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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44화 (144/269)

144화 정말 좋은 기회라니까요? (2)

귀족들은 서로 싸우던 걸 멈추고 투덜거렸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오!”

“쯧,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 다시 와봅시다.”

“에잉, 북부 촌놈이라 그런지 예의가 없어. 예의가. 브랜포드 후작님만 아니었어도.”

남의 가게 앞에서 칼부림하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근엄하게 예의 운운하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몰려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갔다. 아예 대화도 안 하고 문을 닫아 버리니 그들로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밖이 조용해지자 지셀이 넌지시 클로드에게 물었다.

“다 갔냐?”

“일단은 거의 다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시려고요? 다시 열면 또 이 난리가 날 거 같은데요.”

“난리가 안 나게 해야지.”

“그러니까 어떻게요?”

“대리인을 구해야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얼른 팔고 가는 게 낫겠다.”

언제까지 수도에 묶여 있을 수는 없었다.

지셀은 결단을 내리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클로드가 그 뒤를 허겁지겁 쫓으며 물었다.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거 아깝다고 하셨잖아요. 초반이라 저 난리지, 그래도 며칠 지나면 안정되지 않을까요?”

“어느 세월에? 왕국의 모든 영지에 지부를 만들고 공급하지 않는 이상 계속 사람들이 몰려들 거다. 각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상단들도 벌써 찾아왔잖아.”

“……당장 영지로 돌아가기는 힘들겠군요.”

“그래, 물량이 다 소진될 때까지 꼼짝도 못 할 판이다.”

지셀은 전생에 보았던 인기를 기준으로 수량을 예측했다.

처음에는 고급화 전략을 써서 돈 많은 소수 귀족에게만 팔다가 천천히 판로를 늘릴 생각이었다.

적당히 수요를 조절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할 계획이었는데, 로잘린을 치료한 게 소문나면서 입소문이 예상보다 빠르게 퍼졌다.

하지만 장사가 잘된다고 더 중요한 일을 놓칠 수는 없는 법.

이득을 조금이나마 나눠야 하는 건 정말 아깝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대리인을 내세우는 편이 나았다.

클로드도 대충이나마 지셀의 마음을 이해하고 비장한 각오로 외쳤다.

“차라리 제가 남아서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영주님은 그냥 영지로 돌아가시지요!”

“혼자 남으면 빈둥거리려고 그러지. 뒈질래?”

“죄송…….”

클로드가 은근슬쩍 내비친 야망은 지셀의 철벽에 가로막혔다.

“그럼 누구한테 맡기시려고요?”

“글쎄다…….”

대리인은 귀족도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이 세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에일즈버 백작 부인도 나쁘진 않지만, 이왕 후견인으로 엮인 거 브랜포드 가에 맡기는 게 낫겠지.’

지셀은 건들건들 브랜포드 후작의 저택에 찾아갔다.

갑자기 찾아온 그를 보고 브랜포드 후작은 두통을 참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친구 집 놀러 오는 것도 아니고…….’

그는 속마음을 감추고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사기꾼이 흔히 뱉는 대사였다.

브랜포드 후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지셀은 한치의 거리낌도 없다는 듯 당당하게 후작을 마주 보았다.

“……말해 봐라.”

“현재 화장품의 인기가 점점 더 높아지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브랜포드 후작가에서 화장품 판매를 대신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후작이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되물었다.

“잘 팔리는데 왜 굳이 넘기겠다는 거냐?”

“사람이 너무 몰려서 저희 쪽 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판매금의 10%를 드릴 테니, 대신 투자금으로 30만 골드만 주시지요.”

브랜포드 후작은 어이가 없어 입을 떡 벌렸다.

30만 골드면 작은 영지도 살 수 있는 거금이다. 그런 큰돈을 저렇게 쉽게 말하다니.

화장품의 인기가 어마어마하긴 하지만, 고작 10%의 지분과 30만 골드를 바꾸는 건 말도 안 된다.

‘이놈이 부탁 몇 번 들어주니까 내가 호구로 보이는 건가?’

이 정도로 감정이 격해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브랜포드 후작이 인상을 쓰며 내뱉었다.

“싫다.”

단칼에 거절하는 모습에 뒤따라온 벨린다와 클로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이 이번에는 너무했어. 30만 골드라니. 그 돈이면 수십 년은 놀고먹겠다.’

‘아, 우리 영주님은 왜 이렇게 스케일이 크실까? 저게 정말 되는 거래라고 생각한 거야? 바보도 그런 거래는 안 하겠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려고 할 때, 자칭 지셀의 후원자 로잘린이 끼어들었다.

“아버지! 제가 절반을 낼게요. 받아들이세요. 이건 정말 좋은 기회예요.”

갑작스러운 발언에 브랜포드 후작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기회라니, 이따위 게 무슨 기회란 말이냐?”

“화장품은 결국 소모품이에요. 끊임없이 팔려 나갈 겁니다. 투자금도 언젠가는 다 회수할 수 있어요.”

“어느 세월에 그 돈을 채운단 말이냐? 10%면 고작 10골드다. 거기에 관리비와 운영비를 제하면 절반도 안 남을 거다.”

“지금은 수도에만 판매하고 있어서 그래요. 데네브의 이름이 왕국 전역으로 뻗어 나가면 지금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회수할 수 있을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명성과 판매로를 만드는 데에도 결국 또 시간과 돈이 든다.

브랜포드 후작이 혀를 차며 딸을 타박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아느냐? 수도에서 파는 것과 왕국 곳곳에 지점을 만드는 건 성격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제가 맡아서 관리할게요.”

자신감 넘치는 말에 브랜포드 후작이 잠깐 멈칫했다.

“로잘린 네가?”

