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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59화 (159/269)

159화 먼저 때리는 게 낫다니까? (1)

풀풀 흩날리던 살기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주위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벨린다는 새로 온 사람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들 뭐예요? 오자마자 쫓겨나고 싶어요? 지금 우리 영지가 우습게 보여요?”

“아, 아니…… 그게 아니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주 칼춤이라도 한번 출 판이었잖아! 쫓아내는 게 아니라 그냥 다 감옥에 가둬 줄까?”

벨린다는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봐도 이 개판인 영지에는 기강을 잡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애초에 성의 집사장은 살림만 챙기는 자리가 아니라, 귀족들의 의전부터 사람들의 예법까지 총괄하는 자리였다.

그녀는 그간 쓰지 않았던 권한을 마음껏 휘두르기로 결심했다.

“뭐 해요? 얼른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혼나 보고 싶어서 그래요?”

벨린다의 협박에 예비 상비군들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성의 집사장이면 영주의 최측근이라고 할 만한 위치다. 아직 적응도 못 했는데 벌써 눈 밖에 나서 좋을 건 없었다.

벨린다는 학생을 혼내는 교사처럼 깐깐하게 그들을 노려보며 경고를 날렸다.

“앞으로 영주님 앞에서 예의 없이 굴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알겠어요? 서로 간에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사세요.”

“넵! 알겠습니다!”

우렁찬 대답에 카오르가 낄낄거렸다. 벨린다가 자신을 편들어 준 거 같으니 어깨가 한껏 올라간 것이다.

“이것 봐, 다들 그렇게 꼬리 말고 얌전히 구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앞으로도 그렇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벨린다가 그를 휙 돌아보며 외쳤다.

“야! 넌 뭔데 맨날 여기저기 시비를 걸고 다녀?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나랑 먼저 붙어 볼래? 내가 볼 때 너 완전 좆밥이거든?”

“어, 아니, 너, 갑자기, 왜, 말을, 그렇게.”

카오르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와 항상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그녀가 저 정도로 격하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

그래서 평소처럼 대거리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거기다, 벨린다가 집사장이라는 위치를 내세우면 계약 용병인 그로서는 맞대응하기가 어렵다.

당혹감과 억울함에 입만 뻐끔거리는 카오르를 보며, 지셀과 클로드도 눈만 껌뻑거렸다.

평소에 화를 잘 안 내던 사람이 화를 내니까 무섭긴 한데…….

‘아, 재미있었을 텐데.’

지셀은 내심 아쉬워하며 속으로 혀를 찼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대진표까지 짜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파악 죽어 버렸다.

이번에 찾아온 자들은 대부분 한 성질 하는 놈들이라, 어차피 한 번은 기강을 잡아야 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길리언이 알아서 정리하겠지만, 자기들이 먼저 나서서 하겠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도 없었다.

벨린다는 입맛을 다시는 지셀을 바라보며 물었다.

“영주님은 표정이 또 왜 그러실까요? 아쉬워하시는 거 같은데요.”

“아니? 하나도 아쉽지 않은데? 그냥 뭐, 굳이 막을 필요까지야 있나 싶어서. 서열 정리라는 게…….”

“서열 정리는 길리언 아저씨가 훈련할 때 알아서 처리할 텐데요. 제가 그런 것도 모르겠어요?”

“어……. 그렇지. 길리언이 다 알아서 하겠지.”

벨린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셀을 흘겨보았다.

“설마 이미 자리 깔고 대진표도 짜고 총관이랑 구경하면서 내기도 하고…… 그럴 생각은 아니었죠?”

“그럴 리가. 언제나 말하지만 나는 비폭력 평화주의자라고.”

“휴우, 우리도 제발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네요. 일 바쁘니까 먼저 가 볼게요. 그리고 다들, 조심해요. 내가 지켜보고 있을 거니까.”

벨린다는 한숨을 내쉬며 몇 번 고개를 젓다가 이내 자리를 떠 버렸다.

그녀가 떠나자 주위에는 또다시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크흠.”

“크으음.”

“큼큼.”

다들 괜히 헛기침만 하며 서로의 눈치를 봤다.

