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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57화 (157/269)

157화 이 몸이 해결하겠다. (3)

용병은 돈만 주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사람들이다.

전생에 지셀도 싸움질 말고 다른 의뢰를 많이 받았다.

축성 작업이나 요새 건축은 당연하거니와, 전쟁 때 일손이 모자라면 간이 막사 건설 작업까지 맡아 했다.

‘내가 용병왕 칭호를 안 받았으면 건설왕이라 불렸을 몸이라고.’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힘이나 썼지만, 비슷한 의뢰를 계속 받다 보니 건축, 토목 공사의 기초 지식 정도는 체득하게 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병력이 휴식할 수 있는 거점과 거주지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공사 현장에 일부러 찾아가 배우기도 했다.

실전에서 배운 지식이 있기에 작업을 지휘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인부들부터 잔뜩 모아 와라. 많이 붙어야 빨리 끝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셀이 그런 지식을 쌓은 것을 모른다.

그들이 보기에 지셀은 전문가도 아닌 주제에 제멋대로 나서는 천둥벌거숭이에 불과했다.

그래도 반대할 수는 없었다. 영주가 하겠다는 일을 누가 함부로 막겠는가.

곧 대규모 인부들이 모여들었고 지셀은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작업 내용을 지시했다.

“자, 먼저 기반부터 다지고 뼈대를 작업한다!”

지셀의 말에 인부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영주가 직접 나서서 하는 일이니 감히 농땡이를 피울 수도 없었다.

정신없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뭔가 그럴듯한 골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기술자들은 작업을 하면서도 쑥덕거렸다.

“영주님이 뭔가 알긴 아는 거 같은데…….”

“그런데 이게 뭐지? 그냥 저택을 짓는 거 아닌가?”

“구역을 나눈 거 보니 그냥 큰 방을 여러 개 만들고 여러 사람을 몰아넣겠다는 거 같은데?”

저택이나 병역 막사처럼 구역을 나누고 사람들을 다 몰아넣으면 거주지 문제가 해결되긴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나눠 줄 만한 집은 아니지만, 시간이 촉박하니 그런 방법을 쓰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걸 굳이 영주가 지휘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 목수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영주님, 큰 막사를 지으실 거면 이 뒤로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굳이 이런 험한 일에 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아니야. 그런 집이 아니다. 사람들을 한 곳에 다 몰아넣으면 그게 무슨 집이야? 그냥 돼지우리지.”

그러자 다른 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지금 만드시는 게 귀족들의 저택처럼 방이 많은 주택 아닙니까?”

이번에도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 뭐 정말 급하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만, 아직은 그래도 여유가 있으니까. 이럴 때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어 둬야지.”

사람들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지셀은 픽 웃음을 터트렸다.

“뭐, 간단히 설명해 주마. 어느 정도 개념은 알아야 잘 따라올 테니까. 지금 만드는 건 튼튼하고 아주 큰 건물 안에 여러 채의 집이 들어가 있는 구조다.”

“집안에 집이 또 있어요? 그냥 작은 집을 여러 개 붙인 거 아닙니까?”

땅이 부족한 도시에서는 그런 식으로 저택을 바짝 붙여 짓기도 한다.

지셀이 제시한 것은 기존에 없던 개념이라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였다.

“그게 아니고, 큰 건물 안에 다시 작은 집들이 여러 개 있는 구조야. 공동 주택이라는 거지.”

“그런 집이…… 있습니까?”

지셀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이제 여기에 그런 집이 생길 거다.”

전생에 재앙이 대륙을 덮친 뒤, 살아남은 자들이 모여들며 많은 도시가 요새화되었다.

요새 안이라는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내려면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이에 따라 나온 개념이 바로 공동 주택이었다. 하나의 높고 큰 건물 안에 가구별로 독립된 주거 구역을 할당하는 것이다.

지셀이 반복해서 설명했지만, 사람들은 영문 모를 표정만 지었다. 알고 나면 쉬운데 사고의 한계를 깨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였다.

“표정들을 보니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네.”

지셀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현시대에 없는 개념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언제나처럼 직접 보여 주는 수밖에.

“자, 잡담은 여기까지. 모르겠으면 그냥 내가 지시하는 대로만 최선을 다해 만들어라. 결과물을 보면 이해가 될 거다.”

설명을 끝낸 지셀은 다시 작업에 전념했다.

공사는 금세 궤도에 올랐다. 영주 한 사람이 끼어들었을 뿐인데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졌다.

