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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71화 (171/269)

171화 검증은 충분히 됐습니다. (1)

드워프들은 기겁하며 동시에 소리쳤다.

“영주님! 한 달은 너무 부족합니다!”

“에이, 왜 그래? 최고의 기술자라 불리는 드워프들이 약한 소리 하기는. 내가 원하는 거 다 해 주겠다며? 이렇게 말이 바뀌면 곤란한데.”

“끄응…….”

드워프들은 정말 곤란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인간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상식적인 수준 내에서 요구를 한다. 자신들의 실력이라면 얼마든지 그 조건을 맞출 수 있기에 장담한 것이었다.

솔직히 좀 흥분해서 이런저런 말을 내뱉은 건 인정한다. 그렇지만 설마 그 말을 다 걸고넘어질 줄은 몰랐다.

‘아니, 보통 좋게 얘기하면 적당히 겸양도 부리면서 받아먹는 게 정상 아닌가? 그것도 귀족이면 더 그렇잖아?’

이렇게 주는 대로 족족 다 받아먹는 인간은 난생처음이었다.

진짜 먹고 싸고 자는 시간도 줄여 가면서 일해야 할 판이었다.

‘아씨, 괜히 나댔다. 가만히 있을걸.’

드워프들이 울상을 지었다. 어쨌든 이미 약속한 건 사실이고, 꼴을 보니 거부도 안 받아 줄 모양이었다.

그래도 살면서 그렇게 일해 본 경험이 없기에 갈바릭은 엄살을 부리며 지셀을 떠보았다.

“영주님,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걸 한 달 안에 끝내려고 하다가는 우리 다 과로로 죽을 겁니다.”

“안 해도 죽을 텐데.”

“네? 왜요? 우리 죽이시게요?”

법적으로 노예이긴 하니, 말을 안 들었다고 죽여도 할 말은 없었다.

지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북부의 대영주인 데스몬드 백작한테 찍혔거든. 곧 전쟁이 일어날 거야. 내가 시킨 일 한 달 안에 안 끝나면 우리 다 죽어.”

“…….”

“솔직히 그간 귀족들 밑에서 여유롭게 놀면서 지냈지? 그런 나태한 정신력으로는 이 험한 북부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어.”

하지만 드워프들에게는 데스몬드 백작의 이름도 그다지 통하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도 우리는 안 위험할 텐데…….’

드워프들은 인간들끼리의 전쟁은 딱히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주들이 몸값 비싸고 쓸모 있는 드워프들을 죽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직접 무기를 들고 날뛴 수준이 아니라면 전리품 삼아 데려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지셀이 아니다.

“한 달 내로 준비가 끝나지 않으면 전쟁 때 드워프들도 돌격대로 선봉에 서게 될 거야.”

‘와, 이거 진짜 미친놈인가?’

드워프들은 헛숨을 내쉬며 지셀을 흘겨보았다.

자신들의 몸값이 얼마인데 전쟁에 투입한다는 말인가? 어떤 영주도 그런 간덩이가 큰 짓은 못 한다. 그냥 빈말로 하는 협박이 틀림없었다.

드워프들의 의심스러운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셀은 씨익 웃었다.

“이제 막 와서 아직 나에 대해 잘 모르지? 오늘은 자유 시간을 주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면 어떻게 해야겠구나 감이 올 거야. 나는 정말 좋게 좋게 가고 싶은데, 다들 내 말을 참 안 믿더라고.”

지셀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드워프들은 얼떨떨하게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하나둘씩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한테 그런 협박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별의별 귀족들을 겪어 본 드워프들은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흠흠, 그래도 아직 여기 분위기에도 익숙하지 않고, 영지에 대해 잘 모르긴 하니 한번 슥 둘러봅시다.”

갈바릭의 제안에 드워프들은 영지를 돌아다니며 영주에 대해 물었다.

사람들은 순순히 그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아, 영주님이요? 한번 결정하면 절대 뒤도 안 돌아보고 밀어붙이는 분이시죠.”

“아버지 몰래 병력을 모아서 마수의 숲에 들어간 분이에요. 전쟁 때도 멋대로 나가서 적을 때려잡았다나? 며칠 전에는 아버지 영지의 숲도 그냥 털어왔어요.”

“맞아, 맞아. 그리고 디갈드 백작하고 가신들이 항복했는데도 그냥 다 죽여 버렸어요.”

“브랜포드 후작님은 아시죠? 그분하고 목숨 걸고 내기까지 하신 분입니다.”

