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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68화 (168/269)

168화 우리 한번 잘해 보자고! (2)

드워프들이 도착했다는 말에 지셀이 반색하면서도 투덜거렸다.

“드디어 왔구나! 대체 얼마나 많이 데려왔기에 이렇게 늦은 건지 한번 보자고.”

요즘 들어 이런저런 자잘한 문제로 일정이 미묘하게 늦어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일부러 계획을 빠듯하게 잡긴 했지만, 시간이 급한데 자꾸 걸림돌이 늘어나는 상황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지셀은 바로 노예상들을 맞이하러 움직였다.

“오랜만입니다. 영주님.”

노예상은 피곤에 전 얼굴로 지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노예들의 가격이 가격이다 보니 이동하는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웠던 탓이었다.

그 와중에 지셀은 계속 언제 오냐고 독촉하고, 당하는 사람으로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아오, 다음에는 또 얼마나 다그칠까.’

이번 한 번으로 거래가 끝난 게 아니다. 남은 노예들을 옮길 때도 영주가 달달 볶아 댈 거라고 생각하니 절로 현기증이 일어났다.

지셀은 노예상의 인사를 대충 받아준 뒤 바로 드워프들부터 확인했다.

“오…….”

무려 백여 명에 이르는 드워프 노예들이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을 자랑하는 그들은 뚱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노예상은 조금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

“그런데 정말 통제하실 수 있겠습니까? 드워프들은 제련할 때만 망치를 쓰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많이 모이면 위험할 겁니다.”

지금은 다들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있었지만, 일을 시키려면 결국 구속을 풀 수밖에 없다.

노예상은 그 부분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이 정도 수의 드워프들이 한꺼번에 무기를 들고 반항하면 그 피해가 상당할 테니까.

하지만 지셀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다 알아서 할게.”

여유로운 대답에 노예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지 병력으로 통제가 가능하다는 건가?’

그러나 노예상의 눈에 들어온 펜리스 기사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기괴했다.

“콜록! 콜록!”

“끄으으응…….”

다들 무기를 들 수는 있을지 의심될 정도로 피골이 상접해 해골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연신 기침을 하다 그 충격에 코피를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뭔가 아파 보인다. 무력 집단이 아니라 병자 집단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싶을 정도였다.

‘여기 영주님은…… 네크로맨서인가?’

무덤에서 시체들을 꺼내와 살려 내면 딱 이런 모습일 거 같았다.

이 정도면 상단의 병력만으로도 영지 점령이 가능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거 돈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얼마 안 있다가 망하는 거 아니야?’

불안해진 노예상이 다급하게 물었다.

“영주님, 대금은 준비되셨습니까?”

“아, 다 준비됐지. 난 돈 안 떼먹어.”

지셀은 여유롭게 말하며 클로드에게 손짓했다.

클로드가 거대한 궤짝을 열자 그 안에는 금화가 가득 차 있었다.

노예상은 잽싸게 몇 개를 꺼내 진짜 금화인지 확인하고는 바로 마차에 궤짝을 실었다.

“다행이군요.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멀리 안 나간다. 다음에는 더 빨리 왔으면 좋겠어.”

“아휴, 그럼요. 최대한 빨리 오겠습니다.”

노예상은 진심 어린 어조로 답했다.

‘기사랍시고 데리고 있는 인간들 상태를 보니까, 이놈의 영지는 얼마 안 있다가 망할 거야. 확실해. 아무리 브랜포드 후작이라도 이런 영지는 못 지켜 주지. 다른 영지한테 털리기 전에 최대한 빨리 잔금 받고 정리해야겠어.’

그래도 큰 고객이니 가기 전에 조언 하나는 던져 줬다.

“드워프들은 자존심이 무척 셉니다. 말만 노예지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건 아시죠?”

지셀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지. 다루기 참 힘들다는 것도.”

“식사 질도 신경 쓰고, 술도 꾸준히 챙겨 줘야 할 겁니다. 워낙 깐깐한 놈들이라 어지간해서는 잘 안 움직여요.”

드워프들은 법적 신분만 노예일 뿐이다. 귀족들도 이들을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가족을 인질로 잡고 악독하게 다루는 놈들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비위를 맞춰 주는 편이었다.

몸값이 비싸서 그렇기도 하지만, 드워프들은 기분이 상하면 제대로 물건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드워프들이 만든 병장기나 공예품은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하고, 드워프가 책임자로서 지휘하는 공방은 작업 속도도 굉장히 빨라진다.

그러니 잘 대해 주고 물건을 받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었다.