일단 인부들이 지셀의 눈치를 보느라 농땡이를 피우지 않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자!”

콰직! 콰지직!

지셀이 기합을 한번 내지르며 도끼질을 할 때마다 매끈한 목재가 튀어나왔다.

몇 사람이 달라붙어 다듬어야 할 목재를 눈 깜빡할 사이에 혼자서 만들어 내니 다들 놀라 자빠졌다.

“와…… 영주님 검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도끼질도 어마어마하네.”

“이게 말이 돼? 무슨 사람이 도끼를 저렇게 휘둘러? 팔 몇 번 휘두르니 판자가 턱 나오네?”

그뿐만이 아니다. 못 같은 건 한 줌씩 집어서 뿌리는 것만으로 동시에 박아 버렸고, 부숴야 할 건 망치질 한 번에 다 박살을 내 버렸다.

진흙을 말리는 등 시간이 걸리는 작업은 마법사들까지 끌고 와서 순식간에 끝내 버렸다.

이러니 다른 사람들은 지셀의 작업 속도를 쫓아가기에 바빴다.

일단 시키는 걸 끝내는 게 우선이었으니 무언가를 궁금해할 여유조차 없었다.

“헉헉, 지금 우리가 집을 짓고 있는 건 맞아?”

“속도가 미쳤어. 뭔가 조립하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물론 지셀이 무작정 되는대로 짓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전생의 구조와 형태를 가져오더라도 현재 영지에서 쓸 수 있는 기술 수준과 자원 보유량에 맞춰 설계를 바꿔야 했다.

지셀은 자신을 보좌하는 기술자들에게 끊임없이 공동 주택의 개념을 알려 주고, 철저한 분업을 통해 그것을 현실에 구현했다.

기술자들에게 조언을 얻기도 하고 기술자들을 갈구기도 하면서 인간답게 사는 데 필요한 요소를 모두 집어넣었다.

“조리용 화로는 따로 만들고 난방은 벽난로로 할 거야. 층마다 연기가 나가는 통로를 따로 만들고 위에 굴뚝을 여러 개 세우면 연기가 샐 걱정도 없지.”

“화장실은 배수관을 만들어서 물을 부으면 큰 구덩이로 모이게 만들어야 해.”

“이거는 이렇게……. 저거는 저렇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지셀이 무엇을 만드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역시 백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번 보여 주는 게 최고지?”

지셀의 말에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뭘 만드는지도 모르고 정말 하라는 대로 한 것뿐인데, 뭔가 그럴듯한 건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중간중간 구경하러 오는 클로드의 표정도 점점 이상해졌다.

‘뭐야? 진짜야? 진짜 집을 짓는 거야?’

클로드는 지셀이 처음 나설 때만 해도 영주가 마음대로 설치다가 문제가 생길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말리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한 번쯤 패배를 겪어 봐야 사람이 겸손해지고 자숙을 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짜 ‘집 같은 무언가’가 지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건설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경작지 작업을 하던 마법사들까지 죄다 멱살 잡혀 끌려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고작 나흘 만에 지셀이 말한 ‘공동 주택’이란 것이 완공되었다.

무려 층마다 4개의 집이 모여 있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흠, 이 정도면 그럭저럭 쓸 만하겠네.”

지셀이 거대한 망치를 어깨에 걸치고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로 완성된 건물을 바라보았다.

급하게 만들었기에 장식 따위는 전혀 없고 투박하기만 했다. 하지만 기존의 양식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건물이 크고 단단하게 서 있으니, 그 투박함마저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지셀과 같이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도 멍하니 공동 주택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영주가 말한 개념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어…… 이게 진짜로 되는 거였다니.”

“영주님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신 거지?”

자신들도 같이 만들었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클로드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지셀에게 물었다

“허,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신 겁니까?”

“뭐…… 자꾸 작업이 늦어지니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뭘까 찾아본 거다.”

지셀은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지만, 사실 이런 공동 주택은 전생에 아주 흔한 건물이었다.

오히려 그때는 마법을 활용해서 지금 만든 집보다 훨씬 더 관리하기도 쉽고 살기도 쾌적했다.

층마다 더 많은 집이 들어가고, 층수도 높은 것은 무려 7층이나 될 정도로 발전했었다.

물론 귀족이나 고위층들은 여전히 저택에서 지내고, 평민들만 공동 주택에서 살긴 했지만 말이다.