벨린다에게 선수를 뺏긴 길리언도 팔짱을 끼고 모른 척하고 있었다.

클로드가 지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조금 아쉽군요. 이번에는 한 5년 정도 걸어보려고 했는데 말이죠.”

“아, 노예 계약 기간을 늘릴 기회였는데 아쉽네.”

“기간이 줄어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걸 잘못 말씀하신 거죠? 어쨌든 집사장이 저렇게 화내는 건 처음 보는 거 같네요. 원래 저렇게 무서웠나요?”

“아, 옛날부터 화나면 무섭긴 했지. 저게 끝이 아니야. 저기서 더 열 받으면 칼 나와. 그다음은 독이고.”

“어휴, 조심해야겠네요.”

“선만 안 넘으면 돼.”

클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아한 점을 깨닫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선만 안 넘으면 된다면서, 영주님은 다음 단계가 칼하고 독인 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러게, 어떻게 알게 됐을까.”

지셀은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옛 추억을 더듬다가 번뜩 표정을 바꾸었다.

“그나저나, 슬슬 다음 일을 시작해야겠다.”

“네? 다음 일이라뇨? 지금도 일 엄청 많아서 다들 죽기 직전인데 또 무슨 일이요!”

클로드가 기겁하며 반발했다. 여기서 일을 더 벌이면 진짜 다 죽는다.

그래도 지셀은 상냥하게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 이번 일은 네가 손댈 부분이 거의 없으니까.”

“정말이죠? 여기서 일 더 안 주는 겁니다?”

“아, 진짜 의심도 더럽게 많네.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가 너한테 무리하게 일 시킨 적이 있어? 없잖아?”

‘와, 저 뻔뻔한 거 보소.’

클로드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속마음을 표정에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지셀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리하는 게 아니면 뭐가 무리하는 걸까?

그가 과로사하고 나서야 ‘무리였구나, 미안하다’ 할 것만 같았다.

클로드는 더 따지려다가 일단은 참았다.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가 일을 더 얹으면 곤란하니까.

“예, 뭐 그렇다고 치죠. 그런데 다음은 무슨 일인데요?”

“철광석 구할 준비. 그거 부족하다며.”

“……어떻게 구하시려고요?”

“다 계획이 있지. 알려 줄 테니까 회의 준비나 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지셀을 보고 클로드는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 * *

뭐든 급하게 준비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펜리스처럼 아무것도 없는 영지에서는 자원 수급부터가 큰 문제였다.

특히나 철광석은 돈이 있어도 대량으로 구하기가 무척이나 힘든 자원이다 보니 더더욱 문젯거리였다.

하지만 지셀은 걱정하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철광석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셀은 가신들이 모두 모이자 다짜고짜 결론부터 말했다.

“카발디 백작령을 친다.”

오랜만에 나온 미친 소리에 사람들은 멀뚱멀뚱 눈만 깜빡거렸다.

분명 부족한 자원 수급에 관한 회의라고 들었는데 갑자기 엉뚱한 얘기가 나오니 그럴 만도 했다.

카발디 백작은 대표적인 공작파의 일원으로, 그의 영지는 북부 최대의 철광석 생산지로 꼽히곤 했다. 그리고 백작은 데스몬드에 열심히 철광석을 공급해 주는 중이기도 했다.

클로드는 고개를 몇 번 좌우로 꺾으며 귀를 후비고는 다시 물었다.

“이거, 철광석을 어떻게 수급할지에 관한 회의 아니었나요?”

“맞아. 그러니까 카발디 백작령을 친다고.”

이놈의 영주는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클로드는 심호흡을 한번 하며 화를 가라앉혔다.

지금 영지를 개발하는 것과 동시에 데스몬드 백작의 공격을 막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막고 버티는 데만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판에 먼저 전쟁을 일으키겠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애초에 카발디 백작령은 함부로 공격할 수도 없는 곳이고, 설사 공격한다 해도 이길 수도 없었다.

