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상황이 좀 불편하지? (3)
지셀은 그런 속내를 감추고 싱긋 웃으며 모두를 둘러보았다.
“또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없지?”
“예에…….”
“그래. 그럼 이제 다들 각자 뭘 해야 하는지 알 거야. 특히 마법사들은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다른 시설도 중요하지만 경작지를 늘리면서 수로와 저수조를 확장하는 작업이 제일 중요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우선 이주민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거주지를 만들고 다양한 시설과 공방들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면서 병장기와 전쟁에 필요한 물자들도 쉬지 않고 만들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 확보.
아직은 상인들에게서 계속 사들이고는 있지만, 공급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
이주민을 받아서 곧 인구가 급격히 늘어날 예정이니, 장기전에 대비하려면 경작지를 대규모로 늘려서 미친 듯이 식량을 뽑아내야 했다.
모두의 낯빛이 우중충해졌다.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닌데 언제 다 만든단 말인가?’
‘게다가 전쟁 준비까지 동시에 해야 한다니, 이게 영지냐…….’
‘그런데 죽기 싫으면 해야 해. 미치겠네.’
상대가 다른 귀족이라면 몰라도, 이미 지셀에게 한 번 얻어터진 데스몬드 백작이다.
그에게 지기라도 하면 분명 영지는 쑥대밭이 되고, 펜리스와 페르디움의 가신들은 죄다 목이 날아갈 것이다.
정말 하기 싫지만, 죽기 싫으면 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우거지상을 짓고 있는 가신 중에서도 가장 안색이 안 좋은 사람은 알포이였다.
‘뭐, 뭐부터 해야 하는 거지? 할 게 너무 많잖아!’
영주가 없는 동안 좀 설렁설렁 지낸 터라 일이 좀 많이 밀려 있었다.
밀알은 곧 수확할 종자를 사용하면 되니, 마나 집속진을 새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토지에 쓸 룬스톤은 경작지가 늘어나는 속도에 맞춰 대량으로 만들어야 한다.
마법사들 전부가 쉬지 않고 마법진을 새겨야 겨우 필요한 분량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법사들이 할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다른 공사들에도 끌려다녀야 한다.
‘각오하라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미리미리 일 좀 끝내 놓을걸. 난 죽었다.’
살인적인 작업량을 확인하고 알포이와 마법사들은 절망했다.
어떻게든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갈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마법사들의 표정을 본 지셀은 피식 웃더니 바네사에게 당부했다.
“바네사.”
“네, 넵!”
“당분간은 연구보다는 알포이를 도와서 작업에 전념하도록 해. 일이 많기는 한데……. 괜찮지?”
“그럼요! 맡겨만 주세요!”
다른 마법사들과 다르게 바네사는 주먹까지 불끈 쥐며 호기롭게 외쳤다.
언제나 지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그녀가 이런 일들을 마다할 리 없었다.
게다가 6서클의 경지에 올랐으니 바네사가 작업에 전념한다면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질 것이다.
“좋아, 아주 믿음직해.”
지셀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임무도 확인해 두기로 했다.
가장 먼저 로웰에게 물었다.
“내가 전에 사람들 찾아오라고 한 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영주님이 명령을 내리셨을 때 바로 사람을 보냈으니 앞으로 한 달 정도면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은 다 데려올 거 같습니다.”
“그래. 그 사람들 도착하는 대로 나한테 바로바로 얘기하고, 첩자들도 더 양성해서 주변 정보를 빼놓지 말고 수집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정보 관련 부분까지 강조한 지셀은 이번엔 길리언을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용병들을 활용하려면 개개인의 무력도 중요해. 당분간은 훈련할 때 각자 실력을 상승시키는 데 중점을 두도록.”
“알겠습니다.”
길리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런 얌전한 태도는 지셀에게만 보이는 것이고, 훈련할 때는 용병들을 아주 죽어라 굴려 댈 것이다.
지셀은 카오르를 돌아보며 물었다.
“용병 훈련을 길리언이 진행하면 카오르는 할 일이 없겠는데. 뭐 따로 특별히 하고 싶은 거 있어?”
카오르는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절대 없습니다.”
“…….”
너무 당당하게 나오니 순간 지셀도 할 말을 잃었다.
