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새로운 훈련을 시작한다. (1)
여기서 뛰어내린다고? 어차피 죽을 거 마음고생하지 말고 더 빨리 죽자는 말인가?
알포이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왜? 왜 뛰어내리는데?”
그렇지 않아도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 눈도 뜨기 힘들 정도였다.
지금도 밖으로 튕겨 나갈까 봐 바구니를 양손으로 꽉 잡고 있는 상황인데, 자진해서 뛰어내리겠다니!
그런 무서운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카오르는 설명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빠르게 말했다.
“여기 타서는 땅과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볼 수 없잖아! 때를 잘 맞춰서 마법을 쓰더라도 공기 주머니랑 엉키면 무슨 사고가 날지 몰라! 나가서 쓰는 게 안전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기구와 엉켜서 떨어지면 더 위험할 수가 있었다.
“아, 알았어! 그럼 나 혼자 뛰어내려?”
“미쳤냐! 내가 잡고 뛸 테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카오르는 말을 끝내자마자 바로 알포이의 허리를 붙잡고 기구에서 뛰어내렸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맨몸으로 높은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건 엄청난 공포를 안겨 준다.
몸을 때리는 강한 바람에 알포이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살려 줘!”
“닥쳐! 제발 좀 닥치라고! 내가 거리를 확인할 테니까 신호하면 바로 마법을 써! 알았어? 바둥거리지 좀 마! 어딜 만져!”
“으아아아! 알았어!”
카오르는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집중했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엄청난 높이에서 떨어지며 가속도가 붙은 상황에서는 소드마스터 할아버지라 해도 살아남기 어렵다.
땅에 부딪히기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버틸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몸이 버틸 수 있는 높이에만 들어가면 된다.
이번에 수련을 하며 경지도 조금 올랐기에, 어지간한 높이는 마나만 둘러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정 안되면 팔 하나 정도는 부러질 각오도 하고 있었다.
부우우웅!
지면과 가까워질수록 낙하 속도는 더욱더 빨라졌다. 눈 한 번만 깜빡여도 지면과의 거리가 훅훅 줄어들었다.
치밀하게 거리를 계산한 카오르는 버틸 만한 높이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외쳤다.
“지금이야!”
눈을 꽉 감고 있던 알포이는 카오르의 신호를 듣고 바로 손을 뻗어 마력을 뿜어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마법을 익힌 뒤로 이 정도로 절실하게 마법을 쓴 적은 없었다.
마법은 집중이 흐트러질수록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는 법이지만, 마탑의 후계자답게 알포이는 목숨을 걸고 마법을 성공시켰다.
덜컥!
떨어지던 두 사람의 몸이 순간 공중에 멈췄다.
“크윽!”
“으에엑!”
힘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니 몸이 멀쩡할 리가 없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망치로 친 듯한 고통과 내장이 뭉개지는 듯한 느낌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땅에 떨어져서 몸이 박살 나는 것보다는 낫다.
성공을 예감한 카오르는 온 힘을 다해 마나를 끌어올렸다.
이제 자신의 몸을 방패 삼아 땅에 부딪히는 충격만 버티면 된다.
그러면 되는데…….
부우우우웅!
두 사람의 몸이 다시 빠르게 위쪽으로 떠오른다.
“어? 어? 야, 멈춰! 멈추라고 이 미친놈아!”
알포이는 몸에 충격이 오는 순간 너무 무서워서 정신을 반쯤 놓았다.
눈도 감고 있었던 탓에 땅바닥과 거리가 어느 정도 남았는지 전혀 몰랐다.
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마법을 시전한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멈추라고! 이 등신아!”
카오르의 호통에 알포이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미 엄청난 높이로 떠오른 뒤였다.
“미, 미안……. 나도 모르게 너무 힘을 줘서…….”
“됐어! 정신 바짝 차려! 성공할 뻔했으니까 다시 하면 돼! 내가 다시 신호를…….”
“미안……. 이제 마력이 다 떨어졌어…….”
“뭐?”
“아까 시연하느라 마력을 많이 썼는데……. 지금 너무 무리해서 마법을 쓰는 바람에……. 크흑…….”
알포이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미 살아남기를 포기한 말투였다.
카오르는 열이 뻗쳤다. 유일한 기회를 멍청이처럼 날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야이! 등신아! 딱 속도만 줄일 정도로 뜨고 멈췄어야지!”
“미안……. 너무 무서워서…….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서 가는 길 외롭지는 않을 거 같아……. 같이 죽자…….”
“입 닥쳐! 난 안 죽어!”
카오르는 이를 악물고 알포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야 겨우 상승의 마나 연공법과 검술을 익혔는데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나 억울했다.
하지만 너무 높이 올라왔다. 이 상태로 부딪치면 몸이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선택해야 했다. 둘 다 죽을 건지, 아니면 한 명이라도 살 수 있는 확률에 걸어 볼 건지.