“영주님? 결론이 너무 갑작스러운데 이유 좀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지셀은 자기 말을 이해한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어쨌든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한마음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 말 몇 마디 더 하는 수고 정도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카발디 영지에서 지금 철광석을 데스몬드에만 공급하고 있잖아. 우리한테는 거의 팔지도 않고.”

“그렇죠……. 설마, 데스몬드 편을 든 게 아니꼬워서 거길 친다는 말인가요?”

“아니꼬운 걸로 전쟁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지셀이 한심해하는 눈빛으로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당신 수준에 맞춰서 얘기한 거잖아!’

클로드는 억울해하면서도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우리가 거기를 뺏으면 어떻게 되겠냐. 데스몬드 쪽은 철광석의 수입이 끊기고 우리는 철광석이 엄청나게 많아지겠지? 적의 성장을 늦추고 우리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훌륭한 전략인 거지.”

“그러니까……. 결국은 그냥 우리한테 부족한 철광석을 뺏으려고 공격한다는 말 아닙니까.”

“뭐, 크게 보면 그렇긴 하지.”

‘당신은 강도입니까?’

클로드는 어질어질해지는 머리를 붙잡고 휘청거리다 겨우 바로 섰다.

철광석이 없으니까 철광석 많은 곳을 친다니, 단순하면서도 굉장한 논리였다.

적의 성장을 늦추고 아군의 성장을 빠르게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답시고 적도 아닌 제삼자를 때리는 건 미친놈이나 떠올릴 법한 발상이다.

“영주님, 제발 좀 상식적으로 놀면 안 될까요? 카발디 백작은 지금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잖아요. 그런 사람을 공격할 순 없습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위협은 아니지. 하지만 결국 카발디 백작도 우리 적이야.”

“왜요? 그가 공작가 파벌에 속한 사람이라서요? 정말 공작가가 데스몬드의 뒤에서 우리를 공격한 거라는 증거는 없잖아요.”

“뒤에 있으니까 믿어. 카발디 백작은 데스몬드 백작과 함께 우리를 칠 거야. 그러니 미리 적도 하나 줄여 놓고 겸사겸사 철광석도 먹자는 거지.”

미래를 아는 지셀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한 얘기일 뿐이었다.

클로드는 다리를 덜덜 떨며 한 자리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말했다.

“아니, 생각을 좀 해 보자고요. 영주님하고 싸운 적이 있기는커녕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걔가 미래에 영주님을 때릴 거니까, 맞기 전에 먼저 패겠다고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좀 이상해 보이긴 하는데, 사실인 걸 어떡하냐.”

“영주님 혹시 인성에 문제 있으세요?”

클로드가 참지 못하고 지셀의 인성을 언급했다. 그러자 벨린다가 버럭 외쳤다.

“왜 우리 도련님 기를 죽이고 그래요! 우리 도련님이 얼마나 심성 곱고 착한 사람인데!”

“아니, 들어 봐! 지금 이상한 거 정말 모르겠어?”

“우리 도련님은 원래 마음에 안 들면 일단 치워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아까는 심성 곱고 착한 사람이라며! 아니, 원래 그런 성격이었으면 가르쳐서 바꿔 놨어야지!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한 거야?”

“남의 교육 방식에 참견하는 건 대단히 큰 무례라는 거 몰라요?”

“모를래, 모르고 싶어.”

둘의 언성이 높아지자 지셀이 그들을 말리며 말했다.

“솔직히 마음에 안 들어서 패는 건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야. 클로드, 정보를 보고도 정말 못 믿겠어? 카발디 백작이 지금 엄청난 양의 철광석을 데스몬드에 공급하고 있잖아? 최소한 둘은 확실하게 한 패라는 뜻이지.”

클로드도 그것 때문에 데스몬드의 뒤에 공작가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긴 했다.

둘이 같은 편이 아니라면 그 정도로 밀어줄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영지전을 거는 건 그런 심증만으로 시도하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다.

클로드는 아이를 달래는 듯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영주님,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인지는 압니다. 그런데……. 카발디 백작은 공작가의 파벌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카발디 백작을 치면 데스몬드 백작과 상관없이 정말 확실하게 공작가의 적이 되는 거라고요! 아직 친왕파와 공작파도 대놓고 칼부림을 하진 않습니다!”