지셀은 잠깐 혀를 차고는 카오르에게 말했다.
“용병들은 절반씩 돌아가면서 훈련을 진행한다. 카오르는 당분간 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용병들을 데리고 치안을 유지하는 데 계속 신경 쓰도록. 아직 영지에 병사들이 부족하니까.”
“네, 뭐……. 그렇게 하죠.”
카오르는 무척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떨떠름한 이유는 별거 아니다.
그냥 그는 싸우는 것 말고 다른 일은 하기 싫어할 뿐이다.
그래서 지셀은 카오르에게 강제로 일을 할당했다. 안 그러면 어디 구석에서 술이나 마시고 놀 텐데, 그 꼴은 절대 못 본다.
“자, 그리고 벨린다는…….”
“사람들이 작업과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게 챙겨 주면 되겠죠? 생활에 불편함 느끼지 않도록 잘 지원해 볼게요.”
“크, 역시 벨린다야. 어쩌면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알아?”
“제가 모르면 누가 도련님 마음을 알겠어요? 호호호.”
능청스러운 그녀의 말에 지셀도 피식 웃고 말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상자를 치료하고 관리하는 것까지, 누군가는 끊임없이 신경을 써 줘야 한다.
벨린다는 그런 일에 이골이 난 사람이니 충분히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지셀은 모두를 둘러보며 다시 한번 더 강조했다.
“잊지 마라.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정말 다 죽는다. 언제든지 싸울 수 있게 대비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대전에 있던 모든 사람이 고개를 숙이며 영주의 명을 받들었다.
지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앞으로 일이 진행되는 상태에 따라서 변동 사항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필요하면 따로 지시를 내릴 테니 평소에는 클로드가 총괄해서 움직이도록.”
지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클로드가 가신들에게 손짓했다.
“자, 어차피 해야 할 일 빨리합시다. 각자 할 일은 대충 다 알죠? 최대한 빨리 세부 계획을 세워서 가져오세요.”
곧 이주민들이 몰려 들어올 텐데 머뭇거렸다간 부담만 더 커질 것이다.
클로드의 재촉에 떠밀려 가신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지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앞으로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대비해 둬야 한다고 분명하게 경고했다.
이래도 못 알아듣고 준비를 게을리한다?
데스몬드 백작이 와서 여기 있는 사람 다 때려죽여도 할 말 없는 거다.
* * *
다들 미친 듯이 일에 파묻혀서 지내는 만큼, 영지는 예전보다 훨씬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펜리스 영지에 안 바쁜 사람이 없지만 역시 그중에서 가장 바쁜 건 클로드라 할 수 있었다.
영지 개발의 총책임자로서 모든 업무를 총괄해야 하니 잠잘 시간도 부족할 정도였다.
상단과 만나기 위해 웬디와 함께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클로드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아아, 죽겠다. 도망가고 싶어. 이렇게 쥐어짜이느니 데스몬드 백작한테 죽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나와 함께 죽어 주지 않을래?”
“…….”
클로드의 헛소리에 웬디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한 대 쥐어박고 싶기는 한데, 막상 클로드의 몰골을 보면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눈 밑이 거무죽죽해진 지는 오래되었고, 요 며칠 사이에 살도 쪽 빠져서 스켈레톤이 형님이라고 부르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 상태에서도 저놈의 주둥이는 도무지 쉴 줄을 몰랐다.
“죽기 싫어서 일하는 건데, 일하다가 죽을 거 같아. 그렇다고 영주님한테 따질 수도 없고.”
클로드는 너무 많은 일에 치여 정신이 나갈 것 같을 때마다 지셀을 찾았다. 다시 한번 도망가자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셀도 인부들을 데리고 화장품 설비를 대량으로 추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도에 있는 로잘린에게 화장품도 새로 보내야 하고 지부를 설립할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휴, 다른 영주들처럼 놀기나 하면 우리도 적당히 눈치 보면서 일할 텐데. 보면 은근히 일 중독자라니까? 우리 영주님 솔직히 일 따위는 안 하게 생겼는데. 그렇지 않아?”
“모르겠습니다.”
