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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55화 (155/269)

155화 이 몸이 해결하겠다. (1)

이주민이 생각보다 빨리 오긴 했지만 예측하지 못한 상황은 아니었다.

어차피 수천 명이 지낼 거주지를 한두 달 내로 지을 수는 없다.

한동안은 임시로 천막이라도 세워 주고 인력을 동원해 공사를 빠르게 진행할 예정이었다.

당장 먹고살 곳은 마련해 줘야 일을 시킬 게 아닌가?

문제는 목재가 부족해서 공사가 언제 끝날지, 아니, 시작은 할 수 있는지도 불확실하다는 것.

거주지를 만드는 작업이 늦어질수록 사람들의 생활은 엉망이 될 게 뻔했다.

머리를 벅벅 긁던 클로드가 애절한 눈빛으로 웬디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지?”

“……진짜 모르겠습니다.”

“너 진짜 모를 때는 진짜라고 하는구나?”

“…….”

총관인 클로드도 모르는데 웬디라고 뾰족한 방법이 생각날 리가 없다.

보좌라고는 해도 그녀가 맡은 일은 클로드를 호위하는 것이 주였으니까.

고민하던 클로드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떨쳐 냈다.

지금은 고민할 시간도 아까웠다. 빨리 거래부터 마무리하고 다음 업무를 쳐 내야 했다.

“가격은 나중에 다시 얘기합시다. 그것 말고 다른 문제는 없죠?”

클로드의 물음에 상인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직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 계속 이렇게 대량으로 구매하시면 결국 문제가 생길 겁니다.”

“무슨 문제요?”

“펜리스에서 너무 많은 돈을 뿌리고 있습니다. 북부 물가가 점점 요동치고 있어요. 돈을 버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야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피해 보는 사람들도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북부는 애초에 척박한 지역이다.

그런데 그나마 눈곱만큼 있는 자원들을 펜리스 영지에서 전부 쓸어 가고 있으니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하거니와, 공급 물량이 아예 씨가 마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으음…… 너무 많이 샀나? 그렇지만 다 필요해서 산 건데 말이죠. 앞으로도 계속 사야 하는데?”

“지금 사들이시는 것들이 대부분 원재료 아닙니까? 그걸 펜리스에서 다 빨아들이고 있으니, 아무래도 다른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귀족들이요. 아시죠?”

클로드도 상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했다.

무지막지한 지셀의 정책 때문에 엄청난 돈이 북부에 풀리고 있었다. 돈을 뿌리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단들이야 오랜만에 큰 손님을 받아서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다.

가난한 영지의 농노들이야 누가 뭘 사고팔든 신경 쓰지 않겠지만, 경제 활동에 깊이 발을 들인 귀족들은 배알이 꼴리는 상황이리라.

클로드는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귀족들은 우리 영주님이 진짜 보기 싫겠죠. 사실 저도 보기 싫은……. 크흠흠, 이건 못 들은 걸로 합시다.”

“어차피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물가고 뭐고 체감도 잘 못 합니다. 문제는 다른 영주들과 귀족들인 거죠.”

어디서 천둥벌거숭이 같은 애송이 영주가 나타나서 북부의 시장을 엉망으로 헤집으며 물건들을 쓸어 가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담합을 해서라도 그놈의 발목을 잡거나 그놈에게 손해를 입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애송이 영주 뒤에 브랜포드 후작이 있다네? 그러니 귀족들은 차마 방해도 못 하고 구경만 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얼마나 부럽고 속이 쓰릴까? 아마 지셀이 손아귀에 쥔 것들을 모조리 뺏고 싶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것이다.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 클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인에게 마지막 거래를 시도했다.

“염두에 두겠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없죠? 그러면……. 1골드만 깎읍시다.”

“네?”

“1골드만 깎아 주세요.”

상인은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가격에 관해서는 예전에 만났을 때 협상을 끝냈다. 게다가 이미 대금도 다 치르지 않았던가.

‘깎아 달라는 말은 보통 돈을 주기 전에 하지 않나?’

상인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건 클로드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돈을 덜 주고 자기 주머니에 남겨 두면 영지의 자금을 횡령한 거지만……. 일단 돈을 줬다가 돌려받으면 개평을 받은 셈 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굳이 거래가 끝난 뒤에 이렇게 질척거리는 것이다.

“우리가 뭐 거래 한 두 번 한 사이도 아니고, 다음에도 또 할 건데! 1골드만 깎읍시다.”

“…….”

상인은 의심 어린 눈빛으로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깎아 달라는 시점도 이상하지만, 액수도 이상하다. 100골드도 아니고 1골드만 깎아 달라니?

한 영지의 총관이 달라는 뇌물치고는 액수가 너무 적어서 오히려 더 수상했다.

‘이게 무슨 속셈이지? 아멜리아 아가씨에게 보고를 해야 하나?’

아무리 고민해도 상인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클로드가 이름만 총관이지 사실상 노예 처지라는 걸 모르니 정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가 1골드만 달라고 하는 데에는 어떠한 수작도 노림수도 없었다. 그저 순수한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상인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자 무안해진 클로드가 괜히 재촉했다.