“이미 공작가하고 우리는 적이야. 우리 거기에 관해서는 합의한 거 아니었어?”

“아직은 겉으로 티는 안 나잖아요! 대놓고 공격할 빌미를 주지는 말자니까요? 공작가에서 직접 나서면 어떻게 수습하시려고요!”

지셀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걔들하고도 싸워야 하는데 뭐 하러 그런 걸 신경 써? 그런 건 일단 그때 가서 고민해도 돼.”

“…….”

“자, 내가 아주 쉽게 설명해 줄게. 클로드 네가 싸움을 한다고 쳐.”

“저는 품격 있는 학자라서 싸움 같은 거 안 합니다.”

“어쨌든 한다고 쳐. 네가 먼저 맞는 거랑 먼저 때리는 거랑 뭐가 더 유리함?”

“그야……. 먼저 때리는 게 유리하겠죠……. 선빵 필승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도 카발디한테 먼저 맞는 것보다는 우리가 먼저 때리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낫다니까?”

‘드디어 완전히 미쳤구나!’

전쟁을 애들 동네 싸움처럼 취급하는 무지막지한 말에, 클로드가 얼이 빠진 표정을 지어 버렸다.

그가 욕을 할까 말까 입을 달싹이던 참에 지셀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전쟁을 계속하려면 철광석을 안정적으로 수급해야 한다. 무조건 카발디 백작령을 차지해야 해. 데스몬드 백작은 설마 우리가 먼저 그곳을 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할 거야. 준비가 안 돼 있을 거란 얘기지.”

데스몬드 백작은 현재 아멜리아의 반란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다음 순위는 얼마 남지 않은 북부 영주들을 회유하고 북부를 장악하는 일이었다.

펜리스 따위는 언제든 기회만 되면 치워 버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셀이 먼저 전쟁을 일으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지셀은 현재 상황과 다가올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아주 잠깐의 틈일 뿐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돼. 지금 철광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장기전이 힘들어진다.’

아멜리아 덕분에 시간을 버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레이폴드 백작령을 손아귀에 넣는 순간, 데스몬드 백작은 바로 목표를 펜리스 영지로 바꿀 테니까.

하지만 이건 심증으로도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부족해지는 설득력은 그냥 우기는 걸로 때웠다.

클로드는 힘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영주님, 데스몬드 백작 하나 상대하기에도 무척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위험을 더 키울 필요가 있습니까? 자칫 잘못하다가는 정말 다 죽을 겁니다.”

“알고 있어. 한 번만 실수해도 다 죽겠지. 우리만이 아니라 아버지 영지의 사람들까지 전부 말이야.”

“그런데도 꼭 카발디를 치셔야겠습니까?”

처연하게까지 들리는 클로드의 목소리에 벨린다와 길리언도 조심스럽게 말을 얹었다.

“도련님, 총관이 평소에 좀 이상하긴 하지만 지금은 맞는 말 하는 거 같거든요? 그냥 안 하시면 안 될까요?”

“영주님, 총관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공작가까지 대놓고 적으로 돌리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가신들도 한마음 한뜻이 되어 말했다.

“일단은 데스몬드를 막는 데만 주력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철광석은 다른 지역에서 구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반대함에도 지셀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해야 해.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클로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수성 준비와 영지 개발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걸로도 모자라 선제공격을 하겠다니.

지금 펜리스 영지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영주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뭔데?”

“패러 가는 건 그렇다 쳐도, 정말 이길 수 있을까요? 전력의 차이가 너무 큰데요?”

카발디 백작령도 북부의 영지답게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걸 다 돈으로 메꿀 수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 거기다 특별한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병사들의 무장은 카발디가 북부에서 최고 수준일 겁니다.”

철광석이 나는 지역에서 제련 기술이 발달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 덕분에 카발디 백작령은 병사들에게까지 질 좋은 장비를 지급하기로 유명했다.

그런 곳을 지금의 전력으로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클로드의 물음에 지셀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나 못 믿어?”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고 살짝 눈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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