“혹시 영주님이 그냥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그냥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어서 별거 아닌 일을 크게 과장한 거지. 원래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러잖아. 어때? 내 말 맞는 거 같지? 그냥 열심히 일하는 영주라는 자기 모습에 취한 거야. 그렇지 않아?”
“모르겠습니다.”
“넌 꼭 너한테 불리한 거 같으면 모르겠다고 하더라? 맨날 몰라요, 몰라요, 모르겠습니다. 야, 사회생활 참 잘하네.”
“…….”
웬디는 아예 대답하기를 포기했다.
그러자 클로드는 갑자기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웬디를 흉내 냈다.
“에, 몰라요. 에, 몰라요. 으어, 몰라요.”
‘……아, 진짜 애새끼도 아니고.’
저런 표정을 지으며 말한 적은 절대 없다.
유치찬란하게 깐족거리는 클로드를 노려보다 웬디는 그냥 고개를 돌렸다.
저 주둥이는 상대할수록 이쪽만 손해니까 그냥 무시하는 게 최고다.
클로드도 사실 지금 상황이 매우 촉박하고 위험한 건 안다.
하지만 일이 너무 힘드니 이렇게라도 헛소리를 하며 푸는 것이다.
일하면서 윗사람 흉을 보는 건 고금을 막론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으니까.
덜컹, 덜컹!
신나게 달리던 마차가 흔들거리자 투덜거리는 대상이 바로 바뀌었다.
“어후, 이 고물 마차는 언제 바꿔. 진짜 이놈의 영지는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아, 나도 명품 마차 갖고 싶다. 나 같은 사람은 그런 걸 타고 다녀야 하는데.”
“…….”
클로드의 투덜거림을 배경음 삼아 마차는 영지 경계로 이동했다.
시간이 없는 와중에도 굳이 여기까지 나온 이유는 단순했다. 영지 봉쇄 정책 때문에 상단들이 성안까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클로드는 바로 상단 사람과 거래를 시작했다.
“자자, 저 바쁜 거 아시죠? 빨리빨리 확인부터 합시다.”
보통 대규모 거래를 할 시에는 서로 안부도 묻고 차도 한잔 마시고 시작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언제나 시간이 촉박한 클로드의 입장에서는 그런 여유마저도 사치였다.
상대방도 그간의 경험을 통해 펜리스 영지의 상황을 대충 파악하고 있기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상단이 가져온 물건들을 확인한 클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량도 문제없고 품질도 나쁘지 않군요. 다음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당연하지요. 이렇게 대량으로 구매해 주시는데 제가 어찌 소홀히 하겠습니까.”
물건을 가져온 상인도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가격도 예전에 조율을 끝낸 상태라 거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거래지만 둘의 내심은 달랐다.
‘영주님이 이놈들은 조심하라고 했지? 얌체 같은 놈들 치고는 거래를 참 깔끔하게 한단 말이야.’
‘후, 아가씨가 이놈들은 조심하라고 했는데. 대량 거래만 아니었어도……. 그런데 가짜 금화도 안 쓰고 별문제 없는 거 같은데? 뭐가 문제인 거지?’
이번에 거래를 진행한 상단은 바로 아멜리아가 거느린 악티움 상단이었다.
악티움 상단은 요새 북부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품질 좋은 상품을 기반으로 계약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신용도를 높여 덩치를 빠르게 키우고 있었다.
‘으음, 아직은 자재가 많이 필요하니까……. 당분간은 이놈들과 거래할 수밖에.’
‘으음, 아직은 자금이 많이 필요하니까……. 당분간은 이놈들과 거래할 수밖에.’
우습게도 양쪽 다 서로를 적대하면서도 서로가 필요해서 모른 척 거래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셀과 아멜리아도 그 사실을 알지만, 굳이 막지는 않았다.
막아 봐야 자신도 손해였으니까.
서로 싫어하면서도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면에서 두 사람은 무척 닮은꼴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거래가 끝나나 했는데 상인이 조금 곤란해하며 입을 뗐다.
“저기, 총관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다음 거래 때는 물건들 가격이 조금 오를 거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가격이 오르다니요.”
“요새 식량이며 원자재 가격이 많이 올라서요. 저희도 참 물건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러자 클로드는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상인을 흘겨보았다.