“그럼 진짜 가 보겠습니다. 다음 납품은 대여섯 달 정도 걸릴 거 같습니다.”

“뭐? 왜 그렇게 오래 걸려?”

“그것도 지금 최대한 단축한 겁니다. 엘프 노예를 노리는 놈들이 많거든요. 지금 지부에서 한 명 옮겨 오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쩝, 최대한 더 빠르게 해 봐. 내가 조만간 자리를 비울 건데, 돌아올 즈음에는 다 데려왔으면 좋겠네.”

“……언제 돌아오실 예정인데요?”

“글쎄…….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래도 때 되면 바로 알 거야. 그즈음에 놀라운 소식이 들릴 테니까.”

‘놀라운 소식은 또 뭔데……. 영지 망하는 소식?’

노예상은 속으로 비웃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지셀의 말을 듣고 나니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서 일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그래야 영지가 망하기 전에 잔금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서둘러 돌아가는 노예상을 보고 지셀은 감탄했다.

“저 저, 서두르는 거 봐라. 우리가 카발디 영지 차지할 생각인 거 감 잡았나? 역시 큰돈 만지는 애들은 눈치가 빨라.”

“그런 이유는 아닐 것 같은데요…….”

클로드는 노예상이 그랬던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를 토하는 해골들이 주위에 한가득했다.

“영주님, 내기 잊지 않으셨죠? 수습 기사들이 마나 못 쓰면 전쟁 안 하기로 했습니다?”

“아, 알았어. 잔말 말고 일이나 해. 너도 결과 나오기 전까지는 준비 열심히 하기로 했잖아.”

지셀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며 드워프들을 향해 손짓했다.

“쟤들 구속이나 빨리 풀어라. 일 시킬 게 산더미다.”

드워프들은 구속이 풀리자 의아해하면서도 설렁설렁 몸을 풀었다.

가장 앞에 선 수염이 덥수룩한 드워프가 비웃듯이 말했다.

“영주가 젊어서 그런가? 겁이 없구려. 병력도 보잘것없어 보이는데 이렇게 다 풀어 줘도 되는 거요?”

지셀은 앞에 나선 드워프를 보고 반가운 기색을 애써 감추려 노력했다.

‘오랜만이야, 전설의 대장장이. 수명이 길어서 그런가? 전생에 봤던 얼굴이랑 똑같네.’

전생에 대륙을 덮친 재앙과 맞서 싸울 때, 눈앞의 드워프는 지셀을 꽤 많이 도와줬다.

실력도 뛰어나기에, 지셀은 노예상들에게 이 드워프만은 꼭 데리고 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

하지만 여기서 반가운 티를 내 봐야 득 될 게 없었다.

미친놈으로 여겨지면 차라리 다행이고, 자칫 호구로 점찍히면 앞으로 드워프들을 다루기 어려워질 것이다.

지셀은 부러 코웃음을 치며 시비조로 말했다.

“왜, 한번 싸워 보시게?”

“뭐……. 우리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웬만하면 사고는 치지 않는 게 좋겠지만……. 북부 끝자락까지 왔으니 그냥 산으로 도망가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꼴을 보니 나 혼자 다 때려잡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셀이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훈련장에 있는 길리언과 카오르를 대신해 영주의 호위를 맡은 자였다.

“이놈! 감히 노예 주제에 영주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당장 무릎을 꿇고 사죄하지 않으면……. 쿨럭! 커억!”

용병 출신 기사는 말을 하다 말고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기사가 된 김에 무게 한번 잡아 보려 했는데 아직 몸 상태가 따라 주질 않았다.

“…….”

드워프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뭔가 굉장히 이상한 영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셀은 미간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쟤 데리고 가서 쉬게 해라.”

기사가 실려 나가자 지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차피 도망가 봤자 소용없는 거 알잖아? 이종족 노예가 도망쳤다는 소문이 나면 노예상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 텐데. 여기서 편하게 지내는 게 좋지 않겠어?”

“…….”

지셀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이미 대륙은 인간들의 것이 된 지 오래다.

이종족들이 몇몇 지역에 모여 산다는 소문이 돌긴 하지만, 적어도 이곳 루타니아 왕국은 오롯이 인간만의 영역이었다.

루타니아에서 인간의 눈을 피해 숨어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다른 왕국으로 도망간다 한들, 동족들이 숨어 사는 장소를 모르니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드워프는 대놓고 혀를 차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법 머리는 돌아가는 모양이군. 뭐, 도망치면 우리 손해이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열심히 일하는 건 다른 문제요. 어떤 대우를 받느냐에 따라 품질도 달라지는 법이지. 그런데 영지 꼴을 보아하니 대우가 영 시원찮을 거 같은데.”