지셀은 기술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지으면 거주지 공사도 더 빨리 끝낼 수 있겠지?”

한 명이 감독할 수 있는 건물 수에 한계가 있다면, 건물 안에 들어갈 사람 수를 늘리면 된다는 논리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작은 집 두세 개 정도를 지을 시간이면 이 건물 하나를 지을 수 있으니까.

“네, 이렇게 하면 엄청나게 시간을 단축할 수가 있습니다. 10채만 지어도 무려 120가구가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좋아. 인부들은 지금보다 더 지원해 줄 테니 최대한 속도를 내도록.”

“알겠습니다!”

기술자들은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지셀을 보며 크게 외쳤다.

공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상세한 도면도 따로 작성해 두었기에 똑같이 짓는 데는 아무 문제 없었다.

이 공동 주택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지셀보다 오히려 기술자들이 더 실감하고 있었다.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공동 주택이야말로 현 상황에 가장 적합한 작업 방식이자 주택 양식의 혁명이라는 결론만 나왔다.

단지 집에 대한 고정 관념을 조금 비틀었을 뿐인데 이런 결과물이 나올 줄이야!

기술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고 클로드는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내가 착각했지. 저 인간을 보통 사람처럼 생각하면 안 됐는데.’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클로드에게 지셀이 타박하듯 말을 건넸다.

“뭐 해? 정신 안 차리냐. 이제 작업 속도가 빨라질 테니 인부들을 대량으로 붙여 줘.”

“아, 알겠습니다. 바로 인부들을 추가로 모집하는 공고를 내겠습니다.”

클로드의 대답에 지셀이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렇게 해서 언제 일을 끝마쳐? 좀 빠르게 팍팍 치고 나가자고. 우리 지금 시간 없잖아?”

“네? 뭘 어떻게 하자는 말씀이신지…….”

“이주민들 말이야. 며칠간 잘 먹이고 잘 재웠지?”

“네, 병자들이 좀 남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이제 체력을 회복했을 겁니다.”

그러자 지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모집이 아니라 징집이다. 움직일 수 있는 자는 죄다 끌고 와. 공짜 밥은 여기까지다.”

* * *

그간 편하게 지내던 이주민들은 징집 명령이 떨어지자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공짜로 무언가를 주는 영주는 이 시대에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소식이었다. 징집 소식을 듣고 오히려 안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기에 반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그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의욕 없이 소집에 응했을 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이주민들은 전부 거주지 공사와 경작지 개간 작업에 강제로 투입되었다.

영혼 없이 일하던 그들은 ‘공동 주택’에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눈빛이 달라졌다.

“진짜였어? 천막이 아니라 진짜 집을 준다고?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공동 주택이라길래 다 같이 막사에서 사는 줄 알았는데……. 이거 엄청나잖아!”

“내 집 마련……. 이렇게 쉬운 거였어?”

이주민들 대부분은 빈민가에서 반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살던 집이라고 해 봐야 다 쓰러져가는 폐가, 비만 겨우 피할 수 있는 낡은 천막, 대충 판자로 얼기설기 올려놓은 구조물 정도였다.

없이 태어나서 배운 것도 없으니, 서럽고 힘들어도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열심히 일을 하니 큰 보상이 돌아왔다.

말로는 여럿이 같이 사는 주택이라고 하지만 허름한 오두막보다 훨씬 크고 깨끗했으며, 가족별로 거주 구역도 확실히 나뉘어 있었다.

빈민으로 살아온 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선물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싫었는데 안 왔으면 인생 손해 볼 뻔했다니까?”

“여기 영주님이 통이 아주 커! 오기를 정말 잘했어! 없던 충성심도 절로 생기네.”

“쫓겨나서 왔으면서 뭘 오기를 잘해? 그래도 쫓겨난 게 행운이긴 하네.”

사람 취급 못 받고 살던 이들에게 펜리스 영지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쥘 수 있는 땅이었다.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지 않은 빈민들은 전력을 다해 공사에 협조했다.

덕분에 공사는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고된 일을 하면서도 다들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셀은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영지를 위해 이렇게 한마음으로 움직이다니. 이런 사기와 열정이라면 못할 게 없겠어.”

클로드 또한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군요. 저 정도로 의욕이 넘친다면 다른 공사들도 더 빨리 끝날 겁니다.”

“좋은 일이지. 앞으로 전쟁에 대비해서 더욱더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데 말이야.”

전쟁이라는 말에 클로드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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