“아, 1골드도 못 깎아 줘요? 진짜 우리 사이에 이럴 겁니까? 다음에 우리랑 거래 안 할 거예요?”

“아, 예…… 그 정도야 해 드릴 순 있죠.”

결국 상인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제 주머니에서 1골드를 꺼내 주었다.

클로드는 희희낙락하며 돈을 받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아휴,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다음에는 좋은 술도 한잔하면 좋겠네요. 우리 영지에는 영 맛 좋은 술이 없어서.”

그러니까 좋은 술을 하나 가져오라는 뜻이다.

상인도 그 뜻을 알아듣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지금은 ‘고객님’이니 잘 보여야 한다.

“아, 예……. 좋은 걸로 하나 구해 오지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살펴 가세요. 멀리 안 나갑니다.”

상인은 해맑게 인사하는 클로드에게 어색하게 웃어 주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아멜리아 아가씨가 왜 이놈들을 싫어하는지 조금 알 거 같다.’

액수가 이상할 정도로 작은 건 이해가 안 가지만, 아무튼 갑질에는 도가 튼 놈이었다. 총관도 이럴진대 그 영주란 놈은 얼마나 꼴통일까?

북부를 통틀어 손꼽히는 망나니이니 아마 직접 보면 클로드보다 더 속이 터지는 인간이리라.

‘아가씨한테 파혼까지 당한 걸 보면 알 만하지. 그런데 대체 1골드는 무슨 의미일까? 아가씨에게 보내는 신호 같은 걸까?’

상인은 이걸 보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끙끙대고 고민하며 펜리스를 떠났다.

그를 지켜보던 클로드는 상인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영주님이 저놈들은 적이라고 했으니 1골드 정도는 뺏어도 괜찮겠지.”

자신은 지금 적에게서 1골드를 뺏은 것이다.

이것도 나름의 전적이라면 전적이다.

클로드는 기분 좋게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랜만에 ‘진짜 내 돈’을 만져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라?”

그런데 주머니에서 돈이 잡히지 않는다.

혹시 착각했나 싶어서 여기저기 다 뒤져 봐도 나오지 않았다.

“으헉! 뭐야? 내 돈 어디 갔어!”

바닥에 떨어졌나 싶어 샅샅이 살펴봤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클로드는 한참을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하늘을 보며 외쳤다.

“으아아아아! 왜 나 클로드는 행복할 수가 없어!”

‘에휴.’

절규하는 클로드를 보며 웬디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조용히 영지의 공금 상자로 다가가 금화 하나를 넣으려다 멈칫했다.

웬디는 여전히 빽빽대는 클로드를 보고 한숨을 내쉬더니 그를 불렀다.

“총관님, 여기 금화 하나가 떨어져 있네요.”

“어? 진짜? 찾았어? 이게 왜 거기에 있지? 금화에 발이 달렸나? 으헤헤헤, 찾았다.”

클로드는 희희낙락해서는 웬디에게 뛰어가 금화를 받았다.

돈을 다시 주머니에 소중히 챙겨 넣는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 * *

펜리스 영지에 사는 사람들은 영지로 꾸역꾸역 몰려오는 이주민들을 보며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거지들인가?’

꾀죄죄한 겉모습과 우울한 표정을 보면 이주민이 아니라 피난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들 제대로 못 먹고 살았는지 비쩍 말라 있었다. 심지어 병자들까지 섞여 있는 거 같았다.

가신들은 몰려드는 이주민들을 보며 혀를 찼다.

‘상태를 보아하니 당장 일도 시키지 못하겠구나. 이거 돈만 나가게 생겼다.’

‘사람이 늘어나는 건 좋은데…….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 어디서 저런 사람들만 얻어 온 거지? 혹시 영주님이 사기당한 거 아닌가?’

가신들뿐만이 아니다. 기존에 이곳에 살고 있던 영지민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주민들을 바라보았다.

텃세를 부리려는 게 아니라, 그간 어렵게 살아오며 몸에 밴 본능 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잔뜩 늘어나니 치안 상태와 식량 조달 상태가 걱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직 지셀만이 이주민들을 보며 별다른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을 보낼 줄 알고 있었으니까.

‘멀쩡한 사람들을 쉽게 내어 줄 리가 없지.’

아무리 지셀을 지원해 주기로 결정되었다 해도, 인구는 영지 운영의 근간이자 영주들의 가장 큰 재산이다.

귀족들 욕심이 얼마나 큰데 그런 걸 그냥 내주겠는가?

제대로 된 기술자나 건장한 사람들을 보내 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빈민 구제란 명목으로 가난하고 살기 힘든 사람들만 잔뜩 모아서 보내 주었다. 이 기회에 빈민가를 싹 청소한 것이다.

그 외에 세금을 제대로 못 내는 마을이나 화전민들, 소소한 범죄자들도 죄다 끌어모았다.