드워프들은 영지민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전해 들은 이야기는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었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행동할 리가 없었다.

결과가 좋으니 영지민들의 칭송을 듣는 거지, 그 과정을 뜯어보면 심란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으로 공사장에서 일하는 마법사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무슨 마법사들이…… 이렇게 꾀죄죄하지?’

건들거리는 꼴을 보니 이게 마법사인지 공사장 일꾼인지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다 해진 로브를 입은 알포이가 짝다리를 짚고 서서 드워프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작업 시간이 한 달이라고? 넉넉하네. 영주가 왜 그렇게 시간을 많이 줬대?”

“……그게 넉넉하다고 했소?”

“왜, 뭐. 우리는 이틀 만에 마나 집속진을 백 개나 만들었거든? 그런데 그 정도도 한 달 안에 못 해? 에이, 드워프 별거 아니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왜 말이 안 되는데? 우리는 경작지에 박을 룬스톤도 일주일 만에 다 만들었어. 무려 수백 개를 말이지!”

알포이가 자랑스럽게 말하자 마법사들도 뿌듯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갈바릭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들 정말 마법사 맞소?”

그러자 알포이가 자세를 바로 하고 한 손을 들어 불덩이를 만들어 냈다.

“내가 바로 북부 제일 마탑이라 불리는 적염의 마탑 탑주의 후계자다. 포기를 모르는 불꽃 남자 알포이라고도 불리지.”

드워프들은 알포이가 만들어 낸 불덩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런 이명은 들어 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진짜 마법사는 맞는 모양이었다.

갈바릭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마탑의 후계자나 되는 사람이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오?”

알포이는 갑자기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그가 펜리스 영지에 묶이게 된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 강제로 끌려온 데다, 지금은 노예가 되어서 도망도 못 간다는 말에 드워프들은 다시 큰 충격을 받았다.

마탑주의 후계자와 마법사들도 도망을 못 가고 죽어라 일하는 영지라고?

그들은 드디어 부정하고 싶었던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 영주는 진짜 미친 사람이었구나. 미쳤으니까 말도 안 되는 걸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거구나.’

알포이는 갈바릭의 어깨를 부여잡고 말했다.

“공사장에도 투입된다고 했지? 우리 잘해 보자. 여기가 다른 건 몰라도 밥은 진짜 많이 줘.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고.”

완벽하게 영지에 적응한 사람다운 대사였다.

바쁜 노동으로 지친 알포이와 마법사들은 이제 밥만 배부르게 먹어도 만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이한 광기가 느껴지는 마법사들의 눈빛을 보고 드워프들은 꺼림칙한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물러났다.

‘도망가야 해. 여기 있다가는 제명에 못 죽을 거야. 무조건 도망가야 해.’

그들의 속내를 꿰뚫어 본 알포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도망갈 생각은 하지도 마. 어차피 도망쳐 봐야 다 잡혀. 여기 영주의 특기가 추격, 기습, 섬멸이래. 마법사인 나도 도망 못 갔는데 너희들이라고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아? 그러니까 도망가지 말고 우리 오래오래 같이 있자.”

알포이의 말에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일손이 많아야 조금이라도 숨 쉴 틈이 생길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드워프들을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가끔 우리랑 같이 도박도 하고 술도 마시고 그러자. 생각보다 여기서 지내는 거 재미있어. 도박할 줄 모르면 내가 알려 줄게.”

“…….”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갈바릭은 드워프들을 돌아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빨리 일 시작합시다. 시간이 없소.”

돌격대로 전쟁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한 달 안에 어떻게든 일을 끝내야 했다.

* * *

지셀은 자신이 짰던 계획을 다시 점검하며 생각에 잠겼다.

‘공작가와 싸우려면 이곳만 강해지는 건 의미가 없어.’

펜리스가 아무리 빨리 성장해도, 이미 어마어마한 전력을 갖춘 공작가의 전력을 당장 따라잡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친왕파까지 끌어들이지 않았는가.

현재 북방을 지키고 있는 페르디움 영지도 펜리스 못지않게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의 전란을 함께 버틸 수가 있다.

‘그쪽도 최대한 빨리 키우는 수밖에. 이왕 하는 김에 페르디움도 같이 마나 연공법을 익히게 해야겠군.’

지셀은 바로 수십 대의 수레에 식량을 가득 싣고 아버지가 있는 북방 요새로 향했다.

북방 요새, 카이필러.

루타니아 왕국의 북부 최전방이자 페르디움 변경백이 지키고 있는 곳이다.