‘어쩐지 영주님이 이놈들 조심하라고 하더라니……. 슬슬 바가지를 씌우려고 떡밥을 뿌리는 건가?’
이런 나쁜 놈들한테는 확실하게 따져야 손해를 안 본다.
“아니, 저희가 지금 대규모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격을 올린다고요? 설마 노린 겁니까?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한데요.”
“그게 아니라…….”
“우리 영주님 뒤에 누가 있는지 아시죠? 아,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곤란하고 부끄러운데. 혹시 브랜포드 후작님이라고 아시나 몰라?”
브랜포드 후작은 지셀의 후견인이다. 하지만 클로드는 그가 마치 자신의 후견인인 양 툭하면 후작의 이름을 써먹었다.
루타니아 왕국에서 브랜포드 후작의 이름을 가장 많이 팔고 다니는 사람은 아마 클로드일 것이다.
클로드가 진상 손님의 기운을 끌어올리자 상인이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어이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저희는 이윤도 거의 안 붙이고 최저가로 갖다 드리는 거 아시잖습니까. 솔직히 그 가격으로는 인건비 벌기도 힘들어요. 그냥 요새 물량들이 점점 부족해져서 그럽니다.”
우리가 파는 가격이 최저가다, 인건비가 부족하다는 말은 언제나 상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클로드는 그런 말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아니, 그러면 지금까지 잘만 공급되던 물건들이 갑자기 왜 부족해지는 건데요?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 물음에 상인은 어처구니없어하며 답했다.
“왜 부족하긴요……. 펜리스 영지에서 아예 싹 다 긁어 가지 않았습니까?”
“아하, 그러네.”
클로드는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규모 공사를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째다.
그동안 펜리스 영지는 북부에서 활동하는 모든 상단과 거래하며 필요한 물건을 쉴 새 없이 구매했다.
문제가 있다면, 북부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자원 유통량이 적다는 점이다. 그러니 점점 자재를 수급하는 데 차질이 생기고 있었다.
“끙, 미리 대책을 좀 세워 놔야겠네.”
가뜩이나 할 일도 많고 시간도 부족한데 자재 수급까지 늦어지면 큰 문제다.
고민하던 클로드에게 영지의 행정관 하나가 급하게 달려와 보고했다.
“총관님! 총관님, 큰일 났습니다!”
“응? 뭐가?”
행정관은 클로드 앞에 서 있는 상인의 눈치를 힐끔 보더니 귓속말을 건넸다.
“목재 비축분이 거의 바닥났습니다. 어떻게 하죠? 이 상태로는 당장 내일부터 공사를 진행할 수 없을 겁니다.”
“뭐? 벌써?”
거주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재 중에서 가장 많이 필요한 품목이 바로 목재였다.
땔감을 비롯해 각종 가구와 도구, 울타리와 목책, 심지어 화살과 창대를 만드는 데까지 목재가 쓰이다 보니 가장 빨리 바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 젠장. 어떻게 하지?’
클로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뒤가 없는 것처럼 나무를 베어 낸 탓에 이미 펜리스 영지 안에 있는 숲과 산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무는 성장 속도가 느리니만큼 적당히 수량을 통제하며 벌목했어야 하지만, 지금 펜리스 영지는 그런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상단을 통해 꾸준히 사들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젠장, 지금 당장 주문을 넣어도 북부에 있는 상단들의 규모로는 우리한테 필요한 물량을 감당할 수가 없을 텐데. 다른 지역의 상단을 알아보려고 해도 시간이 드는 건 마찬가지고.’
클로드는 당장 뾰족한 방안이 생각나지 않아 입술만 잘근잘근 짓씹었다.
그때, 멀리서 병사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와 말했다.
“총관님, 도착했습니다.”
“도착했다니, 뭐가 왔다는 거야?”
뜬금없는 병사의 말에 클로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따로 산 게 없는데 뭐가 도착했다는 말인가?
그러자 병사는 그걸 왜 모르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말씀하신 이주민들이 곧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거주지는커녕 거주지를 지을 목재도 없는데, 수천에 달하는 이주민들이 곧 몰려올 거란다.
클로드는 이마를 감싸 쥐고 중얼거렸다.
“아, 좆 됐다…….”
아주 큰 문제가 생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