‘젠장!’
알포이를 쿠션 삼아 버텨 볼까 고민했지만 그 생각은 이내 접었다.
미안해서가 아니다. 너무 허약한 놈이라 쿠션 역할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도해 봤자 알포이가 충격을 버티지 못하니 같이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멍청한 새끼!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 새끼! 바네사보다 멍청한 새끼!’
속으로 실컷 욕을 한 카오르는 자세를 바꿨다.
자신은 마나로 몸을 강화할 수 있다. 실력도 전보다 늘었으니 자신이 먼저 떨어지며 충격을 완화한다면 알포이는 운 좋게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둘 다 죽을 필요는 없지. 같이 죽을까 했는데 너라도 살 수 있으면 살아라. 너도 등신이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더 쓸모 있을 테니까.’
마음을 정하고 고개를 드니 저 멀리서 사람들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하지만 와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저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손쓸 방법이 없을 것이다.
가장 앞에 선 지셀과 벨린다, 길리언을 본 카오르는 속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집사장, 매일 시비 걸어서 미안하다. 잘 먹고 잘살아라. 돈은 없고, 내 숙소에 있는 남은 술이라도 너 가져. 작별 선물이다.’
‘영감, 한판 뜨고 싶었는데 결국 못했네. 그래도 싸우면 내가 이기는 거 알지?’
‘영주, 같이 놀아서 재밌었다. 덕분에 실력 좀 늘었는데 써먹지도 못하고 죽게 생겼네.’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나름 즐거웠다.’
이제 그의 몸은 지면과 충돌해 완전히 박살 나고 말 것이다.
카오르는 눈을 감았다. 한 방울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할머니, 곧 보러 갈게.’
살기를 포기하고 알포이라도 살리려고 한계까지 마나를 끌어올렸을 때, 지셀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카오르! 힘을 빼! 마나를 가라앉혀라!”
‘왜? 뭐 하게? 그냥 죽으라고?’
의아해하면서도 카오르는 반사적으로 지셀의 말에 따랐다. 몇 번이나 지셀에게 얻어터지며 몸에 각인된 훈련 효과였다.
파아악!
지셀은 두 사람 쪽으로 손을 뻗으며 마나의 실을 뿜어내었다.
가속도가 붙었으니 어설픈 힘으로는 붙잡지도 못할 터였다. 단번에 3단계의 코어까지 폭발시켜 낼 수 있는 한 최대의 힘으로 두 사람을 붙잡았다.
투두둑!
마나의 실들이 버티지 못하고 끊어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이 떨어지는 속도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카오르! 알포이를 집어 던져!”
지셀이 외치자마자 카오르는 알포이를 휙 집어 던졌다.
진작부터 던져 버리고 싶었기에 망설임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저 새끼는 정말 죽어도 싼 새끼다.
지셀은 양손으로 계속 마나를 뿜어내, 카오르와 알포이의 낙하 속도를 줄여 나갔다.
“길리언! 벨린다!”
지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길리언과 벨린다가 공중에 뛰어올랐다.
길리언은 카오르를 받자마자 바로 땅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충격을 분산시키기 위함이었다.
쿠웅!
“케엑! 영감, 너!”
온몸을 강타하는 고통에 카오르가 비명을 내질렀다. 길리언은 코웃음을 치며 다리에 마나를 둘러 안전히 착지했다.
하지만 알포이를 맡은 벨린다는 길리언처럼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허약하기로는 영지에서 최고 수준을 다투는 알포이다. 그냥 개복치 수준이다. 카오르처럼 바닥에 내리치면 그대로 죽어 버릴지도 몰랐다.
“아오!”
벨린다는 짜증스러운 외침을 내뱉으며 알포이를 낚아채듯이 안고, 허공을 몇 번이나 돌았다.
적당히 힘을 해소하고 땅에 착지하자 알포이가 주저앉으며 외쳤다.
“사, 살았다! 살았어! 집사장 고마워! 으하하하! 살았다!”
“으하하하! 영주는 역시 대단하네! 수고했어, 영감! 쿨럭!”
카오르도, 알포이도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쉬지 않고 웃었다. 죽다 살아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지셀은 안도의 숨을 내뱉은 뒤,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괜찮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러자 카오르와 알포이는 서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새끼 때문이야!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 멍청한 새끼!”
“저놈이 먼저 올라가자고 했어! 저 새끼 순 나쁜 새끼예요!”
실랑이하는 둘을 말리며 자초지종을 듣고서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고도가 높아지니 열기구의 공기 주머니가 버티지 못한 거 같았다.
애초에 약속된 안전 고도를 넘어서 올라간 탓이니 온전히 열기구의 결함만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꼴통 둘이 위험을 자초한 거였으니까.
하지만 사고는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른다. 높이가 높이인지라 한번 사고가 나면 위험하니, 안전성을 더 강화해야 할 필요는 있었다.