요새가 있는 작은 수원 근처를 제외하면 주변 대부분이 황무지라 황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페르디움 백작가는 이 쓸쓸한 요새에서 수백 년 동안 야만인의 침략을 막아 왔던 것이다.

그 때문에 페르디움 영지는 끝도 없이 가난해졌다.

하지만 명예를 아는 가주들은 그 손해를 감수하고 요새를 지켜 왔고, 이는 곧 가문의 자부심이 되었다.

페르디움의 명예를 상징하는 장소를 지키고 있던 즈발터 페르디움 백작은, 지셀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노한 기색으로 나타났다.

옆에는 백작과 비슷하게 화가 난 기사단장 란돌프가 따라오고 있었다.

즈발터는 지셀을 보자마자 소리부터 질렀다.

“지셀! 내 이미 소식은 들었다! 그간 공을 세웠기에 봐주었더니 기어코 선을 넘었더구나! 어찌 영지의 숲을 마음대로 없애 버린다는 말이냐!”

호메른이 조금 과장해서 소식을 보내긴 했지만, 어쨌든 지셀이 페르디움 영지의 숲을 털어 간 건 사실이었다.

즈발터는 이번에야말로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영주이자 가주인 그의 권위를 침범하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북방을 지키며 사람들을 이끌어 가려면 그 권위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즈발터는 정말 검이라도 뽑을 양,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지셀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 일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급하게 목재가 필요해져서 말입니다. 대가로 식량을 조금 더 가져왔습니다.”

지셀이 끌고 온 수레에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식량이 쌓여 있었다.

어찌나 많은지 요새에 머무는 병력 전체가 매일매일 배부르게 먹어도 몇 년은 버틸 수 있을 거 같았다.

“영지에도 따로 식량을 보냈습니다. 아마 내년까지는 영지민들이 식량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겁니다.”

지셀이 여유롭게 웃으며 말하자 즈발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감히 식량 따위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것이냐!”

……라고 꾸짖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식량이었다.

하지만 식량 좀 준다고 바로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보는 눈도 많은 곳에서 그랬다가는 자신의 권위가 바닥까지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식량을 안 받을 수도 없었다. 굶는 건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일생일대의 위기 상황.

하지만 즈발터가 누구인가? 수도 없이 야만인과 싸워 온 백전노장이다.

그는 바로 란돌프에게 눈짓을 했다.

란돌프는 즈발터와 함께 수십 년을 함께한 사이. 척하면 척으로 알아들었다.

그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지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휴, 우리 대공자님. 무슨 식량을 또 이렇게 가져오셨대? 여기 날씨가 많이 쌀쌀하죠? 감기 걸리기 전에 빨리 들어갑시다. 아, 형님. 뭐 하십니까? 어차피 우리는 목재 쓸 일도 없잖아요? 먹는 게 최고지. 안 그렇습니까?”

“흠흠, 그럴까? 그러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까?”

“그럼요, 목재 그거 다 팔아도 식량 이만큼 못 삽니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가격을 잘 쳐 준 거죠.”

“크흠흠, 좋다. 이번에는 내 그냥 넘어갈 테니 다음부터는 행동거지를 조심하도록 해라. 일단 들어가자.”

두 사람은 그 말을 끝으로 휘적휘적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지셀이 어깨를 으쓱이자 옆에 있던 기사와 병사들이 소리 죽여 웃었다.

안타깝게도 다들 같이 지낸 지 오래되어서 두 사람의 연기는 통하지 않았다.

집무실로 이동한 즈발터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 단순히 식량을 주고 사과하러 온 거 같지는 않고. 혹시 결혼 상대라도 생긴 거냐?”

보자마자 잔소리가 시작됐다. 지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지셀의 말에 즈발터와 란돌프는 괜히 움찔했다. 저 입에서 ‘중요한 말’이 나오면 언제나 큰 사고가 일어나곤 했다.

즈발터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얘기 안 하면 안 되겠느냐? 나는 평화로운 지금이 정말 좋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제야 좀 먹고 살 만해졌다. 아무 일 없이 쭉 이렇게 살고 싶었다.

뭔가를 더 욕심내기에는 그간의 삶이 너무 고단했다. 사람은 적정선을 알아야 한다.

지셀은 평생에 걸쳐 얻은 깨달음과 소박한 소망이 묻어나는 아버지의 애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가문의 마나 연공법을 좀 바꿔야겠습니다.”

즈발터의 인상이 콱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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