보낸 뒤의 일은 걱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지원해 주기로 했던 브리반트 영지는 인구만 적을 뿐 돈이 많았고, 적염의 마탑이 있었으니까.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알아서 잘 챙겨 먹일 거라 생각한 것이다.

이주민들을 살펴보던 지셀은 옆에 있던 로웰에게 말했다.

“로웰, 바로 인구 조사를 시작해. 우선 일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을 분류해라. 아픈 자들은 벨린다에게 말해 치료를 시작하고, 건강한 애들은 뽑아서 길리언에게 보내. 당장 치안 유지에 쓸 인력이 부족할 거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첩자들은……. 아니다. 당장 저기에선 찾을 수도 없겠군. 어차피 안 내보내면 그만이니까.”

분명 다른 영지의 첩자들이 저 무리에 끼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왕국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첩자를 골라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바쁜데 그런 데 힘을 쏟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첩자가 들어오는 건 완벽하게 막을 수도 없다. 그냥 밖으로 안 내보는 게 최고다.

“클로드는 어디에 있지?”

“상단과 거래를 하러 갔습니다. 곧 도착할 겁니다.”

“오는 대로 이주민들에게 식량 분배부터 확실히 하라고 해. 아마 배가 많이 고플 거다.”

“알겠습니다. 일단 임시 거주지로 모두 데려가겠습니다.”

거주지를 만드는 작업이 끝나지 않았으니 다들 당분간 천막에서 살아야 한다.

소동을 방지하기 위해 용병들까지 모두 투입되어 이주민들을 통제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별다른 소요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생소한 곳에 와 불안해서 그런지 지시에도 잘 따르는 편이었다.

자리를 비운 클로드 대신 로웰이 이주민들을 이끌고 임시 거주지로 갔다.

“여기가 너희들이 당분간 지낼 곳이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좀 기다리도록. 거주지는 최대한 빨리 마련해 주도록 하겠다. 식량은 매일 배급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이주민들은 눈앞에 서 있는 수많은 천막을 바라보았다.

로웰은 얼굴이 조금 벌게졌다.

이 사람들은 어쨌든 지셀의 요청에 따라 강제로 이주를 당한 사람들이다. 당연히 새로 살게 될 곳이 어떨지 기대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부른 펜리스에서는 살 곳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천막에서 지내라고 해야 하니……. 창피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로웰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주민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와, 천막이 깨끗하잖아? 전에 살던 곳보다 나은데?”

“집이야 뭐 비만 피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안 굶는 게 더 중요하지.”

“식량도 매일 준대요. 이제 안 굶어도 돼요. 근데 믿어도 되나?”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은 로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그냥……. 진짜 거지들만 싹 모아서 보냈구나.’

요새 좀 살 만해지니 깜빡하고 있었는데, 펜리스 영지도 얼마 전까지는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 나갈 정도로 살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니 새삼 이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지금은 먹을 것만 챙겨 줘도 행복하겠지.’

로웰은 속으로 혀를 차며 사람들을 분류하고 천막을 배정했다.

한편, 집무실로 돌아가던 지셀에게 클로드가 허겁지겁 찾아왔다.

“영주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셀은 인상을 찡그렸다. 가뜩이나 일이 넘쳐 머리가 복잡한데 또 일이 늘 모양이었다.

“또 왜. 너는 맨날 뭐가 그렇게 문제야?”

“지금은 진짜 문제입니다.”

“뭔데?”

“목재가 다 떨어졌습니다. 이러다가는 거주지 공사뿐만 아니라 모든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겁니다.”

그 말에 지셀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애초에 영지 내에서 생산되는 양만으로는 부족할 것을 고려해서 상단을 통해서도 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문제가 생각보다 빨리 터져 버렸다.

“아, 진짜 거지 같은 영지네. 돈을 그렇게나 쏟아부어도 문제가 줄어들지를 않아.”

“영지 전역에서 공사가 진행되다 보니 자재가 너무 빠르게 소모되고 있습니다. 영지에서 확보하는 것도, 상단에서 구매하는 것도 한계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문제입니다.”

돈이야 더 들어도 상관없다. 여차하면 화장품을 핑계로 로잘린에게서 더 뜯어오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시간이 더 걸린다는 건, 사람들의 목숨과 직결된 문제다.

잠깐 고민을 하던 지셀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 하고 탄성을 흘렸다.

“당장 목재를 대량으로 구할 방법이 있어! 돈도 안 들어!”

“네? 어디서요? 어떻게 대량으로 구해요? 돈은 왜 안 든다는 겁니까?”

“페르디움으로 가면 돼.”

“페르디움이라면……. 마수의 숲에서 구하시려고요? 초입만 벌목해도 몬스터들과 맹수들이 튀어나올 텐데요!”

기겁하는 클로드를 보고 지셀이 혀를 찼다.

“당연히 그건 아니지. 지금 바쁜데 마수의 숲을 언제 다시 토벌해? 그건 나중에 해야지.”

“그러면 어떻게……. 서, 설마?”

지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부족하면 그쪽 숲하고 산이라도 털어야지. 페르디움하고 우리 영지는 운명 공동체니까.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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