드워프답게 자부심 넘치는 태도였다.

꼬장꼬장한 그의 말에 지셀이 물었다.

“갈바릭, 당신이 지금 대표인가?”

“음? 어떻게 내 이름을……. 아, 명단을 미리 받은 건가? 아무튼 일단은 내가 대표요.”

드워프들의 대표가 되는 법은 간단하다. 가장 실력이 뛰어나면 된다.

전생에는 ‘전설의 대장장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갈바릭이니 틀림없이 대표로 뽑혔으리라 예상했는데, 역시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지셀은 갈바릭에게 검지를 세워 보이며 말했다.

“10년.”

“뭐가 말이오?”

“10년간 나에게 전폭적으로 협조하면 영지 내에 드워프들의 자치 구역을 만들어 주고 노예 신분에서 해방해 주겠다. 영지민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말이야. 이 정도면 좀 의욕이 나지 않아?”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어마어마한 몸값을 주고 사 온 드워프를 풀어 준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겨우 10년만 일하면 풀어 준다니.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긴 드워프들에게 10년은 무척 짧은 시간이었다.

노예로 살고 있는 드워프들이 정말 바라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갈바릭은 지셀의 제안에도 코웃음을 쳤다.

“노예 해방 운동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내가 여기 영주인데 말이 안 될 건 없지.”

“우리한테 그런 사탕발림을 내뱉었던 인간이 없는 줄 아시오? 우리는 이제 그딴 빈말에는 넘어가지 않아.”

하지만 지셀은 드워프의 날카로운 반응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겼다.

“내 말이 거짓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지금 상태가 유지될 뿐인데, 믿어서 손해 볼 건 없잖아. 믿는 자한테 복이 있다는 말도 있고.”

“허, 무슨 말도 안 되는…….”

지셀의 뻔뻔스러운 대답에 헛웃음을 흘리던 갈바릭이 이를 갈며 말했다.

“헛소리 마시오. 우린 노예요. 왕국법이 우리를 노예로 규정하고 있단 말이오. 한낱 시골 영주 따위가 노예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왕국 전체의 인식이 바뀌는 게 아니잖소.”

“아, 왕국법 말이지. 그거 뭐 별거 있나? 다 사람이 만든 건데, 필요하면 고치면 되지. 내가 다 알아서 해 줄 테니까 신경 쓰지 마. 난 약속을 어긴 적이 없는 사람이야.”

누가 들으면 반역죄로 몰아갈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갈바릭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주 옆에 있는 사람들은 영주의 망나니짓이 익숙한 듯, 하나같이 못 들은 척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새끼 이거 미친 새끼 아니야?’

지셀은 황당해하는 갈바릭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공작가와 싸우는 이상 왕국을 한번 뒤집어엎을 수밖에 없다.

그 틈을 타서 자잘한 법 몇 개 뜯어고치는 건 문제도 아닐 터였다.

“물론 지금은 실감도 안 나고 믿지도 못하겠지. 그러니 지금 당장 구미가 당길 제안도 하나 더 하겠다.”

“뭐, 뭐요.”

“매일 똑같은 것만 만드는 거 지겹지 않아?”

“그렇긴 하오만…….”

귀족들은 드워프들에게 오직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사치품만 만들라고 강요했다.

예술성뿐만 아니라 실용성도 중시하는 드워프들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드워프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공방에 박혀 기사들과 병사들이 쓸 장비를 대량 생산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새로운 걸 만들어 볼 기회가 없으니 영감도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결국 창작욕마저 사그라들어 드워프들은 대부분 의욕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을.

지셀은 그 부분을 짚어 주었다.

“심지어 다 쓸모없는 것들 뿐이지. 고작해야 사치품일 뿐인데, 그런 거만 만들기는 재미없잖아?”

“그래서 어쩌라는 거요? 사치품 대신 장비를 만들어 달라는 말이오?”

갈바릭은 비실대는 기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장비라도 좋은 걸 써야 하는 상태이긴 하군.”

쓸모도 없는 공예품을 만들 바에는 무기와 방어구를 만드는 게 나았다.

자신이 만든 무기로 이름을 날리는 기사를 보는 것도 장인의 기쁨 중 하나기 때문이다.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드워프들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지셀은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당연히 병장기도 많이 만들게 될 거야.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고.”

“그것만이 아니라면?”

지셀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웃었다.

“내 머릿속에는 재미있는 게 많이 들어 있거든. 지금껏 세상에 나온 적 없었던 것들이지. 너희들도 보면 만족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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