잠시 후, 땅에 떨어진 열기구를 살펴보던 드워프들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자신 있게 만들었는데 사고가 났으니 기가 죽을 만도 했다.
“무슨 문제였지?”
“그게……. 높은 고도의 바람을 버티지 못했는지, 아니면 공기가 너무 뜨거워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공기 주머니의 결합부가 뜯어지고, 천도 찢어졌습니다.”
지셀의 물음에 갈바릭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대들 때는 언제고, 자신들이 불리하니 공손해진 것이었다.
지셀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원하는 높이까지는 문제없다는 건 확인했지만, 그래도 보강하는 게 낫겠지. 공기 주머니는 세 겹으로 만들고 어망으로 외부를 감싸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도록 해. 다른 부분에서도 더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들 방법도 생각해 보고.”
“알겠습니다.”
열기구의 보강과 추가 제작을 맡긴 지셀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 약간의 사고가 있었지만 그래도 비행은 문제없는 거 다들 봤지? 이 두 사람이 무리해서 그런 거지, 적당히 올라가면 안전하니까 다들 걱정하지 마. 다음 시연 때 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고.”
사람들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위험한 건 절대 타고 싶지 않았다.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뒷정리를 끝낸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가뜩이나 일도 바쁜데 열기구도 구경하고 사고도 구경하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
클로드는 집무실로 돌아가며 웬디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드워프가 만드는 것도 무조건 완벽한 건 아니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좀 구린 거 같지 않아?”
“……총관님, 잠깐만.”
“드워프 명성도 사실 다 거품 아닐까? 예를 들면 이런 거지. ‘너희는 키가 작지만, 손재주는 좋더라.’ 이런 식으로 그냥 종족 자체를 포장해 주려고……. 아, 왜 밀어! 천천히 좀 걷자! 나 다리 아프다고!”
웬디는 클로드를 억지로 떠밀며 재빨리 자리를 떴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이미 그 깐족거림을 다 들은 뒤였다.
“으으……. 자존심 상해.”
갈바릭은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었다.
이 영지에 와서 처음 만든 작품이 실패했다.
물론 카오르와 알포이가 무리하게 올라간 건 맞지만, 몇 번이나 안전 시험을 하면서 그런 위험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건 장인인 드워프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뼈에 사무치는 실수였다.
“자, 빨리 가자고. 진짜 밤을 새워서라도 완벽하게 만들어야 해.”
갈바릭의 말에 드워프들이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일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다. 드워프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지셀이 드워프들을 크게 타박하지 않은 것도, 그들의 이런 성미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공방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갈바릭은 괜히 땅바닥을 발로 차며 투덜거렸다.
“어휴, 이 먼지 봐라. 물 좀 뿌려야겠네. 이 동네는 비도 안 오나? 사방이 흙먼지야.”
요새 들어 날씨가 확 건조해진 느낌이었다. 비가 안 온 지 꽤 된 거 같은데 다들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주변에 물어봐도, 전보다 약간 심해지긴 했지만 큰 차이는 없다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런데 왜 갈수록 더워져?”
불과 온도에 익숙한 드워프는 남들보다 날씨의 변화에 더욱더 민감했다.
북부는 서늘하다고 들었는데 서늘하기는커녕 뜨겁고 건조하기만 하다. 이건 사막 날씨와 다를 게 없었다.
척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처음 왔을 때보다 이상하게 더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쯧쯧, 이런 데서 다들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모르겠네. 아, 그런데 나도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는구나. 정말 싫다.”
따뜻하고 날씨 좋은 남부에서 온 갈바릭은 북부의 환경에 영 적응하지 못했다.
“후, 날씨도 더럽고 하는 일도 더럽고, 진짜 거지 같은 동네야. 아, 총관 그 새끼는 생각할수록 얄밉네.”
갈바릭의 투덜거림은 공방에 도착할 때까지 끝이 나지 않았다.
사실 날씨가 문제라기보다는 열기구가 실패해서 속이 쓰린 게 더 컸다.
그냥 화풀이할 곳이 없어서 날씨 핑계로 화풀이를 한 셈이었다.
드워프들이 투덜거리며 다시 열기구 제작을 시작할 때, 지셀은 쉬고 있는 기사들을 찾아가 말했다.
“다들 푹 쉬었지? 이제부터 새로운 훈련을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말에 기사들은 귀를 의심했다. 쉰 지 얼마나 됐다고 또 훈련을 한다는 말인가?
솔직히 진짜 하기 싫었다.
용감한 이들 몇몇이 손을 들고 외쳤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시간 많습니다!”
지셀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안 괜찮아. 우리는 시간이 없어. 모두 집합해.”
‘이럴 줄 알았으면 기사 같은 거 하는 게 아니었는데.’
기사들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어기적어기적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