고 봐도 된다.

병사들도 자신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으니 그나마 안심하는 눈치였다.

지셀과 같이 군대를 둘러보던 클로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다 좋은데 선전 포고도 안 하고 쳐들어가시나요?”

“당연하지. 준비할 시간을 뭐 하러 줘? 이번 전쟁은 속도와 타이밍이 생명이야. 다른 쪽에서 개입하기 전에 끝내야 하거든. 선전포고는 가서 하면 된다.”

“끄응…….”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선전 포고도 없이 기습을 했다가는 많은 지탄을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적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명분을 주게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게 싫어서 다들 그런 쓸데없는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선전 포고를 해 줘야 정치질도 하고 주변에 도움도 요청하고 준비도 할 게 아닌가?

하지만 지셀은 진심으로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런 예의 따위는 모두 집어 던지는 야만의 시대가 곧 올 테니까.

클로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지셀을 뜯어보다 고개를 몇 번 젓고는 말했다.

“그런데 저분은 정말 데려가실 겁니까?”

부대의 한쪽 구석에는 로게스 영지의 후계자, 빚쟁이 케인이 나라 잃은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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