“저한테 맡겨 주시면 확실하게, 문제없이 원금을 회수할게요.”

“저놈이 물건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볼 것이다.”

그러자 옆에서 얌전히 듣고 있던 지셀이 히죽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에이, 물건이 많이 팔리면 저한테도 좋은 일인데 설마 제가 그러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로잘린도 열심히 거들어 주었다.

“맞아요. 펜리스 남작은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보셨잖아요?”

로잘린과 선을 긋고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차피 저도 나중에 여유가 좀 나면 천천히 지점을 세울 생각이었습니다. 로잘린 아가씨께서 도와주시면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겠죠. 후작가에도 큰 이득이 될 겁니다.”

두 사람이 작정하고 밀어붙이자 브랜포드 후작은 조금 당황해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잘린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우리 가문의 영향력도 높일 수 있는 기회에요. 모든 귀족이 원하는 상품을 우리 가문을 통해서만 살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이것도 맞는 말이었다.

상품을 독점하는 것도 일종의 권력이 된다.

심지어 그 상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이라면, 거기서 나오는 권력도 그만큼 커진다.

잠깐 그럴듯하다고 설득당할 뻔했던 브랜포드 후작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겨우 그 정도 이득을 얻겠다고 30만 골드를 주고 일까지 대신해 주는 건 말도 안 된다. 난 호구가 아니야!’

상식적으로 투자를 하면 지분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일까지 대신 하라니, 무보수로 일하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세상에 그런 멍청한 제안을 받아들일 투자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브랜포드 후작이 다시 거절할 기세를 풍기자 로잘린이 지셀에게 눈짓하고는 잽싸게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왕국 전역에 퍼진 지점들, 그 모든 지점에 후작가의 깃발이 걸려 있는 모습을요. 우리 가문에 절대 손해는 아니에요. 원금도 금방 회수될 거고, 그 뒤로는 온전히 이익으로 남을 거예요. 제가 한번 해 볼게요.”

수상할 정도로 필사적으로 자신을 설득하는 로잘린의 모습에 브랜포드 후작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적극적이지? 설마, 저 꼴통이 했던 얘기에 감명을 받은 건가?’

문득 한 가지 생각에 이른 브랜포드 후작이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넌 결혼이 얼마 남지 않았잖느냐. 다른 일을 벌일 여유는 없어.”

로잘린은 후작의 지적도 이미 예상했다는 듯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병이 다 나았는데 굳이 그런 집안과 결혼할 필요가 있나요? 훨씬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텐데요. 아깝지 않으세요?”

“으음…….”

브랜포드 후작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병도 낫고 성격도 예전처럼 돌아오고 있으니 그런 집에 보내는 게 아깝기는 했다.

그 모습을 본 로잘린은 바로 지금 밀어붙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어지간해서는 저렇게 머뭇거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 여러 단체를 운영해 봐서 돈 버는 건 자신이 있어요.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저한테 맡겨 주세요. 30만 골드면 싸게 얻었다는 생각이 들게 해 드릴게요.”

브랜포드 후작은 로잘린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확실히 로잘린의 상재는 자신보다 뛰어나다.

병에 걸리기 전에는 많은 단체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불평불만 한번 들은 적 없었고, 손해 본 적도 없었다. 믿고 맡겨 볼 만은 했다.

‘뭔가 그럴듯하긴 한데…… 그래도 뭔가 아닌 거 같은데…….’

브랜포드 후작은 지셀을 힐끗 바라보았다.

저놈이 보증을 서 달라고 했을 때부터 자꾸 자신을 이용하려고 하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셀은 호기로운 태도를 내비치며 말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제가 손해입니다. 당장 돈이 급하고 관리하기가 부담스러워서 어쩔 수 없이 싸게 넘기는 겁니다. 이런 기회…… 흔치 않습니다.”

사기꾼들이나 할 만한 대사를 저렇게 당당하게 내뱉는 것도 재주다.

브랜포드 후작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금액이 너무 크지 않느…….”

“아버지!”

촤르륵!

로잘린은 부채를 펴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내밀고 브랜포드 후작을 노려보았다.

“아버지답지 않게 왜 이러세요? 가문의 영향력도 높이고 돈도 벌 수 있는 일인데요! 그 가치는 아버지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나다운 게 뭔데? 화장품 파는 게 나다운 거야?’

브랜포드 후작은 괜히 억울해졌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듣고 있지? 내가 왜…… 갑자기 화장품을 팔아야 하는 거지? 내가 왜…… 쟤한테 돈을 줘야 하는 거지?’

사실 로잘린의 말이 옳다는 건 그도 안다. 아니까 문제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아니까 흔들리는 거다.

할 만한 일인데 왜 이렇게 위장이 아픈지 모르겠다.

브랜포드 후작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감았다.

저 지셀이란 놈이 나타난 뒤로 벌어지는 일마다 다 꼬이는 느낌이다.

후견인이 되어 달라 요청하더니 그 핑계로 지원까지 싹 다 받아 갔다. 이제는 화장품도 자기 대신 팔고 그 대가로 돈도 내놓으란다.

‘아, 왜 아픈지 알겠다.’

생각해 보니 저놈은 결국 자기가 원하는 걸 다 가져가고 있었다.

브랜포드 후작의 얼굴에 번뇌가 비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벨린다와 클로드가 주먹을 꽉 쥐었다.

저 브랜포드 후작이 저렇게 고민하다니!

‘도, 도련님의 제안에 흔들리다니! 진짜? 저거 진짜 브랜포드 후작 맞아?’

‘정말 설득할 수 있을까? 됐으면 좋겠다. 그럼 대박인데!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거야. 제발, 제발!’

고심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브랜포드 후작에게 지셀이 아껴 왔던 필살기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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